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


5


혜준이 반신반의하면서 옷을 건네준 것과 다르게, 유진은 정말 능숙하게 옷을 다뤘다. 혜준은 그 모습을 생소하게 바라보다가, 얼룩이 사라진 것을 보고 안심했다. 그 크고 두툼한 손으로 혜준의 옷을 잡으니, 조금 장난감 같아 보였다. 물을 묻히기 전에 슬쩍 빼놓은, 시계가 사라진 왼쪽 손목뼈가 리드미컬한 손가락 힘줄과 번갈아 가며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혜준은 그 모습을 무심코 멍하니 바라보다가, 뚝 끊긴 물소리에 정신 차렸다.


“다 됐어요. 옷걸이에 걸어서 잠깐 걸어두면 될 거예요.”


고마워요, 혜준이 손을 뻗어 옷을 잡았다. 미지근한 물에 담겨 분명 미지근한 손가락인데, 닿은 부위가 뜨거웠다. 앗, 혜준은 입 안쪽 살을 깨물어 놀란 숨소리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유진은 눈썹을 들어 올려 혜준의 얼굴 표정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왜요, 내가 너무 대단해서-”


“아닙니다. 그냥 얼룩이 쉽게 사라진 게 신기해서.”


“몇억을 준다고 해도 미동 없더니, 신기하네.”


혜준은 대답을 아꼈다.



*



요리가 다시 궤도에 올랐다. 혜준은 빠르게 제 속도를 되찾고, 침착하게 로제 소스에 야채를 먼저 넣을지 두부를 먼저 넣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 잠시 부엌 구경 좀 할게요, 유진은 부스럭거리며 혜준의 작은 부엌을 뒤적거렸다. 두부는 부서질지도 모르니 야채 먼저 넣어야겠군. 계산을 끝마친 혜준이 막 프라이팬에 소스를 부었을 때였다. 유진의 손이 불쑥 혜준의 앞쪽으로 파고들었다.


“아니, 불 앞에서 위험하게!”


혜준이 벌컥 화를 내려는데, 무언가 머리 위를 통과해 목에 걸쳐졌다. 유진의 손이 잠시간 떨어졌다가, 다시 혜준의 허리 쪽으로 들어왔다. 이거하고 해요. 유진이 혜준의 귀 옆에서 지분거렸다. 유진은 앞치마의 끈을 세심하게 묶어주며 한숨 쉬듯 말을 이었다.


“이혜준씨 나랑 밥 많이 먹으러 다녀야겠어요.”


너무 마른 것 같아. 혜준은 로제소스 병과 병뚜껑을 쥔 채로 반쯤 얼어있었다. 귓가에는 유진의 따뜻한 숨과 목소리가, 등 뒤에서는 닿을 듯 말 듯 한 열기가, 위험했다. 혜준의 걱정과는 다르게 유진은 허리에 리본을 묶어주고 담백하게 떨어졌다. 따뜻한 몸체가 휙 사라지자, 아쉬웠, 아쉬웠다? 혜준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리고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얼른 무언가 말을 꺼내야 했다. 혼란스러운 속마음을 몽땅 들켜버릴 것 같아서, 방금 전에 유진 한이 뭐라고 말했더라?


“앞치마 취향이 꽤 화려하네요.”


유진이 실없이 웃으며 혜준의 속을 박박 긁었다.


“내 거 아닙니다. 우리 고모거지.”


혜준은 최대한 목소리를 갈무리하고 낮게 대답했다. 아, 고모님이 화려한 걸 좋아하는 취향이시군요. 유진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모님은 화려한 취향, 이런 말을 되뇌었다.


“내 앞치마도 하나 이혜준씨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


중얼거리듯 말한 유진이 혜준의 귀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을 살짝 넘겨주었다. 발갛게 붉어진 혜준의 귀가 공기를 만나 홧홧하게 불탔다. 이혜준씨. 벌써부터 이러면 어떻게 해요. 난 지금보다 더 더 친밀해질 건데, 당신이랑.


“아, 집중 안 되니까 저리 가서 아까 산 시금치나 갖고 와요.”


혜준이 짜증스럽게 손에 들고 있던 나무 숟가락을 휘휘 내저었다. 유진은 옷에 소스가 튈까 훌쩍 뒤로 물러났다. 냉장고 문을 열던 유진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혜준을 바라보았다. 그, 집중 안 되는 게 나를 남자로 인식한다는 뜻이죠?


혜준은 턱을 앙다물었다. 혜준이 거칠게 소스를 휘저었다. 다 부서진 두부나 먹으라지. 툭. 유진이 정성껏 매준 앞치마에 얼룩이 튀었다. 휴지로 훔쳐내더라도 쉽게 사라질 얼룩이 아니었다, 마치 혜준의 마음속 유진 한처럼.


*



“음, 이혜준씨 채식주의자입니까?”


혜준은 제가 차린 식탁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개소리지. 혜준은 유진의 심각한 얼굴을 돌아보았다. 반찬을 나르던 유진은 입매를 일자로 굳히며 식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지금 기껏 차려줬더니.


“야채 싫어하나 봐요?”


“아뇨.”


“그럼 지금 반찬 투정 하는 건가?”


기껏 차려줬더니. 저는 그런 사람이랑 밥 안 먹습니다. 나가요. 유진은 억울하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웅얼거렸다.


“그, 이혜준씨랑 밥을 먹은 적이 없어서, 오늘 메뉴가 다 풀 이길래-”


반찬 투정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이혜준씨가 해 준 음식인데요. 헤준씨 비건이면 나랑 갈치조림 못 먹잖아요. 혹시 생선은 먹을 수 있는 거죠? 유진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혜준은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도대체 이 멍청한 남자는. 월가에서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는다고 아까 마트에서 이야기한 것 같은데요.”


아, 그러네요, 유진은 눈에 띄게 안심하며 멋쩍은 듯 코를 문질렀다. 혜준은 아까 마트에서 산 품목을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점검했다. 두부, 시금치, 쌀, 어쨌든 고기 종류는 하나도 집지 않았다. 무난하게 고기나 구워줄 걸 그랬나. 혜준은 작게 한숨 쉬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쓸데없는 걱정 말고 얼른 드세요. 아까 갈치조림 산 건 잊었나 보죠?”


잘 먹겠습니다. 유진은 젓가락을 들고 두부를 집으려는 혜준을, 잠시만요, 손을 들어 막았다. 유진은 식탁 위에 놓인 반찬과 밥그릇을 이리저리 간격을 조절하더니, 이내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차려진 식탁을 이리저리 찍었다. 지금 뭐 해요? 혜준은 평소에 생각하던 유진과 몇 광년쯤 떨어진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혜준씨랑 처음으로 밥 먹는 건데. 직접 차려줬잖아요. 장도 같이 보고.”


이런 건 평생 기록으로 남겨서 간직해야 해요. 하. 혜준은 그러시던지요, 관심을 돌려 제 밥그릇의 밥을 크게 한술 떴다. 사진을 다 찍은 유진은 그제서야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정말 고마워요, 이혜준씨. 잘 먹을게요.”


혜준은 유진의 완벽한 젓가락질을 보다가, 유진의 부모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글쎄, 얄밉게 일하는 짓이나, 저 개인주의적이고 돈을 맹신하는 모습은 딱 월가 사람 같은데. 얼마 전 벤치에서 유진이 물었던 질문이 생각났다. 어느 나라 사람인 것 같아요? 이도 저도 아닌 경계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사람만, 그 서로만이 알아볼 수 있는 외로움. 혜준은 유진의 그 질문에서 제 모습을 찾아냈다. 엘리트 사회에서 홀로 떨어진 모난 돌, 그 사회에서 적응하려 발버둥 쳤던 일들. 당당하게 굴지만, 마음 어느 한구석에서 주눅 든 모습이 이따금, 때때로 저를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뿌리 깊었다. 혜준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조차 발을 걸치고 있는 이방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유진이 얼핏 제 가정사를 지나가듯 이야기해 준 일이 떠올랐다. 고모부 일로 따지러 갔을 때였나. 우리 아버지도,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나 실은 요리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혜준이 로제 두부를 미심쩍은 듯 바라보다가 덥석 베어 문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복스럽게 먹는 모습이, 기분 좋기는 하네. 보람 있어.


“왜요?”


두부를 꿀꺽 삼킨 유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혜준을 바라보았다. 저 생각을 거치지 않고 튀어나오는 질문. 정말 순도 높은 호기심과 천진난만한, 그저 의문을 위한 질문. 이 인간을 투명하다고 해야 하나, 눈치가 없다고 해야 하나. 혜준은 잠시간 뜸을 들이다 다음 말을 건넸다.


“그냥.”


그냥, 이젠 좀 지겹더라구요. 내가 요리를 해야 할 땐, 외로운 상황일 때가 많아서. 혜준은 어디까지 제 속을 꺼내놓아야 할지 가늠했다. 유진은 가만히 혜준의 눈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리다가, 가장 큰 두부를 혜준의 밥에 얹어주었다. 고마워요, 그냥 나가서 먹을 걸 그랬나, 혜준씨가 싫어하는 데도 밥 해줘서 고마워요. 나도 이렇게 먹는 밥 진짜 오랜만이거든.


혜준은 요리가 싫었다. 기억나지 않는, 기억할 추억조차 없는 엄마의 밥. 다른 아이들은 잘만 먹고 다니는 그게 혜준의 인생에는 한 번도 없어서. 아빠가 점점 삶의 의욕을 잃을 때, 제가 차려 먹는 밥은 정말, 사무치게 외로웠다. 맞벌이하는 고모와 고모부를 대신해 마리와 차려 먹던 밥. 그리고 그 마리마저 외고로 떠났을 때 고요한 집에서 홀로 꺼내 먹던 밥. 그마저도 혹시 제가 감히 마리의 영역을 넘볼까, 은연중에 눈치를 보며 집어먹던 반찬. 닭다리와 닭가슴살, 딱 그만큼의 차이였다. 제가 좀 더 눈치 없이 굴었다면, 좀 더 떼를 썼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아니지. 혜준은 상념을 털어냈다. 혜준에게 식사는 그저 삶을 잇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이 좋긴 했지만, 그리 주의를 기울이고 싶은 영역은 아니었다. 일할 때도 같이 먹는 밥이 아니면 그저 삼각김밥 하나에 우유 하나, 간신히 허기를 채울 정도만 입에 넣었다.


혜준이 제 밥 위에 놓인, 가장 큰 두부 조각을 보다가 눈을 들어 드물게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진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이 사람에게 어디까지 내 경계를 내어줄 수 있을까. 혜준은 극과 극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사람이 자꾸 꺼내놓는 결핍을 떠올렸다. 엄마, 우리 엄마가요, 귀에 거슬리는 그 마마보이 같은 구절이 그의 외로움을 포장하는 방법이었다. 저같이 외로운 사람이라는 게 지독히도 마음에 걸려서. 혜준은 멀어 보였던 유진과의 거리감을, 딱 저와 유진이 앉아 있는 이 식탁만큼의 거리까지만, 접어보기로 했다.


“그러게요. 같이 먹으니 좋네요.”


혜준이 미소 지었다. 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행여나 그 미소가 눈을 감았다 뜨면 사라질까, 말없이 그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혜준은 조금 민망해져 제 밥그릇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간질거리는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어 혜준의 입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 IMF 때 아빠 사업이 망했어요. 결국 그 실패를 견디지 못하고, 몇 년 뒤에 세상을 등지셨죠. 아빠는 내 유일한 가족이었는데.”


흠. 혜준이 마음을 다잡으려 짧게 숨을 뱉었다.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아. 여기까지는 내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 여기까지는.


“그 뒤에 고모랑 고모부가 저를 거둬주셨어요. 이미 우리 고모부를 보셨으니 뭐 이미 대충 짐작했겠지만. 풍족하지는 않았죠.”


혜준은 돈을 빌려주겠다던 유진의 모습을 떠올리고 비소를 머금었다. 아, 이 사람은 이미 내 치부를 알고 있구나.


“고모랑 고모부, 마리는 저를 정말 많이 챙겨줬어요. 알잖아요, 자식 한 명도 키우기 어려운데, 남의 자식을 키운다는 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죠.”


그러니까, 저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에요. 조금 ‘어설픈’ 때가 있지만, 저는 고모네를 제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혜준은 제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어두운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여기까지 내보일 수는 없었다. 아무에게도. 유진은 혜준의 휘어진 눈꼬리에서 설핏 흘러나오는 서글픔과 고독을 잡아냈다. 유진이 제가 무슨 짓을 벌이는지 눈치채지 못 한 채로, 혜준의 눈꼬리에 손을 가져다 대려던 참이었다.


삐리릭. 잠긴 문이 열렸다. 그 ‘어설픈’ 가족의 일원만이 혜준의 집을 드나들 수 있었다. 오늘 점심 전까지는, 확실히 그랬었다.



*



“어, 혜준아. 오늘 마리네에서 반찬을 좀 했거든. 주말에 쉬고 싶다고 한 건 알지만, 그래도 반찬만 놓고 갈게. 저번에 가족끼리라고, 자리 좀 비켜 달라 한 거 너무 미안해. 나 마리한테 많이 혼났다?”


고모가 차마 혜준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현관문을 몸으로 막으며 밖에 놓인 장바구니를 부산스럽게 집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가족끼리? 묘하게 거슬리는 어절에 유진의 한쪽 눈썹이 휙 올라갔다.


“이건, 이번에 닭볶음- 에그머니나!”


고개를 들어 혜준을 찾던 고모의 눈이 식탁에 앉아 있던 유진에게 걸렸다. 장바구니가 스륵 미끄러져 내려가다 다시 고모의 손에 단단히 잡혔다.


아, 안녕하세요. 잠시 엉거주춤 있던 유진이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고모의 손에 걸린 장바구니를 건네받았다.


혜준은 잠시 잊고 있었던 두통이 도졌다. 아이고, 골치야. 유진이 돌아간 뒤 펼쳐질 고모의 호기심과 마리의 등쌀이 벌써부터 혜준의 등을 박박 긁고 있었다. 누구야? 고모가 눈짓과 입 모양으로 열심히 물었다. 아, 아는 사람. 혜준이 무심한 척 가장하며 고모의 수사망을 빠져나가려 애썼다.


“고모, 유진 한씨야. 유진 한씨, 우리 고모예요.”


‘그’ 유진 한? 내가 아는 ‘그’ 유진 한? 고모가 눈썹을 치켜들며 혜준에게 소리 없이, 그렇지만 격렬하게 속삭였다. 하. 혜준은 한숨을 씹어뱉었다. 아, 그게.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한 손으로 가뿐하게 장바구니를 그러모은 유진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고모는 어색하게 그 손을 마주 잡고 악수했다. 미국분이시라고? 혜준이 대신 총을 맞았다면서요? 아냐, 대신이 아니라니까. 혜준이 끼어들었다. 아, 네. 제가 혜준씨 대신 총 맞은 사람입니다. 운이 좋았어요, 제가 그 자리에 있어서. 유진이 혜준의 말을 들은 척 만 척하며 고모에게 믿음직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자리를 찾아가던 고모의 눈썹이 다시금 위로 향했다.


정신 차리고 신발을 벗은 고모가 떨떠름하게 집 안에 발을 내디뎠다. 미심쩍은 듯 슬쩍 집을 돌아보던 고모가 유진과 혜준의 복장을 빠르게 훑었다. 폭탄 맞은 부엌과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본 고모가 입을 열었다.


“웬일이야? 혜준이 네가 요리를 다 하고? 요리 잘 안 하잖아.”


“그냥. 장보는 김에요.”


“장도 보러 갔어?”


눈이 동그래진 고모가 별일이다 야, 혜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아니, 화장실이 고장 나서 어쩔 수 없이. 혜준은 말을 얼버무렸다. 유진은 그 와중에도 능숙하게 냉장고 문을 열고 반찬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건 어디다가 둘까요, 고모님? 어어, 그거 그냥 중간 칸에 넣어 놔요. 과일도 있어서 얼면 안 되거든. 아차, 맨 위에 건 여기다가 가져다주고, 금방 데워줄게요. 닭볶음탕이야. 마치 제집처럼 익숙하게 냉장고를 정리하는 유진의 뒷모습에 고모의 눈이 가늘어졌다. 같이 장 보러 갔었나 봐? 주어 없는 질문이 혜준과 유진 사이를 부유했다. 의심이 짙어졌다. 아이고, 마리에게 뭐라고 변명하지. 혜준이 슬쩍 손을 관자놀이에 가져다 대고 꾹꾹 눌렀다.



*



닭 볶는 냄새가 따사롭게 집안 공기를 채웠다. 말 없는 세 사람 사이의 빈 공간을 지글거리는 소리로 메꿨다. 혜준아. 고모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날 저녁에, 왜 며칠 전에 말이야. 그놈의 진수호, 아니 네 고모부 온 날. 내가 너무 미안해.”


고모가 말을 잠시 멈췄다. 닭볶음탕 냄새가 더 짙어졌다.


“나 정말 혜준이 널 딸로 생각한다? 난 어디 가서 딸 둘이에요, 라고 말하고 다녀. 정말이야. 그냥, 그날은 좀 너무 부끄러웠어. 알잖아. 네 고모부.”


혜준은 고모의 목소리를 배경 삼아, 그날 저녁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라는 틀에서 쫓겨난 날, 뒤늦게 그 사실을 안 마리가 정말 미안해하며 고모를 닦달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혜준이가 우리에게 해준 게 얼마나, 어? 얼마나! 둘은 등쌀에 못 이겨 마리의 집으로 옮겨갔다. 마리가 혜준에게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 그냥, 엄마가 이런 치부를 드러내는 게 너무 부끄러웠나 봐.


이윽고 가스레인지 불이 꺼졌다. 멍하니 식탁을 노려보고 있던 혜준이 눈을 들어 올리자, 턱을 괸 채 저를 바라보고 있는 유진이 보였다. 탁. 그 사이를 맛있는 냄새가 갈랐다. 고모의 손이 내려놓은 닭볶음탕에서 따뜻한 김이 올라왔다.


“어, 못 보던 화분인데?”


“아, 제가 오늘 선물로 들고 왔습니다.”


혜준은 그제야 잊고 있던 화분을 떠올렸다. 작고 새빨간 화분에 담긴 야무진 다육식물. 손으로 다육이의 머리를 슬쩍 스쳤다. 잘 키워줘요. 손도 많이 안 간다니까. 유진이 화분을 돌리며 말했다.


“자, 난 할 일 다 했으니까, 이만 가볼게.”


편히 쉬렴. 식사 잘하시고 가세요, 유진 한씨. 고모는 서둘러 앞치마를 내려놓더니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혜준은 고모를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고모, 더 있다 안 가고 지금 가게? 식사하고 가세요.”


유진은 조금 망설이다가, 점수 따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는지 혜준의 말을 따라, 예, 식사하시고 가세요, 라며 고모를 붙잡았다.


“내가? 지금?”


둘 사이를 번갈아 보던 고모가 피식 웃더니 손을 내저으며 현관으로 향했다. 아냐, 마리네에 짐이 다 있어서. 문을 열고 나가던 고모가 잠시 멈춰서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이혜준. 알지? 나? 뭐를? 유진을 흘끗 본 고모가 말을 이었다. 얘, 혜준아. 알지? 너 예전에 치킨 먹으면서 고모가 한 말 기억나지? 너 기재부 들어간 지 얼마 안 됐고, 커리어도.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야? 눈을 질끈 감은 고모가 말했다. 꼭, 콘, 악! 고모! 아냐 그런 사이! 혜준이 비명을 지르듯이 말했다. 그냥 비 때문에 옷이 좀 젖어서, 아, 하여튼 그런 거-. 그런 사이가 뭔데요? 유진이 순진한 표정을 가장하며 되물었다.



*


악 현생이.. 현생이.. 흑흑.. 야금야금 써서 가져왔다! 오늘 머겜대신 즐겨주라~~~ 이제 랜선단관 보러가야지!!!


토리들 언제나 같이 달려줘서 넘 고마워❤️ 우리 오래오래 같이 달리자~~


(욕망편,,, 열심히 실력 갈고 닦아서 중간중간 들고올게ㅋㅋㅋㅋㅋㅋ오우 머니게임 덕분에 제 망상을..ㅎㅎ...ㅎㅎ)

  • tory_1 2020.03.18 22:17
    캬ㅠㅠㅜㅠㅜㅜ언제나 선생님을 기다립니다ㅠㅠㅠㅠ
  • W 2020.03.26 18:21

    크 나도 언제나 토리를 기다려요!!

  • tory_2 2020.03.18 22:29
    아 너무 좋아. 따뜻해진다.
    고모님 말씀 맹심, 또 맹심해. ㅎㅎ
  • W 2020.03.26 18:21

    아 그렇슴다 고모님 말씀은 꼭 명심해야하지요!!

  • tory_3 2020.03.18 22:34
    혜준이 삐그덕거리는거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한유진 아주 요망하네ㅋㅋㅋ
  • W 2020.03.26 18:21

    여우력 만렙 요망한 유진한!!

  • tory_4 2020.03.18 22:41

    흐흐흐흐흐흐흐흐 잘 봤습니다ㅎㅎㅎ

    다음편도 부탁드립니다ㅎㅎㅎㅎ

  • W 2020.03.26 18:21

    흐흐흐흐 다음편도 갖고 왔습니다!!!

  • tory_5 2020.03.18 22:46

    머겜러들 있어서 행복하댜...

  • W 2020.03.26 18:22

    나도 머겜러와 함께할 수 있어 넘 기쁘다ㅠㅠㅠ 머겜 최고야ㅠㅠㅠ

  • tory_6 2020.03.19 00:29

    아 기다렸어 진짜ㅠㅠ 토리야 올려줘서 고마워ㅎㅎ 토리글 보면서 진짜 엄청 웃는다~!!!

  • W 2020.03.26 18:22

    흐흐 감삼다!!! 또 열심히 써올게!!!

  • tory_7 2020.03.19 01:56
    댕댕이같으면서 여우같은 유진이 나와서 좋았고, 14화에선 유진의 얘기만 했는 데 이번엔 혜준이가 자기 얘기를 해줘서 좋았고, 고모랑 혜준이 관계도 풀어줘서 좋았고 + 고모 나오니까 왠지 소설에 현실감이 더 생기고 재밌네ㅋㅋㅋㅋㅋㅋ
    앞으로도 기대돼 넘 좋아 ㅠㅠ 무료로 읽기에 넘 아까워 진짜..고마워요♥
    아 그리고 이번편에서 왜 제목이 '결핍'인지 왜 14.5화 인지 (아마 첫 편을 썼을 때가 14화 끝나고였겠지?? 난 나중에 읽기 시작해서ㅋㅋㅋ 그래도 의미부여를 하자면) 느낄 수 있었어
  • W 2020.03.26 18:40

    그치!! 않이 채이헌이랑 허브한테만 과거 얘기 해주는 게 어딨어요 이혜준씨ㅜㅜ 돌려볼때마다 고모네 군식구였을 혜준이가 밟혀서ㅠㅠㅠ 크 아냐 첨 쓰는 글인데 좋아해줘서 내가 더 감사해요❤️


    기본 틀은 그거였어! 9화인가 혜준이 핸드폰에는 바하마 지사장이라고 저장되어 있었는데, 16화에는 어떻게 유진 한으로 바뀌었는지. 도대체 14화와 16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계 진전되려면 뭐가 있어야하는데 텅 비어서!!!ㅋㅋㅋ큐ㅠㅠㅠ 대충 서로의 결핍을 이해하고 인정해서 혜준이가 유진한을 온전한 한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냥 좀 망러팅에서 벗어나서 알콩달콩한 모습이 보고싶기도 하곸ㅋㅋㅋ 생각나는 설정들 막 끼워넣고 있어!!

  • tory_8 2020.03.19 14:46
    선생님 오늘도 잘읽었습니다 ㅎㅎ 선생님글 읽으며 승천할거같은 제광대와 전체적 리프팅효과가 있어 언제나 감사하는마음으로 읽고있습니다 다음화도 잘부탁드립니다
  • W 2020.03.26 18:41

    아닙니다 선생님 오히려 제가 댓글을 읽으며 용기를 얻어서 또 한글을 키고 다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ㅋㅋㅋㅋ토리 드립 넘 조아ㅋㅋ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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