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체포 당시 압수품서 빠트린 약봉지 현 남편이 갖다줘
직후 청주시 병원·약국 압수수색…서장 책임 회피 급급
유가족이 CCTV 찾아주고 계획범행 단서도 놓쳐 '오명'
'고유정 사건'을 수사한 제주 경찰이 계획범행의 중요한 단서인 수면제 약봉지를 긴급체포 과정에서 놓친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은 뒤늦게 현 남편이 이 사실을 알린 뒤에야 관련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폐쇄회로(CC)TV 영상을 유가족이 경찰에 찾아준 데 이어 경찰 수사력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
17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경찰이 지난 1일 고유정(36‧여)을 충북 청주시의 주거지에서 긴급체포할 당시 여행용 가방(캐리어)에 있었던 졸피뎀 약봉지를 압수물품에서 빠트렸다.
수면제 성분인 졸피뎀은 고유정의 계획범행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지만, 경찰이 놓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졸피뎀 약봉지는 캐리어에 있던 파우치에 있었는데, 생리대 등 여성용품이 담겨 있어 확인하지 못하고 놓쳤다. 나머지 카메라 등은 압수했다"고 밝혔다.
범행 전후로 고유정이 해당 캐리어를 끌고 다녔다는 점에서 압수수색 과정에서 꼼꼼히 살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현 남편이 지난 5일 고유정과의 면회에서 고 씨가 '파우치가 압수됐느냐'고 물어 수상하게 여기고 캐리어를 뒤지다 약봉지를 발견해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렸다.
이전까지 고유정이 범행 전 휴대전화로 '니코틴 치사량'을 검색한 근거를 토대로 니코틴 관련만 확인하던 경찰은 그때서야 졸피뎀 관련 수사를 시작했다.
이에 대해 박기남 제주동부경찰서 서장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수사를 하다 보면 한꺼번에 다 안 되고, 보강 수사를 통해 확인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고 해명했다.
수사 과정에서 실책도 모자라 경찰 수장으로서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앞서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경찰은 유가족이 범행 전후 고유정의 수상한 행적이 담긴 CCTV 영상을 찾아준 뒤에야 수사가 본격화하는 등 초동수사에 큰 허점을 드러낸 바 있다.
경찰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고유정은 전 남편을 살해한 뒤 훼손한 시신을 가지고 제주를 벗어나 수일에 걸쳐 시신을 유기할 수 있었다.
부실한 초동수사에 이어 경찰이 계획범행의 중요한 단서인 '졸피뎀 약봉지'마저 현 남편이 찾아주며 '고유정 사건' 수사에 큰 오명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