창작

*


8


유진은 구태여 부스럭 소리를 크게 내며 부엌을 돌아다녔다. 아까 제가 넣어놓았던 과자를 못 찾고 헤매는 것처럼 굴면서, 등 뒤로 혜준을 살폈다. 혜준은 뭐가 그리 심각한지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문득 혜준의 핸드폰 화면에 떠 있던 바하마 지사장이라는 글자가 유진의 마음을 콕 찔렀다. 바하마 지사장, 혜준이 저와 느끼는 거리일 터였다. 오늘 하루 종일 붙어있어도, 아무리 속마음을 꺼내 보고, 가장 약한 구석을 서로의 손에 쥐여 줘도, 혜준이 유진을 정의내리는 단어가 바하마 지사장인 이상 가망이 없었다. 유진은 불현듯 찾아오는 제 촉을 믿었다. 혜준에게 저의 직함, 권력, 재력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혜준을 더 도망가게 할 뿐이었다. 어떻게 한다, 유진은 설거지하면서 얼핏 본 스테인리스 볼과 쟁반을 꺼내면서 생각에 잠겼다. 혜준에게 그냥 유진 한이 되는 방법은. 


그냥 갑자기 스쳐 지나간 가정이 유진의 등골을 섬뜩하게 덮쳤다. 만약, 만약에, 오늘 바하마 지사장이라는 꼬리표를 자르지 못한다면, 어쩌면 혜준은 저를 그저 다시는 보지 않겠다 마음먹을지도 몰랐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두부 요리. 그 요리를 누가 해줬다고, 이혜준이 이야기 했었나? 유진은 혜준이 병문안을 온 것이 다 스파이를 떠보기 위한 것이라고 ‘착각’했던 날의 헛헛함을 떠올렸다. 무작정 세종시 청사에 청승맞게 앉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차가운 바람이 살갗과 휑하게 뚫린 가슴을 후비던 그 날. 간신히 혜준을 눈에 담았지만 이내 혜준은 어떤 남자의 인영에 가려졌다. 채이헌. 혜준이 동요하는 몇 안 되는 주제. 유진은 이를 갈았다. 이헌의 손을 잡고 식장으로 사라지는 혜준의 모습이 떠올랐다. 말도 안 돼. 절대로. 유진이 거칠게 과자봉지를 뜯었다.


*


잔뜩 입을 삐죽인 채 부엌에서 걸어 나오는 유진을 본 혜준이 무심코 물었다. 왜요, 과자가 생각한 맛이 아닙니까? 혜준은 그새 바지런히 노트북을 준비해서 침대 헤드에 등을 붙이고 앉아있었다. 유진은 막 뻗어 나가는 음험한 생각에 몸을 맡기며 과자를 집어 혜준의 입 가까이 가져다 댔다.


“아뇨, 맛있어요.”


이혜준씨랑 같이 먹어서, 유진이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제 입 앞에 놓인 유진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던 혜준이 이로 살짝 과자를 집어 가져갔다. 혜준의 부드러운 입술이 슬쩍 유진의 손가락을 스쳤다. 바삭, 경쾌한 소리에 유진은 점잖게 다가가자던 아까의 결심을 슬쩍 접어두었다.


“침대에서, 우리 둘이 같이?”


유진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혜준은 덤덤하게 말을 받아쳤다. 그럼, 제가 책상 의자에 앉을 테니 뒤에 서서 보시던지. 아님, 식탁에서. 유진은 그 말을 곡해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혜준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과자 부스러기 흘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혜준은 유진에게 경고하면서 손을 뻗어 과자를 하나 가져갔다. 까만 노트북 화면이 움직이더니, 이윽고 익숙한 로고와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음산한 인트로였다.


“이혜준씨 무서운 거 좋아하나 봐요.”


혜준이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가 간지러워 고개를 살짝 옆으로 뺐다. 아니, 뭐가 이렇게 좁아. 마리와 함께 있을 땐 둘이 누워도 충분하던 침대가 유진과 함께 있으니 너무 비좁게 느껴졌다. 혜준은 고개 숙인 목덜미에서 제가 쓰는 샴푸와 바디워시 향이 훅 끼쳐오자 살짝 얼굴을 붉혔다. 평소에는 있는 줄도 모르던 향이 너무 낯익으면서도 자극적으로 다가와서, 반팔 밑으로 느껴지는 유진의 근육이, 비좁은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붙어 앉아야 하는 모양새가. 모든 것이 혜준의 신경을 가시에 찔린 것처럼 곤두서게 했다.


“저 공포 영화 좋아해요.”


잠시 말을 멈춘 혜준이 계속해서 지나가는 자막을 따라 눈을 움직였다. 악취미일 수도 있는데. 나는 공포 영화가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라 좋아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공포에서, 그 상황을 빠져나가려고 계속 발버둥 치니까. 포기하지 않고. 내 삶에 정말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자꾸 날 짓뭉개려고 할 때, 그럴 때 보게 되더라구요, 그러다가 지금은 그냥, 재밌어서 보고 있지만. 범상치 않은 이야기잖아요, 시시하지 않고. 혜준은 조금 밝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유진은 뭐라고 대답할 말을 골랐지만 결국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그 대신 또 작은 과자를 집어 혜준의 입에 넣어 주는 것으로 위로를 대신했다. 차분하고 음울한 내래이션 소리에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공포 영화치고는 표현이 문학적이네요. 이거 제목이 뭐예요?”


“힐 하우스의 유령.”


작은 노트북 속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이, 혜준은 무릎을 껴안아 동그랗게 말린 자세로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보면 눈 나빠져요, 유진이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리며 말했다. 아, 이거 그냥 보던 부분에서 이어보느라. 이해가 잘 안 되시죠. 혜준이 아차 싶다는 듯 유진을 돌아봤다.


“귀신 들린 집에 살았던 다섯 남매가 어른이 되어서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인데요,”


눈은 유진 무릎 위의 노트북에 고정한 채로 혜준이 입을 오물거리며 줄거리를 설명했다. 유진은 그런 혜준의 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입술을 짓눌러보고 싶은데. 갑자기 음산한 호과음이 쾅 울렸다. 유진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아, 이게 아닌데. 유진은 속으로 큰 소리가 나면 깜짝 놀라는 제 버릇을 원망했다.


“무서운 거 잘 못 보시나 봐요.”


혜준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로 말했다. 유진은 아니, 아녜요. 나 안 무서워, 라고 열심히 변명하다가 금세 생각을 고쳐먹고는 혜준에게 달라붙었다. 아, 너무 무서워요, 이혜준씨. 유진은 제 큰 몸을 어떻게든 구겨서 혜준의 옆구리에 한층 더 바싹 붙었다. 팔짱 껴도 돼요? 혜준은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뭐요? 아니, 너무 무섭잖아. 유진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입에 발린 거짓말을 했다. 혜준은 그냥 평범한 영화를 고를 것 그랬나, 생각하며 유진의 팔이 들어올 만큼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유진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 시리즈는 매우 길어서-드라마네요, 유진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웃음 지었다- 쫓겨날 걱정을 하지 않고 마음껏 혜준의 집에 머무를 수 있었다. 단점은, 혜준이 그 드라마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말을 걸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아쉬운 대로 어슴푸레 어둠에 잠긴 혜준의 옆 얼굴선을 눈으로 더듬으면서 유진은 혜준의 조그만 버릇들을 수집했다. 혜준은 정말 공포 영화를 잘 보는 모양인지, 유진이 깜짝깜짝 놀라는 장면조차 무덤덤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그 표정은 어떤 장면에서 무너지곤 했다.


이 드라마의 핵심 유령인 목 꺾인 여자가 나올 때. 혜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몸을 움찔 떨면서도, 그 형체에 눈을 떼지 않았다. 유진은 왜 그런지 물어볼까 싶었지만, 제 촉이 조용히 경고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냥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악-.”


혜준이 작게 소리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유진은 그런 혜준에 반응에 깜짝 놀랐고, 둘째로 제 어깨를 지그시 눌러오는 혜준의 이마에 놀랐다. 화면에는 유령의 꼬임에 휘말려 결국, 높은 층계에서 떨어진 엄마가-.


“이혜준. 왜 그래요? 무슨 일이야?”


유진은 바닥에 과자가 담긴 볼을 내려놓고 스페이스 바를 눌러 화면을 멈췄다. 그리고 혜준을 품에 끌어안았다. 왜 그래. 이혜준. 유진은 누구를 달래본 적이 없어 일순 당황하다가, 엄마가 기분 좋은 날 저를 껴안아 줬던 방식을 떠올렸다. 혜준을 꼭 끌어안고 푹 숙인 머리에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혜준의 머리카락에서 올라온 상쾌한 샴푸 향이 유진의 코를 간질였다. 산소가 없는 것처럼 절박하게 헐떡이던 혜준은, 유진의 가슴팍이 오르내리는 리듬에 맞춰 점차 숨을 골랐다. 유진의 평온한 심장 소리가 둥둥거리며 혜준을 채웠다. 잦아드는 숨을 끊어 쉬면서, 혜준은 정신을 붙잡으려 애썼다. 그날, 아파트에서, 그리고, 구급차에서. 국금과 유, 아마 유진 한이었겠지, 말하고 싶었던 단어는. 그런데 나는 그 사람에게 위로를 받고 있고. 아이러니, 어그러진 기준, 배덕. 그렇지만, 나를 바라보는 사람. 그 간극에서 혜준은 잘게 떨었다.


“왜 그래요, 이혜준. 무슨 일 있었어요?”


유진이 과자를 잡았던 손가락만 빼고, 남은 손으로 혜준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 얼굴을 제게 돌리게 했다. 나 좀 봐봐요. 혜준은 눈을 깜빡이지도 못하고 저녁에 잠겨 한층 더 깊어진 유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 어둠에 잠겨 희미하게 덩어리로 뭉쳐버렸는데, 유진의 눈만은 노트북 화면에서 나온 빛을 받고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흔들림 없이, 오롯이 저를 담으면서.


“서..양우.”


혜준은 갈라져 나오는 목소리를 다듬었다. 서양우, 정인은행, BIS 비율. 엉망으로 얽혀 나오는 단어들을 한 곳에 그러모은 혜준이 다음 문장을 뱉었다. BIS 비율 조작 때문에, 그 사실을 밝히려고 서양우 정인은행 전략기획본부장을 만나러 갔었어요. 분명 조금 전까지 연락하던 사람인데. 갑자기, 옆에서 쿵 소리가 나더니. 혜준이 조금씩 말하는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작게 조각난 그 순간의 기억처럼 혜준의 말소리도 조각났다. 난, 봤어요. 봤어. 분명 며칠 전에 본 사람이. 그렇게, 그렇게 된 걸, 혜준은 조금 울었다. 모든 일의 원흉같은 남자의 품에서.


유진은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힘으로 혜준을 으스러지듯 안았다. BIS 비율, 그건 완벽했다. 실수는 없었고. 뉴스에서 확인한 그 사람의 이야기는, 유진에게 일말의 안타까움도 불러오지 않았다. 고작 그것을 못 버텨서, 그러면서 좋은 결과를 욕심내다니. 당연히 양심의 거리낌도 없었다. 수마르 대통령 때처럼. 그런데 혜준이 그 상황을 봤다니. 유진은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 상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내버렸다, 내 손으로. 그 누구보다 이혜준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 멀리 도망가고, 혜준과 같은 빈껍데기를 그러쥔 사람만 그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들으며 제가 불러온 어둠을 견뎠다.


“구급차에 같이 탔었는데. 마지막에 그렇게 힘겹게, 피투성이인 채로 그런 말을 하더군요. 국금과 유, 라고.”


어느 정도 마음을 가라앉힌 혜준이 유진의 가슴팍에서 웅얼거렸다. 아마, 유진 한 당신을 말하고 싶었겠죠. 유진은 정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그러나 도망갈 수 없는 덫에 단단히 갇힌 기분이었다. 온통 날 선 톱니들이 유진을 아귀에 잡아넣으려고 도사리고 있었다. 정말 뭐라고 대답해야 한담. 미안해요, 이혜준. 내 잘못이야. 알아요, 당신 잘못인 거. 지금 우리나라 경제 휘청이는 거, 다 당신이 그런 거잖아. 그리고 모든 잘못이 다 당신 탓이 아닌 것도 알아요. 왜냐고 묻지는 말아요. 유진 한씨, 당신을 싫어하지 않으려면 나도 타협해야 할 선이라는 게 있으니까.


싫어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 단어가 거칠게 유진의 가슴을 후벼팠다. 아까 전 상상했던 끔찍한 미래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온 기분이었다. 아, 안돼.


“내가 싫어요, 이혜준씨? 미안해요. 난 이 방법밖에 배운 게 없어. 이렇게 살지 않으면, 아니 살지 않았으면 난 여기 없었어. 아마, 영영 이렇게 살겠지 나는. 그럼 내가 싫어지나요, 이혜준?”


그냥. 우선은 옆에 있게 해줘요. 내가 당신이라는 사람을 더 알 수 있게. 난 이기적이라 내 걸  다 포기할 수는 없어. 그런데 당신이 궁금해.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어서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횡설수설하는 유진의 고백이 쉴 새 없이 혜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혜준의 뺨에 따뜻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 물방울은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과 섞여 형체를 잃었다. 잠시 제 뺨을 더듬던 혜준은 손을 올려 유진의 뺨을 더듬었다. 눈물이 손가락에 젖어 들었다. 유진은 고개를 기울여 혜준의 작은 손에 눈을 묻었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어. 혜준은 망설이다가 그만 집으로 돌아갈 배를 놓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새로 만나는 땅에 매혹돼서, 조금만 더 머무르려고 망설이다가. 그동안 살아남으려고 조심조심 쌓아 올린 이성적 판단들을 무시하고. 충동적이고, 답지 않게 욕심을 부려서. 되돌아갈 길 없는, 미지의 땅만 혜준의 발밑에 남았다. 두려웠다. 애써 무시했던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난 결핍이 많은 사람이라 당신이 주는 만큼 돌려주지 못해.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서. 내가 고생고생하며 쌓아올린 이 작은 성이 너무 소중해서, 이걸 무너뜨리고 당신에게 갈 수도 없어요.”


오늘 이렇게 있어도, 당장 다음 주에 당신을 잡아다 넣을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당신이 포기 못 하는 영역이 있는 것처럼 나도 그러니까. 그래도 괜찮아? 혜준은 유진의 품속에서 빠져나와 완전히 어둠에 잠긴 방 속에서 제 손에 뺨을 기댄 남자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비이성적인 말인지. 잡아 처넣겠다고 말하는 자신이나, 그 소리를 듣고 미동도 없는 저 인간이나. 혜준은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고 피식 웃었다. 미쳤구나, 이혜준.


“그러니까 왜 자꾸 경계를 넘어와요. 두렵게. 난 항상 울타리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기웃거리던 사람이라. 내가 간신히 가지게 된 걸 못 놓는 사람이야. 내 영역 안에 둔 건, 포기 못 해요.”


아까 왜 공포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었죠. 두려워서요. 혹시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간신히 잡고 있는 것마저 놓쳐버릴까 봐. 모든 게 두렵고, 내 자신도 두렵고. 그래서 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을 보면, 조금 덜 외로워서요. 지금도 두렵네요, 내가 뭘 잃을지, 얻을지.


혜준은 유진의 뺨을 어루만지던 손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유진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져, 조금 일그러진 표정으로 울고 있는 유진의 얼굴을 분간할 수 있었다. 익숙한 옷과 샴푸 향이 유진을 더욱 혜준의 경계 안으로 깊이 들어오게 했다. 상처받은 저 표정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거울을 보는 것처럼 느껴져서. 혜준은 울고 있는 저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제 마음의 상처는 핥을 수 없지만, 저 사람의 상처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혜준은 무릎걸음으로 유진과 남은 거리를 마저 좁혔다. 혜준의 혀가 갓 흘러나온 유진의 눈물을 훔쳤다.


두려움은, 내 원동력이기도 해요. 혜준이 작게 속삭였다.


*


혜준은 이마를 곱게 덮은 유진의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리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남김없이 핥거나, 입을 맞춰 털어냈다. 잠시간 참새처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 혜준의 입술을 느끼던 유진이 손을 올려 혜준의 턱을 잡았다. 곧 입과 입이 맞닿았다.


짜다. 혜준의 첫 감상은 그랬다. 이 사람과 첫 입맞춤은, 매우 짰다. 신파극처럼 엉엉 울어대다가 입을 맞추다니. 무드 없다. 신파스럽지 않으려고 그렇게 담백하고 건조하게 지냈는데, 결국 돌고 돌아서 여기구나, 이런 생각은 유진의 혀가 혜준의 입술을 핥으면서, 곧 어깨 너머로 넘어가 버렸다. 겁도 없이 혜준의 입안으로 침입해온 혀를 잘근잘근 씹으면서, 혜준은 유진의 목에 두 팔을 감았다. 그리고 유진의 뒷머리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까칠한 짧은 머리가 손바닥을 찔렀다. 이를 훑고, 혀를 휘감고, 입 안 모든 지형을 머릿속에 새기는 것 마냥, 유진은 한참 동안 혜준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혜준의 숨은 점점 밭아졌지만, 유진은 그것마저 삼켜버렸다. 참다못한 혜준이 유진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제발 좀, 혜준이 헐떡이며 쏘아붙였다. 유진은 제 침으로 번들거리는 혜준의 입술을 엄지로 쓸었다. 너무 좋아서요, 이혜준. 혜준의 얼굴 곳곳에 번진, 아직은 조금 덜 마른 눈물을 유진의 입술과 혀가 덮었다. 혜준이 울었던 것은, 울게 했던 기억을 흔적도 없이 다 가져가 버리려는 것처럼.


“더 가도 돼요?”


유진의 물음을 혜준이 담담하게 받았다. 그럴 거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어요. 그나저나 그건 있어요, 콘돔? 유진은 고모가 떠날 때 일어났던 작은 소동을 떠올리며 웃었다. 네, 있어요. 아냐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이혜준 만날 때만 들고 다니는 거니까, 부적처럼. 유진이 혜준을 천천히 뒤로 넘겼다. 적당히 단단한 매트리스가 혜준의 등 뒤에 닿았다.


*


혜준은 두 사람분의 숨소리를 하나하나 세고 있었다. 두 숨소리의 차이를 천천히 줄여서, 제 숨을 유진이 숨을 쉬는 박자에 맞추는 중이었다. 눈앞의 맨 가슴 근육이 오르내리는 것을 좇고 있었는데, 유진의 뜬금없는 물음이 찾아왔다.


“혹시 그 두부 요리 해 준 사람, 채이헌이예요?”


네, 어떻게 알았어요? 혜준이 고개를 밀어 올려 유진의 눈을 바라보았다. 유진이 웅얼거리며 몇 가지 욕을 되뇌는 것을 보던 혜준이, 말을 덧붙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경찰 조사가 끝난 날 데리러 오셨더라고요. 그러고는 한 식당에 데려가서, 두부 요리를 해줬어요.”


그때 워낙 경황이 없어서,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분위기 좋은 식당이었는데. 또다시 구시렁거리던 유진이 말을 뱉었다.


“나도 맛있는 요리 할 줄 알아요, 조금만 더 연습하면, 아마.”


“네, 그러시군요.”


“반응이 너무 나쁜데요?”


“유진씨가 요리를 잘하든 못하든, 저랑은 상관없으니까요. 같이 밥 해 먹고 살 사이도 아니고.”


아직은. 혜준이 작게 덧붙였다. 같이 밥 해먹고 살면 안 되나요? 혜준은 피식 웃고 몸을 돌려 유진을 등지고 누웠다. 유진은 허리께에 있던 이불을 끌어다가 혜준의 목까지 꼼꼼히 덮어주었다. 감기 걸리면 안 되니까. 유진이 혜준의 작은 등을 제 몸으로 덮고는, 혜준의 손을 끌어당겨 깍지를 단단히 꼈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유진이 낮게 속삭였다. 나 진짜 잘할 자신 있어요.


*


혜준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침 햇살이 환하게 방을 밝히고 있었다. 혜준은 몸을 뒤척이려다 몸을 온통 누가 두드리는 것 같은 통증에 신음하며 엎어졌다. 아이고, 삭신이야. 왜 이렇게몸이 아픈지 기억을 더듬던 혜준은, 어제의 그 일이 꿈이 아니라는 생각에 잠이 확 달아나 옆자리를 더듬었다. 손이 닿은 곳은 텅 비어 있었다. 아. 갔구나. 혜준은 내심 아쉬워, 텅 빈 시트를 쓸어내렸다.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혜준. 일어났어요? 좀 더 자도 되는데.”


유진이 주변 프랜차이즈 빵집 봉지를 들고 혜준에게 다가와 이마에 입을 맞췄다. 좀 더 잘래요, 아니면 일어나서 씻을래요? 씻을 거면 빵 지금 굽고. 혜준은 조금 멍멍해서 반쯤 몸을 일으키다 만 채로 멈췄다. 간 게 아니었어요? 아니, 이 좋은 기회를 두고 어떻게 가요. 쫓겨날 때까지 붙어있어야지. 유진은 다시 혜준의 뺨에 입을 맞추고 부엌으로 가버렸다.


“아니, 우리 집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기억 안 나요? 혜준씨가 가르쳐줬잖아.”



**



유진이 어슴푸레하게 밝아 오는 새벽에 눈을 떴다. 온통 푸른빛에 잠긴 방안은 고요했다. 유진은 품 안에 안겨 곤히 잠든 혜준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괜히 벅차올라 이마에 짧게 키스했다. 혜준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팔베개를 빼던 유진은 혜준이 중얼거리며 몸을 뒤척이자 바짝 굳었다. 그러나 혜준은 잠에 취했는지 다시 평온하게 잠들었다.


한참을 울리던 물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유진이 샤워를 마치고 다시 침대 가에 앉았을 때도, 혜준은 여전히 꿈나라에 빠져있었다. 그 평화로운 모습이 좋아서, 분홍빛 햇살이 혜준의 얼굴을 완전히 덮을 때까지 유진은, 가끔 혜준의 얼굴을 살며시 쓸며 아침 햇살이 혜준의 얼굴을 서서히 물들이는 모습을 구경했다. 잠든 입가에 짧게 입 맞추고 일어나려는데, 혜준이 유진의 손을 잡았다. 눈 감은 채로, 웅얼거리면서 뭐라고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뭐라고? 잘 안 들려요, 이혜준.”


유진이 낮게 웃으며 웅얼거리는 혜준의 입술에 몇 번 더 버드키스를 퍼부었다. 혜준은 귀찮은지 유진의 손을 놓고 얼굴 앞에서 이리저리 손사래를 쳤다. 핸드폰, 나 핸드폰. 알람 꺼야 해. 유진은 혜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일어나 혜준의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그 작은 방안을 한참 헤집어도, 어디 갔는지 핸드폰을 찾을 수가 없었다. 유진은 작게 한숨 쉬며 핸드폰을 열어 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축번호 1번. 이혜준. 벨 소리 때문에 깨면 안 되는데.


웅. 진동이 침대 가에서 들려왔다. 유진은 혜준이 깰세라 부리나케 진동의 근원을 찾아 헤맸다. 언제 뒤로 넘어갔는지, 혜준의 핸드폰은 침대 헤드와 매트리스 사이에 껴 있었다. 유진은 바로 핸드폰의 전화를 끊으려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멈칫했다.


유진 한.


바하마 지사장은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유진 한 이라는 제 이름만 혜준의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유진은 몇 번의 진동이 울리는 동안 그 이름을 구경하다가, 부재중 기록이 남지 않도록 혜준의 핸드폰에서 전화를 거절했다. 벅찼다, 고작 그 이름이 뭐라고. 유진은 혜준의 손에 핸드폰을 쥐여주면서 즐거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혜준. 여기 집 비밀번호가 뭐예요?”


아니, 그걸 왜 물어요. 눈을 뜬 건지 만 건지, 혜준이 아주 가늘게 실눈을 뜨고 알람을 하나하나 지우면서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른, 나 나갔다 올 거야. 유진이 혜준의 얼굴에 다시  짧은 키스를 퍼부었다. 악, 저리 가. 까칠거린단 말이야. 나 더 잘 거야. 혜준이 이불을 푹 뒤집어쓰며 돌아누웠다. 유진이 킥킥 웃으며 고치를 뒤집어쓴 헤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



“그렇게 쉽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어떻게 해요?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텐 그러지 말아요.”


유진이 짐짓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혜준을 놀렸다. 아, 내가 알려준 것도 같고. 아직 잠이 덜 물러난 혜준의 머리는 아직 조금 뿌옇게 헤매고 있었다. 부단히 몸을 일으키려던 혜준이 짧게 윽, 소리를 내며 다시 무너졌다. 몸 곳곳 마디마디가 아우성이었다. 손을 씻던 유진이 서둘러 달려와 혜준을 안아 들었다. 어디 아파요? 아니, 그럼 이게 누구 때문이겠어요. 혜준이 한숨을 쉬었다. 유진은 아까 제가 벗어 놓은 흰 티셔츠를 쏙 걸쳐주고는 혜준을 번쩍 안아 올려 화장실에 데려다 놓았다. 아이고, 아이고. 전날 전력 질주라도 한 것처럼 쑤시는 근육을 달래며 천천히 이를 닦던 혜준이, 옆에서 일회용 면도기로 면도하는 유진을 쳐다보았다.


“뭐야, 그건 어디서 났어요?”


“아까 빵 사러 가면서 하나 사 왔어요. 수염 까칠해서 싫다며.”


유진이 쿡쿡 웃었다. 내가 그랬었나, 싶은 혜준의 얼굴을 놀리듯이 웃다가, 제가 남겨놓은 흔적을 목덜미 뒤에서 발견한 유진이 눈을 반짝였다. 그 흔적을 엄지로 덧그리다가, 그 주변을 꾹꾹 눌렀다.


“씻다가 거울 보니까, 나 등에 거의 줄무늬가 생겼던데.”


고양이 아녜요, 혜준씨? 짓궂은 질문에 혜준의 얼굴이 불타올랐다. 아니, 그게, 유진씨 등이 너무 넓어서, 아니. 칫솔을 물고 잔뜩 붉어져서는 횡설수설하는 혜준의 머리를 헝클어뜨린 유진이 웃으며 화장실을 나섰다. 얼른 씻고 나와요. 아침은 토스트야.


*


혜준은 비장하게 침대에 다시 올라가더니, 노트북을 켰다. 유진은 잼을 바른 바삭한 토스트 접시를 들고 혜준 옆에 앉았다.


“다시 볼 수 있겠어요? 어제 그렇게 놀래 놓고?”


유진은 걱정스럽게 혜준을 바라보았지만, 혜준은 흔들림이 없었다. 괜찮아요. 재밌게 보던 거니까. 두려움은 내 원동력이에요, 어젯밤 혜준이 한 말이 스치듯 유진을 쓸고 지나갔다. 흔들림 없는 그런 사람.


잔뜩 걱정하고 보던 것과 반대로, 드라마의 결말은 슬프고 따뜻했다. 여느 공포물과는 다르게. 혜준은 훌쩍이며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감동적이네요. 가족이란. 혜준이 감성적인 감상을 내놓았다.


“저렇게 지지고 볶고 싸우고, 헤어져도, 가족이 있는 게 부러워.”


나도 형제가 몇 명쯤 있었으면 좋겠네요. 혜준이 혼잣말을 했다. 그런데, 한 편으론 저 주인공의 공포가 이해되기도 해. 아이를 가지는 걸 두려워하는 캐릭터 있었잖아요. 난 그래. 받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내가 누구에게 끝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과연, 흔한 롤모델 하나 없는 내가, 부모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그 이전에 결혼도 못 믿겠지만요. 아니, 사랑도. 내가 겪어보지 않은 건, 언제나 허상 같아서.”


혜준이 작게 투덜거리며 Esc 버튼을 눌렀다. 유진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글쎄, 가족을 이룬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둘부터 시작하면 돼, 유진이 그렇게 말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옷에 묻은 부스러기를 바쁘게 접시로 털고 있던 헤준의 눈도 홱, 노트북 화면으로 향했다. 망했다. 헤준의 얼굴이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눈치 없는 넷플릭스는, 이어보기 화면을 띄우고 있었고, 더 눈치 없고 친절하게도, 예고편을 틀어주고 있었다.


“와, 이혜준. 이런 취향이군요.”


잘 알아둘게요, 유진은 짓궂다 못해 얄밉게 웃고 있었다. 아, 진짜 미치겠다. 혜준은 거칠게 노트북을 닫았다. 자, 그게, 이 시리즈에 제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거든요. <굿 플레이스>의 재닛이라고. Shh,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 유진이 낄낄거리며 혜준을 놀렸다. 아 진짜. 혜준은 접시와 노트북을 모아 얌전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퍽 소리 나게 유진을 밀어 넘어뜨렸다. 어디 더 해보시죠, 밥도 다 먹었겠다. 혜준이 은근하게 유진을 자극했다.


안 그래도, 나가서 사 왔어요, 콘돔. 유진이 지지 않고 은근하게 웃으며 맞받아쳤다.


*


다시 한 번 씻고-면도기 여기 두고 가도 돼요? 다음에 와서 또 쓰게. 혜준은 유진을 노려보다가, 그러세요, 라고 말했다. 마리나 고모한테는 내가 쓰는 거라고 둘러대지 뭐, 그런 생각이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혜준은 엉망이 된 침대를 바라보았다. 침대 시트가 바뀐 걸 알면 마리나 고모가 나를. 혜준은 뒤늦게 후회를 해 보았지만, 이 시트를 계속 쓸 수는 없었다.


“나 여기서 계속 있으면 안 돼요?”


“아뇨, 고모 올 거예요. 얼른 나가요. 얼굴 마주치기 전에.”


혜준이 칭얼대는 유진을 서둘러 내보냈다. 좀, 가세요. 혜준이 힘겹게 유진의 등을 밀었다. 아, 너무 아쉬운데. 유진은 뒤돌아 혜준을 꼭 껴안았다. 언제 또 만나요? 혜준은 대답을 아꼈다. 아쉬운 대로 짧은 키스를 마친 혜준과 유진은, 담백하게 헤어졌다. 다음 번엔 우리 집에서 만나요. 유진이 마지막으로 혜준의 손을 꽉 잡았다가 놓으며 말했다. 혜준은 그 애달픈 얼굴에다가 대고 초를 쳤다. 앞으로 연락은 자제해 주세요. 쾅. 문이 닫혔다.


- 그게 무슨 말이예요? 지금 나 먹고 버리는 거야, 이혜준씨?


연달아 세 번쯤 울린 전화를 마지못해 받자, 전화기 저편에서 칭얼거리는 유진의 목소리가 혜준의 핸드폰을 가득 채웠다.


- 이번 사건 끝날 때까지 좀 자제해요. 통화 기록도 남기지 말고. 그 뒤의 일은, 뒤에 가서 생각하죠.


칭얼대지 말고, 나 감사나 무사히 통과하게 기도나 해요. 이번에 꼬투리 잡히면 정말 끝이야. 혜준은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꾼 다음, 침대 시트를 갈았다.


*


고작 만 하루쯤 같이 있다 사라진 유진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혜준이 이따금 내뱉는 한숨 빼고는, 적막이 작지만 공허한 집 속에 가득히 자리 잡았다. 식탁에 앉아 멍하니 피아노 위의 작고 빨간 화분을 바라보던 혜준이 핸드폰으로 고개를 돌렸다.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화면에 떠올랐다.


- Dear My June.


설마 메일도 보내지 말아야 합니까? 익명으로 보내는 메일인데. 스팸메일 쯤으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감사원이. 당신이 돌보는 화분에게 보내는 메일이에요, 심지어.


허, 누가 보냈는지 뻔한 메일을 보던 혜준이 고개를 저었다. 이 인간이나 나나, 둘 다 미쳤어.


삐리릭. 누군가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났다. 설마 유진 한인가? 그러나 소리를 잘 들어보자, 무언가 무거운 걸 들고 있는 마리가 누르는 도어락 템포였다. 삑. 삑삑삑. 삑삑. 도르륵.


“야, 이혜준. 너 잤어?”


한 손에 야채 곱창, 한 손에 청하를 가득 담은 편의점 봉투를 든 마리가 문을 열자마자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뭐? 아니-”


“뭐야, 아니? 아니, 너 미쳤어?! 야, 엄마도 없는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


“야, 진마리-”


“아냐, 잠깐만 내 말 먼저 들어봐. 혹시 유진 한 신체적으로 좀 문제가 있니? 아님 네가 또 열심히 철벽을 친 거야?”


“뭐, 아니, 무슨 소리야.”


“아니, 그러면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는 게 뭔데?”


너, 이 언니가 네 연애사를 다 꿰고 있지만, 아니 뭐 그걸 연애라고 불러야 하나? 하여튼 지금 얘가 네가 만난 남자 중에 제일... 아니지, 그렇게 단순 비교하기엔 좀 걸리는 게 많네. 하여튼 몸이 제일 좋은 건 확실하다, 그래도. 그건 단정 지어도 돼. 근데 그냥 보냈다고?!


마리가 식탁 위에 들고 온 비닐봉지를 거칠게 내려놓더니, 쿵쿵거리며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마리야, 내 말 좀-, 혜준은 뭐라도 말을 붙여보려고 했지만, 그 문장은 마리에 기세에 밀려 닿지도 못하고 흩어졌다. 여기 어디 아직 숨어 있는 거 아니야, 유진 한? 좀 나와보시죠. 마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화장실 문을 벌컥 열며 외쳤다. 그러다가, 침실로. 침대 시트를 발견했다.


“어? 침대 커버 바꿨네, 아니 커버를 바꿔?”


드디어 하늘 높게 치솟았던 마리의 눈썹과 목소리가 잠잠하게 돌아왔다. 잤네, 잤어. 아니, 잤네? 잤어? 다시 높이 치솟았다. 진작 이야기하지. 마리는 뿌듯하게 웃으며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야, 이혜준. 얼른 판 깔아. 너 오늘 잘 생각하지 마.


“뭘 또 잘 생각 하지 말래. 별거 없어.”


헤준이 웃음을 터뜨리며 청하를 하나하나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얘는.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너 내일 출근 안 해? 마리가 화장실에서 소리쳐 대답했다. 어, 내일 저녁까지만 들어가면 돼. 뭐 어떻게든 기어가겠지. 어이구, 그러세요, 혜준이 킥킥댔다.


“고모는? 고모 언제 오는데?”


“엄마? 엄마 병원. 아무래도 그 선생님 수술 날짜 얼마 안 남았으니까, 검사가 잔뜩 있나 보더라고.


너, 엄마 대신 나를 먼저 보게 된 걸 감사해야 할 거야. 네가 말하는 걸 들어보고, 전할지 말지 생각해볼게. 마리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결핍 생각한 장면까지 다 쓰긴 썼다! 청하가 땡기는군... 결핍은 저 말도 안되는 커플이 어떻게 서로를 인정했나! 그리고 혜준이 핸드폰의 바하마 지사장이 어떻게 갑자기 16화에서 유진 한으로 이름이 바뀌게되었는가, 에 중점을 두고 쓴 글입니다. 그 마지막에 나온 소설판 머겜 자료에 도토리묵 먹으러 간 것처럼, 그런 브릿지? 다리 느낌으로 썼어. 부족한 글이지만 같이 달려준 토리들 넘 고마워 사랑해❤️

  • tory_1 2020.04.04 19:03
    진짜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ㅜㅅㅜ)♥
  • W 2020.04.04 23:52

    흐흐 재밌게 읽었다니 뿌듯하다!!❤️❤️

  • tory_2 2020.04.04 20:11
    헐 벌써 마지막이라니ㅠㅡㅠ그동안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 토리야...❤︎ 고마워!!
  • W 2020.04.04 23:53

    아냐 같이 달려줘서 내가 더 고마워!!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 tory_3 2020.04.04 20:19

    결핍은 읽을때마다 다시 1편가서 정독하고 정주행하는거 같아 꿈같은 며칠의 기록같은 거라. 토리 글 너무 좋았어 현실감있고 정말 두사람의 캐릭 모두 살아 있어서 ㅠㅠ 고마워

  • W 2020.04.04 23:54

    크,,, 그렇게 말해주니 넘 좋다ㅠㅠ 최대한 캐붕없이 쓰려고 노력했어ㅠㅠ 토리 덕분에 용기내서 글 쓰고 여기까지 왔다 정말 고마워!!❤️

  • tory_4 2020.04.04 20:29
    아ㅠㅠ 너무 따뜻하다ㅠㅠㅠㅠ내맘속의 14.5회가 여기있네
  • W 2020.04.04 23:54

    흐흐 즐겁게 읽어줘서 고마워!! 나도 내 맘속의 14.5화야 흐흐❤️

  • tory_5 2020.04.04 21:05
    아 너무 잘 봤어~~ 마지막까지 넘나 꽉닫힌 해피엔딩이라 행복하다~~~
  • W 2020.04.04 23:55

    즐겁게 읽어줘서 고마워!! 해피엔딩!!! 이대로 쭉 결혼식장 가서 애들 셋 낳고 잘먹고 잘 사는거지!!

  • tory_6 2020.04.04 22:04

    서로의 결핍을 알아봐주고 채워주는 존재가 되었네요. 결핍이 있음에도 잘 살아내준 유진혜준 장합니다. 이제 큰 산도 넘었고, 유진도 혜준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왔으니 둘은 영원히 함께 할수 있을것 같아요. 16.5화도 기대하고 싶네요. ^^; 냉동실에 있는 갈치도 해먹어야 하고... 글 정말 잘보고 갑니다.

  • W 2020.04.04 23:56

    네 그 결핍이 저 둘을 연결하는 고리가 아닐까 싶어서 그 부분에 집중해봤습니다!! 그쵸 혜준의 영역 속에 들어간 유진... 16.5화! 냉동갈치! 아이디어 감사합니다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 tory_8 2020.04.05 07:26

    엉엉 넘 잘 읽었다 토리야.. 토리 덕에 창작방 수시로 드나들었엉! 진짜 완벽한 해삐엔딩..! 

  • W 2020.04.06 11:50

    흐흐 즐겁게 봐줘서 고마워!!!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 tory_9 2020.04.05 22:56
    톨 덕에 창작방 자주 왔었어 글 써줘서 고마오!!!
  • W 2020.04.06 11:50

    재밌게 봐줘서 고마워!!!! 같이 달릴 수 있어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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