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 너무 예뻐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https://www.dmitory.com/garden/112907685
외로움에 대한 구절들 모아보자: https://www.dmitory.com/garden/113113510
'글을 어떻게 이렇게 쓰지?' 하고 감탄했던 구절이나
너무 이뻐서 손으로 써보고 싶었던 구절 있으면 써주고가줘~!
[철로 된 강물처럼 / 윌리엄 켄트 크루거]
그날은 참 죽기 좋은 날 같았다. 죽어서 평생 어깨에 짊어졌던 근심 걱정을 모두 벗어버리고 편안히 누워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즐길 수 있게 된다면, 그렇게 하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는 뜻이다. 대기는 따스했고 바람 한 점 없었으며, 거스 삼촌이 늘 물을 주고 잘 깎아놓은 묘지의 잔디는 연초록의 카펫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하늘을 담은 강물은 기다란 파란색 리본처럼 구불거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바로 이런 곳에 누워 이런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안으로 몰려 들어온 것은 햇빛만이 아니었다. 우리 집 뒤의 초원에서 자라는 야생 데이지의 향기와 에드너 스위니가 빨랫줄에 널어놓은 젖은 빨래 냄새와 두 집 건너에 있는 핸슨 씨네 집 포도덩굴에서 익어가는 포도 향기와 철길 옆에 있는 대형 곡물 창고에서 나는 구수한 곡물 냄새와 심지어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강가에서 나는 짙은 흙냄새도 들어왔다. 제이크는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속에 어두커니 서 있었다.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애너벨 / 캐슬린 윈터]
이 도시는 마치 꿈이 이루어지는 장소처럼 생겼다. 보링 백화점 옥상에서 인부들이 롤러로 밀어대는 생생한 타르 냄새, 변호사 사무실로 출근하는 남자가 입에 문, 와인에 적신 시가의 연기, 그리고 보트 언저리의 바닥에 떨어져 깨진 멜론의 희미한 단내, 햇빛 속에서 신문팔이 남자 하나가 뜨거운 소시지와 양파가 든 샌드위치를 먹으며 가방을 깔고 앉아 있는 길모퉁이를 막 지나쳐 사라진 여자의 향수 냄새가 났다. 그곳에서 당신은 자신이 젊다고 느꼈다 - 당신은 실제로 젊었다. 아직 채 열여덟도 되기 전, 일자리를 찾아 래브라도로 떠나기도 전,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는 남자, 그러나 당신의 영혼에서 다른 무엇보다 큰 부분, 이런 낭만의 조각들이 먹여 살렸으나 낭만이 사라지자 시들어버린 영혼을 이해하진 못하는 남자를 만나기 전이었으니.
새들이 속삭이듯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 그리고 찢어지는 듯한 총소리. 아빠를 향한 사랑, 그리고 아빠가 덫의 날에서 녹을 긁어내는 등의 작업을 가르쳐줄 때 보여주는 차디찬 정확성. 트랩라인에서 마시는 김이 피어오르는 금빛 차 한잔, 그다음에 발목까지 동상이 걸리도록 쉴 곳 하나 없이 몇 마일을 걸어 돌아오는 길. 사냥 오두막에 도착하면 아빠는 카리부 뒷다리에서 나온 진액에 검은 가문비나무의 옹이를 칼로 베어내어 사냥용 칼의 뒷부분으로 긁어낸 수지를 섞은 연고로 동상을 치료해 주었다.
양상추 샌드위치를 나누어 먹은 그날부터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웨인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나이가 지나고 성적으로 성숙해지기 전, 그 깜박이는 창가에 서 있는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월리를 사랑했다.
모든 아이들은 빠르건 늦건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집 안에서 어떤 종류의 사랑을 받았건, 강력한 사랑, 실패한 사랑, 아주 복잡한 사랑, 두려움이나 염려의 보호막을 통해 아이를 따뜻하게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랑. 그 보호막은 언젠가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병원에서의 그 밤 이전까지 어머니의 보호막 속에 있던 웨인도 이제 젊은이들이 원하는, 이름붙일 수 없는 신비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재신타를 향해 느끼는 슬픔은 자식들이라면 누구나, 자신들이 탄 배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부둣가에 나와 손을 흔들고 있는 부모들이 점점 작아져 가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슬픔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잠시 따끔한 다음에 곧 청량한 바람에 녹아 사라져 버릴 슬픔이었다.
그는 부엌 창밖, 비닐 수지로 만든 옆 방갈로의 외벽을 바라보았다. 방갈로 너머로 언뜻 보이는 하늘은 한 조각의 영원 같았다. 그는 자신이 있건 없건 다를 바가 없는 어떤 도시에 자신을 아무렇게나 덧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의 아이들 / P.D.제임스]
하지만 언제는 인간의 즐거움이 덧없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도 옥스퍼드의 봄날이 품은 눈부신 빛에서, 매년 더욱 사랑스럽게 피어나는 밸브로턴 거리의 만개한 꽃들에서, 돌담 위를 어른거리는 햇살에서, 바람결에 무성한 잎을 뒤채는 마로니에 나무에서, 꽃을 피운 콩밭의 향기에서, 첫 꽃망울을 틔운 설강화의 자태에서,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아담하게 피어난 튤립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이는 감각적이라기보다 지적인 즐거움이다. 인간의 눈길이 지켜보지 않아도 수백 년 동안 봄은 올 것이고 꽃은 필 것이다. 담장은 무너질 것이고 나무는 죽어 썩어갈 것이며 뜰에는 잡초가 우거질 것이다. 이 모든 아름다움은 그 모습을 기록하고 즐기고 축하할 인간의 지성보다 더 오래 살 것이므로, 내가 지금 느끼는 즐거움은 애틋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노을을 등지고 다리 난간에 올라선 잰의 모습, 불타오르는 그의 머리칼, 희끄무레한 장미꽃잎이 다리 아래를 둥둥 떠내려가 시야에서 사라지던 모습은 내 소년 시절의 무수한 순간 중에서도 한 점 죄책감이나 싫증, 후회도 없고 그늘지지도 않은, 순수한 기쁨의 저녁으로 뇌리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러나 마음속 더욱 깊숙한 곳에서는 오로지 울콤에 대한 기억만이 가슴에 사무친다. 버려진 방마다 퀴퀴한 곰팡내가 풍길 테고 서재의 나무판자는 썩어갈 것이다. 허물어진 담장 위로 담쟁이덩굴이 기어오를 것이고, 테니스장과 계획적으로 꾸민 정원, 그 사이로 난 자갈길에는 잔디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애초의 자취를 지워버리겠지. 마침내 이불보마저 썩어버리고, 책들이 먼지가 되어 바스러지고, 벽에 걸린 그림이 툭 떨어질 때까지 아무도 찾지 않을 그 작은 뒷방을 떠올리자 기어이 가슴이 먹먹해지고 만다.
처음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 시대는 망원경을 통해 바라보는 것처럼 아주 가깝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무한히 멀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시대의 넘치는 활력과 도덕적 엄숙함, 찬란한 문화와 이면의 누추함에 매료되어 있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 / 정이현]
문제가 분명해 보일 때 어떤 사람은 원인을 제거하는 쪽을 택한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방 안으로 조용히 숨어들어 문을 걸어 잠근다. 인생이 반드시 순간순간의 암흑을 돌파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고단한 여정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손바닥이 칼날에 쓱 베여 있다. 상처의 모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누구든 자신의 칼을 생각하게 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 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 여자들은 침묵한다. (...) 우연히 전쟁 이야기가 시작되더라도, 그건 ‘남자’들의 전쟁 이야기이지, ‘여자’들의 전쟁은 아니다.
여자들이 이야기할 때, 그들의 이야기에는 우리가 읽거나 들어서 익숙한 내용, 그러니까 어떤 이들이 얼마나 영웅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승리를 거뒀는지, 아니면 어떻게 패배했는지, 어떤 기술들이 사용됐고 어떤 장군이 활약했는지 따위의 내용은 아예 없거나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여자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이고, 또 여자들은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땅도 새도 나무도 고통을 당한다.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고통스러워한다. 이들은 말도 없이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우리가 찾는 것은 어떤 업적이나 영웅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사소하고 인간적인 무엇, 우리에게 가장 흥미롭고 친밀한 그 무엇을 찾는다. 글쎄, 고대 그리스…… 그리고 스파르타의 역사에서 내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을 예로 든다면…… 나는 그 당시 사람들이 집에서 무슨 대화를 나눴고, 또 어떻게 나눴는지 알고 싶다. 어떤 모습으로 전쟁터에 나갔을지 궁금하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마지막날, 마지막 밤에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어떻게 전사들을 전쟁터로 떠나보냈을까. 또 어떻게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을까…… 영웅도 장군도 아닌 평범한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전쟁에 대한 여자의 기억은 감정의 긴장도나 고통의 지수로 볼 때 그 집광력이 가장 높다. ‘여자’의 전쟁이 ‘남자’의 전쟁보다 더 처절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남자들은 역사니 상황이니 따위의 명분 뒤로 숨고, 전쟁은 이념이므로 이해관계를 내세워 그것을 실현시켜야 한다고, 또는 그것에 맞서야 한다고 유혹한다. 반면에 여자들은 감정에 사로잡힌다.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언젠가 총을 쏘게 될 상황에 대비한다. 여자들은 총 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아니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다른 것을 기억하고, 그래서 기억하는 방식도 다르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자들의 전쟁에는 냄새와 색깔과 소소한 일상이 함께한다. “배낭을 배급받았는데 그걸로 치마를 해 입었지 뭐야.” “모병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나올 때는 바지와 군복 차림으로 바뀐 거야. 긴 머리도 싹둑 잘라버려서 짧은 앞머리만 덩그러니 남고……” “독일군이 마을에 총질을 해대고 사라져버렸지…… 한 번은 꼭꼭 다져진 노란 모래 무덤에 도착했는데, 그 위에 어린아이 구두 한 짝이 떨어져 있는 거야……”
나는 ‘하찮은 이야기 따위는 필요 없소…… 우리의 위대한 승리에 대해 쓰시오……’라는 추신이 덧붙여진 편지를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나에겐 바로 이 ‘하찮은 것’들이 중요하다. 이 하찮은 것들이야말로 삶의 온기이자 빛이므로. 긴 머리 대신 뭉툭하게 잘려나간 짧은 앞머리, 뜨거운 죽냄비와 국그릇들이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고 전투에 나갔다 무사히 돌아오는 사람은 백 명 중에 일곱 명 정도였다는 이야기, 혹은 전쟁터에 다녀온 후로는 줄줄이 걸린 붉은 살점의 고기를 볼 수가 없어서 시장에도 못 다니고, 심지어 붉은색이라면 사라사 천도 쳐다볼 수가 없었다는 사연들…… “글쎄, 전쟁이 끝나고 벌써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 하지만 내 집에서 붉은색이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을걸. 전쟁 이후로 붉은색이라면 치가 떨려.”
― 그건 사실이 아니오! 유럽의 반을 해방시킨 우리 병사들에 대한 중상모략이란 말이외다. 그건 우리 빨치산에 대한 모독이고 우리 민중의 영웅들에 대한 모독이오. 우리는 당신의 그따위 저급한 이야기는 필요하지 않소. 위대한 이야기가 필요하지. 승리의 이야기 말이오. 당신은 우리네 영웅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군. 우리의 위대한 사상 역시 좋아하지 않고. 마르크스와 레닌의 위대한 사상을 말이오.
― 맞아요. 나는 위대한 사상 같은 건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평범한, 작은 사람을 사랑하니까요……
인간적인 것이 비인간적인 것을 이겼다. 단지 인간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목 / 박완서]
나는 그렇게 천천히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아주 상식적이고도 완만한 궤도로부터 과감히 탈선해서 지름길로 삶의 재미난 것을 재빠르게 핥으며 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별수없이 또 사랑이란 소리를 강조하면서 그와 나 사이엔 암만해도 딴 낱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무도 안 써본 슬프고 진한 어휘가.
[한 말씀만 하소서 / 박완서]
<인생은 풀과 같은 것, 들에 핀 꽃처럼 한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도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는 것.> (시편, 15~16)
주여, 그렇게 하찮은 존재에다 왜 이렇게 진한 사랑을 불어넣으셨습니까.
[딸에 대하여 / 김혜진]
딸애의 목소리는 뜨겁고 그 애의 목소리는 적당히 서늘하다. 차가운 것은 아래로, 뜨거운 것은 위로. 곡선을 그리며 만들어지는 원. 그 둘을 섞으면 딱 적당한 온도가 만들어질 것 같다.
이 애들은 세상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책에나 나올 법한 근사하고 멋진 어떤 거라고 믿는 걸까. 몇 사람이 힘을 합치면 번쩍 들어 뒤집을 수 있는 어떤 거라고 여기는 걸까.
[콜레라 시대의 사랑]
그녀의 구두가 딱딱거리면서 돌길 위를 걸을 때 어떻게 아무도 자기처럼 정신을 잃지 않는지, 그녀의 베일에서 나오는 숨소리에 왜 아무도 가슴 설레지 않는지, 그녀의 땋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거나 손이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 왜 모든 사람이 사랑에 미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파과 / 구병모]
그러니까 금요일 밤 시간대의 전철이란 으레 그렇다. 밀착을 넘어 연체동물의 빨판처럼 소리에게 흡착되다시피 한 생면부지의 몸 사이에 종잇장만 한 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누군가 입을 열거나 숨을 쉴 때마다 머리 위로 끼얹어지는 고기 누린내와 마늘 냄새 문뱃내에 들숨을 참더라도, 그 냄새가 닷새간의 노동이 끝났음을 알려주기에 안도하는 시간. 과연 내년에도 혹은 다음 달에도, 심지어 당장 다음 주에도 이 시간에 전차를 탈 수 있을지에 대한 실존의 불안을 잠깐이나마 접어 두는 시간.
나름의 아픔이 있지만 정신적 사회적으로 양지바른 곳의 사람들, 이끼류 같은 것 돋아날 드팀새도 없이 확고부동한 햇발 아래 뿌리내린 사람들을 응시하는 행위가 좋다.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으로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면. 언감생심이며 단 한순간이라도 그 장면에 속한 인간이 된 듯한 감각을 누릴 수 있다면.
[하루의 취향 / 김민철]
그렇다.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누가 보기엔 정말 하찮은 일이라도 그 일에 기어이 영혼을 불어넣는 사람들. 허름한 일도 반짝반짝 윤기가 돌도록 만들어놓는 사람들. 텔레비전 속에서 '달인'이라는 이름으로 종종 마주치는, 자부심으로 빛나는 표정의 사람들. 그런 표정으로 자기 일에 몰두하는 일상 속 많은 사람들.
학생의 세계에서 직장인의 세계로 옮겨간다는 건 단순히 돈을 버는 세계로 편입한 것이 아니었다. 그 돈이 허용하는 수많은 경험들의 세계로 동시에 입장하는 것이었다. 3천 원짜리 학교 앞 밥집에서 1만 2천 원짜리 파스타의 세계로, 천 원짜리 커피에서 5천 원짜리 아메리카노의 세계로 물 흐르듯 입장했다. 못 먹던 것을 먹기 시작했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 들리던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즐겁다. 이 혼돈의 시기를 살게 되어서. 어쨌거나 이 혼돈의 시기가 다 지나고 난 다음에는 이전과 같지 않을 테니까. 아무도 그 이전의 시기로 다시 돌아가지는 못할 테니까. 그때의 세상은 지금보다는 나을 테니까. 나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힘들더라도, 답답하더라도, 더디게 보이더라도, 분노가 머리카락 끝까지 뻗쳐오는 날에도 끝까지 즐거울 셈이다. 기를 쓰고 즐거울 셈이다. 보란 듯이 끝까지 즐겁게 싸워볼 셈이다.
생각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쨍한 빛을 드리우는 도시가 있다. 한겨울 버스 정류장에서 벌벌 떨다가도 문득,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도 문득, 그 도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도시. 그곳에서 행복했던 내가 자연스럽게 재생이 되는 도시. 언제쯤 그곳에 다시 가볼 수 있을까 괜히 손가락을 꼽게 되는 도시, 바로 '빛'이 되는 도시다. 반면, 생각할 때마다 목구멍까지 꽉 막힌 기분이 드는 도시가 있다. 그때 그러지 말걸, 거기에서 안 그래도 됐는데, 나는 왜 그렇게 멍청했을까. 생각할 때마다 후회가 밀려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보자고 매달리고 싶은 도시. 바로, '빚'이 되는 도시다. 그리고 드물지만 빛이자 빚으로 남는 도시가 있다. 내겐 이탈리아 베로나가 그랬다.
[오버 더 미스트 / 이영도]
세상에 필요 없는 건 영웅, 현자, 성자.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건 멍청이, 얼간이, 바보.
[오버 더 초이스 / 이영도]
떠올려보라. 여름 오후의 소도시를. 남부의 여름에 비하면 별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곳의 여름도 꽤 근사하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칠 때마다 땅바닥에선 빛과 그림자가 부글부글 끓는다. 거기에 빨래 펄럭이는 소리, 매미 울음소리, 내키는 대로 자라난 풀잎들이 서로를 간지럼 태우는 소리들이 더해지면 여름은 투명한 물고기가 된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무엇인가가 주위의 모든 곳에서 기운차게 파닥거리고 있는 것 같다.
[식물의 잠 / 안네 리히터]
그녀는 식물들의 고통을 짊어졌다. 빛을 향해 줄기를 회전시키는 잘린 꽃의 갈증. 모래 위에 내버려진 바닷말의 축축한 꿈. 11월 서리를 맞은 장미덤불의 한기. 창문과 벽들을 집어삼키는 실내 식물들의 덧없는 광증. 노예들처럼 끌려와 불길한 반란의 열매를 키우며 정원 네 귀퉁이를 뒤덮고 맹렬하게 확산하는 이국의 꽃들. 헛된 행위들의 진창에 박힌 남자들의 한숨.
[전지전능한 할머니가 죽었다 / 가브리엘 루아]
할머니가 보따리 속에 꽉꽉 쑤셔 넣은 천 조각은 갖가지 빛깔에도 신기하리만큼 말끔했다. 게다가 정리하기 전에 모두 깨끗하게 빨아 놓았는지 퀴퀴한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그중에는 고운 빛깔을 들인 옥양목이며, 굵은 실로 격자무늬를 넣어 짠 깅엄이며, 면사와 마사를 엮어 짠 능직물 조각도 있었다. 할머니네 침대커버에서 보던 것처럼 언니들 중 한 명이 입었던 원피스며, 엄마의 코르사주며, 누가 걸쳤는지 더는 기억도 안 나는 앞치마 조각도 눈에 띄었다. 자투리 천을 보며 그토록 많은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우리는 집 안에서 모락모락 난롯불을 피우고 달콤한 호박 파이를 먹거나 개암열매며 옥수수 껍질을 벗기면서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창가에 토마토를 올려놓고 새빨갛게 익기만을 기다리기도 했고, 약한 불 위에 커다란 냄비를 올려놓고 뭉근하게 끓는 소스 냄새로 집안을 가득 채우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마당에서는 슬근슬근 톱질 소리가 두 개의 다른 음조를 지닌 노래처럼 들려오곤 했다. 처음 켤 때는 맑은 소리가 나다가 나무가 물리면 묵직한 소리로 바뀌는 이 노래는 “멋진, 멋진 장작을 한 아름 안겨 주리. 온 겨울 따스하게 보낼 멋진 장작을”이라고 하며 우리에게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밀이 다 자라면 나는 더는 신나는 일을 찾아 이리저리 쏘다닐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람만 살짝 불어도 드넓은 밀밭은 스르르 흔들렸다. 그 부서지는 파도 곁에서 나는 한없이 작은 존재였고, 그런 내게는 밀밭을 바라보고 살랑대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살로메 / 오스카 와일드]
난 당신의 몸을 사랑해요. 당신의 몸은 낫질을 하지 않은 들판에 핀 백합처럼 하얗네요. 당신의 몸은 유대의 산 위에 쌓여 있다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눈처럼 하얗네요. 아라비아 여왕의 정원에 핀 장미인들 당신의 몸처럼 하얗지는 않죠. 아라비아 여왕의 향료 정원에 핀 장미도, 나뭇잎을 비추는 새벽의 발길도, 바다의 젖가슴에 걸터앉은 달님의 둥근 가슴도 당신의 몸처럼 하얗지는 않아요. 세상에 당신의 몸처럼 하얀 것은 없어요. 그 몸을 만져보게 해주세요.
당신의 몸은 나병환자의 몸처럼 징그러워요. 뱀들이 기어 다니고 전갈들이 둥지로 삼은 회반죽 벽 같아요. 온갖 혐오스러운 것들로 가득한 흰색 무덤 같아요. 끔찍해요, 당신의 몸은. 요한, 내가 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머리예요. 당신의 머리는 포도송이 같아요. 에돔의 포도나무에 달려 있는 검은 포도송이 같아요. 당신의 머리는 레바논의 삼나무 같아요. 사자와 낮에는 숨어 지내는 강도들에게 숨을 곳을 제공해주는 레바논의 거대한 삼나무. 달이 얼굴을 감추고 별이 겁을 먹는 기나긴 어두운 밤도 당신의 머리처럼 검지는 않아요. 숲의 침묵도 그렇게 검지는 않아요. 세상에 당신의 머리만큼 검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 머리를 만져보게 해주세요.
당신의 머리는 끔찍해요. 온통 진흙과 먼지투성이에요. 마치 당신 머리 위에 얹힌 가시관 같아요. 당신의 목을 둘둘 감은 뱀들의 매듭 같아요. 난 당신의 머리는 싫어요.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의 입술이에요. 당신의 입은 상아로 된 탑 위에 붙은 빨간 띠 같아요. 상아 칼로 두 동강 낸 석류 같기도 하고요. 티레의 정원에 핀 석류꽃은 장미보다는 붉지만 당신 입술만큼 붉지는 않지요. 왕이 납시었음을 알리어 적들을 겁먹게 하는 트럼펫의 붉은 나팔 소리도 당신 입술처럼 붉지는 않지요. 당신의 입술은 포도주 압축기에서 포도주를 밟은 발보다 더 붉어요. 신전에 살며 사제들이 주는 먹이를 먹고 사는 비둘기의 발보다 더 붉어요. 사자를 죽이고 황금색 호랑이를 보고 숲에서 막 나온 자의 발보다 더 붉어요. 당신의 입술은 어부들이 바다의 황혼 속에서 발견한 산호 같아요. 왕들에게 바치기 위해 아껴둔 산호 말이에요. 당신의 입술은 모아브 사람들이 모아브의 광산에서 캐낸 단사 같아요. 왕들이 앗아가는 단사 말이에요. 당신의 입술은 페르시아 왕이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산호로 장식한 활 같아요. 세상에 당신의 입술처럼 붉은 것은 없어요. 그 입술에 키스하게 해주세요.
나는 당신의 입술에 키스할 거예요, 요한. 나는 당신의 입술에 키스할 거예요.
[쇼코의 미소 / 최은영]
저렇게 제멋대로고 충동적이고 마음 여린 이상한 사람. 이상한 나의 할아버지. 저 엉망진창인 사람. 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할아버지가 씌워준 우산을 쓰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할아버지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냥 한두 시간만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평생 좋은 소리 한 번 하는 법 없이 무뚝뚝하기만 했는데 그게 고작 부끄러움 때문이었다니. 죽음에 이르러서야 겨우 부끄러움을 죽여가며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걸 사내답지 않다고 여기며 깔보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가끔씩 그런 통제에도 불구하고 비어져나왔던 사랑의 흔적들이 있었다.
새벽에 눈을 뜨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단단한 땅도 결국 흘러가는 맨틀 위에 불완전하게 떠 있는 판자 같은 것이니까. 그런 불확실함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주제에, 그런 사람인 주제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내 적막한 마음에 함께 있어줘서 고마웠어.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 백영옥]
어느 나라에 가든 어렵지 않게 시차에 적응하고, 그 나라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몽골에 가면 태어날 때부터 달리는 말을 탔던 몽골인처럼 보이고, 인도에 가면 평생 손으로 밥을 먹었던 인도인과 흡사해 보인다. 어디서도 섞이거나 스미는 사람들. 온몸에 흙과 바람의 냄새를 싣고 다니는 사람들.
사강은 자신이 한 번도 카메라를 가져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사진을 찍을 만큼 단란한 가족을 이루어본 적도, 사진에 찍힐 만큼 아름다운 연인이었던 적도 없었던 것이다. 문득 실패한 자신의 연애가 결국 카메라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황당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무 사이에 걸린 저런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고도 찍어보고 싶단 욕망이 생기지 않는 삶이 행복할 리 없었다.
도심의 끝이 보이지 않는 완벽한 정전 속에 두 남녀가 서 있다면, 한 사람이 넘어지려 할 때 다른 한 사람이 몸을 잡아주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메리카 에어라인 11편이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충돌하던 순간, 몇몇 사람들의 손에 휴대폰이 있었다. 그때 수화기를 든 그들이 누군가에게 했던 마지막 말은 ‘살려줘’, ‘무서워’, ‘죽고 싶지 않아!’가 아니라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같은 말들이었다.
[인생 / 위화]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내가 고상한 작품을 썼다고 생각한다.
십 년 전에 나는 한가하게 놀고먹기 좋은 직업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촌에 가서 민요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그해 여름 내내 나는 어지러이 노니는 참새처럼, 시끄러운 매미 소리와 햇빛 가득한 시골 마을 들녘에서 빈둥거렸다.
나는 농민들이 즐겨 마시는 씁쓰레한 찻물을 좋아했다. 그들은 대개 차통을 밭둑의 나무 밑에 놔두곤 했다.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찌꺼기가 잔뜩 낀 찻잔을 들어 찻물을 따라 마셨고, 더불어 내 물병까지 가득 채웠다. 그러고는 밭에서 일하는 남자들과 한바탕 음탕한 얘기를 하며 노닥거렸는데, 그럴 때면 내 시답잖은 얘기에 아가씨들이 남몰래 키득거리곤 했다. 그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자리를 떴다.
그 시절 내가 제일 좋아했던 일은 저녁 무렵 농민들의 집 앞에 앉아, 그들이 우물물을 길어 땅바닥에 뿌리며 풀풀 날리는 먼지를 잠재우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또 석양빛이 나뭇가지 끝을 비추는 정경을 바라보며 그들이 건네준 부채를 들고 소금처럼 짠 음식을 함께 맛보고, 젊은 처자들을 훔쳐보며 남정네들과 한담을 나누던 일 또한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밀짚모자를 쓰고 슬리퍼를 끌면서 다녔다. 또 허리띠 뒤쪽에는 수건을 매달았는데, 걷다 보면 그것은 꼭 양의 꼬리처럼 엉덩이 위에서 흔들거렸다. 그런 모습으로 온종일 입을 쫙 벌리고 하품을 하면서 좁은 밭둑길을 느릿느릿 거닐다 보면, 슬리퍼가 팔딱팔딱 소리를 내며 흙먼지를 날리는 게 마치 차바퀴가 털털거리며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난 구불구불 성 안으로 난 작은 길을 바라보았지. 내 아들이 벗은 발로 뛰어가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네. 달빛만 처연하게 길을 비추는데, 마치 그 길 가득 하얀 소금을 흩뿌려놓은 것 같았어.
[젤다 /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
내가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리츠 호텔의 재패니스 가든에서 크림을 올린 라즈베리를 먹고 있었다. 꼬마 분수가 시원한 소리를 머금은 공기를 뿜었고, 보석 팔찌들이 쟁그랑댔고, 한여름의 습한 고요가 사람들 말소리 위로 내려앉았다. 나는 그녀가 너무나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이미 오래전에 자신을 뭔가 장식적이고 흥미로운 객체로 규정한 듯, 그리하여 미국적 삶의 필수 요소들과 뒤섞이지 않겠다고 작정한 듯, 그녀는 너무나 표연했다.
그녀는 해변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고도 아무렇지 않게 새하얀 피부로 나타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겨울에는 하와이인처럼 구릿빛이어야 하고, 겨울에는 투명 코트 칼라에 달린 여우 털처럼 하얘야 한다는 것이 앵글로색슨인의 자기수양에 대한 그녀의 가학적 해석이었다.
만약 더 오래 살았다면 그녀는 무수히 많은 레이스 양산과 기다란 베이지 장갑과 플로피 햇, 그리고 앵무새를 한 마리 소유했을 거다. 게이는 그 어느 것보다 '스타일'을 좋아했다. 나풀거리고 여성적인 스타일. 그리고 자신이 그걸 보유하게 된 것은 기본에 철저했기 때문임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몇 명의 아이를 낳았는지, 몇 백만을 벌었는지, 얼마나 많은 역을 연기했는지, 또는 얼마나 많은 사자를 길들였는지 같은 것들.
그리고 게이도 여전히 살아 있다. 모든 정처 없는 영혼들 속에. 상류층의 풍속대로 계절을 따라 순례에 나서고, 퀴퀴한 대성당들에서 구릿빛 몸과 여름 해변의 사라진 마법을 찾고, 안정과 성공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의 가능성은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 리츠를 지금의 리츠답게 만들고, 대양 횡단 여행을 이브닝드레스와 다이아몬드 팔찌의 비공식적 업무로 만드는 모두의 마음속에.
모든 곳에는 그곳만의 시간이 있다. 겨울철 한낮 유리 같은 햇살 아래의 로마. 푸른 거즈 같은 봄날 석양에 덮인 파리. 그리고 뉴욕의 새벽 틈새로 흘러드는 붉은 태양. 따라서 당시의 제퍼슨빌에도, 내 생각에는 지금도, 다른 곳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나름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은 길모퉁이 가로등들이 깜빡대고 칙칙대며 켜지는 초여름 밤 여섯 시 반쯤에 시작해서, 공 같은 백열 전구들이 나방과 딱정벌레로 까매지고 먼지 자욱한 거리에서 놀던 아이들이 잠자리로 불려 들어갈 때까지 이어졌다.
해리엇은 루이스를 제퍼슨빌의 노랗게 흐느적대는 늦은 오후의 세계로 인도했다. 자동차에 올라 과일이 발치에서 썩어 가는 먼지 자욱한 고광나무 생울타리를 끼고 달리는 세계, 시골 가게 옆 나무통에 시원하게 넣어둔 코카콜라의 톡 쏘는 달콤함과 김이 오르는 멕시칸 핫도그 매대의 군침 도는 세계, 그리고 더위를 피해 일 년이면 아홉 달을 네잎장미 우거진 비탈 아래서 잠자는 마을이 가진 온갖 미스터리의 세계로.
둘은 함께 웃었고, 그녀는 그때 분명히 느꼈다. 삶에 흥미를 잃는 두려움이 두 사람의 호탕하고 낭랑한 웃음에 쫓겨 낡은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허둥지둥 퇴각하는 것을.
어릴 적에 나는 미스 엘라를 사랑했다. 여름에 하얀 캔버스 운동화 속으로 멋지게 곡선을 그리며 미끄러져 들어간 그녀의 높은 발등은 겨울바람이 만든 눈더미처럼 육감적이고 부드러웠다. 그녀는 레이스 양산을 들고 다녔고, 항상 새처럼 활기에 차 있어서 누군가와 말을 나눌 때도 두 발은 가만두지 못하고 종종거렸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 조반니 과레스키]
사람들은 산에 긴 터널을 파고 강줄기를 돌려놓으면서 지리적 환경을 바꾸려고 애를 쓴다. 그렇게 해서 역사적인 새 길을 냈다고 자랑하지만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어느 날, 모든 것이 깡그리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노아의 그것과 같은 홍수가 일어나서 다리들이, 무너지고 둑들이 무너지고, 도랑들이 모두 메워져버릴 것이다. 홍수는 사람들이 사는 집들과 관청들과 오두막들도 한꺼번에 쓸어가고, 수마가 훑고 간 폐허에는 잡초와 흙더미만 무성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가게 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돌팔매질로 짐승들과 싸워야 하고 역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온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똑같은 역사가 말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지구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충격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수없이 많겠지. 이제 나는 상상할 수 있어.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김하나, 황선우]
아열대의 공항에 내리면 코가 먼저 반응한다. 평생 비염과 더불어 살아온 나는 건조한 계절이면 코로 숨 쉬기가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동남아 어느 도시나 사이판 같은 더운 섬의 공항에 도착해 밖으로 한 발 내딛을 때면 후끈하고 습한 공기가 순식간에 몸을 감싸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그렇게 체온이 훅 올라갈 때 느끼는 기쁨은 천진하게 달려드는 강아지를 온몸으로 껴안는 듯한 기분이다. 몇 시간의 비행 이후 펼쳐지는 전혀 다른 공기와 햇볕, 식물들과 풍경, 건축양식과 음식의 총체적인 경이로움은 각각의 요소를 따로 떼어놓는 게 무의미한, 한 덩어리로 다가오는 그곳만의 특질들이다.
황선우가 말했다. “창밖으로 플라타너스들이 눈 아래 일렁이는 게 바다 같았어.”
그리고 차에 타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좋아.”
나는 그 순간 세상 모든 플라타너스 잎이 한꺼번에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완성되어 내 집의 한 벽을 가득 메운 책장은 대단히 멋있고 아름다웠다. 키 156cm에 체구도 자그마한 내 친구가 손으로 직접 만든 육중하고 근사한 가구. 책을 꽂는 기능을 넘어선 뭔가 엄청난 것이 내 집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월넛과 오크의 아름다운 색깔과 무늬, 두툼하고 단정한 선들, 매끄럽고 따뜻한 표면의 질감, 칸칸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균형. 이 가구는 집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을 재배열했다. 어른이 된 느낌이 들었다. 소품이나 가구를 들이더라도 책장과 결이 맞을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아주 신중해졌다. 이제 내 집의 가구와 물건들은 이후의 어떤 시점에 이르기 전까지 한시적으로 쓰는 것들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물건’을 마련할 그날 같은 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물건이 얼결에 들어서버리자 생활이 가지런해졌다. 아름답게 잘 만든 물건의 힘이란 이토록 강력하다. 내게 있어 자취가 아닌 독신 생활은 정확히 이 책장이 들어온 날 시작되었다.
가족과 함께 살던 시절에는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침잠을 깨웠다. 뭘 썰거나 끓이거나 기름에 굽거나 하는 주방의 생활 소음은 너무 구체적이고 현실감 넘쳐서 꿈에서 미처 깨어나기 전의 몽롱한 정신에는 이물감이 느껴졌다. 아직 지각이 선명하지 않은 감각 기관 중에 코끝으로 음식 냄새가 제일 먼저 스며드는 게 그때는 불쾌하게 다가왔다. 눈 뜨자마자 식탁에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니, 지금이라면 행복감에 넘쳐 벌떡 일어날 텐데 말이다. 가족을 떠나 혼자 산다는 것은 누구도 음식 냄새로 나를 깨워주지 않는 아침이 수천 번 이어지는 일이었다.
혼자의 식탁은 효율성과 편의를 우선으로 꾸려진다. 삶은 달걀 한두 개에 사과나 고구마 같은 걸로 때우기도 하고 햇반을 데워 레토르트 카레와 해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비롭게도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더 부지런할 수 있는 존재다. 누군가와 함께 먹을 식사를 차린다면, 무슨 힘에선지 국이라도 하나 끓이고 더운 찬이라도 한 가지 볶게 되는 것이다.
새해 첫날이니까. 한 해를 지나면서 실패하고 실수하며 생채기를 많이도 내겠지만 지금은 저 달처럼 온전하게 둥글고 꽉 찬 365일을 선물같이 받아 든 1월 1일이다. 간절하게 지키고 싶은 것들이, 멋지게 이루고 싶은 일들이 여럿 떠오르는 1월 1일 말이다.
[딩씨 마을의 꿈 / 옌롄커]
『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을 쓴 것인 동시에 꿈을 쓴 것이고, 어둠을 쓴 것인 동시에 빛을 쓴 것이며, 환멸을 쓴 것인 동시에 여명을 쓴 것이었습니다. 제가 쓰고자 한 것은 사랑과 위대한 인성이었고,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이었습니다.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둘러싸고 있는 고난을 극복하고 선과 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영혼의 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인성의 가장 후미진 구석에 자리한 욕망의 그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빛이었습니다.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 김나연]
52Hz라는 고래가 있다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단 한 마리, 이 고래만 52Hz로 울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학자들은 이 고래의 이동 경로를 관찰한 결과, 52Hz 고래가 대왕고래일 거라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대왕고래는 그보다 낮은 주파수(10~40Hz)로 울기 때문에 다른 대왕고래들은 52Hz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고래의 또 다른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입니다.
[메리 포핀스 / P.L.트래버스]
그 모험은 어느 날 밤, 별들이 하늘에 핀 민들레처럼 빛나고, 그 별들 사이로 달이 커다란 데이지꽃 한 송이처럼 떠 있던 밤에 시작되었어.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 / 안젤름 그륀]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비난하는 심술궂은 사람들을 배심원석에 앉혀놓고 늘 피고석에 앉아 자신의 행위가 무죄라는 변명을 끝없이 늘어놓고 싶은 강박을 가지고 있다.
[잊기 좋은 이름 / 김애란]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안미옥 / 온]
너는 무서워하면서도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삶의 어느 법정에서건 나는 그녀를 위해 증언할 것이다.
[분노의 포도 / 존 스타인백]
이론이 변화할 때나 붕괴할 때, 국민적, 종교적, 경제적 사고의 좁은 뒷골목과 학파와 사상이 성장할 때와 허물어질 때, 인간은 손을 뻗어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고통스럽게. 때로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면서. 일단 앞으로 발을 내디딘 후 뒤로 미끄러질 수도 있지만, 그래 봤자 반 발짝 물러설 뿐이다. 결코 한 발짝을 온전히 물러서는 법이 없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노력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다면 이 또한 행복인 것이다. - 우당 이회영(독립운동가) -
비겁한 자도 승리가 확실할 때는 싸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패배가 확실할 때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자가 좋다. - 조지 엘리엇 –
There i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모든 것에는 금이 가 있다. 빛은 거기로 들어온다. - Imperfect / Leonard Cohen
내게 불었던 바람들 중에 너는 가장 큰 폭풍이었기에
그 많던 비바람과 다가올 눈보라도 이제는 봄바람이 됐으니 - 운이 좋았지 / 권진아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 프리다 칼로의 유언 -
햇빛처럼 행복하고 바다처럼 길들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라. - 이탈리아 교사 체사레 카타(Cesare Catà) -
'글을 어떻게 이렇게 쓰지?' 하고 감탄했던 구절이나
너무 이뻐서 손으로 써보고 싶었던 구절 있으면 써주고가줘~!
너무 좋다...... 고마워..... 이영도가 여름은 투명한 물고기가 된다 그런 구절이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