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협상이 열리는 서울 모 호텔의 객실 안.
중앙 탁자를 두고 둘러앉은 사람들.
한쪽엔 청와대에서 온 구용완 경제수석과 차영진 비서실 선임행정관이 있고, 맞은편에 박무진 환경부 장관, 정수정 보좌관이 앉아있다.
빽빽한 서류를 건네는 영진.
영진 아무래도 협조를,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보면, “미국산 디젤 자동차 증가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보고서”
보고서를 보자마자 서류에 집중하는 무진.
못마땅한 기색으로 무진을 보는 영진. 그런 영진을 보는 수정.
용완 미국협상단이 어제 연락을 해왔어요. 미국산 디젤차 환경기준을 우리나라 기준이 아닌 미국 측 환경안전기준으로 완화해달라고.
영진 자동차 수입 할당량 역시 2만 5천대에서 5만대로 늘어날 겁니다. 그러나 그, 대기오염도는 미미하다는 EPA 미국 환경청 평가서도 함께 첨부했습니다.
영진이 빠르게 핵심 부분들을 짚는데. 무진, 보고서를 보며 EPA 서류를 수정에게 건넨다. 앞쪽을 조금 보다 조소를 머금고 휙휙 페이지를 넘기는 수정.
영진의 얼굴이 구겨진다. 아니, 이 사람들 지금 이걸 다 읽겠다는 거야?
수정 미 환경청 주장이야 늘 같습니다.
용완 알아요, 압니다. 지금 우리나라 배기가스 규제 기준보다 대폭 완화된 거 맞아요. 공기오염이나 미세먼지 배출량 늘어나겠죠. 하지만 어쩝니까. 상대는 미국인데.
무진 자동차 수입 할당량이 5만대라고 했죠.
영진 네, 그렇습니다. (이제야 좀 말이 통하네, 싶은데)
무진 정수정 보좌관, 국내 디젤차 총 소비량이 어떻게 되죠?
수정 125만댑니다.
무진 미국에서 수입하는 일본 차는요?
수정 음… 18만대는 될 겁니다.
이 사람들 뭐하는 거야, 지금? 얼굴에 짜증을 감추지 못하는 영진. 협상장 갈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는데 초조하기만 하다.
무진은 계산기를 두들기기 시작한다.
수정 미국 기준으로 완화하면 지금 미세먼지 정책에 정면으로 반하게 되는데요.
영진 미세먼지 대책, 좋습니다. 미국이 무리한 요구하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사안엔 우선순위가 있죠. 오늘 협상 굉장히 중요하고, 거절할 수 없습니다.
수정 왜죠?
영진 (잠시 멈추더니) 이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서로 보는 영진과 수정. 눈빛이 날카롭다 못해 불꽃이 튈 지경이다.
애써 분을 삭이는 수정. 우방이라면서 삥 뜯는 미국보다 더 열받는 건 저 청와대 인간들이다. 밤낮 고민해서 정책 만들면 뭐하나. 맨날 까이고 협조해주시죠, 동의해주시죠, 하며 꼭두각시 노릇만 시키는데!
무진은 여전히 뭔가를 적고 있고, 용완은 이 상황이 답답해죽겠다.
영진 (한숨 쉬고) 박무진 장관님, 듣고 계신 겁니까?
영진은 시계를 본다. 얼른 이 협상을 끝내야 예정된 대통령 시정연설, 평화협정까지 무탈히 이어질 수 있다. 환경기준이야 다음 협상 때 또 논의하면 될 일. 이 고지식한 작자들 때문에 속이 갑갑하다.
수정 장관님, 이제 이동하실 시간입니다.
영진 장관님. 제가 중요한 말을 빠뜨릴 뻔 했는데요. 만약에 이번 재협상이 틀어져서 한미 동맹에 갈등 요인이 된다면 그땐 그게 누가 됐든지 간에 자리를 거셔야 될 겁니다.
영진을 보는 무진. 덤덤한 얼굴이다.
반면 어이가 없는 수정.
와… 저, 정중하게 협박하는 거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