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 몸 불편하시면 반절만 하셔도 되요."


염불을 외던 중이 말했다.

할아버지는 꽤 오래전 부터 보청기를 끼고 계셨지만 이마저도 몇 년전부턴 크게말하지 않으면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하셨다. 


풀썩


중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노인은 무릎을 꿇고 몸을 웅크려 절을 했다.

같이 산 60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신이 이렇게 낮은 자세였던 적이 있었던가.

아흔이 넘은 노인의 움직임은 부들대며 어딘가 삐그덕 댔다.


"으흑"


노인은 웅크린채 울음을 터뜨렸다.

여기저기서 앓는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도 덩달아 눈물이 터져나왔다.


할머니의 병환은 꽤 오래전 부터 있었다.

처음은 치매였다. 자식도 못아볼 때가 허다했다.

명절때마다 누구냐 물으면 거주성명을 대야하는 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할아버지는 전국의 명의, 전국 치매관련 신약개발 뉴스만 봐도 병원엘 쫒아다니셨다.


뭘 그렇게 붙잡고 싶으셨던걸까.

내 눈엔 어떤 보이지 않는 줄같은 것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미안함이셨을까 의리셨을까 어떤 믿음이었을까....


내 기억에 두분은 그렇게 부부금슬이 좋은 부부는 아니셨다.

그렇다고 싸우시지도 살갑지도 않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딱 '그 시대'분이 셨다. 

중매로 결혼해 슬하에 6남매를 두셨고 자수성가하셨다.

어렸을 적 안방모퉁이에 앉아 장부를 두들기던 할아버지께  할머니가 꿀물을 타시고는 조심히 잘 들고 가서 할아버지 드려라는 심부름을 곧잘 했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의 앉아 계신 모습이 어딘가 초라해보였다.

난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 너희 할머니한테 고생을 너무 많이 시켰어...."

어른들 말로는 '그 시대'엔 누구나 다 없고 힘들 때였다고 했다. 

비누장사며 뭐며 안해본 게 없다고 하셨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내겐 낯설었다.

할아버지는 맏아들로 형제가 모두 먼저 돌아가셨다고 했다.

할머니는 어쩌면 가장 가까이에서 같은 시간을 살았던 마지막 존재가 아니었을까.

늙음은 지독히 외로운 것이다. 존재의 고독함을 사무치게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치매가 심해져서 나중엔 과거의 일은 기억하시지 못하셨을 텐데도

할머니의 '존재' 자체로 할아버지는 어떤 위로나 안심을 받고 계셨던게 아니었을까.


장례도우미는 수의에 뭍은 눈물자국만큼 영가가 뒤돌아 본다하는 말을 했다.

수의를 입히고 관에 넣어 운구차에 실을 때까지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

운구차 뒷문이 닫히고 "가요 아부지" 라는 말도 못듣고 잡아끌때까지 차 유리창을 맨손으로 몇번이고 쓸어내리셨다.


화장을 하면서 중의 염불이 시작되었다.

" 삶이란 뜬 구름 한조각과 같고 이것이 있었다가 사라지는것과 같다. 그렇게 만물이 흩어져도 본분은 남아잇으니 이것은 천지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고 무너져도 남아 있고...... 생사없는 대열반길에 일심기울여 부처님께 이렇게 비오니 마음을 비우고 해탈을 하오소서..."

할아버지의 두 손이 간절히 모여 합장했다. 


화장이 끝나고 한줌의 재가 된 두분의 긴 세월이 딱 2시간, 야속하리만치 일찍 끝났다.

그렇게 볕좋은 선산에 안치하기까지.....

그날따라 하늘도 높고 파란 하늘에 할아버지는 합장하고

"순아...!"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셨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더는 말이 없으셨다.


살아생전 할머니는 불교신자셔서 49일이 될 때까지

일주일에 한번 절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아흔나이에 고생스러우시겠지만 매주 나와 자리를 지키신다하신다.

언니말로는 옆에서 쓱 보고 있으면 몰래몰래 손수건으로 눈가를 비벼 닦는다 하신다.


장례식내내 엄마에게선 당신이 가실 때의 내 모습이, 

또 할아버지에게서도 멀지만 다가올 나의 모습이 보였던거 같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결말이지만 알면서도 왜 이토록 가슴아프고 슬픈 것인지.


( 나중에 와서 더 쓰던가 수정하겠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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