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진실을 향한 기대와 요구를 바탕으로 마침내 놀라운 페미니스트 영화를 만든 것이다.”
3월 극장가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는 영화 <캡틴 마블>에 관한 언급일까. 아니다. ‘페미니즘이 묻었다’며 <캡틴 마블> 관람을 거부하고 낮은 평점을 주는 일부 관객들의 움직임은 4년 전 개봉한 다른 한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란의 복사판이다.
2015년 개봉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개봉 직후 미국에서 적지 않은 설전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서 ‘남성 권리 활동가’를 자처하는 아론 글레리가 <매드맥스>를 두고 “남자들을 위한 액션영화로 포장됐지만 실은 ‘페미니스트 프로파간다’ 영화”라며 관람을 거부하자는 주장을 펼치며 촉발된 논쟁이 일부 남성 관객들의 지지를 받고 확산된 것이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영화를 이끄는 메인 캐릭터 ‘퓨리오사’로 분한 배우 샤를리즈 테론은 칸 국제영화제에서 위와 같이 발언했다. 조지 밀러 감독이 페미니즘의 관점을 상당수 빌려 영화를 연출했다는 것이다.
3일치 흥행만으로 본전 회수
비슷한 논란이 개봉 전부터 <캡틴 마블>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이번에는 국내에서도 조용하게 지나가지 않았다. 미국 영화사 마블 스튜디오가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이 첫 여성 히어로 영화라는 점, 그리고 여성 주인공 캡틴 마블(브리 라슨 분)이 기존의 히어로들 이상으로 강한 능력을 보이는 캐릭터로 활약한 점은 영화에 ‘페미(니즘) 묻었다’고 예상하게 한 배경이 됐다. 이러한 의심을 품은 ‘반(反) 페미’ 관객들의 심증은 <캡틴 마블>을 페미니즘 영화라고 언급한 브리 라슨의 발언이 국내에도 알려지면서 거의 확증으로 굳어졌다.
반응은 평점 낮게 주기로 나타났다. ‘일반 관객들은 평점 1점, 페미들만 10점 주는 영화’ 같은 네티즌 평가가 올라온 네이버 영화 평점은 개봉 전 4.88점(10점 만점)에 불과했다. 개봉 후 네티즌 평점은 3월 14일 현재 6.42점으로 올랐고, 실제 관람한 관람객 평점은 8.45점이다. 미국의 영화 비평 사이트인 ‘로튼토마토’는 이러한 ‘페미 대 반 페미’ 대결 양상이 심해지자 아예 개봉 전 평점을 매길 수 없게 막았다.
이렇게 개봉 전과 후 영화에 대한 평가가 적잖이 바뀐 모습은 무엇보다 실제 흥행 성적에서 잘 드러났다.
<캡틴 마블>은 국내 개봉 하루 만에 4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비수기인 3월 극장가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고, 예매점유율은 91.1%에 달했다. 누적 관객 수는 개봉 일주일 만인 13일 기준 347만명을 기록했다. 북미에서는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 개봉해 첫 주말 1억5343만 달러(약 1740억원)를 벌어들이는 성적표를 받았다. 중국에선 5억9593만 위안(약 976억원)을 벌었다. 제작비 대비로 보면 3일치 흥행만으로 본전을 회수한 수준이다. 제작사나 배급사가 대놓고 ‘페미니즘 영화’를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개봉 전후로 반대 목소리가 컸던 현상에 비하면 흥행은 그와 무관하게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개봉 첫 주 주말까지 CGV에서 <캡틴 마블>을 본 관객의 성비는 여성 57.8% 대 남성 42.2%였다. 일반적인 히어로물 영화가 남성 관객들에게서 더 높은 인기를 끄는 것과는 달리 여성 관객이 인기를 주도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만 놓고 보면 앞서의 기대 혹은 우려와는 달리 페미니즘 요소가 전면에 부각되지는 않는다. 여성 히어로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극을 이끌어가는 흐름은 남성 중심의 영역에서 여성이 역경을 딛고 싸우는 이력이 드러나지만, ‘여성’이라는 점에만 과도한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캡틴 마블’로 변하는 공군 조종사 캐럴 댄버스가 차별에 맞서 굴하지 않고, 캡틴 마블 역시 다른 히어로와 비교해서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모습 정도가 두드러진 장면들이다. 그밖에 마블의 세계관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슈퍼히어로들의 팀 ‘어벤져스’가 초기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한 단면도 엿볼 수 있다.
작품성이나 관객 몰입도가 흥행 좌우
2015년의 <매드맥스>는 물론 이번 <캡틴 마블>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페미니즘이 관객들의 이목을 끄는 주제로 자리잡는 현상에 대해 평론가들은 ‘논란과 흥행은 별개’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오히려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란의 경우 관객층의 절반인 여성 관객에 대해서는 더욱 충성도 높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사실 영화가 여자들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차별을 이겨낸다는 정도의 교과서적 페미니즘 이상을 보여주진 않는데 논란이 과도하게 부풀려진 면이 있다”며 “그럼에도 일부 관객들의 보이콧 움직임이 힘을 쓰지 못하고 오히려 성공적인 흥행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페미니즘 등 소수자나 약자를 내세운 콘텐츠가 새로운 내러티브의 주제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강 교수의 평가처럼 마블 스튜디오가 지난해 흑인 히어로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블랙 팬서>를 내놓은 데 이어 첫 여성 단독 주인공을 내세운 전략은 현재까지는 관객들에게도 먹히고 있는 것 같다. 중국계 히어로를 내세운 작품이나 성소수자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어벤져스’ 시리즈가 예정된 것도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 흑인과 히스패닉 혈통이나 아시아인 등장인물이 히어로로 나오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아카데미상을 받은 점까지 고려하면 페미니즘까지 포함되는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더욱 확산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원작의 설정이나 배경에 변화를 주면서까지 정치적 입장을 반영하는 영화계의 움직임에 반발하는 관객층 역시 적지 않다. 특히 막강한 고정 팬층을 지니고 있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팬들은 2017년 개봉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 혹평을 가하기도 했다. 새롭게 중요한 역할을 맡은 ‘로즈’라는 캐릭터가 기존의 스토리 흐름은 물론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는 주장은 ‘정치적 올바름’에 우호적인 관객들 중에서도 나왔던 것이다. 영화 <오션스8> 역시 페미니즘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모든 주인공이 여성으로 등장하는 설정을 선보였다가 관객과 평단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영화 안팎에서 나타나는 정치·사회적 성향보다는 작품 자체의 작품성이나 관객 몰입도가 무엇보다 흥행을 좌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다만 앞으로의 흥행은 그동안 소수자로 분류됐던 계층의 영향력도 크게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나온다.
최태섭 문화평론가는 “최근 자신들이 문화의 수호자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자신들의 문화를 망치고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작품성이 훼손된다’는 식의 표현을 쓴다”며 “하지만 그동안 남성들이 주로 점유할 수 있었던 하위문화 영역이 주류문화가 되면서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까 고려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이전까지 허용되던 차별적인 요소들을 점진적으로 수정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2&aid=0002928872
3월 극장가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는 영화 <캡틴 마블>에 관한 언급일까. 아니다. ‘페미니즘이 묻었다’며 <캡틴 마블> 관람을 거부하고 낮은 평점을 주는 일부 관객들의 움직임은 4년 전 개봉한 다른 한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란의 복사판이다.
2015년 개봉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개봉 직후 미국에서 적지 않은 설전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서 ‘남성 권리 활동가’를 자처하는 아론 글레리가 <매드맥스>를 두고 “남자들을 위한 액션영화로 포장됐지만 실은 ‘페미니스트 프로파간다’ 영화”라며 관람을 거부하자는 주장을 펼치며 촉발된 논쟁이 일부 남성 관객들의 지지를 받고 확산된 것이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영화를 이끄는 메인 캐릭터 ‘퓨리오사’로 분한 배우 샤를리즈 테론은 칸 국제영화제에서 위와 같이 발언했다. 조지 밀러 감독이 페미니즘의 관점을 상당수 빌려 영화를 연출했다는 것이다.
3일치 흥행만으로 본전 회수
비슷한 논란이 개봉 전부터 <캡틴 마블>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이번에는 국내에서도 조용하게 지나가지 않았다. 미국 영화사 마블 스튜디오가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이 첫 여성 히어로 영화라는 점, 그리고 여성 주인공 캡틴 마블(브리 라슨 분)이 기존의 히어로들 이상으로 강한 능력을 보이는 캐릭터로 활약한 점은 영화에 ‘페미(니즘) 묻었다’고 예상하게 한 배경이 됐다. 이러한 의심을 품은 ‘반(反) 페미’ 관객들의 심증은 <캡틴 마블>을 페미니즘 영화라고 언급한 브리 라슨의 발언이 국내에도 알려지면서 거의 확증으로 굳어졌다.
반응은 평점 낮게 주기로 나타났다. ‘일반 관객들은 평점 1점, 페미들만 10점 주는 영화’ 같은 네티즌 평가가 올라온 네이버 영화 평점은 개봉 전 4.88점(10점 만점)에 불과했다. 개봉 후 네티즌 평점은 3월 14일 현재 6.42점으로 올랐고, 실제 관람한 관람객 평점은 8.45점이다. 미국의 영화 비평 사이트인 ‘로튼토마토’는 이러한 ‘페미 대 반 페미’ 대결 양상이 심해지자 아예 개봉 전 평점을 매길 수 없게 막았다.
이렇게 개봉 전과 후 영화에 대한 평가가 적잖이 바뀐 모습은 무엇보다 실제 흥행 성적에서 잘 드러났다.
<캡틴 마블>은 국내 개봉 하루 만에 4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비수기인 3월 극장가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고, 예매점유율은 91.1%에 달했다. 누적 관객 수는 개봉 일주일 만인 13일 기준 347만명을 기록했다. 북미에서는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 개봉해 첫 주말 1억5343만 달러(약 1740억원)를 벌어들이는 성적표를 받았다. 중국에선 5억9593만 위안(약 976억원)을 벌었다. 제작비 대비로 보면 3일치 흥행만으로 본전을 회수한 수준이다. 제작사나 배급사가 대놓고 ‘페미니즘 영화’를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개봉 전후로 반대 목소리가 컸던 현상에 비하면 흥행은 그와 무관하게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개봉 첫 주 주말까지 CGV에서 <캡틴 마블>을 본 관객의 성비는 여성 57.8% 대 남성 42.2%였다. 일반적인 히어로물 영화가 남성 관객들에게서 더 높은 인기를 끄는 것과는 달리 여성 관객이 인기를 주도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만 놓고 보면 앞서의 기대 혹은 우려와는 달리 페미니즘 요소가 전면에 부각되지는 않는다. 여성 히어로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극을 이끌어가는 흐름은 남성 중심의 영역에서 여성이 역경을 딛고 싸우는 이력이 드러나지만, ‘여성’이라는 점에만 과도한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캡틴 마블’로 변하는 공군 조종사 캐럴 댄버스가 차별에 맞서 굴하지 않고, 캡틴 마블 역시 다른 히어로와 비교해서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모습 정도가 두드러진 장면들이다. 그밖에 마블의 세계관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슈퍼히어로들의 팀 ‘어벤져스’가 초기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한 단면도 엿볼 수 있다.
작품성이나 관객 몰입도가 흥행 좌우
2015년의 <매드맥스>는 물론 이번 <캡틴 마블>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페미니즘이 관객들의 이목을 끄는 주제로 자리잡는 현상에 대해 평론가들은 ‘논란과 흥행은 별개’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오히려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란의 경우 관객층의 절반인 여성 관객에 대해서는 더욱 충성도 높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사실 영화가 여자들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차별을 이겨낸다는 정도의 교과서적 페미니즘 이상을 보여주진 않는데 논란이 과도하게 부풀려진 면이 있다”며 “그럼에도 일부 관객들의 보이콧 움직임이 힘을 쓰지 못하고 오히려 성공적인 흥행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페미니즘 등 소수자나 약자를 내세운 콘텐츠가 새로운 내러티브의 주제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강 교수의 평가처럼 마블 스튜디오가 지난해 흑인 히어로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블랙 팬서>를 내놓은 데 이어 첫 여성 단독 주인공을 내세운 전략은 현재까지는 관객들에게도 먹히고 있는 것 같다. 중국계 히어로를 내세운 작품이나 성소수자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어벤져스’ 시리즈가 예정된 것도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 흑인과 히스패닉 혈통이나 아시아인 등장인물이 히어로로 나오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아카데미상을 받은 점까지 고려하면 페미니즘까지 포함되는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더욱 확산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원작의 설정이나 배경에 변화를 주면서까지 정치적 입장을 반영하는 영화계의 움직임에 반발하는 관객층 역시 적지 않다. 특히 막강한 고정 팬층을 지니고 있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팬들은 2017년 개봉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에 혹평을 가하기도 했다. 새롭게 중요한 역할을 맡은 ‘로즈’라는 캐릭터가 기존의 스토리 흐름은 물론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는 주장은 ‘정치적 올바름’에 우호적인 관객들 중에서도 나왔던 것이다. 영화 <오션스8> 역시 페미니즘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모든 주인공이 여성으로 등장하는 설정을 선보였다가 관객과 평단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영화 안팎에서 나타나는 정치·사회적 성향보다는 작품 자체의 작품성이나 관객 몰입도가 무엇보다 흥행을 좌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다만 앞으로의 흥행은 그동안 소수자로 분류됐던 계층의 영향력도 크게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나온다.
최태섭 문화평론가는 “최근 자신들이 문화의 수호자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자신들의 문화를 망치고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작품성이 훼손된다’는 식의 표현을 쓴다”며 “하지만 그동안 남성들이 주로 점유할 수 있었던 하위문화 영역이 주류문화가 되면서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까 고려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이전까지 허용되던 차별적인 요소들을 점진적으로 수정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2&aid=0002928872
ㅋㅋ 맞는 말만 써있네 재밌게 읽었어. 남자들은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