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문장이 너무 예뻐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https://www.dmitory.com/garden/112907685

문장이 너무 예뻐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2: https://www.dmitory.com/garden/158442138

문장이 너무 예뻐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3: https://www.dmitory.com/garden/191011644

문장이 너무 좋아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4: https://www.dmitory.com/garden/221371041

외로움에 대한 구절들 모아보자https://www.dmitory.com/garden/113113510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아주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소리를 알기 이전의 내가 가엾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걸 놓을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집 안에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기 전에 그것을 놓을 각이 나오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부족해도 어떻게든 욱여넣고 살면 살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집이 아니라 피아노 보관소 같은 느낌으로 살면 될 것이다. 그랜드 피아노가 거실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테고 패브릭 소파와 소파스툴, 원목 거실장과 몬스테라 화분은 둘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거실을 통해 부엌으로 가려면 한가운데로 가로지르지 못하고 발뒤꿈치를 들고 피아노의 뒷면과 벽 사이로 겨우 지나가거나, 기어서 피아노 밑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여태까지 단 한번도 충분하다거나 여유롭다는 기분으로 살아본 적 없는 삶이었다. 삼십대 중반, 이제서야 비로소 누리게 된 것들을 남은 인생에서도 계속 안정적으로 누리며 살고 싶었다. 이십평대 아파트에는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지 않는다. 그것이 현명한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사진이 지구 반대편 먼 길을 거쳐가는 동안 행여나 구겨질까, 노인은 많이 걱정했던 것 같다. 나는 시리얼 상자를 가위로 자르고 그것을 풀로 사진의 뒷면에 단단히 붙이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얀 밤, 태양이 뭉근한 빛을 내는 창가에 앉아 가위와 풀과 사진 그리고 편지 사이를 천천히 오가며 더듬거리는 노인의 쭈글쭈글한 손을.








[서른의 반격 | 손원평]

 나는 그의 미련함이 반갑지 않았다. 모름지기 사람은 적당히 일을 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분수에 맞게. 주어진 시간과 급여에 맞게. 그러므로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 비정규직인 우리에게 일이라는 건 꼼수, 눈치, 요령의 삼 요소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최소한의 노동이라야만 한다. 그래야 헤프게 이용당하지 않고, 당연한 듯 착취당하지 않고, 적당히 치고 빠질 수 있다. 계속 못하다가 갑자기 잘하면 칭찬을 받지만 계속 잘하다가 한 번 실수하면 본전도 못 뽑고 신랄히 욕만 먹는다. 아슬아슬 선을 지키는 수준에서 일하고, 할 수 있는 일도 가끔은 못하는 척 피해 가고, 귀찮더라도 가끔 핀잔을 듣는 상황을 만들어 상사를 우쭐하게 만들 줄도 알아야 한다. 당신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그럭저럭 보통은 해. 가끔 덤벙대기도 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있어’ 정도면 충분하다. 그게 자신을 지키며 일하는 방법이다. 특히 대단한 보람이나 연봉,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먼 일일수록.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너무 닳고 닳은 인간인 걸까. 아니면 꿈이 없는 사람인 걸까.



 지나고 보니 참 흔하다. 그땐 세상에서 유일하고 남에게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인 줄 알았는데. 어쨌든 많이 울었다. 현오와의 이별은 뭔가를 상징했다. 내 인생의 한 부분이 통째로 떨어져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그와의 연애는 내 인생에서 가장 예쁘고 찬란했던 시절의 은유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이 막을 내림에 나는 울었다. 운명은 끝났고 남는 건 김빠지는 후일담이다.



  무거운 마음을 실어 터벅터벅 걷는데 갑자기 발밑에 무지개가 떠서 걸음을 멈췄다. 어디선가 흘러온 기름이 작은 물웅덩이에 고여 찬란한 무지개띠를 만들어낸 거였다. 그런데 모양이며 색이 어찌나 선명한지, 진짜 무지개보다 더 진짜 같았다. 그 묘한 아름다움이 생경해서 기름띠가 물 위에 자리 잡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꼭 비 온 뒤 청명한 하늘에 뜨는 무지개만 아름다운 건 아니구나. 아무런 사건도 등장인물도 없는 그날의 기름 무지개가 내 인생에서 꼽는 몇 장면 중 하나란 건 참 아이러니하다.








[팀플레이 | 조우리]

 그때 나는 신입사원이었고, 자꾸 헤매고 자주 어리둥절했다. 실수하고 후회하고 괴로워하며 최선을 다했다. 아득바득 챙겨 먹은 밥이 명치쯤에 걸린 채로 키보드를 두드릴 때면 함께 야근을 하던 옆자리의 동료가 건네는 농담 한마디가 소화제가 되어주었다. 그런 날들엔 누군가 나와 같은 순간에 한숨을 쉰다는 게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건물의 주차장, 어느 건물의 비상계단, 어느 건물의 화장실…… 그곳에는 나만 있지 않았고, 그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졸업 / 윤이형]

 거대한 빨강과 녹색 이파리 위에 알전구를 주렁주렁 걸친 플라스틱 포인세티아,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선 채 투명하게 반짝이는 유리 루돌프와 사슴들. 불황은 딴 세상 이야기 같았다. 토요일 한낮의 강남 거리는 쇼윈도 같았고, 막 오븐에서 나온 진저브레드 쿠키 같은 사람들이 그 안을 통 통 통 튀듯 걸어 다니고 있었다. 모두 아이싱으로 그려 넣은 것처럼 유쾌한 표정이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남자들, 또각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바쁘게 걸어가는 말끔한 옷차림의 여자들 사이로 나는 낡은 크로스백을 메고 천천히 걸었다.



 나는 물고기들을 떠올렸다. 어느 동영상에서 본 치어들을.

 멸치보다 작은 몸을 새하얀 은빛으로 빛내는 수천 마리의 치어들이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바다에 떨어져 내린 손톱 달들처럼 몰려다니는 광경을. 한꺼번에 알에서 깨어나 오염된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들은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전혀 모를 것이다. 모르지만 아무 문제도 없이 짧은 생을 잘 살아갈 것이다. 나는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자유로운 그 어린 물고기들이 부러웠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어머니가 이 짧은 소설들을 쓸 당시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겨울이면 보문동 집 안방 윗목에 있었던 원통 모양을 한 알라딘 난로의 불빛이 생각납니다. 아랫목은 몰라도 윗목에는 방 안인데도 찬바람이 불던 시절이었죠. 모양과 성능이 믿음직스러웠던 석유난로는 날이 어두워지면 그 불빛의 문양이 천장에 일렁거렸습니다. 그 기하학적 무늬가 아름다워 그걸 쳐다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녹아들며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불이 아깝다고 그 위에다 카스텔라를 구워주시기도 했습니다. 양은으로 된 둥근 찬합 통에서 행복한 냄새를 풍기며 구워지는 엄마표 카스텔라를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마당 한 귀퉁이엔 큰 석유통이 있었는데 난로에 석유가 떨어지면 주유 호스로 손수 부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석유를 다루는 것은 위험하다고 그 일을 누구에게도 시키지 않으셨죠. 연탄불을 가는 것과 난로의 석유를 채우는 것은 어머니의 수많은 일상 중 하나였습니다. 1970년대의 집 밖은 긴장과 억압의 분위기였지만, 어머니의 짧은 소설을 다시 읽으니 천장에 일렁이던 석유난로의 따뜻한 불빛 그림자가 생각납니다.








[목마른 계절 | 박완서]

 나는 인삼으로 유명한 개성의 근교 개풍군의 호젓한 한 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온통 햇빛 넘치는 푸른 들에 삼포의 갈색지붕이 드문드문 섞여 그 푸르름이 더욱 신선한 아름다운 고장이었습니다. 집은 가난한 편이었지만 그곳에서 지낸 어린 시절의 행복, 따습고 소박한 인간관계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 그때의 추억은 거의 동강난 채이지만 나는 동강난 조각들로부터 얼마든지 긴 이야기를 꾸며낼 수도 있습니다.



 내 고향의 땅도, 서울의 땅도, 내가 가본 고장이든, 못 가본 고장이든 내 나라 방방곡곡에 미칠 듯한 애착을 느낍니다. 풍치가 좋으면 좋아서, 헐벗은 곳은 헐벗은 게 측은해서 버릴 수 없습니다. 외국 여행 같은 걸 공상할 때도 여행에의 꿈보다 멀어져가는 우리 고장의 땅과의 석별의 아픔을 미리 실감할 정도로 그렇게 사랑합니다. 고무신 바닥을 통해 전해오는 흙의 감촉에서도 계절을 느끼고 숙명적인 집착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흙 위에서 가난만을 상속받은 채 적당히 어리석고, 알맞게 슬기롭고 착하디 착하게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시장 속은 별세계같이 생기에 넘쳐 있다. 팔고 사고 바꾸고 악착 같은 흥정과 에누리와 욕설의 악다구니. 상인과 고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옷가지와 먹을 것과의 물물교환이 주여서 거래는 한층 영악을 극하고 사람마다 먹을 것을 향한 집념 하나로 체면이고 예절이고 홀랑 벗은 알몸뚱이가 되어 처절한 육박전을 벌인다.

 폭격에 대비하는 동작도 거리의 행인들과는 사뭇 다르다. 일제히 흩어져 몸을 감췄다가 다시 모이기가 어찌나 빠르고 일사불란한지 의식적인 행동이라기보다 마치 본능적인 반사기능을 보는 것 같다. 제아무리 8월의 첫 태양이 온누리를 증살하고 말듯 잔인해도 사람들은 좀처럼 패배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 틈에 섞이니, 하필 이 더위에도 게다가 살벌하기 짝이 없는 난리통인데도 짓궂게 생동하는 어떤 욕망적인 것이 조금도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폭격과 기총소사는 쉬 무슨 끝장을 보고야 말듯이 나날이 격해가, 이제 아주 절정에 다다른 듯했고 이에 따른 처참한 주검과 파괴의 참상에 사람들은 익숙다 못해 목석처럼 무심해갔다.

 이런 무감동은 비단 남의 일, 이웃의 일이라서가 아닌 것이 금방 자식이 깔려 죽은 폐허에서 양식을 파내어 남은 자식을 위해 죽을 끓이는 어미에게도 이런 무감동은 없었다. 죽음이 도처에 있으면서 상가나 통곡은 없었고, 파괴에 뒤따른 건설이 있을 리 없었다.

 사신만이 횡행하는 이 죽음의 도시에 움직임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한 사람들의 끈덕진 상행위였다.

 죽기 직전까지도 먹어야 한다는 것은, 먹다가도 죽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욕된 일일까.



 뉘집에서인지 애조 띤 유행가의 가락이 은은히 들려온다. 뭉클하니 슬퍼진다. 슬프고도 감미로운 것, 조금도 정수리에 무게를 주지 않는 투명한 대기, 그러면서도 온갖 사람 사는 재미, 온갖 사람다운 가능성이 용해된 대기, 사람스럽고자 하는 것이 방해받지 않아도 되는 이 기쁨, 이런 것이 자유라는 건가. 



 그러나 진이는 매섭게 찬 눈보라 속에 서서 그 지긋지긋하게 무덥고 긴 지난 여름의 나날, 그녀를 꼼짝달싹 못하게 짓누르던 잔혹한 어떤 열기를 정수리에 따갑게 실감한다.

 마치 한발 속의 한여름 같은 잔혹한 열기는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말려버릴 것이 뻔했다. 온갖 사사로운 행복에의 꿈도 젊은이의 꽃다운 야망도 사랑하고픈 애절한 소망도.



 속으론 시장을 생각하고 가슴이 울렁댄다. 사람들이 웅성대고, 이해관계와 경쟁, 드높은 아귀다툼이 작열하는 곳이, 죽은 도시에 아직도 그런 산 구석이 있는 것이다.



 떨어져 있는 이를 위해 안달이나 조바심보다는 정성과 기도를 힘껏 발돋움시켜 먼 곳까지 뻗쳐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는 치성과도 같은 사랑을 닮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멀리서라지만 여자들의 지극한 염려와 정성을 추리고 거른 것, 쑥스럽지만 일편단심이랄까. 이런 것이 허구한 날 무진장 바쳐진 남자는 절대로 쉽사리 죽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으로 조바심을 용케 달래고 있었다.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살림살이엔 늘 이런 일 아들딸 시집보내는 일, 손주 보는 일, 생일입네 환갑입네 하는 당사자들에겐 제법 대수로우나 역시 평범한 일일 따름인 일상사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야말로 애국이니 수령이니 혁명이니보다 훨씬 평범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인 것이다. 세상에는 애국자나 혁명가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몇 배 더 많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그야 전쟁이 끝나고 나면 한동안 무용담, 훈장이 판을 치겠죠. 또 싸움터에 꽃핀 휴머니즘 이야기라든가 전쟁 중에 치부한 이야기 같은 것까지도.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란 자칫하다간 사람마다에 잠재한 호전성이랄까 영웅심이랄까 그런 걸 자극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전쟁이란 해볼 만한 거다’라는 생각까지도 갖게 할지도 모르죠. ‘전쟁이란 해볼 만한 거다’ 얼마나 철딱서니 없는 위험한 생각이겠어요. 전쟁을 겪은 우린 그저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결국 오빠의 죽음의 경우 같은 참혹의 기억, 학살의 통계, 어머니의 경우 같은 후유증, 이런 것만이 전쟁을 미리 막아보려는 노력과 인내의 밑바탕이 될 수 있을 거예요. 툭하면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 저쪽에선 ‘수령이나 사회주의 낙원을 위해서라면’ 일전도 불사할 결의를 보여야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치졸한 애국애족에서 깨어나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될 거예요. 결국은 이데올로기라는 것도 사람을 잘살게 하기 위해 사람이 만들어낸 거지 이데올로기 나고 사람 난 건 아니잖나 하고.”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 헤르만 헤세]

 정원을 가꾸는 사람에게 이맘때는 다가올 봄에 해야 할 많은 일에 대해 생각해야 할 시기다. 생각에 잠겨 빈 꽃밭 사이의 좁은 길을 걷다 보면, 북쪽 끄트머리에는 살짝 노르스름한 눈더미가 아직도 쌓여 있고, 봄이 올 기미가 전혀 없다. 그러나 들판과 냇가,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경사진 포도밭에서는 갖가지 초록 생명이 꿈틀거린다. 초원에서는 제일 먼저 생명력 강한 노란 들꽃이 발랄하면서도 수줍게 피어나, 천진한 아이처럼 세상을 빼꼼 내다본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앞으로 많은 일이 벌어질 세상을.



 정원을 방문했다가 금세 돌아가는 여름이 늘 놀랍고 신기하다. 겨우 몇 달밖에 안 되는 짧은 여름 동안 화단에서는 여러 식물이 자라고, 자신을 과시하고, 살고, 시들어가고, 죽는다. 화단에 어린 채소들을 심고 물을 주고 비료를 주자마자 쑥쑥 자라고 가지를 뻗으며 번성한다. 두세 달이 채 안 되는 동안 어린 식물들이 벌써 늙고, 해야 할 바를 다 하여 뿌리가 뽑히고, 다음의 새 생명을 위해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정원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여름은 정원사만큼이나 급히 서둘러 가버린다.



 저녁 무렵에는 기분 좋게 피곤한 몸으로 집에 온다. 햇살 먼지와 붉게 물든 밀밭을 지나, 성숙함과 피로가 가득한 공기를 가르며 걷는다. 암소의 울음소리가 그리움을 자아낸다. 평온한 시간이 자정까지 길게 이어진다. 단풍나무와 보리수나무 아래 홀로 앉았거나, 몇몇 지인들과 포도주를 나누며 여유롭고 게으른 수다를 떨며 따뜻한 밤으로 스며든다. 멀리 어딘가에서 천둥이 치기 시작하고, 놀란 듯 취한 듯 비틀거리는 바람 속에서 첫 빗방울이 관능적으로 천천히, 무겁고 두텁고 부드러운 먼지 속으로 거의 들리지 않게 조용히 떨어질 때까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 시기를 어린 시절부터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즈음이면 자연의 온갖 부드러운 소리를 받아들일 준비로 감수성이 충만해진다. 덧없는 색채들의 향연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소하게 벌어지는 온갖 하찮은 일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기울이고 엿듣는다. 일찍 시든 포도 잎이 햇빛 속에서 말라가며 구부러지고, 황금빛을 띤 작은 거미는 거미줄에 매달린 채 나무에서 살금살금 내려온다. 햇볕 가득한 돌 위에서는 도마뱀이 햇살을 마음껏 쬐려고 솜털처럼 부드럽고 납작하게 몸을 붙이고 쉬고 있다. 바래고 시들어 짐처럼 거추장스러워진 장미꽃잎이 소리 없이 떨어지자 가벼워진 장미 가지는 살짝 튕겨 오른다. 이 모든 것들이 다시 오래전 어린 소년 시절에 느꼈던 것처럼 소중하고 강렬하게 내게 다가와 말을 건다.



 아름답고 강인한 나무보다 더 성스럽고 더 모범적인 것은 없다. 나무가 톱에 잘리고 벌거벗겨진 죽음의 상처가 태양 아래 훤히 드러나면, 잘린 나무둥치의 희멀건 묘비에서 나무의 역사를 모두 읽을 수 있다. 상처가 아문 나이테 자국에는 나무가 겪었던 온갖 투쟁과 고난, 아픔, 갖가지 행복과 번성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충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가는 나이테는 그해에 폭풍우의 거센 공격을 받아 힘들었음을 나타내고, 굵은 나이테는 잘 지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농촌 아이들은 가장 강인하고 고귀한 나무가 가장 가는 나이테를 가졌다는 걸 안다. 그런 나무는 높은 산꼭대기와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자란다.



 너는 나무의 가장 평범한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행복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독으로 오염된 비참한 세상에 저항해야 하고, 악취가 진동하는 시궁창 같은 세상에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날마다 투쟁해야 하는 우리 인간보다 너는 더 멋있고 아름답게 나이 들었고 기품 있게 죽어갔다.



 쓰러져 누워 있는 복숭아나무를 봤을 때,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늘 그랬듯이 빈자리에 대신 심을 새 나무에 대해 생각했다. 쓰러진 나무가 있던 자리에 먼저 구덩이를 판 다음, 한동안 대기 속에서 비와 햇빛을 받도록 놔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썩은 잡초나 나무를 태운 재와 거름을 섞은 비료를 준다. 그런 다음 가능한 한 따스하고 온화한 날을 잡아 새 묘목을 심을 것이다.

 그 어린나무도 이곳의 흙과 공기를 좋아하게 될 것이고, 포도밭과 꽃들, 도마뱀, 새, 나비들과 좋은 친구이자 이웃이 될 것이다. 몇 년이 지나면 열매도 맺을 것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3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 사랑스러운 꽃을 활짝 피울 것이다. 그리고 운명이 그에게 선의를 베푼다면, 언젠가 늙고 힘이 빠져 폭풍이 몰아치거나 산사태가 일어나거나 폭설이 내리면 죽음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새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기로 했다. 살아오는 동안 꽤 많은 나무를 심었으니 한 그루 덜 심는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여기서 또다시 새로운 생명을 키우고 삶의 바퀴를 다시 돌리며 탐욕스러운 죽음에 다시 희생물을 바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 안에서 무언가가 그것을 거부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복숭아나무가 쓰러진 그 자리는 그렇게 비워둘 것이다.



 살다 보면 어렵고 슬픈 일들이 많지만, 그래도 때때로 충만함과 만족감을 주는 행복한 일이 생긴다. 그런 행복은 오래가지 않아도 괜찮다. 잠깐이지만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정착할 수 있는 고향이 생긴 기분, 꽃과 나무와 땅과 샘과 친구가 된 기분, 한 뼘 땅과 50여 그루 나무들과 화초와 무화과나무와 복숭아나무를 책임지는 기분이다.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부지런함과 노동으로 가득 차 있지만 성급함이나 걱정 따위는 없다. 그 생활의 밑바탕에는 경건함이 있고, 대지, 물, 공기, 사계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이 있으며, 식물과 동물의 생명력에 대한 확신이 있다.

 버들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에 귀를 기울이면서 다 타들어간 모닥불 위에 풀잎을 얹으며 내내 그렇게 서 있고 싶다. 아무런 소망도 없이 고요한 기분으로 황금색 뽕나무 가지 너머로 온갖 색채로 가득한 풍요로운 풍경을 바라보고 싶다. 얼마 전까지 여름의 이글거리는 뜨거운 바람에 휘말렸고, 이제 머지않아 겨울의 눈과 매서운 바람을 맞게 될 테지만, 지금 이 자연의 풍경이 영원히 고요할 것처럼 빛난다.



 여러 해 동안 정원에 나갈 때마다 칼을 주머니에 넣어갔다. 그 칼로 과일나무 가지를 쳐주고, 해바라기와 달리아를 잘라 꽃다발을 만들고, 어린 아들들을 위해 채찍 손잡이와 활도 만들었다. 잠깐씩 여행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날마다 정원에서 몇 시간씩 보냈다. 여러 해 동안 땅을 파고 나무를 심고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고 과일을 따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원 일을 직접 했다.

 추운 계절이 되면 늘 정원 한 모퉁이에 불을 피워놓고 잡초와 오래된 나무뿌리, 온갖 쓰레기를 태워 재로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주워온 보릿대나 갈대를 불 속에 던지고 그 불에 감자나 밤을 구워 먹기도 했다. 한번은 주머니칼이 불 속으로 떨어져 손잡이에 불탄 자국이 생겼다. 세상의 칼들이 모두 한데 섞여 있어도 그 자국을 보고 단숨에 내 칼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단 하나의 문장 / 구병모]

 나는 말이지요, 세상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나 뛰어난 위인 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이리 툭 튀어나온 송곳처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뭐 낭중...... 가죽을 뚫고 나온다 하던데, 그러나 뚫고 나오면 뭐할 거냐고, 수틀리면 잘라내버리지 않나. 나는 한 개 한 개의 송곳이 유난히 튀어나오기보다, 그걸 감싼 가죽이 튼튼하기 바랍니다. 한 개의 송곳이 뾰족 뚫고 나오지 않아도 되는 질기고 억센 가죽 주머니를 원해. 사람이 위대하지 않고서도, 사랑이 위험하지 않고서도 그 꼴이 유지되거나 이루어지는 자리를 바라요. 그 누구도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복면을 쓰거나 전신 타이츠를 입지 않더라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곳을요.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사람을 믿었다가 속았을 때처럼 억울한 적은 없고, 억울한 것처럼 고약한 느낌은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어떡하든지 그 억울한 느낌만은 되풀이해서 당하지 않으려 든다. 다시 속기 싫어서 다시 속지 않는 방법의 하나로 만나는 모든 것을 일단 불신부터 하고 보는 방법은 매우 약은 삶의 방법 같지만 실은 가장 미련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아직은 악보다는 선을 믿고,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흐를 것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이 세상 악을 한꺼번에 처치할 것 같은 소리 높은 목청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거지에 대한 한두 푼의 적선이 거지를 구제하기는커녕 이런 적선이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구제책이 늦어져 거지가 마냥 거지일 뿐이라는 제법 똑똑한 생각을 요즈음은 어린이까지도 할 줄 안다. 사람들이 갈수록 더 똑똑해지고 있다. 그럴수록 불쌍한 이웃을 보면 이런 똑똑하고, 지당한 이론 대신 반사작용처럼 우선 자비심 먼저 발동하고 보는 덜 똑똑한 사람의 소박한 인간성이 겨울철의 뜨뜻한 구들목이 그립듯이 그리워진다. 나이를 먹고 세상인심 따라 영악하게 살다 보니 이런 소박한 인간성은 말짱하게 닳아 없어진 지 오래다. 문득 생각하니 잃어버린 청춘보다 더 아깝고 서글프다. 자신이 무참하게 헐벗은 것처럼 느껴진다.



 시골에 내리는 비는 도시에 내리는 비와 그 풍취가 전연 다르다. 빗속에 바라보는 봄의 농촌은 싱그럽고 산뜻하고 흥겨워 보였다. 물을 흠뻑 먹은 땅이 검고 부드럽게 보이는 들판으로 도랑물이 흐르는 게 가을 들판 못지않게 풍요로워 보였다. 문자 그대로 감우甘雨로구나 싶었다. 들과 풀과 나무와 내와 배꽃, 복숭아꽃이 다디달게 목을 축이고 무럭무럭 자라는 게 보이는 듯했다.



 내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1988년 가을이었으니까. 나는 그때 나만 당하는 고통이 억울해서도 미칠 것 같았지만 남들이 나를 동정하고 잘해주려고 애쓰는 것도 견딜 수가 없었다. 남들은 물론 자식들까지 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신경 쓰며 위해만 주는 게 내가 마치 고약한 부스럼딱지라도 된 것처럼 비참했다. 그렇다고 안 위해주고 평상시처럼 대해주었더라도 야속했을 것이다. 요컨대 나는 무슨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내 불행으로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반추하는 건 주로 사랑받은 기억입니다. 문명과는 동떨어진, 농사짓고 길쌈하고 호롱불 켜고 바느질하고 사는 산골 벽촌에서 태어났습니다. 물질적으로 넉넉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으니, 요샛말로 하면 결손가정이었지요. 부족한 것 천지였습니다. 넉넉한 건 오직 사랑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움받거나 야단맞은 기억은 없고 칭찬받고 귀염받은 생각밖에 나는 게 없습니다. 그게 이른 새벽 잠 달아난 늙은이 마음을 한없이 행복하게 해줍니다.



 손자야, 너는 이 할미가 너에게 쏟은 정성과 사랑을 갚아야 할 은공으로 새겨둘 필요가 없다. 어느 화창한 봄날 어떤 늙은 여자와 함께 단추만 한 민들레꽃 내음을 맡은 일을 기억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건 아주 하찮은 일이다.

 나는 손자에게 쏟는 나의 사랑과 정성이 갚아야 될 은공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아름다운 정서로 남아 있길 바랄 뿐이다. 나 또한 사랑했을 뿐 손톱만큼도 책임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나는 요새 남들이 거의 안 쓰는 베보자기를 여러모로 애용하고 있다.

 음식을 덮어 놓기도 하고 만두 속이나 제육을 거기에 싸서 누르기도 하고 약식이나 빵을 찔 때 깔고 찌기도 한다. 음식에 닿는 섬유는 베가 아니면 딱 질색이다.

 그 정결하고 시원하고 성깔 있고 소박한 섬유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장수하신 어머니는 내겐 따라다니는 고향이었다.



 무만 잘라 먹고 남은 총각김치의 무청을 차곡차곡 모아두면 나중엔 표면에 골마지가 낀다. 그걸 바락바락 물에 빨아 우려내고 나서 멸치나 몇 개 들어뜨리고 지진 된장찌개가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걸 물에 행굴 때 단 한 오라기라도 떠내려갈까 봐 안달을 한다. 그래서 아줌마는 나한테 할머니는 우거지라면 치를 떤다고 흉을 본다. 아무리 헹구어도 남아 있는 곰삭은 시간의 맛, 절대로 인공적으로는 만들 수 없는 그 맛은,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는 고독의 맛이기도 하다. 아무하고도 그 맛의 밑바닥, 궁핍했던 시절이 내 혀끝에 남긴 맛의 오지만은 나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 보잘것없는 것을 아귀아귀 포식하고 나면 슬프다.



 옛날 꽃들은 다 수수한 홑겹이었는데 요새는 채송화도 백일홍도 한련도 다 겹으로 피고, 송이도 크고 빛깔도 현란하다. 옛날보다 더 보기 좋게 종자가 개량된 것 같은데, 내 소원은 화려하거나 신기한 것이 아니라 마음 붙일 수 있는 꽃이다. 내 마음은 너무 오래 정처 없이 떠돌았다. 나도 임의로 할 수 없던 내 마음이 언제부터인가 유턴을 해서 시발점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걸 요즈음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나는 이 집에서 평화롭게 소멸하고 싶다. 내가 재현하고 싶은 건 옛날 꽃이 아니라 어린 날 맛본, 폭 파묻혀 단잠에 들고 싶은 요람 같은 평화다. 이 정도의 평화도 감지덕지 그저 고맙기만 한 것은 아마 결별의 예감 때문일 터이다. 이왕이면 내 인생의 결말이 해피엔드였으면 한다. 분꽃이나 채송화 따위 그 속절없는 것들의 소멸이 슬플 것도 드라마틱할 것도 없는 자연스러운 해피엔드이듯이.









[인간의 흑역사 / 톰 필립스]

 『문명의 붕괴』에서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 야자수를 벤 이스터섬 주민은 뭐라고 하면서 그 나무를 베었을까?” 정말 좋은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아마 “인생 뭐 있나!”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더 좋은 질문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나무나 마지막에서 세 번째, 네 번째 나무를 벤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베었느냐가 아닐까? 우리 인류사 전반을 예리하게 통찰해볼 때, 그 정답은 ‘내 문제도 아닌데 뭐’ 정도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우리는 끔찍한 사건의 배후에는 뭔가 치밀한 고도의 기획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아니, 그렇게 엄청난 비극이, 무슨 천재 악당이 사주한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벌어질 수 있겠는가?’ 싶은 것이다. 그래서 천재 악당이 눈에 띄지만 않으면 별일 없겠구나, 하고 안심하기 쉽다.

 그러나 역사는 이것이 오판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역사 속에서 거듭 저지르는 실수다. 역사상 최악으로 꼽히는 인재人災들은 대개 천재 악당의 소행이 아니다. 오히려 바보와 광인들이 줄지어 등장해 이랬다저랬다 아무렇게나 일을 벌인 결과다. 그리고 그 공범은 그들을 뜻대로 부릴 수 있으리라고 착각한, 자신감이 넘쳤던 사람들이다.



 이 책은 실패에 대한 책이니, 전쟁이란 일단 누군가의 엄청난 실패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기를 바란다. 전쟁은 그 자체로도 무척 나쁘거니와, 전쟁에 수반되는 그 난리 법석과 폐쇄적 사고와 마초적 뻘짓을 보면 인류가 얼마나 다방면으로 망하는 재주를 타고났는지 잘 알 수 있다. 전쟁이란 집단적으로 흥분해 이성을 놓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바보짓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한 것 같지만, 요즘 ‘식민주의는 사실 좋은 것이었다’는 주장이 꽤 거세게 대두되고 있으니 한번 따져보자. 그 주장을 간단히 말하면 피식민국이 받은 수혜, 즉 경제 근대화, 인프라 건설, 과학·의학적 지식 이전, 법치 개념 도입 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수혜가 식민국의 횡포로 인한 피해보다 컸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치장해 표현하건, 이는 결국 피식민국이 근본적으로 ‘미개’했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자치할 능력도 없고, 진보를 도외시하고, 기술이 낙후되어 보유한 천연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 바보들이 황금을 그냥 깔고 앉아서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랐다는 얘기다.

 일단 그 주장은 식민화되기 이전 나라들의 상황에 대한 사실이 아닌 상상에 기반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몇몇 나라가 역사상 어느 시점에 군사력이 일시적, 우발적으로 우월했다고 하여 그것이 ‘누가 누구를 다스려도 좋다’는 절대적 도덕률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오류를 안고 있다. 더군다나 그런 주장에는 무언의 전제가 깔려있으니, 식민화가 되지 않았더라면 피식민국들이 정체 상태에 머물렀으리라는 것. 그리고 어떤 나라에 쳐들어가서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 말고는 나라 간에 과학적, 기술적 지식을 교류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식민화를 겪지 않았더라면 그 나라들이 아직 1600년대쯤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하지만 절대 그랬을 리는 없다. 애초에 유럽이 기술 발달을 누리게 된 것도 국가 간 지식 교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부터 생각해보자. 물론 이는 이게 옳다 저게 옳다 증명할 수 없는 문제로, 식민국도 아니었고 피식민국도 아니었던 나라가 거의 없어서 검증이 어렵다. 거의 유일한 예로 태국이 있긴 하다. 지금 구글에서 찾아보니 태국에도 전기가 잘 들어온다. 그러니 표본 한 개만 놓고 볼 때 일단 그 주장은 개소리가 아닐까 싶다.



 외교란 한마디로, 대규모 인간 집단끼리 서로 개자식처럼 굴지 않는 기술이다. 아니, 그보다는 ‘뭐, 우리가 다 결국 개자식이긴 한데 그래도 서로 좀 자제하면 좋지 않을까’라고 합의를 보는 기술이라고 해두자.



 그렇다, 국제정치라는 게 참 어렵다. 숭고한 이상이 설 자리는 별로 없고, 실리를 생각하면 마음에 꼭 드는 상대가 아니더라도 아쉬운 대로 손을 잡아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것만 기억해도 번번이 곤경을 자초하는 일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적의 적도 대개는 처음 적 못지않게 나쁜 놈이라는 것.









[우모리 하늘신발 / 송경아]

 마님은 우리를 텃밭이라 말씀하셨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가 텃밭을 얼마나 정성 들여 가꾸는지를. 집 바로 옆에 있는 텃밭에서 잡초를 뽑을 때, 잘 자란 깻잎과 햇빛에 반들반들한 고추를 뜯어올 때, 엄마의 얼굴은 맛있는 반찬거리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잘 만든 작품을 내놓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농사는 먹고 살기 위한 일이지만 텃밭은 엄마의 생활이고, 취미이고, 자랑이었다. 엄마뿐만이 아니라 텃밭을 가꾸는 동네 아주머니들은 다 비슷했다. 나는 마님의 텃밭에 심긴 것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까지나 별 탈 없이 마님의 텃밭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마을 어귀를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며 생각했다.









[할아버지와 꿀벌과 나 / 메러디스 메이

 버스 안에는 벌집틀이 들어 있는 상자가 얼핏 봐도 서른 개가 훌쩍 넘었다. 반짝이는 꿀이 상자들을 타고 뚝뚝 떨어지면서 새까만 고무바닥에 반짝이는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햇빛 때문에 보랏빛으로 바랜 계기판 위에는 여러 개의 유리 단지와 해바라기처럼 샛노란 밀랍 덩어리들이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밀랍을 녹여 스타킹에 거른 다음 빵틀에 부어서 굳혀 만든 덩어리들이었다. 바닥에 여기저기 널린 구불구불한 전기선과 천장 레일에 매달려 있는 여러 개의 작업등도 눈에 들어왔다.



 유칼립투스의 얄따란 이파리가 산들바람에 쉬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보다 키가 큰 거대한 이 나무는 하룻밤 사이에 여름 꽃을 잔뜩 피운 모양이었다. 할아버지가 키우는 꿀벌들이 버터 향을 풍기는 꽃망울 속에서 정신없이 노란 화분을 긁어모으며 뒹굴고 있었다. 꿀벌 수만 마리가 화음을 넣는 듯한 윙윙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치 머리 위에서 전깃줄이 지글거리는 것 같았다. 벌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충동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크게 일었다.



 “할머니가 엄마를 두둔해준 적이 없다는 얘기예요?”

 “엄마도 아빠를 무서워했거든. 아빠가 엄마도 때렸으니까.”

 나는 어떻게 할머니를 용서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엄마니까. 나한텐 엄마밖에 없었으니까.” (...)

 폭력은 훗날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를 그릇된 방식으로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같은 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고, 전투가 가장 격렬했던 시기에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한 일에 대해 결국 서로를 용서했다고 엄마는 말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조상들 곁으로 돌아가 이제 들쭉날쭉한 이 험준한 산맥과 거친 바다의 일부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서 있는 목장이었고 그 안에 피는 야생화였고, 그 아래 묻혀 있는 쇠귀나물이었으며 그 위를 날아다니는 꿀벌이었다. 할아버지는 바람에 풍겨오는 야생 멕시칸 세이지의 향기였고, 어미가 먹이를 구하러 물속에 뛰어들 때마다 파도 위에서 깐닥거리며 엄마를 찾는 아기 해달의 울음소리였다. 할아버지는 어디에나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보면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내게 자신의 벌을 돌봐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건 남아 있는 마지막 꿀벌들만을 의미한 게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자연을 위해서, 모든 생명체를 위해서 내게 모든 벌을 돌봐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양봉가의 눈으로 바라보며 내가 마주할 모든 생명을 온화하게 대해달라는 당부였다. 그 존재가 혹시 내게 침을 쏴 나를 아프게 할 수 있는 생명이라고 할지라도. (...)

 이제 나는 벌통의 덮개를 열 때마다, 꿀을 딸 때마다, 사라지는 꿀벌에 관한 참담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나는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으며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나를 지켜준 이 작은 생명체를 지켜줌으로써 빚을 갚고 있는 셈이다.









[한 말씀만 하소서 | 박완서]

 이건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일기입니다. 훗날 활자가 될 것을 염두에 두거나 누가 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같은 것을 할 만한 처지가 아닌 극한 상황에서 통곡 대신 쓴 것입니다.



 오나가나 그놈의 88올림픽, 정말 미칠 것 같다. 서울 집도 잠실경기장과 올림픽공원 사이에 있어 그 들뜬 야단법석이 싫어도 들리고 보일 것 같더니만 여기까지 그 축제가 따라올 게 뭐람.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줬지만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걸 어찌 견디랴. 아아, 만일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본다.



 나는 왜 이렇게 죽자꾸나 고통스러운 하루를 낱낱이 반추하려 드는가?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다고 수시로 미친 상태를 동경하면서도 실상은 미치는 게 두려워서 하루하루의 정신상태를 점검하려는 게 아닐까? 체면도 생의 의욕 중의 일부분이 아닐까? 나를 남처럼 바라보면서 끔찍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내 아들이 없는데도 축제가 있고 환호와 열광이 있는 세상과 내가 어찌 화해할 수 있을 것인가. 혼자가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본다.



 내가 이 나이까지 겪어본 울음에는, 그 울음이 설사 일생의 반려를 잃은 울음이라 할지라도, 지내놓고 보면 약간이나마 감미로움이 섞여 있게 마련이었다. 응석이라 해도 좋았다. 아무리 미량이라 해도 그 감미로움에는 고통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진통제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오직 참척의 고통에만 전혀 감미로움이 섞여 있지 않았다. 구원의 가망이 없는 극형이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누구라도 이런 끔찍한 극형에 당해서는 그 영문을 물을 권리가 있다. 신의 권위가 장난질칠 권리가 아닌 바에야 의당 그 극형이 무슨 잘못에서 연유했는지 밝혀줘야 한다. 신, 당신의 존재의 가장 참을 수 없음은 그 대답 없음이다. 한번도 목소리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있는 것처럼 느끼고, 부르고, 매달리게 하는 그 이상하고 음흉한 힘이다. 영원히 순화될 것 같지 않은 원색적인 포악이 거침없이 치밀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신의 문제는 나는 무엇일까 하는 나의 내면 응시로 귀착되고 만다.



 나 같은 사람도 사는데 그 정도의 자식 걱정으로 저다지도 상심을 하다니.

 나는 슬그머니 아니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봐란듯이 카레라이스를 아귀아귀 먹었다. 수녀원에 온 후 그렇게 많이 먹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왜 이럴까? 그 부인의 하소연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에 거짓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말도 할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심통이 났고, 내 고통에다 대면 당신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깔보는 마음까지 생겼다. 나는 정말 왜 이 모양일까? 어쩌자고 고통에 있어서조차 교만하고 싶어하는가?



 내가 자식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수녀원으로 거처를 옮긴 것도 실은 짐승 같은 본능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병들거나 다친 짐승은 누가 가르쳐준 바 없이도 그에게 맞는 약초를 가까운 데서 찾아낸다고 한다. 나 또한 내 속에 잠재된 짐승처럼 질기고 파렴치한 생명력이, 죽고만 싶은 지극히 인간적인 염치를 거역하고 살길을 냄새 맡고 수녀원 쪽으로 강력하게 이끌린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짐승과 인간이 가장 닮은 본능이야말로 신이 준 능력이거늘 내가 무슨 수로 거역하랴.



 ‘여기는 우리 아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고장이다’라는 생각이 처음에는 홀가분하고 편하더니만 점점 그것도 별게 아닌 게 되었다. 내 아들의 추억과 전혀 연관지을 수 없는 이국의 풍경과 사람들은,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히히덕대며 일상을 영위하는 내 나라 사람들이 꼴 보기 싫은 것과는 다른 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외로움이라고 해도 좋았다. 별안간 악이라도 써서 구원을 청해야 할 것처럼 그 외로움은 절박했고, 집에서보다 밖에 나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을 때 한결 더했다.



 그리고 내가 참을 수 없어 하는 게 무엇이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건 말 못 알아들음이었다. 내 나라에서건 남의 나라에서건 사람 모이는 데 가면 들리는 건 사람들의 말소리라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구태여 남의 말을 엿들으려고 노력을 안해도 내 나라에서 들리는 건 당연히 내 나라 말이고, 어려서부터 들어온 내 나라 말의 리듬엔 공기처럼 의식할 필요 없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정다움이 있었다.

 그러나 거긴 남의 나라였다. 신경을 곤두세워도 한두 마디 알아들을까 말까 한 것도 괴로웠지만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이질적인 리듬이었다. 그 이질감은 여기는 네가 놀 물이 아니라는 소외감을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사방에서 들리느니 내 나라 말만 들리는 고장으로 돌아왔다. 내 나라 말은 바로 내가 놀던 익숙한 물이었다. 공항의 아우성, 엄마, 할머니 하는 아이들의 외침, 그런 소리들이 어우러진 우리말만의 독특한 가락에 나는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땅에 입맞추는 대신 나는 그 가락을 깊이깊이 심호흡했다.








[아무튼, 술집 / 김혜경]

 집이 그립단 말과 집밥이 그립단 말은 어쩐지 동의어 같았다.

 집이라고 해서 밥솥 안에 늘 밥이 있을 리 없었다. 밥이 있다고 해서 없던 반찬이 갑자기 생겨날 리 없었다. 집밥이 그립다는 건 그 밥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고, 그 누군가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단 말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자란 집엔 밥도, 밥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후밀 흐라발]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 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 이숙명]

 나는 자라면서 "남자 기 죽인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우리 세대 여자들은 동네 친구들끼리 뛰어놀다가 싸움이 나도, 시험 성적이 좋아도, 친척 앞에서 남동생의 잘못을 지적해도, 놀이 집단에서건 회사에서건 같은 성별이 삼삼오오 모여서 큰소리로 웃기만 해도 "남자 기 죽인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 남자의 기는 내가 기억하는 지난 40여 년간 줄곧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가정의 여자들이 온 힘을 다해 반짝 살려 놓아도 밖에 나가서 다른 남자들에게 치이면 금세 다시 죽어 버리기 때문에 항시 신경 써 돌봐야 했고, 어머니들은 아들이 결혼해서 분가를 할 떄면 조선시대 아궁이 불씨 맡기듯 며느리에게 그 의무를 물려주었다.








[상진황축객서 / 이사]

 泰山(태산)은 不讓土壤故(불양토양고)로 能成其大(능성기대)하고

 河海(하해)는 不擇細流故(불택세류고)로 能就其深(능취기심)하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기에 거대해지는 것이며

 황하와 바다는 가는 물줄기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기에 깊어지는 것이다.








[삼국지연의]

솔밭처럼 셋으로 나눠 서려던 일 이미 꿈이 되었는데

뒷사람들 탄식하며 공연히 시끄럽게 구네








'글을 어떻게 이렇게 쓰지?' 하고 감탄했던 구절, 직접 손으로 써보고 싶을 만큼 좋았던 글귀 있으면 써주고 가줘!

소설뿐만 아니라 노래가사, 영화대사, 시 등등 다 상관없어~

  • tory_1 2022.04.26 21:28
    토리야 좋은 문장들 매번 고마워! 덕분에 문장이나마 읽으면서 독서욕도 채우고 읽어보고 싶은 책도 알아간당ㅎㅎ
  • tory_2 2022.04.26 22:25

    진짜 고마워 톨아!!!

  • tory_3 2022.04.27 22:34
    한번씩 따라 써보고 싶은 좋은 글이다 고마워
  • tory_4 2022.04.28 00:12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3/02/16 10:09:26)
  • tory_5 2022.04.28 00:58
    와 문장 하나하나가 정말 감동이다.. 스크랩해놓고 필사해봐야지 고마워 톨아!
  • tory_6 2022.04.30 16:08
    고마워 톨아
  • tory_7 2022.04.30 17:03
    스크랩할게! 고마워!
  • tory_8 2022.04.30 23:48

    토리가 올려준 글 다 좋다... ㅜㅜ)!


    공산주의에는 선한 사람들이 필요해요. 노력해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선한 사람들 말이에요. 하지만 요즘 이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게 그런 사람들이죠. 진보를 위해 우리는 영혼을 다 잡아먹었어요. 이젠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네요.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 클레어 노스

  • tory_9 2022.05.01 18:01

    정말 글 다 좋다... 필사하고 싶어, 꼭 해보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

  • tory_10 2022.05.02 07:49
    오오 고마워
  • tory_11 2022.05.02 21:37
    스크랩 고마워
  • tory_12 2022.05.04 06:35
    고마워 톨아
  • tory_13 2022.05.06 00:39

    고마워!

  • tory_14 2022.05.07 23:32
    필사할거 찾고있었는데 고마워~!!
  • tory_15 2022.05.10 01:06
    고마워 !!
  • tory_16 2022.05.10 23:23
    스크랩 잘 읽을게
  • tory_17 2022.05.13 00:19

    좋은 문장들 정말 고마워 ㅜㅜ

  • tory_18 2022.06.08 19:34
    고마워!!
  • tory_19 2022.06.10 15:49
    고마워토리야
  • tory_20 2022.06.12 21:08
    고마워
  • tory_21 2022.08.03 01:22

    항상 고마워

  • tory_22 2022.08.04 05:50
    고마워
  • tory_23 2022.09.02 17:17
    스크랩
  • tory_24 2022.09.08 16:10

    글 찬찬히 잘 읽게 된다 고마워!! 

  • tory_25 2023.01.09 17:56
    필사로 힐링하는 취미가 있는데 고마워^~^ 스크랩할게!
  • tory_26 2023.02.02 01:55

    스크랩

  • tory_27 2023.02.03 17:29
    헐…. 이런 글이 있었다니…🫶🏻
  • tory_28 2023.02.11 22:21

    토리 덕분에 좋은 글 많이 읽어

  • tory_29 2023.06.29 20:32
    필사 하고 싶어진다!
  • tory_30 2023.07.14 23:45
    스크랩
  • tory_31 2023.12.23 23:56
    필사하고 싶은 구절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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