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문장이 너무 예뻐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https://www.dmitory.com/garden/112907685

문장이 너무 예뻐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2: https://www.dmitory.com/garden/158442138

문장이 너무 예뻐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3: https://www.dmitory.com/garden/191011644

문장이 너무 예뻐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4: https://www.dmitory.com/garden/221371041

문장이 너무 예뻐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5: https://www.dmitory.com/garden/239697359


외로움에 대한 구절들 모아보자https://www.dmitory.com/garden/113113510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 박완서]


물을 맞을 계곡물이 없는 것만 빼고는 우리 마을 동산엔 없는 게 없었다. 그가 두 팔 벌려 얼싸안은 벌판을 넉넉한 물로 축여주었을 뿐 아니라 무진장한 땔감과 먹거리와 신선한 바람과 철따라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었다. 바위나 돌이 귀한 동산이어서 그러했는지 나무가 울창한데도 바닥도 맨흙을 드러낸 데가 없이 잡초가 무성했고 잡초 사이엔 온갖 풀꽃과 산나물과 버섯이 자랐다. 그래서 산속을 걸으면 겨울에도 쿠션을 밟는 것처럼 탄력이 있었고 봄에는 산이 아기처럼 새근새근 숨쉬는 것을 닳아빠진 고무신 바닥을 통해 분명히 느낄 수가 있었다.




나에게 시골이란 말은 고향과 거의 같은 뜻을 지니고 있었다. 동산이 있고 개울과 시내와 논밭과 작은 마을과 두엄 냄새와 그리고 무엇보다도 땅 파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되었다. 그 중 어느 하나도 유난스러울 필요는 없었다. 고향이 북쪽이라 못 가게 되고 나서도 관광이나 휴가라는 이름으로 여행을 한 적은 많지만 시골 맛을 본 것하곤 달랐다. 나에게 시골 맛이란 완전한 평화와 안식을 의미했다. 좋은 계절 골라잡아 이름난 휴양지나 명승 고적을 찾아가서 사람에 부대끼고 나서 현지 사정이나 주머니 형편에 따라 민박이나 여관에 묵은 걸 시골 맛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근래에는 세상도 좋아지고 내 경제 사정도 넉넉해져 호텔 아니면 콘도에 묵는다. 그렇다고 만약 나에게 시골에 사는 가까운 친척이 있어 거기서 묵을 수 있다면 귀향과 닮은 맛을 볼 수 있었을까. 아마 그래도 아닐 것이다. 관광지 주변과 고속도로나 국도 주변의 인심과 마을 풍경은 해마다 달라졌다. 그것이 근대화라는 것이었다. 도시 사람이 눈에 불을 켜고 돈과 편리를 추구하는데 농촌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없었다. 다 같이 고루 잘살자는 데 불만을 품는다면 그야말로 도둑놈의 배짱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렇게 농촌의 발전을 긍정하면서도 도시의 간교함과 농촌의 촌스러움을 조잡하게 뒤섞어 놓은 것처럼 어중간한 시골 인심에 접하는 것은 민망하고도 피곤한 일이었다. 국토는 좁고 인구는 많고 어느 한군데 도시인이 휘젓고 다니지 않은 데가 없는데 오염 안된 시골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소위 경제 발전이란 명목으로 기를 쓰고 잘살기만을 추구하다가 문득 무슨 속죄의 의식처럼 전혀 발전이 안된 시골을 꿈꾼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사치롭고도 아니꼬운 도시 중심적인 사고인가. 농촌을 대상화하지도 말아야겠지만 속죄양을 만들어도 안된다는 생각으로 어디에도 이제 고향은 없다는 상실감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지역적인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나라 도처에 널린 산과 들과 물의 적절한 조화가 그날따라 마음에 스미듯 아름답게 느껴졌다. 감동이라고 해도 좋았고 개안이라 해도 좋았다. 어찌 이다지도 보기 좋을까. 평범한 시골이 마치 신이 정성을 다해 꾸민 정원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나의 이런 감동에 친구가 찬물을 끼얹었다. 그 고장이 도시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그 고장이 개발에서 소외됐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그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아파트도 공장의 굴뚝도 안 보이고, 문명의 쓰레기도 널려 있지 않은 순전한 시골이 거기 있었으니까.



분주하게 일하는 농사꾼들이 있었다. 가을걷이가 한창이었다. 시외버스는 포장도로의 길섶을 벼를 널어 말릴 수 있는 멍석으로 내주느라 가운데로 조심조심 달렸기 때문에 나는 마치 문명의 이기가 아닌 달구지를 타고 가는 듯한 기분까지 맛보고 있었다. 벼를 길에 넓게 펴 말리는 이나, 논에서 기계로 벼를 베는 이나, 탈곡기로 벼를 터는 이나, 일손들은 거의 중년의 아낙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어서 마음이 찐했지만 간혹 청년이 눈에 띄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대형 부정과 온갖 비리, 그리고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는 낭비와 사치, 그리고 속속들이 썩어 문드러져 가는 부도덕에 거의 불감증이 돼버렸지만, 문득 이러고도 이 세상이 안 망하고 지탱해가는 걸 신기하게 여길 적이 있다. 그건 바로 저들 숨은 의인들 덕이 아니었을까? 나는 염치 없게도 우리가 안 망하기 위해서는 의인들이 의인으로 길이 남아 있길 바랐다. 그러나 의인하고 속죄양하곤 다르다. 누가 시켜서 되는 것도 더군다나 경제 발전에서 소외된 열등감으로 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자유 의사와 자존심 없는 의인을 생각할 수 없는 거라면 우리 모두가 의인을 알아보고 공경하고 의인의 땀의 결실을 무릎 꿇어 귀히 여기는 마음 없이는 의인의 소멸 또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후졌기 때문에 아름다운 이곳 농촌이 실은 뒤진 게 아니라, 먼저 발전했기 때문에 땅과 인심이 돈맛밖에 모르게끔 천박하고 황폐해진 타고장들이 장차 지향해야 할 미래의 농촌상이길 꿈꾸었다면 내가 너무 철없는 몽상가일까?



 

멀미 중 사람 멀미가 제일 고약한 것은 평소 자신에게 있다고 믿었던 인류애니 인도주의니 하는 것이 실은 얼마나 믿을 게 못 된다는 자기혐오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다산이 넘었다는 크고 험한 산을 눈앞에 보는 것만으로 전율에 가까운 행복감을 느꼈다. 그리고 어제 거친 산천이 그리도 유정했던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어찌 위대한 영혼뿐이랴. 이름 없이 살다 간 백성들의 한 많은 사연들이 서리서리 머무는 곳이 우리의 강산이다. 바로 그런 자연의 정기가 지나가는 나그네의 심금을 흔들고, 고향 떠난 이를 죽어서도 뼈골이라도 묻히고 싶도록 끌어당기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정말 그렇게 부자인가. 기죽게 그 흔한 국민소득 비교할 거 없이 그 동안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열심히 벌었으니 한번 본때 있게 써보는데 누가 뭐랄 거냐는 배짱도 좋다. 하긴 그런 배짱이 오늘의 경제발전을 이룩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란 말도 있다. 그러나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으란 말도 있다. 아무의 눈치도 볼 거 없다 해도 자연의 눈치만은 봐야 하는 것은 인간의 최소한의 법도다. 흐르는 큰 강물에는 양심의 가책 없이 오줌을 갈길 순 있지만, 하루 한 통이나 고일까 말까 한 옹달샘물에 오줌을 누는 것은 짐승만도 못한 것이다.



세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조금도 없다. 조부모님을 비롯해서 여러 숙부, 숙모, 사촌들이 한솥밥을 먹는 대가족 사이에서 귀염도 넉넉하게 받았으므로 별로 아버지가 그리워 청승을 떨거나 하지도 않고 태평스럽고 구김살 없는 유년기를 보냈다. 이 나른하고 닫힌 세계로부터 스스로 돌파구를 꿈꾸기에는 아직 아직 먼 겨우 여덟 살 적에 나는 순전히 타의에 의해 그 고장을 상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도 살아 있는 한 6·25세대임을 면할 수는 없다는 걸 이번 걸프전쟁을 통해서도 서글프게 실감했다.

같은 인간이 엄청나게 죽어가는 걸 흥미진진하게 또는 전후의 잇속에 침 흘리며 관전하는 세상 인심을 보면서 우리 민족이 죽어가고 우리의 운명이 엉망진창이 될 때도 남들이 저렇게 재미나게 구경했으려니 하니 새삼스럽게 노엽고, 무더기로 살해당하는 게 전자오락 화면 속의 움직이는 영상이 아니라 제각기의 고유하고 소중한 세계를 가진 살아 있는 인간이고 핏줄로 사랑으로 얽히고설킨 가족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줄창 늘어붙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남은 자식들이 창의 불빛을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지척에서, 수프가 식지 않을 만한 이웃에서, 이 나라 끝에서, 혹은 지구의 반대방향에서 돌봐주고 걱정해주어 살아나가는 데 힘이 돼주고 있다. 나는 자식들과의 이런 멀고 가까운 거리를 좋아하고, 가장 멀리, 우주 밖으로 사라진 자식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도 있는 신비 또한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남겨진 자유가 소중하여 그 안에는 자식들도 들이고 싶지 않다. 내가 한사코 혼자 살고 싶어하는 걸 보고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 나는 순순히 외롭다고 대답한다. 그게 묻는 이가 기대하는 대답 같아서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너는 안 외롭냐? 안 외로우면 바보라는 맹랑한 대답을 하고 있으니, 이 오기를 어찌할 거나.



자주 여행을 다니는 것도 내 집에 돌아올 때의 감격을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집은 편안한 만큼 헌 옷처럼 시들하기가 십상인데 그 헌 옷을 새 옷으로 만드는 데는 여행이 그만이다. 그러나 때로는 집도 낯설고 불편할 때가 있다. 난방이 잘 된 집에서 배불리 먹고 편안히 빈둥댔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춥고, 배고프고, 고단하고, 집에 붙어 있음으로 생기는 온갖 인간관계까지가 헛되고 헛되어 견딜 수가 없을 때 꿈꾸는 여행은 구태여 경치가 좋거나 처음 가보는 고장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럴 때 표표히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는 사람은 복되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손님을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공경과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잘해주는 친척집보다 불친절한 여관방을 차라리 편하게 여기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필요한 것이 알맞게 갖춰져 있고 홀로의 시간이 넉넉히 허락된 편안한 내 방이 언제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릿한 향수와 깊은 평화를 느낀다. 수녀원 뒷산에 사계절은 또 얼마나 좋은지, 자연 그대로인 것 같으면서 세심한 손길이 느껴지고 잘 가꾼 것 같으면서 자연 그대로인 뒷산에 안겨 새소리를 듣고, 다람쥐와 숨바꼭질하고,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을 보는 기쁨과 평화는 주님, 당신은 참 좋으십니다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 복잡한 부산에 그런 좋은 동산이 있다는 걸 누가 믿을까. 거기 언제나 갈 수 있고 또 가기를 꿈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 복도 많다 싶다.




우리가 모두 굶주리고 헐벗었을 때 꿈꾼 보다 나은 세상은 일만 하면 배부르고 등 뜨스울 수 있는 세상이었다. 이제 우린 열심히 일만 하면 배부르고 등 뜨스울 수 있는 정도는 보장된 세상이 됐다고 믿으면서도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헐벗고 굶주렸을 때보다 더하면 더하다.




폭력이 용기와 다르듯이 편견은 신념과 다르다. 신념은 마음을 열고 얼마든지 남의 옳은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살찌우려 들지만 편견은 남의 옳은 생각을 두려워하는 닫힌 마음이다. 결국 폭력이나 편견이나 똑같이 허세일 뿐 진정한 힘은 아니다. 그러니까 정말 두려운 건 목청 높은 편견이 아니라, 그 목청에 대세를 맡겨버리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소극적인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우린 예로부터 말 같지 않은 말이나 사람답지 않은 사람과는 대항해서 시비를 가리느니보다는 슬쩍 피하는 걸 점잖은 사람이 지킬 미덕으로 여겨왔다. 여북해야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하는 속담까지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의 지혜가 담겨 있는 속담 중에서 이 속담만은 쓸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똥을 피하는 건 더러워서일 뿐 무서워서가 아니라는 말은 자신에 대한 변명은 될지 몰라도 여럿이 더불어 사는 이 세상에 대해선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다. 너도나도 똥을 피하기만 하면 이 세상은 똥통이 되어버릴 것이 아닌가. 똥은 피할 게 아니라 먼저 본 사람이 치우는 게 수다.

인간답게 사는 길도 나만 인간답게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이미 인간답지 못하다. 이웃이 까닭 없이 인간다움을 침해받는 사회에서 나만은 오래오래 인간다움을 지키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인간 이하의 어리석음이다.

 



법 대신 편법을, 원칙 대신 변칙으로 사는 걸 은연중 권장하는 사회는 뭔가 잘못된 사회다. 마찬가지로 특혜나 특사가 자주 있어야 하는 사회도 인간다움이 그만큼 자주 짓밟힌 사회라는 혐의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인권만은 특혜로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빼앗을 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



아무 데서도 받아 주지 않는 조난당한 월남 피난민을 실은 쌍용호의 귀추에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동정과 초조와 분노와 회의가 엇갈렸던 몇 달 전 일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때 쌍용호가 한 일은 참 잘한 일이다 싶다.

그때 쌍용호가 그 일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입는다고 알았을 때, 또 우리보다 훨씬 가까운 나라에서도 우리보다 훨씬 부자 나라에서도 쌍용호의 기항과 피난민의 상륙을 거부한다는 걸 알았을 때, 세상에 이럴 수도 있을까 하는 노여움도 컸지만 한가닥 회의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지금은 참 잘했다, 아아 잘했다 싶다.

당장에 잇속에 밝게 노는 일보다는 나중까지도 후회 안할 일이 정말 잘한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도 남을 도왔다는 기억은 돈 주고도 절대로 살 수 없는 민족적 긍지가 아닌가.



우린 평생 처음 남을 도와주고 구제하는 일을 했지만, 그 도운 대상이 불쌍한 망국민이었기에 훗날 어떤 보상이 되어 돌아올 리는 거의 없는, 이를테면 밑지는 일이었다. 밑지는 일이기 때문에 모두들 하길 꺼렸고, 구태여 밑지는 일을 하는 쪽이 미련하고 바보스러워 보이기조차 했을지 모른다.

그만큼 요즈음 국제사회에선 비정하리만치 우악스러운 실리주의가 판을 쳐 이해타산을 초월한 미련한 짓 같은 건 절대로들 안 한다. 반면 이해타산만 맞으면 간에 붙었다 콩팥에 붙었다를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저지른다.

그런 짓을 못하는 게 바보인 세상이다. 그런데도 우린 그런 남 다 안하는 바보짓을 했던 것이다.

우리보다 휠씬 잘사는 나라도 냉랭하게 외면하는 피난민을 싣고, 그래도 행여나 하고 이 나라 저 나라, 이 항구 저 항구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며 부산항에 오고 말았고, 우리 국민은 잘했다 참 잘했다 하며 쌍용호의 노고를 마음으로부터 치하하고 피난민을 성의껏 따뜻이 맞아들였던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조난을 당해서 그대로 놔 두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우선 구해놓고 보는 것이 옳은 일이고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행동의 기준을 옳고 자연스러운 데 두기보다는 무엇이 더 이로운가에 두는 게 당연한 일로 되었고 그런 행동이 보다 세련된 행동으로 보이니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김대두가 누구라는 걸 분명히 안 후에도 그 부호의 자제들과 김대두를 헷갈리는 혼란으로부터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나에겐 김대두와 그 철없는 친구들이 서로 그렇게 닮아 보였다. 한쪽은 우리나라 최고의 부유층이요, 한쪽은 너무도 지독한 저 밑바닥 가난뱅이니까 그야말로 최고 최저의 양극단끼린데도 비슷한 끼리처럼 느껴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의 돈에 대한 너무도 엄청난 오해, 그리고 도덕심의 부재(不在), 또 그들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추악한 사물이라는 것…… 이런 몇 가지 굵직한 공통점 때문에 그들을 그렇게 닮게 느꼈었나 보다.

내 돈 갖고 내 마음대로 쓰는데 누가 뭐랄 거냐는 말과 나쁜 짓을 좀 하더라도 한밑천 잡아 한번 끗발나게 살아보고 싶었다는 말도 얼마나 닮아 있나. 닮은 정신 구조, 아니 동일인(同一人)의 목소리 같지 않은가.

김대두라는 인품이 만약 재벌의 아들이라는 신분에 놓이게 된다면 그렇게 돈을 끗발나게 쓸 수밖에 없었을 테고, 요즈음 문제된 재벌의 자제들처럼 도덕적으로 허약한 인품이 만약 김대두의 세계처럼 참담한 극빈의 세계로 떨어진다면 김대두처럼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을 것 같다.

이런 의미로도 나는 지독한 부자와 지독한 가난에 대해 비슷한 혐오감과 공포감마저 느낀다. 자식들은 그저 부자도 아니고 가난뱅이도 아닌 보통 환경에서 키워야지 싶긴 한데, 그 보통 환경이라는 게 뭔지가 또 상당히 어렵다.





[내가 말하지 못한 모든 것 / 에밀리 파인]


중독자를 사랑하기는 힘들다. 중독자를 그냥 내버려 둔 채 떠나기는 더 힘들다.



자기 스스로 삶을 꾸릴 수 없을 때 그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할 권력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



왜 나는 부끄러움이 나를 침묵시키도록 내버려두는 것일까? 왜 몸을 잘 돌보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아마도 이는 내가 여성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통을 겪는 것과 연관 짓기 때문일 터다. 생리를 시작한 첫날, 몹시 힘들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이를 악물고 참았다. 나는 그것이 다른 여성들이 하는 일이고 여성들에게 기대되는 일이라고 믿었다. 여성으로서 나의 몸은 고통의 장소가 되기로 애초부터 정해져 있다고 믿었다. 고통은 여성이 침묵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무엇이다. 생리의 고통부터 왁싱의 고통, 열등감의 고통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고통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몸은 중요하지 않다. 고통은 우리가 내야 하는 세금이다. 그리고 나쁜 건강은 우리가 거두는 배당금이다



아마 외로운 삶이 영혼을 가장 심하게 좀먹는 때는,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무리 속에 있으면서 소외감을 느끼는 시간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약 8년의 세월을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에는 내가 이전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인정하지 않았던 많은 사건과 감정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들을 글로 쓰는 경험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쓰지 않기로 하면서 회피하지 않은, 혹은 회피하지 못한 것은 오로지 한 가지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충동이 위험하고 두렵고 수치스럽다고 느끼면서도 필요한 이야기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매우 오랫동안 그토록 철저하게 부정해왔던 나의 일부들을 되찾기 위해 지금 이 이야기를 쓴다. 나는 오랜 세월 지녀온 침묵의 암호를 해제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쓴다. 결국, 나는 내가 나의 삶에 오롯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느끼기 위해 이 이야기를 쓴다. 그리고 이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쓴다.



나는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두렵다. 나는 회피와 감정과 과로와 우울증과 무너짐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이 두렵다. 취약성을 인정하는 일은 나를 강하지 못한, 약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고 여전히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젊고 귀엽고 무력하다고 인정하는 것이 두렵다. 나는 그 모든 힘든 일들, 안 좋은 일들, 호감이 가지 않는 일들을 인정하는 것이 두렵다. 나는 나 자신을 노출하는 것이 두렵다. 나는 동정을 받는 것이 두렵다.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것이 두렵다.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 두렵다. 나는 파괴적인 여성이 되는 것이 두렵다. 또한, 충분히 파괴적인 여성이 되지 않는 것이 두렵다.

나는 두렵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하고 있다.

 



[노랜드 / 천선란]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점.

실수로 떨어트린 물감처럼 찍혀 있는 저 점이, 우리가 보는 지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시에라는 팔짱을 낀 채로 의자에 기대어 앉아 푸른 점을 보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스쳤던 나뭇잎,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던 파도, 달이 선명하게 뜨던 밤과 창문을 두드리던 빗소리를 다시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리라. 생명이 태어나고 죽고, 무언가 창조되고 멸망하기를 반복했던 지구는 그 모든 걸 제 몸에 한 줄의 테로만 남겨두고 새로이 바뀔 것이다. 인간은 다음 무대의 배우가 아니므로 그곳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영겁 같은 시간이 흘러 저 행성이 인간의 흔적을 부단히 지우고 나면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제 이름도,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이름 모를 어느 생명체가 눈을 뜨겠지. 푸른 하늘과 광활한 대지, 혹은 흐르는 강물과 커다란 나무를 올려다보다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위대한 첫 발걸음을 내딛기 전까지 지구는 누구의 소유도 되지 못한 채 공전과 자전을 반복하리라. 시곗바늘을 되돌리면서.




[그냥, 사람 / 홍은전]

내가 여기까지 타고 왔던 기차가 나를 내려놓고 저만치 떠나고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 낯선 역에 앉아 있었고 떠나는 기차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내가 그것을 타고 여기까지 왔다는 걸 깨달았다. 거기에 타고 있었을 땐 내가 무엇을 타고 있는지도 몰랐던 그 기차가, 말하자면 청춘이었을 거다.



나는 다시 신문을 펼쳤다. 장애인,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세월호참사의 피해자 같은 내가 아는 사람들의 세상은 거기에 없었다. 나의 우물은, 한 시절 나의 우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왜 없지? 어떻게 이렇게 없을 수가 있지?’ 하며 신문을 넘기다가 금세 나는 또 그것을 의아해하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노들에서 매일 들으며 살았던 소리들, 나를 힘들게 하고 때론 도망치고 싶게 했던 사람들의 한숨이나 신음, 비명이나 절규 같은 소리는 노들을 그만두자마자 마치 방음설비가 완벽하게 갖춰진 방의 문을 꾸욱 닫고 나왔을 때처럼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대신 세상엔 재밌고 신나는 것투성이었다. 노들은 먼지처럼 미미해서 보이지 않았다. 빛나고 화려한 무언가를 위해 기꺼이 쓸어버려도 좋은 어떤 것이 아니라 무엇이 쓸려나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존재 같았다.



사람들은 차별이 사라져서 노들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덕담처럼 했다. 선의로 한 말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말에 언제나 저항하고 싶었다. 노들은 차별받은 사람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차별받은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을 같은 존재라고 여기거나 차별받았으므로 저항하는 게 당연하다고 쉽게 연결 지었다. 하지만 나는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일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별받으면 주눅 들고 고통받으면 숨죽여야 한다.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라고 하는 게 차별인 것이다. 모두가 침묵하고 굴종할 때 차별은 당연한 자연현상이 된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저항을 시작한다. 그는 김수영의 시에서처럼 바람보다 늦게 눕고 바람보다 빨리 일어나는풀처럼 초자연적인 존재, 그러니까 기적 같은 존재다. 그런 존재 하나를 지켜내고 그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울 수 있게 만드는 일은, 말하자면 온 우주와 맞서는 일이다. 나는 그런 경이로운 존재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 신문에서 자신의 비참을 드러내어도 좋다고 허락해준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의 거대한 비참과 불의에 저항하는 기적 같은 존재들이다. 내가 쓴 글들은 모두 그들에 대한 존경과 감탄에서 나온 것들이다. 나는 그들이 부디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싸우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건 세상의 차별과 고통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이 곧 망할 거라는 징조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강자가 사라져야 약자가 사라질 거라고 말한다. 나는 순서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심장이 아니다. 가장 아픈 곳이다. 이 사회가 이토록 형편없이 망가진 이유, 그것은 혹시 우리를 버려서가 아닌가. 장애인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버리고, 병든 노인들을 버려서가 아닌가. 그들은 가장 먼저 위험을 감지한 사람들, 이 세상의 브레이크 같은 존재들이다. 속도를 낮추고 상처를 돌보았어야 한다. 상처 난 곳으로 온갖 악한 것들이 꿀처럼 스며드는 법이다.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 가장 아픈 곳으로부터 연결된 근육들의 연쇄적인 강화만이 우리를 함께 강하게 만들 것이다.

 


세상엔 자신의 유서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싸움은 그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싸움의 지속은 타인의 유서를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박경석 대표가 버스를 타고 대구로 가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터미널까지 오는 데 17년이 걸렸는데, 대구까지 가려면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까요. ‘장애인과 함께 버스를 탑시다라는 말을 하는 데 그의 인생 전체가 필요했습니다. ‘고작, 버스라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그가 싸워온 건 평생 자신을 옥죄던 굴레였고, 그 싸움이 그를 살게 했으므로, 저는 이 문장이 어쩐지 숭고하게 느껴집니다. 누군가의 평생이 있어야만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상식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고통스러운 위로입니다.



어떤 앎은 내 안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지만 어떤 앎은 평생 쌓아온 세계를 한 방에 무너뜨리며 온다.



나는 고통이 사라지는 사회를 꿈꾸지 않는다. 여기는 천국이 아니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나 전태일처럼 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은 모두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몸을 사리며 적당히 비겁하게 내 곁에서 오래 살아주길 바란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대해 얼마간의 책임이 있고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 것이다.



그는 2001년 나에게 혁명처럼 닥쳐온 그 세상이 실은 아주 느리고 치열하게 조직되어 온 거대한 우주였음을 노래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차별이 사라져서 노들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 말에 힘껏 저항하고 싶었다. 노들과 같은 공동체가 사라지는 것이 좋은 사회라고 말할 때, 노들은 그저 차별받은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러나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 같은 구호는 수십 년간 집 안에 갇혀 살아온 사람이 외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들에게 버스란 그저 해가 뜨고 달이 지는 풍경의 일부일 뿐 자신이 탈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저항하는 인간들이 발명해낸 말이다. 그 저항이란 해와 달의 질서에 맞서는 일처럼 아득한 것이지만 그 어려운 일을 기어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의 마지막에 누군가 살아남아야 한다면 바로 그들이 아닌가. 싸우는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건 좋은 사회의 증거가 아니라 그 사회의 수명이 다했다는 징조인 것이다.



 

부조리한 세계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혼자 내달릴 때 사람들은 알려주고 싶어진다. 자신이 본 세계의 부정의를 당신은 아직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아니다. 사람들은 알수록 더 두렵다. 내가 겪은 모욕과 무시가, 내가 처한 가난과 차별이, 거대한 세계가 굴러가는 방식이라는 걸 알수록 차라리 모르고 싶고 달아나고 싶다. 이미 힘겨우므로 싸우는 일이 더 힘들다는 것쯤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은전은 그래서,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현실을 마주할 용기를 먼저 낸 사람들로부터. 모두를 공모자로 만드는 이 세계에서, 앎은 우리를 앓게 하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앓으며 세계를 바꿔왔다. 그것은 다시, 아이들은 어디서 뛰어노느냐 묻고는 물러서지 않는, ‘사소한용기이므로 우리는 더 사랑하고 싶어진다.



굴욕은 남이 나를 업신여기는 순간이 아니라 내가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자각할 때 찾아온다. 인간의 혐오는 제 몫의 굴욕을 남에게 돌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굴욕부터 배워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혁명을 배울 수 있다.



오래전, 서울의 삭막한 표정에서 무심함을 닮고 싶었다는 은전처럼 우리도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간다. 타인의 이야기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세계를 마주치게 하거나 나의 세계를 와르르 무너뜨리며다가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기란 사실, 타인의 세계를 열등한 것으로 밀쳐낼 수 있는 자원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모두 취약하여 흔들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더욱 기꺼이 흔들리는 일, 아마도 더 사랑하는 일이 그것이리라.



 



[결혼하지 않는 도시 / 신경진]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불현듯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봄날 아지랑이와 함께 지옥으로 떨어진 축복받지 못한 존재의 귀환이었다.





[일은 핑계고 술 마시러 왔는데요? / 탁재형]

 수도인 부쿠레슈티에서 자동차로 하루를 꼬박 달리다 보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함께 시간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건물들은 점점 고색창연해지고, 길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종류도 최신식 폭스바겐이나 르노에서 조그만 체구조차 힘에 겨워 털털대며 달리는 다치아Dacia(루마니아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프랜드)로 바뀐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그마저도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로 바뀌어버린다. 그렇게 달리다가 해가 저물면,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길옆으로 높은 솟을대문의 실루엣이 이어진다. 그곳에서 시간여행은 비로소 끝이 난다. 아침이 되면 집집마다 솟을대문이 활짝 열리고, 소떼들이 냇가를 찾아 느린 걸음으로 산책을 나온다. 몇천 년에 걸쳐 이어져온 일상이 또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체리토마토파이 / 베로니크 드 뷔르]

 우리는 무모하고 생각이 없었다. 그것만이 파란만장한 시대에도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막막한 우주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비워진다. 흡사 내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이제 시간도, 공간도, 두려움도 없다. 접이의자에 누워 여름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처럼 내가 ‘거대한 전체’에 속해 있음을 절감한 적은 없었다. 바로 옆에서 날아다니는 박쥐들의 춤도 이제 무서운 줄 모르겠다. 적막한 침실에 누웠을 때에는 불안하게 들리던 올빼미 울음소리도 나를 잠식하는 위대한 고요 속에서는 한낱 작은 밤의 음악일 뿐이다.




 검은색은 절망의 색, 슬픔과 서러움의 색이다. 검은색은 애도의 색이기도 하다. 흉조를 나타내는 새 까마귀의 색. 빛도 없고 물질도 없는 무(無)의 색, 우주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는 무시무시한 블랙홀의 색이다. 검은색은 폭풍우를 예고하는 구름의 색, 천둥이 포효하는 하늘의 색이기도 하다. 죽음은 폭풍우다. 죽음은 벼락처럼 우리를 내리친다.



 이제 가을이 온다. 가을은 붉은색, 주황색, 금색 단풍과 낙엽의 계절이다. 어릴 적 맡았던 따끈한 군밤 냄새, 무르익은 포도의 단맛, 프라이팬 하나 가득 볶아낸 그물버섯의 나무 향이 떠오르는 계절이다.




 페르낭과 마르셀이 떠나는 날이 오면 내 인생에서도 한 부분이 완전히 멎어버릴 것이다. 삶은 죽음과 함께 어느 날 갑자기 멎어버리는 게 아니다. 삶은 훨씬 일찍부터 한 조각 한 조각씩 우리를 떠나간다.




 나무가 나이를 많이 먹으면 껍질이 벗어지고 이끼가 낀다. 이 거추장스러운 흉물이 주위 다른 나무들의 성장을 방해할 정도가 되면 베어버린다. 그다음에는 소나 돼지를 잡아 각을 뜨듯이 잘게 조각을 낸다. 그리하여 땔감용 장작이 되든가, 아직 웬만큼 목재로서의 가치가 있다면 팔린다.

 나도 말라비틀어지고 벌레 먹은 존재이기는 마찬가지다. 수확하는 일꾼은 언제 나를 쓰러뜨리러 오려나? 아, 나는 저 호두나무처럼 엉뚱한 쪽으로 쓰러져 폐를 끼치지는 않을 테다. 나는 얌전하게 무너져 내릴 터요, 나로 인하여 다른 생명이 멈추는 일은 없게 하리라. 내가 죽은 후에도 나의 화단에는 꽃이 만발하고 나의 산울타리는 푸를 것이며 나의 나무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리틀 라이프 / 한야 야나기하라]

 고군분투하고 있는 가엾은 사람들, 자기도 모르는,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다 감싸 안는 것 같은 슬픔이었다. 매일매일이 너무나 힘들 때에도, 상황이 너무나 비참할 때에도, 사방에서 사람들이 살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생각하면 느끼게 되는 경탄과 경외심이 뒤섞인 그런 슬픔이었다. 인생이란 너무 슬프구나.





[책에 갇히다 | 천선란 등]

 가슴 한 켠에… 마음 한 켠에… ‘켠’은 문학에서는 아직도 미련이 많은 단어지. 아직도 많이 쓰는 말인데 나도 아쉽네. ‘켠’이라는 단어가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말일세. 현대 국어에서는 ‘켠’을 ‘편’의 잘못된 말로 정의하지. 그런데 생각해 보게. 그게 어떻게 같은가? ‘편’은 어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거나, 또는 서로 갈라진 것이나 맞서는 것 중에 한쪽을 가리키는 말이지 않나. 이것 아니면 저것, 너 아니면 나, 둘 중 하나 선택을 강요하지. 

 ‘켠’이 어디 그런가? 딱 떨어지게 양분된 것 중 어느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는 어감보다, 오히려 그 둘을 모두 수용하는 중간 어딘가 타협이 가능한 어느 범위가 느껴지지 않은가? 나는 그렇네. ‘켠’이라는 단어는 공간을 의미한다고 생각해.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켠’은 분명히 존재하네. 이렇게 책이 들어찬 책장, 책장이 빼곡하게 들어찬 이 서점처럼. 이 세상 어느 한 켠에 이곳이 존재하고, 이 서점 어느 한 켠에 오랜 시간을 버텨 온 책 한 권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일세.





[어떤 물질의 사랑 / 천선란]

 그곳에서 뭘 봤는데요? 하고 아버지에게 묻자 아버지는 아파트 불빛이 오징어 배처럼 빛나는 야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평선에 별이 닿아 있었다. 은하수가 흘렀고 사방에 별이 깔려 있었지. 나한테 쏟아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할 수만 있다면 평생 그렇게 누워 별만 보고 싶었다. 마치 나에게 우주가 말을 거는 것 같았어. 



 그러니까 나의 별 볼 일 없는 역사는 아버지의 말로부터 시작했다. 그날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버지가 내뱉은 말은 빛의 속도로 우주를 유영하다 나에게 다시 닿은 것이다. 나는 이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우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구는 그 많은 행성들 중 어쩌다 생긴 하나에 불과했고,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행성이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별 상관 없는 행성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안에서 존재의 이유조차 알 수 없도록 우연히 생긴 생명체였다. 사랑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은 인간이다. 이 땅을 외롭게 만든 것은 오롯이 인간의 짓이라는 걸 상기할 때마다 나는 그저 이 행성을 떠나야만 그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구로 돌아가야겠다. 떠나올 때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더라도 여정을 완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썼지만 모든 여정을 완수하고 반드시 지구로 돌아가리라. 소리가 있고, 빛이 있고, 그림자가 있고, 설움이 있고, 가시가 있고, 원망과 미움이 있고, 그렇지만 네가 있는 곳으로. 




 고인 물, 그 사이 녹슨 전봇대, 바퀴 바람이 빠져 주저앉은 자동차, 동물과 벌레에게 습격을 받아 유적처럼 눌어붙은 쓰레기봉투.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도시는 착실히 인간의 흔적을 지워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만일 이 상태로 쭉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면 한 세기 후 지구는 어떻게 변할까. 지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인간의 흔적이 서서히 사라지는 지구는 그럴 수밖에 없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6]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나는 악인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너무 뻔하다. 정말로 흥미롭고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은 선한 자들이다. - 시몬 베유


 


“Imaginary evil is romantic and varied; real evil is gloomy, monotonous, barren, boring. 

Imaginary good is boring; real good is always new, marvelous, intoxicating.”

상상의 악은 낭만적이며 다양하지만, 실제의 악은 음산하며 단조롭고 삭막하며 지루하다

상상의 선은 지루하지만, 실제의 선은 항상 새롭고 놀라우며 매혹적이다. - 시몬 베유

 







'글을 어떻게 이렇게 쓰지?' 하고 감탄했던 구절, 직접 손으로 써보고 싶을 만큼 좋았던 글귀 있으면 써주고 가줘!

소설뿐만 아니라 노래가사, 영화대사, 시 등등 다 상관없어!

  • tory_1 2022.10.29 12:25

    잘 읽었어 토리야!

    그리고 이건 내가 읽었다기 보다 트위터에서 돌아다니다가 본 필사였는데


    [만일 당신이 종종 마음을 앓는 사람이라면, 아마 계절의 아름다움이라든가 노래 한 곡이 주는 행복 같은 것도 더 깊이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당신이 당신의 섬세한 심장을 믿었으면 좋겠다.]  -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조수경 


    이 글이 인상 깊어서 두고 감 ㅋㅋㅋㅋ

  • tory_2 2022.10.29 13:15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3/11/02 13:47:59)
  • tory_3 2022.10.29 22:28
    정성봐ㅠㅠㅠ 읽어보기만 해도 좋다ㅠㅠ
  • tory_4 2022.10.30 02:22
    너무 이쁘다ㅜ
    내일 시간있을때 찬찬히 읽을게 고마워!
  • tory_5 2022.10.30 03:24

    어떤 앎은 내 안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지만 어떤 앎은 평생 쌓아온 세계를 한 방에 무너뜨리며 온다.

    본문 이 말 좋다 고마워!

  • tory_6 2022.10.30 11:54

    고마워 토리야 

  • tory_7 2022.10.30 12:56

    와 너무 좋다 ㅎㅎㅎ 요즘 경제, 자기개발서만 읽다가 순수 문학 보니까 영혼이 깨어나는 느낌이야 ㅋㅋㅋ 고마워!

  • tory_8 2022.10.30 19:49
    고마워 토리야^^
  • tory_9 2022.10.31 18:00

    와, 진짜 너무 좋다!!! 

  • tory_9 2022.10.31 18:04
    그리고, 나도 문득 생각나는 조각글 하나 놓고 갈게. (인터뷰 글인데, 그냥 보자마자 너무 좋았어.)

    "나는 진실이 너무 좋아요. 진실을 꼭 껴안고 잤으면 좋겠어요. 거짓 위안 속에 편안히 살기보다 진실 속에 불편하게 살고 싶다는 거죠. 아름다움이 뭘까요? 진실할 수 없어도 진실해지려는 노력,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노력, 그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의 다가 아닐까요? " -시인 이성복
    김지수,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중
  • tory_10 2022.11.01 12:49
    너무 고마워ㅠㅠ 열심히 필사해볼게 댓글의 글도 너무 좋다
  • tory_11 2022.11.01 14:06

    아 진짜 너무 좋다 고마워~!

  • tory_12 2022.11.03 13:42

    고마워!! 

  • tory_13 2022.11.04 16:52
    필사하고픈 구절.
    고마워
  • tory_14 2022.11.05 01:11
    너무좋다 고마워~~
  • tory_15 2022.11.05 01:30

    너무 좋다..

  • tory_16 2022.11.05 17:30
    고마워!
  • tory_17 2022.11.06 00:37
    문장이 좋아서 6
    고마워 잘 볼게
  • tory_18 2022.11.13 22:45
    토리야 공유해줘서 고마워!! 필사해보도록 할게 스크랩!!
  • tory_19 2022.11.16 08:29
    고마워!!
  • tory_20 2022.11.21 02:51
    스크랩!
  • tory_21 2022.11.30 12:37

    너무 좋아

  • tory_22 2022.12.18 15:59

    천천히 읽어봐야겠어 고마워!

  • tory_23 2023.01.10 00:11
    스크랩
  • tory_24 2023.01.23 16:36
    고마워
  • tory_25 2023.04.18 08:37

    필사 스크랩 고마워

  • tory_26 2023.06.08 00:33

    스크랩할게!

  • tory_27 2023.08.08 11:33

    고마워!

  • tory_28 2023.08.24 21:58
    너무 좋다..잘봤어
  • tory_29 2023.10.26 22:21
  • tory_30 2023.11.03 15:39

    읽으면서 정말 좋았어.! 나도 필사해볼게 고마워

  • tory_31 2023.11.20 00:41
    요즘 필사하는데 유용할 것 같다 고마워!
  • tory_32 2023.12.18 15:01
    너무좋아
  • tory_33 2023.12.27 09:31

    스크랩

  • tory_34 2024.03.01 23:35
  • tory_35 2024.03.22 18:46
    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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