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문장이 너무 예뻐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https://www.dmitory.com/garden/112907685

문장이 너무 예뻐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2: https://www.dmitory.com/garden/158442138

문장이 너무 예뻐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3: https://www.dmitory.com/garden/191011644

문장이 너무 예뻐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4: https://www.dmitory.com/garden/221371041

문장이 너무 예뻐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5: https://www.dmitory.com/garden/239697359

문장이 너무 좋아서 필사하고 싶었던 구절 모음 6: https://www.dmitory.com/garden/259471602



외로움에 대한 구절들 모아보자https://www.dmitory.com/garden/113113510






[아무튼, 싸이월드 / 박선희]

 나는 싸이월드를 원했지만, 원하지 않았다. 싸이월드가 필요했지만, 필요 없었다. 이 회사의 폐업을 둘러싼 이런 이율배반적인 감정의 기저에는 내밀하고 개인적인(혹은 이기적인) 이유가 짙게 깔려 있었다. 그건 유독 싸이월드만은 ‘좀 특별한 구석’이 있다고 말하게 되는 편애의 근원이기도 했다.

 각별하지만 남세스럽고 애틋하지만 오글대는 그것. 어딘가에 안전하게 간직하고 싶지만 ‘굳이’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는 않은 그것. 항상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바라지만 ‘딱히’ 자주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은 그것. 그래도 절대로 사라지지만은 않으면 좋겠는 그것.

 나의 이십대, 나의 청춘.




 최근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한 친구는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내적 갈등을 겪는다고 했다. 올리고 싶은 사진이 많은데, 인스타그램에는 가장 좋은 이미지를 최소한으로 선별해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글도 짧을수록 좋았다. 댓글도 구구절절 쓰는 대신, 작고 깜찍한 이모티콘으로 대신했다. 새로운 시대가 원하는 콘셉트였다. 간결함, 명료함, 분명함. 하지만 ‘싸이 감성’인 그녀에겐 하고 싶은 말과 나누고 싶은 사진이 너무 많았다. 여전히 우리는 멈춰야 할 때, 그만 둬야 할 때를 잘 몰랐다.

 싸이월드는 그 시절의 분위기와 많이 닮은 매체였다. 절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돈이 더 드는 것도 아닌데 업로드를 멈추거나 분량을 줄일 이유가 없었다. 여행을 하거나 행사가 있었던 날이면 하루에 백 장 넘는 사진도 올렸다. 게시판 글은 길수록 좋았다. 싸이월드에서 가장 부족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것은 절제미였다.

 그것은 나의 가장 큰 취약점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나는 직장에서도, 관계에서도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계속해서 “한 곡 더”라고 앵콜을 외치는 사람이었고, 떠난 버스를 괴력으로 쫓아가 마침내 얻어 타고 마는 ‘집념과 진상 사이’의 승객이었다. 때로는 굴욕적으로, 때로는 자기합리화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세상과 혼연일체가 돼 살아왔다. 그게 좋았다거나 나빴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다. 그냥 그땐 그랬고, 그렇게 버텨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시절’ 싸이월드의 몰락은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었던 어떤 노래의 진짜 끝처럼 느껴진다. 한 시대의 막이 내리고 저 멀리로 사라지는 느낌, 이제는 정말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 온 것처럼 말이다.





[파인 다이닝 / 최은영 등]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요리라는 행위는 '계속 살아가겠다'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일 때가 많다.

 바쁘고 지쳤지만 굳이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주방에 설 때. 재료를 손질하고, 냄비와 프라이팬에 쓸어 넣고, 불을 켜고, 중간중간 레시피를 확인하고, 시간을 재가면서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를 위해 마음과 시간을 들여 그 일련의 과정을 해내고 있을 때, 나는 내가 아직 완전히 주저앉아버리지는 않았다고 느낀다. 죽음에 맞서고 있다고 느낀다. 온갖 맥 빠지는 일들, 좌절, 실패, 낮아진 자존감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일을 아직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느낀다.




 그런 과시가, 과잉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이 우정이든, 사랑이든, 삶의 새 출발이든, 암울하던 일상이 조금 더 암울해질 것 같은 기미가 보이는 시간이든, 그렇게 무리하게 소리를 높여 박수를 치고 떠들썩하게 덕담을 나누고 풍선과 휘파람을 불고 사진을 찍으면서 흘러넘치도록 무언가를 기념하는 일이 필요할 때가. 아무 일이 없더라도, 아니 아무 일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는 이따금씩 그렇게 해야 살아가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여자는 인질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수천 년의 시간 동안 남자들이 조직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여자들을 때리고 강간하고 살해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 대다수가 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가 하는 언뜻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적인 현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남자들의 폭력과 이성애는 서로의 존재를 상호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들의 폭력으로부터 한 순간도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여자들은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남자 계급의 시각에 동화되고 자신을 보호해줄 남자를 찾아 그에게 의지하고자 하게 된다. 여자에게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는 신사적인 남자라 할지라도, 그는 분명 다른 남자가 여자에게 행하는 성폭력으로부터 이득을 본다. 여자들의 남자의 보호를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종속적인 이성애 관계 안으로 들어가 남자에게 감정적, 성적, 가사적 무보수 노동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성격을 바꿀 뿐 아니라 우리의 신체도 바꾼다. 여자가 그나마 인지하고 있는 것도 성격적 변화보다는 신체적 변화일 것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신체를 얻기 위해 얼마나 수많은 노력을 하는지 한 번 떠올려보라. 우리는 식이를 조절하고, 운동하며, 변비약을 먹어 장을 비운다. 피부를 보기 좋게 태우기 위해 일광욕을 하거나 태닝 부스에 눕고, (항상 성적 흥분 상태인 것처럼 보이도록)화장을 하고, 눈썹을 뽑으며, 머리에 헤어롤을 만 채 잠자리에 든다. 코 수술을 받고, 가슴 확대 기구를 쓰고, 가슴 축소/확대 수술을 하거나 왁싱을 하거나 영구 제모 시술을 받고, 매직이나 파마를 하고, 머리를 고데기로 만다. 향수를 뿌리고, ‘여성청결제‘를 사용한다. 손톱을 칠하고, 젤로 연장하고, 인조손톱을 붙인다. 귀를 뚫고 코에 피어싱을 하며, 안경을 쓰지 않고 렌즈를 낀다. 얼굴에 팩을 하고, 인조 속눈썹을 붙인다. 보정 속옷과 브래지어를 입고, 장신구를 걸치며, 하이힐을 신고, 갑갑한 옷을 입는다.

 남자가 위의 행위를 하는 여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남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우리 몸을 바꾸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여자의 의지를 전달하기 때문이 아닐까?




 여성성은 여자가 자신의 열등한 지위를 받아들인다는 메시지를 남자에게 전달해 남자를 기쁘게 하는 행동의 조합이다. 따라서 여성적인 행동은 근본적으로 생존 전략이다. 인질범이 인질에게 유대감을 느끼듯, 여자도 살아남기 위해 남자에게 유대감을 느낀다.






[어른이 되면 단골바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지 / 박초롱]

 작은 결의 차이를 손으로 더듬어 세밀히 살필 만큼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어느 정도 변화한다고 믿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낯빛부터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을 여기저기 헤프게 두고 다니는 것은 그만큼 삶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만든다. 나는 젊을 때부터 고요한 호수같은 마음을 갖고 싶지는 않기에, 좋아하는 일에 함부로 마음을 내어주며 살고 싶다.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또박또박 힘을 주어 좋아한다고 말하고, 어떤 점이 어떻게 좋은지 날을 세워 관찰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에서만큼은 신중해지고 싶지 않다.

 칵테일을 좋아하는 마음을 당신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서늘한 여름밤에 얇은 옷을 걸쳐 입고 바에 함께 걸어갈 텐데. 입김이 하얗게 올라오는 겨울밤에 코트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바에 갈 수도 있을 텐데.




 바에 앉아 누군가에게 발견되길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나는 안다. 오래된 유물처럼. 방구석에 놓인 인형처럼. 내가 혼자 바에 앉아서 그렇게 발견되길 기다려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누구도 알지 않기에,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은근한 기대를 놓지 않는다. 쓸쓸하다는 말 대신 자유롭다는 말을, 견디고 있다는 말 대신 무료하다고 중얼거리면서.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비극적이어도 들을 만했다. 우리는 모두 서사가 필요하니까. 그게 희극이든 비극이든 우리는 거기에 기대어 살아간다. 오히려 듣기에 서러운 건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 사람만 남아 있는 이야기였다. 사랑이 잠수함처럼 찾아와서 들썩이며 떠나가지 않고, 후다닥 찾아와서 슬그머니 떠나가는 이야기.




 어떤 영화는 보고 나서 단순히 내가 이 영화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그 소설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삶이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시애틀 추장, 류시화 저]

 바람이 자유롭게 불고 햇빛을 가로막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드넓은 평원에서 나는 태어났다. 들소 가죽으로 만든 인디언 천막이 나의 집이었다. 첫 숨을 들이쉬는 그 순간부터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우리 인디언은 자연과 하나된 삶을 살았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었다.




 남아 있는 날들을 어디서 보내는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도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 인디언들의 밤은 칠흑처럼 어두울 것이다. 단 한 개의 밝은 별도 지평선에 걸려 있지 않다. 슬픈 목소리를 한 바람만이 멀리서 울부짖고 있다. 냉정한 복수의 여신이 얼굴 붉은 사람들의 오솔길에서 기다리고 있다. 어느 곳으로 가든 우리는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파괴자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운명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상처 입은 사슴이 사냥꾼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 것처럼 말이다.

 몇 번 달이 더 기울고 몇 차례 겨울을 더 넘기고 나면, 한때 이 드넓은 대지 위를 뛰어다니던, 위대한 정령의 보호를 받으며 행복한 가족을 이루고 살던 힘센 부족의 아들들은 모두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한때는 당신들보다 더 강하고 더 희망에 넘쳐 있던 부족의 아들들이.

 하지만 우리가 왜 불평할 것인가? 내가 왜 내 부족의 운명을 슬퍼할 것인가? 부족의 운명이든 한 개인의 운명이든 마찬가지다. 사람은 왔다가 가게 마련이다. 그것은 바다의 파도와 같은 것이다. 한 차례의 눈물, 한 번의 타마나무스, 한 번의 이별 노래와 더불어 그들은 그리워하는 우리의 눈에서 영원히 떠나간다. 그것이 자연의 질서이다. 슬퍼할 필요가 없다.

 당신들의 부족이 쓰러질 날이 지금으로선 아득히 먼 훗날의 일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날은 반드시 온다. 신의 보호를 받는 얼굴 흰 사람들이라 해도 인간의 공통된 운명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한 형제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부족에게는 이 대지의 모든 부분이 똑같이 신성한 곳이다. 모든 언덕배기와 골짜기, 모든 평원과 덤불숲이 우리에게는 사라져 간 날들의 슬프고 기뻤던 사건들을 간직하고 있다.

 고즈넉한 해안을 따라 태양 아래 죽은 듯 입 다물고 있는 바위들조차도 우리 부족의 운명과 연결된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추억으로 몸을 떨고 있다. 지금 당신들이 서 있는 이 흙도 우리 부족의 발이 닿으면 훨씬 더 다정하게 반응한다. 이 흙은 우리 조상들의 뼈로 이루어졌고, 당신들의 구두 신은 발보다 우리의 맨발에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짧은 계절 동안 이곳에서 즐거운 삶을 누렸던, 지금은 이름조차 잊혀진 흩어진 전사들과 그리운 어머니들,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들과 아이들은 아직도 이곳의 장엄한 침묵을 사랑한다. 설령 최후의 얼굴 붉은 사람이 사라져 우리 부족에 대한 기억이 백인들 사이에 하나의 전설로 남을지라도 이 해안은 우리 부족의 보이지 않는 혼들로 가득할 것이다. 따라서 먼 훗날 당신의 아이들이 황야에서, 슈퍼마켓에서, 고속도로 위에서, 혹은 고요한 삼림 속에서 자기가 혼자라고 느낄지라도 그들은 결코 혼자가 아닐 것이다. 우리 부족의 보이지 않는 혼들이 대지를 가득 채우고 있으므로.

 이 대지 위에 자기 혼자라고 할 만한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을과 도시의 거리들이 밤이 되어 고요해지면 당신들은 황량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도 이 아름다운 대지를 사랑하는 우리 부족의 숨결이 모든 곳에 가득하다. 얼굴 흰 사람들은 결코 고독하지 않으리라. 죽은 자라고 해서 아무런 힘을 갖지 않은 것이 아니므로, 당신들은 사라져 가는 우리 부족에게 공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그들은 단지 세상의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무엇보다 나 자신과 만나고 싶다. 우리 인디언들은 삶에서 다른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물질이나 권력은 우리가 쫓아다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겨울 햇살 속에 날려다니는 마른 잎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고자 노력했으며, 자연 속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루라도 평원의 한적한 곳을 거닐면서 마음을 침묵과 빛으로 채우지 않으면 우리는 갈증난 코요테와 같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당신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그저 땅을 파헤치고, 건물을 세우고, 나무들을 쓰러뜨린다. 그래서 행복한가? 연어 떼를 바라보며 다가올 겨울의 행복을 짐작하는 우리만큼 행복한가? 얼굴 흰 사람들의 도시 풍경은 얼굴 붉은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의 고통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이 야만인이라서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신들의 도시에는 조용한 장소라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봄의 나뭇잎 돋는 소리를 듣거나 곤충의 날개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을 만한 곳이 없다. 당신들의 도시에서 들리는 소음은 귀를 욕되게 할 뿐이다. 인디언들은 물웅덩이 수면으로 내리꽂히는 바람의 부드러운 소리를 좋아한다. 한낮에 내린 비에 씻긴 바람 그 자체의 냄새를 좋아한다. 소나무 향기도 마찬가지다.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 공기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다! 동물이든 나무든 사람이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똑같은 숨결을 나눠 갖기 때문이다.

 죽은 지 며칠 지난 사람처럼 당신들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악취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잠자리를 계속 파헤치고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인가 당신들은 스스로의 폐허에서 숨이 막혀 깨어날 것이다.

 들소는 모두 죽임을 당하고, 야생마들은 모두 길들여지고, 숲의 은밀한 구석까지 사람들의 냄새로 가득하다. 그리고 산마다 목소리를 전하는 전선줄이 어지럽게 드리워져 있다. 덤불숲은 어디에 있는가? 없어져 버렸다. 독수리는 어디에 있는가? 사라져 버렸다.

 들짐승이 사라지면 인간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들짐승들이 저 어두운 기억의 그늘 속으로 사라지고 나면 인간은 혼의 깊은 고독감 때문에 말라죽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짐승에게 일어나는 일은 똑같이 인간에게도 일어난다.





 당신들이 온 이후로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러니 사냥이니 날쌘 동작이니 하는 것에 대해 굳이 작별을 고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제 삶은 끝났고, ‘살아남는 일’만이 시작되었다. 이 넓은 대지와 하늘은 삶을 살 때는 더없이 풍요로웠지만, ‘살아남는 일’에는 더없이 막막한 곳일 따름이다.

 연어 떼를 보았으니 이제 나와 나의 부족은 행복한 얼굴로 돌아간다. 어쩌면 또 한 번의 행복한 겨울은 짐작에 그칠 뿐, 나의 부족에게 다신 찾아오지 않을 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당신들 얼굴 흰 사람들에게 밀려, 살아남기 위해 막막한 겨울 들판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본 연어 떼의 반짝이는 춤을 나의 부족은 잊지 못할 것이다. 이것으로 내 말을 마친다.





 “내가 보기에 당신들의 삶에는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당신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을 쫓듯이 부와 권력을 따라 뛰어다닌다. 그러나 손에 움켜잡는 순간 그것들은 힘없이 부서져 버린다. 당신들은 사랑을 말하지만 확실하지 않고, 약속을 말하지만 그것도 분명하지 않다. 당신들의 현재는 더없이 불안해 보이고, 마치 집 잃은 코요테가 이리저리 헤매다니는 것과 같다. 당신들이 햇살 비치는 들판에 앉아 자연을 응시하거나, 고요히 자신을 비춰 보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당신들은 계절의 바뀜도 하늘의 달라짐도 응시하지 않는다. 보라, 순간순간 하늘은 변화하고 있지 않은가. 당신들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조차 잊어버린 이상한 사람들이다. 당신들은 늘 생각에 이끌려다니고, 남는 시간은 더 많은 재미를 찾아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자기를 돌아보는 침묵의 시간이 없다면 어찌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있는가. 어찌 어머니인 대자연의 품에서 태어난 자식이라 할 수 있는가.”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의 종교는 어떤 특정한 교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또한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종교에는 설교도 없고, 개종이나 박해도 없으며, 다른 사람의 종교를 무시하고 비웃는 일도 없었다. 무신론자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의 종교는 교리가 아니라 마음 상태였다.

 자연을 제외하고는 우리에게 사원도 신전도 없었다. 자연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인디언들은 매우 시적이었다. 말할 수 없이 신비한 원시림의 그늘진 오솔길에서, 처녀와도 같은 평원의 햇빛 비치는 가슴 위에서, 현기증 나는 산 정상과 벌거벗은 바위가 우뚝 솟은 뾰족 산봉우리 위에서, 보석 박힌 드넓은 밤하늘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날 수 있는 그 거대한 절대자를 위해 손바닥만 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신을 모독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우리의 증조 할아버지인 태양이 저녁 모닥불을 피우는 세상 가장자리에서 구름의 엷은 옷을 입고 있는 위대한 정령, 북쪽의 혹독한 바람을 타고 다니는가 하면 남쪽의 향기로운 공기들 속에 영혼의 숨결을 불어넣는 그분, 거대한 강들과 육지 속 바다에 배를 띄우고 있는 그런 이에게 인간이 세운 보잘것없는 교회와 성당이 필요할 리 없다.




 모든 영혼은 각자 아침의 태양과 만나야 한다. 새롭고 부드러운 대지, 그 위대한 침묵 앞에 홀로 마주서야 한다.




 나는 많은 훌륭한 친구들과 악수를 나눴지만, 몇 가지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도 않는 사람들을 우리와의 협상에 내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정부는 뭔가 잘못된 정부다.

 그리고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왜 그토록 많은 백인 추장들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말을 하고, 서로 다른 수많은 약속을 늘어놓는가를. 나는 대추장(대통령)도 만났고, 두 번째 대추장(내무부 장관)도 만났으며, 다른 장관 추장, 법률 추장들도 만났다. 그들은 모두 우리의 친구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정의를 되찾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들의 입이 한결같이 옳은 것을 말하는 동안 내 부족 사람들을 위해선 아무것도 행해진 것이 없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말을 듣고 또 들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좋은 말’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 좋은 말이 죽은 사람을 살려내진 못한다. 좋은 말이 얼굴 흰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내 부족 땅을 되돌려 주진 못한다. 그것들이 내 아버지의 무덤을 보호해 주진 못한다. 내 부족의 말과 가축 떼를 보상해 주진 못한다. 좋은 말이 우리 자식들을 되돌려 주진 못한다. 당신들의 전투 추장 마일즈가 한 약속을 지켜 주진 못한다.

 좋은 말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건강을 되돌려 주어 그들을 죽음으로부터 건져 내진 못한다. 좋은 말이 내 부족 사람들을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평화롭고 스스로를 돌보며 살 수 있게 하지는 못한다. 아무 결과도 없는 ‘말뿐인 말들’에 나는 지쳤다. 그 많은 좋은 말들과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가슴엔 찬바람이 분다. 세상에는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말을 떠들고 있다.




 산꼭대기에 그들이 서 있다. 자부심 강하고 고귀한 붉은 얼굴을 한 사람들. 소위 문명은 저 아래 있다. 그것이 다가왔을 때 그들은 떠나야만 했다. 화살을 담요와 바꾸고, 발에는 딱딱한 신발을 신은 채로. 먹을 것조차 남지 않았다. 그들에게 생명을 주었던 들소 떼는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대주던 어머니 대지는 거짓말과 탐욕,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이 가로채 갔다. 더 이상 자유롭게 방랑할 수도 없고, 부족은 그들의 성스러운 장소를 잃었다. 그들의 모국어조차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얼굴 흰 사람들의 평화를 위해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너무도 많은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그들의 집, 그들의 삶의 방식, 그들의 생명까지도. 하지만 저 산꼭대기에 그들이 서 있다. 아직도 자부심을 잃지 않고, 고귀한 붉은 얼굴을 하고서.




 우리의 땅은 당신들의 돈보다 더 소중하다. 대지는 영원한 것이다. 그것은 불길에 의해서도 멸망하지 않는다. 태양이 빛나고 강이 흐르는 한 대지는 인간과 동물에게 생명을 줄 것이다. 우리는 인간과 동물의 생명을 돈 받고 팔 순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을 팔 수 없다. 당신들은 돈을 셀 수 있고, 들소가 머리를 한 번 끄덕이는 사이에 그것들을 태워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오직 위대한 정령만이 모래알의 숫자와 이 평원에 자란 풀줄기들의 숫자를 헤아릴 수 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당신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가져가도 좋다. 그것이 우리가 당신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하지만 땅은 절대로 안 된다.




 보라. 언제나 새로운 날이다!

 들소 가죽 천막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이른 아침의 대기와 만날 때마다 나는 그것을 깨닫는다. 눈을 뜨고 바라보기만 하면 언제나 새로운 날이라고! 한겨울의 바람, 봄을 기다리며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 평원으로 난 좁은 오솔길들.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임을 나는 다시금 깨닫는다.

 삶은 어디에나 있다. 나뭇가지 위에도, 작은 개미들의 굴 속에도, 북풍한설에 흩날리는 나뭇잎들 속에도 있다. 돌을 들춰 보면 그곳에서 어떤 것들이 움직인다. 그 삶들이 가만히 내 삶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그런 삶을 언제까지나 사랑해 왔다. 내게 주어진 어떤 것도 우연한 것이 아님을 믿기 때문이다.

 한때 나는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 닥쳐온 불행을 지켜보면서 삶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다. 인디언으로 태어난 나 자신이 슬펐고, 그 슬픔을 달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디를 바라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였다.

 그러나 나는 살아남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삶은 위대한 정령이 내게 준 것이 아닌가. 그것에는 분명히 깊은 뜻이 있으리라고 나는 믿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제대로 삶을 산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인디언들의 오랜 믿음이며, 나는 언제나 그 믿음에 따라 살아왔다. 늘 새로운 순간들에 마음을 쏟으려고 노력했다.

 평원에 앉아 하루가 저무는 것을 바라보는 것! 우리는 바로 그런 삶을 살았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그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한 계절에 한 번씩이라도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가?





 해마다 봄이 오면 우리는 생의 외경심에 지나간 날들의 시름을 잊었으며, 여름은 여름대로 우리의 마음을 충만하게 만들었다. 삶 속에는 어느 것 하나 진부한 것이 없었다. 눈을 뜨고 인디언 천막 밖으로 나가면 늘 새로운 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의 신비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 역시 하나의 신비임을 알았다. 숨 쉬고, 걷고, 앉아 있는 것이 모두 신비였다. 자연 속을 거닐거나 이른 아침 평원에 떠오르는 태양을 응시하는 일도 하나의 신비였다. 지평선을 향해 뻗어 내린 산의 곡선들, 바위의 힘찬 굴곡, 물웅덩이에 비친 그림자, 절벽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물줄기들이 우리 자신의 신비와 마주치면 그곳에서 음악이 들리는 듯했다. 불행하게 장님이 된 사람조차도 그 신비를 잃지 않았다. 그에게는 온갖 소리들이 그 신비를 알려 주었으므로.

 눈을 감고 평원의 오솔길에 앉아 있으면 다양한 형태의 소리들이 우리가 살아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새소리, 바람 소리, 물 흘러가는 소리, 작은 벌레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햇살이 나무 줄기를 부러뜨리는 소리, 나비의 날개가 부딪치는 은밀한 소리, 그리고 침묵의 소리까지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자주 평원을 뛰어다니곤 했으며, 죽는 순간까지 이런 생을 우리에게 주신 이에게 감사드리곤 했다.

 인간은 삶에서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행복을 추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당신들 얼굴 흰 사람들은 행복과는 거꾸로 난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무들도 없어지고 시냇물은 맑음을 잃었다. 새들과 짐승들은 갈 곳을 잃었다. 그러니 결국 인간이 갈 곳이 어디겠는가?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보다 이 세상에 나무가 많았으면 하는 것이다. 시냇물과 강물도 예전처럼 푸르러지고, 들녘과 산에는 키 큰 나무가 많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과 저녁나절에 숨을 들이쉬면 내 영혼이 맑아지기를 바란다.

 당신들은 문명인임을 자랑한다. 나는 당신들이 우리보다 더 지혜롭고 영리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진정한 행복과는 거꾸로 난 길로 향해 가는가? 나로서는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당신들이 나무를 쓰러뜨리고 산을 깎아 결국 손에 얻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으로 당신들의 영혼을 맑게 할 것인가? 한 줌의 맑고 신선한 바람이 큰 교회당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당신들은 왜 모르는가?

 아침에 눈을 뜨면 겨울 햇살 속에 묵묵히 서 있는 키 큰 나무들과 머리 위를 지나가는 한 떼의 구름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나는 바란다. 발에 밟히는 양치류들, 숨 쉴 때마다 느껴지는 달콤한 대기, 침묵하는 바위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과연 무엇인가!





 자연의 넓은 품에서 나는 태어났다. 나무들을 부르면 나무들이 어린 내 팔다리에 그늘을 드리워 주었고 하늘을 부르면 푸른 하늘이 이불처럼 나를 덮어 주었다. 나는 자연의 아들이며, 언제나 자연을 사랑했다. 자연은 나의 영광이 되리라. 자연의 얼굴, 자연이 입은 옷, 그 이마에 두른 화관, 그 계절들과 위엄 있는 떡갈나무들, 그리고 대지 위에 드리워진 곱슬머리인 늘푸른나무들, 이 모든 것이 자연에 대한 나의 변함없는 사랑을 사라지지 않게 한다.

 자연을 바라보노라면 내 가슴속에는 기쁨의 감정이 물결친다. 해변의 흰 파도들처럼 내 가슴 가득 기쁨의 물결이 밀려온다. 나를 자연의 품 안에 있게 해 준 이에 대한 감사의 기도가 일어난다. 많은 부에 둘러싸여 궁전에서 태어나는 것도 좋은 일이리라. 하지만 대자연의 넓은 품 안에서 태어나는 것은 더 축복받은 일이다.

 아니다! 우리 인디언들이 왜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란 말인가? 그것은 당신들이 우리에게 덮어씌운 누명이 아닌가?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바위와 흩날리는 나뭇잎과 고요한 시냇물에 자기 자신을 비춰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폭력적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곳에 태어나 많은 행복을 누렸으니, 넓은 하늘 지붕이 나를 감싸고, 수목의 듬직한 팔들이 나의 거처가 되었다. 황금 기둥으로 장식된 대리석 궁전에서 태어나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했다. 자연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자연 그대로이지만, 궁전은 머지않아 무너지고 폐허가 된다.

 그렇다. 수천 년이 흘러도 나이아가라 폭포는 변함없이 나이아가라 폭포일 것이다. 그 이마에 드리워진 무지개 화관은 태양이 떠오르고 강물이 흐르는 한 영원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하게 보호하고 보관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예술 작품은 빛이 바래 곧 먼지로 돌아가 버린다.





 우리 인디언 부족은 추운 겨울을 마다하지 않았다. 추운 겨울 역시 봄이나 여름과 마찬가지로 만물의 존재에 꼭 필요한 것임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이나 나무들도 자신들을 얼어붙은 침묵과 고요 속으로 데리고 가는 혹한의 겨울이 없다면 눈부신 봄의 탄생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물며 인간의 삶에 그런 과정이 없을 리 있겠는가.

- 푸른 윗도리(블루 재킷)_쇼니 족






[덧니가 보고 싶어 / 정세랑]

 대체로 인생이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없고, 엉뚱한 것이 주어지는데 심지어 후자가 더 매력적일 때도 있다. 그렇게 난감한 행운의 패턴이 삶을 장식하는 것이다. 물론 매력적인 후자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최초의 마음, 그 간절한 마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아 사람을 괴롭히기도 하고.




 재화는 교정지를 덮으며, 고전풍의 이야기를 쓰는 건 역시 즐겁다고 생각했다. 옛날 사람들처럼 편심, 촌심, 단심 같은 단어들을 쓸 때마다 지잉, 하고 뭔가 명치께에서 진동하고 만다. 수천 년 동안 쓰여온, 어쩌면 이미 바래버린 말들일지도 모르는데, 마음을 '조각' 혹은 '마디'로 표현하고 나면 어쩐지 초콜릿 바를 꺾어주듯이 마음도 뚝 꺾어줄 수 있을 듯해서. 그렇게 일생일대의 마음을 건네면서도 무심한 듯 건넬 수 있을 듯해서.





[어느 애주가의 고백 / 다니엘 슈나이버]

 술이 선사했던, 찬란했던 기억 중에는 뉴욕 브루클린 파크 슬로프 거리가 있다. 아름다운 갈색 벽돌집과 20세기 초에 심어진 은행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일요일 오후면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한 손에는 개 줄을 쥔 사람들이 한가로이 거리를 지나다니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뉴욕의 이 거리 풍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런던이나 바르셀로나 혹은 베를린, 어쩌면 세계 어느 도시에나 있는 평범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러니 하나의 장소를 골라 보라. 당신이 사는 곳 아니면 특별히 기억에 남은 장소를 떠올려 보라. 호두 식빵을 한 조각 자르고, 치즈를 썰어 포도 몇 알과 함께 접시에 담은 다음, 와인을 따르는 자신을 상상해 보라. 부드러운 향을 들이마신 후 한 모금을 음미하며 온몸에 달콤한 휴식의 느낌이 퍼져 나가는 그 순간을 상상해 보라. 두 번째 잔을 사랑하는 이에게 넘겨줄 때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떠올려 보라.




 나는 언제나 술을 즐겼다. 혼자서든, 여럿이든. 술집이든, 집 안의 소파에서든. 어디에서나 나는 술을 마셨다. 주중과 주말도 가리지 않았다. 대학을 다니며 끝없이 이어지는 파티를 즐겼고, 모두가 그렇듯 마약을 했다. 숙취로 지끈거리는 두통을 안고 깨어나 아침을 맞았다. 술은 어디서나 환영받았고, 숙취로 휘청거리는 일은 청춘의 당연한 의식 중 하나인 양 받아들여졌다. 밤새 술을 마시다 해가 떠오르는 걸 보며 설명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고, 처음 만난 누군가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잠자리에 들던 시절이었다. 

 우린 너무나 젊었고 시간은 흘러넘쳤으며 어떤 행동에도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생의 시간은 끝없이 계속되는 줄 알았다. 비록 스스로에게 이렇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삶이 내 앞에 통째로 놓인 채 소모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내린 어떤 결정조차, 그게 무엇이든 쉽게 돌이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것, 모든 순간이 중요하며 사소한 결정들이 모여 내 삶이 된다는 걸 깨달은 건 한참 후였다.





 그날부터 내 인생에는 오로지 내리막길밖에 없으며 어둠과 비극의 순간이 점점 더 자주 찾아오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미래에는 어떤 좋은 일도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술을 마시는 한 나는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도 절대로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고, 그럴 기회조차 없었으며,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삶의 대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진지하게 술을 끊고 내 삶의 방향이 다른 쪽으로 향하도록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정말로, 진지하게 술을 끊는 일 말이다. 

 이런 생각을 아마도 내가 경마장에 함께 갔던 친구에게 전달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내 말에 웃음을 터트리더니 의심이 가득한 눈길로 나를 바라봤다. 제정신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군, 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나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나 한 병의 레드 와인을 앞에 놓고 내 결심을 전했다. 이 길만이 갈 길이다, 마음속으로 나는 확신했다. 충분히 가 볼 만한 길이다, 라고 말이다.





 나는 언제나 음주와 금주 사이를 선택할 수 있다. 중독자가 되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없다. 지금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너무나 많은 과정이 진행되고 있어서 굳이 구체적으로 금주를 생각하지 않아도 이미 결정은 나와 있을 것이다. 모든 중독자, 음주가는 이 깨달음의 순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두꺼운 자기기만이라는 구름을 뚫고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순간, 자신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는 두려움의 순간 말이다.

 이것은 우연한 감각이 아니다. 그 신호는 자주 있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은 느닷없이 왔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진정한 내면에 혁명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다. 그것을 미리 계획하고 구조를 짜는 것은 불가능하며 마법의 힘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그런 순간이 닥쳤을 때 이미 내면에 그 결심을 실천할 수 있는 풍요로운 땅이 있다는 것만 얘기할 수 있다.

 명확한 소망을 갖게 되는 순간은 이상한 우연처럼 다가온다. 삶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그 순간을 당신 역시 곧장 붙잡기 바란다. 그 순간은 의존증에 사로잡힌 자아를 정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생물학적·심리적 조건이 우연하게 합쳐진 인생의 매우 드문 순간이기도 하다.

 내가 이 결심을 하게 된 진정한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나와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만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그토록 중요하고 불가능하게 보였던 술과의 이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처럼 잠시 스쳐 지나가는 각성의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선물과도 같다. 믿을 수 없지만 진실된 은총의 예라고 할 만하다. 나는 이 ‘은총’의 순간을 오늘날까지 매일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코스트 베니핏 / 조영주, 김의경, 이진, 주원규, 정명섭]

 이대로 괜찮을까. 누군가 대답해 주면 좋겠다. 남 부러워할 것 없다고,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자기계발의 대가들이 주술처럼 반복하는 그런 뻔하기 짝이 없는 말을, 오직 나만을 위해서만 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사실 위로의 내용도 중요하지 않다. 한 사람이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게 더 중요하다. 엄마나 친구들이 영원히 그 자리를 지켜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물며 인터넷의 이름 모를 사람들이 건네는 위로는 더더욱 소용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도, 그 허약한 앎을 조금이나마 공고하게 만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실은 그도 속으로는 나를 모자라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아니, 실은 내가 가장 믿고 사랑하는 절친들도 속으로는 나와 그를 딱 저들 수준에 맞는 짝으로 평가하고 있을 테지. 다 알고 있다. 나 또한 친구들이 연애하고 결혼할 때마다 그래 왔으니까.

 딱 나만큼 불안하고 나만큼 불완전한 사람. 그럼에도 내 곁에 있을 사람.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엄마에게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부끄러움 없이 때릴 수 있는 감정의 샌드백, 적어도 제삼자의 냉혹한 기준으로는 서로를 재단할 수 없도록 가족이라는 지리멸렬하고도 절실한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인 단 한 사람.

 어쩌면 이 모든 졸렬하고 궁상맞고 불평등한 조건들을 무릅쓰고 결혼을 하고 마는 이유는 겨우 그거 하나뿐인지도 모른다. 






[테베의 태양 / 돌로레스 레돈도 / 엄지영]

 수명이 족히 1백 년은 돼 보이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엄숙하게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두 가지 빛깔로 반짝거리는 나뭇잎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나무는 핏줄처럼 울뚝불뚝한 뿌리 때문에 위엄이 넘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거기 있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따르겠다는 듯이, 그리고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 자리를 떠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물레바퀴를 통과하면서 약해진 물길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오래된 기와지붕 건물 주위를 돌았다. 계단에는 양치류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고, 그 옆 산비탈로 내려갈수록 수풀이 무성해졌다. 길모퉁이마다 미로처럼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바람에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또다시 처음 보는 길모퉁이와 식수대 그리고 또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곤 했다. 마누엘은 무엇에 홀린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이한 혼란, 즉 고요하면서도 무질서한 아름다움 그리고 길들여진 야생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수풀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알바로가 얼마나 행복했을지 생각했다. 그러자 별안간 길모퉁이와 굽잇길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천사상의 항아리에서 뿜어 나오는 물에 손을 갖다 대자, 어린 누나의 웃음소리가 물소리에 섞여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 희미한 웃음소리는 시리도록 차가운 물방울로 변해 그의 살갗으로 튀어 올랐다. 그러자 구슬을 잃어버린 목걸이를 볼 때처럼 가슴이 시려 왔다. 그는 눈앞의 풍경과 어울리는 놀이들, 즉 달리기, 고함지르기, 숨바꼭질 등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러면서 길모퉁이를 돌아 앞으로 나아갔다.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땀이 흘러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은 채 웃음을 터뜨리며 양치류 식물들 사이로 도망치는 누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는 그녀의 모습과 웃음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녀가 바로 곁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웃음 띤 얼굴로 누나와 자신이 남긴 발자국, 그리고 둘이 놀다가 허공에 남겼을지도 모르는 흔적을 하나둘씩 모으며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 적마다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화가 난다든가, 씁쓸하거나 서운한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가 느낀 감정은 멜랑콜리, 다시 말해 과거에 있지도 않을뿐더러 더 이상 존재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단념해 버리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그 무언가에 대한 향수에 가까웠다.




 최근 며칠간 계속 찌푸렸던 하늘이 맑게 개면서 밝은 햇빛이 세상을 내리비추었다. 그러자 도로 양편에서 은빛과 초록빛으로 일렁이는 어린 유칼립투스 나무와 초록과 검은빛으로 반짝이는 가시금작화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끼로 뒤덮인 오래된 돌담, 비바람에 시달리느라 퇴락한 나무 울타리 그리고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드문드문 나타나는 농가들. 마치 연초록빛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모든 것이 새로워 보였다. 그는 앞 유리창으로 하늘을 보려고 몸을 구부렸다. 구름은 유화로 그려 놓은 것처럼 푸른빛이 돌았다. 한 붓으로 쭉 이어 그리다가 물감이 떨어진 곳에서 군데군데 흰 점이 나타나는 그런 그림 같았다. 저 앞쪽에 바람이 부는 모양이었다. 땅 위에는 나뭇잎 한 장 구르지 않았지만, 공기 중에 습기가 가득했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진실은 언제나 과도하고 과격하기 때문에 거짓된 확신이 일시적으로 위안을 줄 때가 있다. 진실이 조금씩 천천히 다가오면,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마치 갈리시아의 대지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받아들이듯이 말이다. 하지만 거대한 해일처럼 한꺼번에 몰아닥치면, 아무리 진실이라 해도 악의적인 거짓만큼이나 커다란 고통을 안겨 줄 뿐이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 / 유즈키 아사코]

 편해지고 싶은 것과는 좀 다르다. 이제 자신이 한계인 것, 더는 힘을 낼 수 없다는 것을 다카하시 팀장이나 동료, 그리고 고향의 부모님과 남동생에게 알리고 싶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비난받고 싶지 않다. 무능하다는 것,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용서받고 싶다. 그렇다, 용서받고 싶다. 이런 못난 인간인 것을 세상에 용서받고 싶다.






[메이드 / 니타 프로스]

 나는 당신의 메이드다. 당신이 객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내가 무엇을 보게 될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신나서 구경하러 나갈 때 유령처럼 방에 들어가 청소하는 사람이다.

 당신의 쓰레기통을 비우고, 당신이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영수증을 버리는 사람이다. 당신의 침대 시트를 갈고, 당신이 전날 밤에 거기서 잤는지, 혼자서 밤을 보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사람이다. 문 옆에 있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두고, 베개를 톡톡 쳐서 다시 부풀리고, 베개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당신의 머리카락이라고? 그럴 리가. 당신이 과음하고 나서 변기 커버에 토사물을 묻히거나 그보다 더한 것을 묻혀도 깨끗이 청소하는 사람이다.

 내가 청소를 마치면 당신의 방은 새 방 같아진다. 네 개의 봉긋한 베개가 놓인 침대는 마치 아무도 거기 누운 적이 없는 듯 말끔하게 정리된다. 당신이 남긴 먼지와 때는 진공청소기의 망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깨끗하게 닦은 거울은 당신에게 자신의 해맑은 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 방은 마치 아무도 머무른 적이 없는 듯하다. 당신의 오물과 거짓, 기만이 모두 지워진 듯하다.

 나는 당신의 메이드다. 당신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당신은 나에 대해 뭘 아는가? 





 필요한 물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이른 아침의 청소 카트보다 더 좋은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내 좁은 소견으로는 청소 카트야말로 풍요와 미의 보고다. 바스락거리는 종이로 섬세하게 포장된, 오렌지꽃 향기가 나는 작은 비누, 앙증맞은 크랩트리 앤 에블린 샴푸, 사각형 화장지, 위생 필름으로 포장된 두루마리 화장지, 세 가지 사이즈(목욕용, 세안용, 손 닦는 용)의 표백한 수건, 홍차와 커피를 서빙할 때 쟁반에 까는 깔개. 마지막으로 청소 도구도 빼놓을 수 없다. 깃털로 된 먼지떨이, 레몬 향 가구 광택제, 살짝 향이 나는 소독된 쓰레기봉투, 그뿐만 아니라 감탄이 나올 정도로 골고루 갖춰진 용해제와 살균제 스프레이가 둥그런 커피 자국이나 토사물은 물론 심지어 혈흔 같은 가지각색의 얼룩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잘 구비된 청소 카트는 이리저리 이동하며 위생의 기적을 일으킨다. 바퀴 달린 청소 기계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듯이 아름답다.

 그리고 메이드 유니폼이 있다. 유니폼과 청소 카트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도저히 고를 수 없으리라. 내게 유니폼은 곧 자유다. 궁극의 투명 망토다. 리전시 그랜드에서는 메이드 유니폼을 매일 호텔 세탁실에서 드라이클리닝한다. 세탁실은 호텔의 깊숙하고 축축한 곳에 자리하는데 메이드 탈의실에서 복도를 따라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유니폼은 매일 내가 출근하기 전에 내 사물함 문에 걸려 있다. 얇은 비닐 커버를 씌우고, 검은 마커로 내 이름을 휘갈겨 쓴 작은 포스트잇을 붙여서. 아침마다 사물함에 걸린 유니폼을 볼 때의 즐거움이란. 청결하고 소독되고 새로 다림질까지 마친 유니폼은 내겐 제2의 살갗으로 새 종이와 실내 수영장, 공(空)의 상태가 뒤섞인 냄새가 난다. 새로운 시작이다. 마치 전날, 그리고 이전의 많은 날이 말끔히 지워진 듯하다.




 기괴할 정도로 아름다운 늦은 오후다. 황금빛 햇살이 호텔 입구의 황동과 유리에 부서져 호텔은 신비로운 광채에 잠겨 있다. 첸 부부는 이른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이다. 첸 씨는 가느다란 줄무늬 양복을, 부인은 검은 옷을 입었는데 가슴에만 꽃분홍색 코르사주가 달려 있다. 종일 관광을 하고 돌아온 가족이 택시에서 내린다. 부모는 나른한 몸을 천천히 움직인다. 두 아이는 발레파킹 직원들이 볼 수 있게 기념품을 들어 올린 채 진홍색 카펫이 깔린 계단을 쏜살같이 뛰어오른다. 황혼 녘에는 늘 이렇다. 마치 그날 하루가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계단에 드리우는 동안 호텔은 참을성 있게 차분한 밤이 오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나는 호텔 바로 맞은편 카페에 앉아 있다. 창문 옆자리라서 리전시 그랜드 호텔 정문이 완벽하게 보인다. 햇살이 저물어가고 있다. 또렷한 그림자가 입구에 드리워져 진홍색 카펫이 깔린 계단이 다른 색, 말라붙은 피에 더 가까운 색으로 변한다. 머지않아 연철로 만든 가로등에 펄럭이는 불꽃이 켜질 테고, 어스름이 물러가며 어둠이 내려앉을수록 불꽃은 더욱 진하게 빛날 것이다.






[나의 눈부신 친구 / 엘레나 페란테]

 그 장소의 가장 큰 매력은 통풍기에서 새어나오는 창고의 시원한 바람이었다. 봄여름에 부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은 잠시나마 우리를 상쾌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거미줄이 처진 빗장이며 그곳의 어둠, 불그스름하게 녹이 슨 촘촘한 철조망을 좋아했다. 릴라와 내가 앉아 있던 철조망 양 끝에는 철사가 말려 올라가 물건을 떨어뜨릴 만한 틈이 두 개 나란히 나 있었다. 우리는 이 틈으로 지하창고의 암흑을 향해 돌멩이를 떨어뜨리고 돌이 땅바닥에 닿을 때 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곤 했다.

 모든 것이 아름다우면서도 두렵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내겐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 우리의 유년기는 폭력으로 가득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매일매일 별의별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인생이 특별하게 기구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고 어쩔 수 없으니까.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힘들게 할 숙명을 타고 태어났고 타인들도 우리 인생을 힘겹게 할 숙명을 타고 태어났다.




 아버지와 함께 카라촐로 가 쪽으로 가는데 갈수록 바람은 거세지고 햇살은 강하게 내리쪼였다. 베수비오 화산은 파스텔 톤의 섬세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산등성이에는 도시의 건물들이 희끄무레한 조약돌 무더기처럼 켜켜이 쌓여 있었고 오보 성의 흙빛 단층은 그 조약돌 무더기를 가로지르며 뻗어 있었다. 아래로는 바다가 보였다.

 아! 그때 그 바다의 모습이란… 그날 바다는 심하게 요동쳤고 파도소리가 요란했다. 세찬 바람에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옷은 몸에 착 달라붙었으며 머리카락이 흩날려 이마가 드러났다. 아버지와 나는 그 진경을 바라보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바다 반대편 길에 자리를 잡았다. 파도가 하얀 계란 거품을 이고 있는 시퍼런 금속관처럼 맹렬히 굴러 들어와서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인 감탄사를 연발하며 지켜보고 있는 우리들이 있는 길까지 밀려와서 수천 개의 빛나는 파편으로 부서졌다. 릴라가 없는 것이 어찌나 안타까웠던지. 거센 돌풍과 굉음에 넋이 나갈 것 같았다. 그 엄청난 광경을 온몸으로 흡수하면서도 그 가운데 많은 부분이, 너무나 많은 부분이 미처 손에 쥘 새도 없이 흩어져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는 마치 내가 떠내려가기라도 할 것처럼 내 손을 꼭 잡았다. 실제로 나는 아버지의 손을 놓고 달려 나가서 길을 건너 바다의 빛나는 파편에 몸을 내맡기고 싶었다. 무시무시하면서도 빛과 소리가 충만했던 그 순간, 나는 새로운 도시에 홀로 남게 되는 상상을 했다. 새로운 인생을 앞두고 나 자신도 새로워져서 말이다.




 7월의 마지막 열흘간,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뒷날 인생을 살아가며 종종 느끼게 되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모든 일이 만족스러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도,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일도, 상을 치우는 일도, 동네에서 산책하는 일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오가며 마론티 해변까지 걸어가는 일도, 햇볕 아래 누워 책을 읽는 일도 좋았다. 수영하다가 다시 해변으로 나와 책을 읽는 일도 좋았다. 아버지도, 동생들도, 어머니도, 매일같이 걷던 고향의 길도, 정원도 그립지 않았다.

 유일한 그리움의 대상은 릴라였다. 내 편지에 답장 한 통 없는 릴라. 내가 없는 동안 릴라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나는 두려웠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것은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어온, 살면서 단 한순간도 사라지지 않은 두려움이었다.

 나는 릴라의 삶의 일부분을 놓침으로써 내 삶의 밀도와 중요성까지도 희석될 것 같아 두려웠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 엘레나 페란테]

 이제는 희미해져가는 잉크 자국을 따라, 당시 내 필체와 너무나 비슷한 릴라의 필체를 따라서 『푸른 요정』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았다. 첫 장부터 속이 뒤틀리기 시작했고 온몸에서 진땀이 났다. 다 읽고 나서야 실은 처음 몇 줄만 읽고도 바로 느꼈던 사실을 완전히 인정했다.

 릴라가 어린 시절에 쓴 몇 장 안 되는 짧은 이야기가 바로 내 책의 숨겨진 심장이었던 것이다. 내 글의 문장과 문장 사이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지만 단단한 그 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내 글에 온기를 불어넣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화사하게 색칠한 표지에 제목도 서명도 없고 녹슨 핀으로 고정한 어린아이가 쓴 열 장 남짓한 종이 묶음을 읽어야 할 것이었다.






[2의 세계 | 고요한,권여름,김혜나,류시은,박생강,서유미,조수경]

 하지만 나는 소설을 완성할 수 없었어. 소설가란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인물을 그려내야 하는데, 이 소설을 쓸 때면 나는 나로부터 멀어질 수가 없었어. 나에 대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게 됐고, 내가 가진 치기 어린 감정들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었어. 어렵사리 글쓰기를 마치고 읽어보면 내가 쓴 묘사와 서사가 하찮아 보이기만 했어. 사람들이 내 소설을 흔해 빠진 삼류 드라마로 보거나 불륜에 대한 합리화라며 비난할 것만 같았지. 나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이야기인데, 막상 꺼내놓고 보면 형편없이 작고 쓸모없는 서사가 되어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현실을 상상할 수 있겠니?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라. 냉소주의는 사람의 기운을 빼앗아 간다. 절대 절망에 빠지지 말아 달라. 죽어서도 지하에 있다가 여러분들이 싸우지 않으면 내가 싸우러 나올 것이다. 그런 일이 없길 바란다. 나는 여러분 세대에 많은 희망을 걸고 있다. 여러분 세대가 잘 되는 것을 보고 싶다. - 조세희(난쏘공 작가) 인터뷰 中





 다시 돌아봐도 엄마에게 가장 감사하는 것은 엄마가 내게 해준 맛난 음식, 좋은 옷, 좋은 교육, 다양한 경험 같은 여러 혜택보다도, 인생의 매 순간 나이 따위 의식하지 않고 최대한 즐겁게 산 엄마 자신의 삶 그 자체이다. ‘엄마’라는 단어에 흔히 따라붙는 ‘희생’과 ‘헌신’ 같은 단어나 괜스레 스멀스멀 올라오는 죄책감 같은 감정에 앞서, 내 노년도 엄마의 그것처럼 즐겁고 다채로울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해줬다는 사실에, 또 엄마를 떠올리면 미안함보다는 풍요로움과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앞선다는 사실에 다시금 감사하고 감사한다.  - 홍보라, 『맥시멀리스트 이수산나호순의 인생 레시피』(보따리) 중









'글을 어떻게 이렇게 쓰지?' 하고 감탄했던 구절, 직접 손으로 써보고 싶을 만큼 좋았던 글귀 있으면 써주고 가줘!

소설뿐만 아니라 노래가사, 영화대사, 시 등등 다 상관없어!



  • tory_1 2023.12.25 09:34
    너무좋다 스크랩
  • tory_2 2023.12.25 10:53
    하나씩 읽어봐야지 좋은글 고마워!!
  • tory_3 2023.12.25 11:19

    와... 너무 좋다 토리야 한동안 책 멀리 했는데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 

  • tory_4 2023.12.25 13:16
    여자는 인질이다 정말...내삶을 바꾼 인생책
  • tory_5 2023.12.25 17:47
    너무 좋다 고마워
  • tory_6 2023.12.25 22:46

    고마워 좋은 글이다

  • tory_7 2023.12.25 22:50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3/12/27 04:54:16)
  • tory_8 2023.12.26 08:21
    오...고마워 스크랩...
  • tory_9 2023.12.26 18:30
    덕분에 더 재밌게 읽을것 같아! 고마워!
  • tory_10 2023.12.31 12:30
    고마워
  • tory_11 2024.01.02 15:11
    감사해
  • tory_12 2024.01.05 00:05
    헉 너무좋댜
  • tory_13 2024.02.11 22:42

    이쯤에서 떠오르는 일화가 하나 있다. 라우리는 자신의 집을 불편하고 흉하다고 여기면서도 무려 28년간 살았다고 한다.

    "처음엔 싫었고 차차 익숙해졌다. 얼마가 지나자 녹아들었고 그 다음엔 홀렸다."

    집세를 걷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무수히 오갔던 샐퍼드의 거리와 광장에서도 그는 같은 마법에 걸렸던 모양이다. 미지근한 술에 취하듯.

    - 그림과 그림자

  • tory_14 2024.05.15 20:42
    수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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