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독시 188화 스포
“김독자.”
석벽을 헤치고 일어난 유중혁이 나를 보고 있었다. 곁에 이설화가 탈진해 있는 것을 보니, 아마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유중혁을 치료한 모양이었다. 마왕이 된 나를 확인한 녀석의 눈빛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하는 게 보였다.
“그런 표정 짓지 마. 한 번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어. 잘 알잖아?”
유중혁이 피 묻은 입술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이곳에서 죽는 건 나여야 했다.”
다행히, 유중혁은 유중혁이었다. 녀석은 나를 죽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이미 받아들인 것이다. [진천패도]를 꺼내든 유중혁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스각! 콰가각! 놈의 공격 하나하나가 적중될 때마다, 체력이 깎이는 게 느껴진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한 번의 칼질이 이어질 때마다 녀석의 절망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남은 공략 시간은 4분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절망을 음미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성흔, ‘희생의지 Lv.1’가 발동합니다!]
강제로 발동한 성흔이, 신유승의 몸에서 환한 빛살을 내뿜었다.
[성흔의 주인이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목숨의 절박함에 비례해 해당 파티의 공격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방금 전까지 탈진해 있던 일행들의 눈빛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무려 ‘희생의지’라니. 나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성흔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걸로 이제 내 죽음은 확정이라는 것이겠지.
허공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별들의 시선 속에, 하나의 이야기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
내 부모였고, 내 친구였으며, 내 연인이었던 이야기.
[남은 공략 시간은 2분입니다.]
그것은 내가 아는 그대로의 ‘멸살법’은 아니었지만, 내가 아는 그 어떤 ‘멸살법’보다도 더 멋진 이야기였다.
그것은, 내 이야기였다.
내 심장을 꿰뚫은 유중혁의 검을 보며, 나는 웃었다.
[당신의 운명이 실현됩니다.]
서서히 주저앉는 내 몸을, 유중혁이 붙들었다.
“김독자.”
“정말 멋진 이야기잖아. 안 그래?”
유중혁은 그런 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할 말을 찾지 못한 채로, 그저 바라보았다. 마치, 오래전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절대선 계통의 성좌들이 당신에게서 ‘악인’ 표식을 철회하였습니다.]
[당신의 화신체가 완전히 소멸하였습니다.]
[당신은 시나리오에 실패했습니다.]
[당신은 시나리오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스타 스트림이 당신의 수식언을 공표합니다.]
아득한 어둠 속에서, 스타 스트림이 고요히 내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수식언은 ‘구원의 마왕’입니다.]
김독자 이 나쁜 놈아 사랑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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