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해가 뜨고 달이 지며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전하, 기체후일향만강 하시옵니까.
저는 하해와 같은 전하의 성은으로 언감생심, 감히 꿈꾸지도 못했던 시간들을 보내고 있사옵니다. 그 날, 아버지와 형님께서 형장의 이슬이 되고 묵묵히 다가오는 끝을 기다리고 있던 제게 전하께서 그러셨지요. 비록 선왕전하를 지키지 못했으나 역모를 방지한 큰 공을 인정해 제 성인 은殷을 은恩자로 바꾸겠다고. 해서 저는 더 이상 은규태의 가문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으니 떠나도 된다고. 그렇게 떠나보낸 저인데 연락이 없어 참으로 괘씸하셨지요.
대국으로 건너와 자가와 함께 하게 된 이후 매일 같이 불공을 드리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감히 역심을 품으신 아버지와 아버지의 욕심으로 희생되신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빌고 또 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연락을 드리지 못했으니 제 불충을 용서치 마옵소서.
전하, 제가 아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죄 많은 제게 자가를 똑닮은 아이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벌써 몇 달 전 돌상도 치렀습니다. 이제 세상의 빛을 본지 막 1년이 지난 녀석이 뭘 안다고 그렇게 방긋방긋 웃는 것인지. 녀석의 미소를 보니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했습니다, 전하.
승하하신 선왕전하께, 대비마마께, 전하께, 자가께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드린 저인데 이리 행복해도 될는지, 이렇게 웃는 것이 용납되는지.. 전 답을 내릴 수가 없어 웃지 못했습니다.
전하, 제가 웃어도 되겠습니까. 연모하는 정인과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살아가며 웃어도 되겠습니까. 제게 웃어도 된다 그리 윤허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행여, 이 죄 많은 제가 웃어도 된다면. 추운 겨울에 꽁꽁 얼어버린 저 강이 다시 녹는 봄이 오는 날, 자가와 강이와 함께 조선으로 건너가고자 합니다. 강이에게 조선의 봄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부디 그 때까지 몸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는 이 대국에서 늘 사형의 건강을 빌고 또 빌겠습니다.」
*
「윤허한다.」
*
「보고 싶은 오라버니께.
새해 복 많이 많아, 오라버니. 얼마 전 서방님께서 연통을 보냈다고 전해 들었어. 무슨 이야기를 적었냐고 여쭸더니 답 없이 그저 미소 짓기만 하시던데, 행여 내 욕을 한 건 아니겠지?
오라버니, 나 아들을 낳았어. 서방님처럼 똘똘한 눈망울에 오라버니의 장난끼 많은 코, 그리고 내 입술을 똑닮은 아들을 낳았어. 부모가 되어보니 재강 오라버니와 대비마마께서 무슨 마음으로 나와 오라버니를 바라보았는지 알 것 같아. 행여 불면 날아날까 쥐면 꺼질까, 늘 노심초사하게 우리를 사랑해주었지, 그 두 분은.
그래서 무엄하게도 아이의 이름을 강姜이라고 지었어. 재강 오라버니를 닮아 강인할 수 있게, 재하 오라버니를 닮아 굳셀 수 있게.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의 염원을 담아 곧게 자랄 수 있게.
오라버니, 우리는 따뜻한 봄이 오면 돌아갈 거야.
서방님께선 입버릇처럼 강이에게 말하셨어. 조선의 봄을 보여주고 싶다고. 따뜻하고 인자한, 그리고 강단 있는 봄을 보여주고 싶다고. 오라버니, 서방님은 한 순간도 오라버니를 잊은 적이 없어. 매일 같이 오라버니의 소식을 물으며 조금이라도 오라버니에게 힘이 되고자 힘쓰셨어. 그래서, 돌아갈 거야 우리는.
그러니 따뜻하게 맞이해줘. 오느라 고생했다, 그간 잘 살았느냐 하며 웃으며 반기어줘.
대비마마 품에 강이를 안겨 드리고, 오라버니 품에 내가 안겼을 때, 서방님과 오라버니가 두 손을 맞잡았을 때,
우리는 참으로 행복할 거야.」
*
「행복한 봄을 기다리마.」
연이어 도착한 서로 다른 발신자의 연통을 읽는 재하는 웃었다 울었다하며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 곁에서 내린 차를 재하 앞에 내려놓던 항아가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묻지는 않았다. 재하는 연통을 항아에게 건넸고 항아는 꼼꼼히 읽어보았다. 소중한 연통을 잘 갈무리하여 재하에게 다시 건넨 항아의 눈에도 재하처럼 맑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
“예판에 일러..”
“...”
“대례를 준비해야겠다, 항아야.”
재하의 말에 항아가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의 대례는 가장 소중한 세 사람이 도착하는 날 치러질 것이다.
덕분에 즐거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