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드물게 한가한 오후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배짱을 튕기며 애를 먹이던 클라이언트를 오전 중에 만나 기를 꺾어놓고 나니 나머지는 일사천리.

보고서 한 무더기가 책상 위를 점령하고 있었지만, 내일 있을 행사에 대한 기대로 머리가 가득찬 유진은 거기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우웅-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들 감상에 몰입하여 흐뭇한 미소를 짓던 유진의 표정이 진동소리와 함께 뜬 메시지를 본 순간 굳었다.

 

  [지금 잠깐 통화 괜찮아요?]


  '지금?'

  시계를 보니 이쪽 보다는 메시지를 보낸 저쪽이 '통화하기 전혀 안 괜찮을 정도로' 바쁠 시간이었다. 뭔가 아주 긴요한 용건임에 틀림없어서 유진은 망설임없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두 번도 가기 전에 통화는 연결되었고, 혜준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같이 조용하고 침착했지만 엷은 불안함이 미세한 떨림과 함께 전해져왔다.   


  [좀전에 아주머니께 연락이 왔어요. 혜진이가..오늘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봐. 아무것도 안 먹고 침대에 틀어박혀서 꼼짝도 안한대요.

   어떻게 하면 좋냐고 많이 걱정하시는데 나 오늘은 곤란하잖아요, 내일 반차 때문에..]


  "OK. 내가 지금 바로 갈게요."


  '혜진'이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 이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걸려있던 재킷을 낚아채어 팔을 꿰고 있던 유진은 핸드폰을 집어들어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운 채로 코트를 마저 걸치며 대답했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후다닥 사무실을 튀어나가는 자신을 영문 모른 표정으로 황급히 뒤따라오는 비서에게는 천지가 개벽할만큼 중요한 껀이 아니고서는 내일 밤까지 아무런 연락도 하지 말라는 외침만 남기고서.



      

  번호키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그대로 집안으로 달려들어갈 뻔 했던 유진은 중문의 문턱 앞에서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구두를 벗었다. 한 손으로 문틀을 잡은 채 다른 손으로는 한 짝씩 구두 뒤축을 잡아서 당기다가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꼬꾸라질뻔 했는데, 그 부산스러운 인기척이 아이 방까지 전해졌는지 후덕한 몸매를 한 초로의 부인이 거실을 가로질러 종종거리며 복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혜진이 아버지 오셨네~"

  "아, 예. 안녕하세요."


  구두를 벗고 상체를 일으키는 중에 대충 인사를 마친 유진은 슬리퍼를 신을 겨를도 없이 양말 바람으로 쌩하니 혜진이의 방으로 걸어갔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뒤를 바짝 쫓아 따라오며 말을 이었다.


  "아유~ 혜진이가 오늘 기분이 영 그래가지고,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 도통~ 애기가 입이 아주 보통 무거워야 말이죠~"

  "아, 예. 혜진이 엄마한테 전화 받았습니다. 제가 있을 거니까 이만 가보셔도 됩니다."  


  혜진이의 등하원 도우미를 맡아주고 있는 이 분과 본인의 대화 스타일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초반부터 알아챈 유진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아내어 해결을 하기 위해 차라리 다섯 살짜리 딸과 스무고개를 벌이는 편을 택했다. 


  애기 방에 들어가시기 전에 손 꼭 씻으셔라, 기분 좀 풀리면 식탁 위에 만들어 둔 계란 샌드위치 먹이시고 안 먹는다고 하거든 냉장고에 넣지 말고 실온에 두셔야 빵이 안 굳는다, 쿠키는 하루에 딱 하나면 충분하니 더 주지 마시라, 평소엔 참 순하고 착한데 가끔 저러면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래도 애기 아빠가 와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저러다 아프기라도 하면 어쩔까 걱정되어서 애기 엄마가 바쁜거 알지만 연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주스는 미리 짜두면 맛 없어질까봐 전처리만 해서 냉장고에 넣어뒀으니 마시겠다고 하거든 스퀴저에 짜서 바로 주시면 된다, 이 닦이는 거 잊어버리지 마시라 기타등등 베이스딩딩 드럼둥둥..무려 15분에 걸친 공지사항(을 빙자한 잔소리)과 하소연 메들리를 조곤조곤 읊고 나서야 등하원 도우미 아주머니는 퇴근을 했고, 그제서야 혼신의 힘을 다하여 유지하고 있던 영업용 스마일을 얼굴에서 싹 지운 유진은 세면대로 가서 손을 씻었다.


  다섯 살이면 조잘조잘 한창 정신없이 이것저것 묻고 떠들어댈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둘의 아이는 매우 입이 무거웠다. 좀 더 어릴 때는 말문이 트이는 시기가 너무 늦어지는 것 아닌가 심각하게 걱정을 할 정도였는데, 웬걸..한 번 입이 트인 아이는 짧아도 매우 정확한 말로 자기 의사를 표시할 줄 알았다. 물론 성인이 구사하는 문장에 비하면 한참 정보량이 모자라서 종종 스무고개 판이 벌어지곤 했지만. 거기다 오늘은 기분이 별로니 스무고개가 유진 혼자 넘는 백고개 천고개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온순하고 너그러운 성품의 아이는 기분이 좋을 때면 순순히 이것저것 묻는 말에 대답을 곧잘 해주는데 반해, 속상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오면 조개처럼 입을 꼭 다물고 꼼짝도 하지 않아서 부모나 어린이집 선생님의 속을 태웠다. 아침까지만 해도 분명히 기분이 들떠 있었는데 그 사이 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 속이 단단히 상한 건지, 유진은 저절로 잡히는 미간의 주름을 펴려고 노력하며 아이의 방문을 노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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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이걸 쓰고야 마는구나. ㅠㅠ

둘이 지금 겨론을 하나 마나도 한참 나간 이야기인 마당에

광공톨들 중에 과연 이만큼 많이 나간(?) 톨이 있을까? 생각했는데...역시나 배운 톨들;; 막 벌써 셋째까지 낳게 하신 분들이 보이고...쿨럭쿨럭

영어유치원은 아니지만 다섯 살이면 얼집 다닐 나이는 맞는거지? 이런 쪽으로 하나도 몰라서 내용은 막 그냥 다 야매임. ㅠㅠ

 


+오우; 올리기 전엔 이렇게 짧은지 몰라서 걍 올렸는데 너무 짧아서 뒤에 좀 더 붙였음. 헉헉..손이 느려서..ㅠㅠ


 


 

  • tory_1 2020.03.01 18:46
    다섯살은 사춘기를 할 나이지
  • tory_2 2020.03.01 19:27

    혜진이 엄마 닮았구나! ㅋㅋㅋㅋㅋ

  • tory_3 2020.03.01 19:30
    엄빠 닮은 어떤 귀요미일지ㅠㅠㅠㅠ
  • tory_4 2020.03.01 19:33

    아가 무슨일이야ㅜㅜ이모는 너네 가족 행복만 바래요

  • tory_5 2020.03.01 19:48
    상상만해도 귀여워ㅋㅋㅋㅋㅋ
  • tory_6 2020.03.01 19:58
    뭐 때문에 그럴까 역시 다음편 있어야겠지^^?
  • tory_7 2020.03.01 20:03
    아 너무 궁금해ㅜㅜㅜㅜㅜ말하는거 듣고싶어ㅜㅜㅜㅜ
  • tory_8 2020.03.01 20:23

    기타둥둥 베이스 딩딩 ㅋㅋㅋㅋㅋㅋㅋㅋ 

  • tory_9 2020.03.01 20:27

    ㅋㅋㅋㅋ표현 넘 귀여워ㅋㅋㅋㅋ

  • tory_10 2020.03.01 20:37
    다음편 기다린다아아아 고마워!!!
  • tory_11 2020.03.01 20:52

    더줘ㅠㅠ더주세요ㅠㅠㅠ

  • tory_12 2020.03.01 21:06
    아주머니 투머치토컼ㅋㅋㅋㅋㅋㅋㅋ 애기 왜 똑땅해ㅠㅠㅠㅠㅠㅠ
  • tory_13 2020.03.01 21:41
    혜준유진 혜진이ㅠㅠ 둘째는 유준이로 부탁해ㅋ
  • W 2020.03.01 21:45

    어므나 ㅋ 스아실 처음에는 아들로 설정해서 이름이 유준이 맞았는뎈ㅋㅋㅋㅋ 한유진 닮은 아들이면 지 입으로 나발나발 다 불게 뻔해서 ㅋㅋㅋ 딸내미가 당첨되심

  • tory_15 2020.03.01 22:12
    ㅋㅋㅋㅋㅋ리틀 혜준이넹ㅋㅋㅋ
  • tory_16 2020.03.02 01:42
    유진은 외국인가했는데 애아부지였어ㅋㅋ
  • tory_17 2020.03.02 02:21
    혜진아!!!!!!!!!!!!!!!!! 이모 왔다!!!!!!!
  • tory_18 2020.03.02 19:31
    귀여웤ㅋㅋㅋㅋㅋㅋㅋㅋ베이스딩딩ㅋㅋㅋㅋ
  • tory_19 2020.03.02 23:51
    읽고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는....기타등등 베이스딩딩 드럼둥둥.......
    기타등등 베이스딩딩 드럼둥둥..
    기타등등 베이스딩딩 드럼둥둥..
    기타등등 베이스딩딩 드럼둥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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