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朴文秀, 1691~1756)는
어린 경상남도 가야산 기슭의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박문수는 5살 때 조부와 아버지를 잃고
병약한 어머니와 단둘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박문수가 10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심하게 아팠고
박문수는 건넛마을에 있는 의원을 부르기 위해 마을의 고개를 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개는 흉흉한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 고개의 중간에 참수당한 도적들의 시신이 묻힌 곳이 있어서
그 고개를 지나가면 안 좋은 일을 당한다는 거였습니다.


고개를 넘어 죽거나 실성한 사람이 많아서 사람들은
고개를 지나가지 않고 옆으로 삥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박문수는 어머니 때문에 돌아갈 수가 없었기에
마을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재를 넘었습니다.


겨우 술시(저녁 8~10)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고개는 을사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정신없이 뛰고 있던 박문수는
자신의 걸음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박문수가 멈추자
그이 등 뒤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박문수는 소름이 끼쳤지만
가까스로 용기를 내서 외쳤습니다.


"누구신데 남의 발걸음을 막는 거요. 이리 나와 보시오."


박문수가 외치자
그이 주변을 수십의 귀신들이 포위했는데
몸 일부분이 없거나 목을 들고 있는 등 성한 모습이 없었습니다.


"클클. 그놈 용기가 가상하구나.
보통 놈들은 우리가 조금만 장난쳐도
혼절하고 난리던데 말이다."


귀신 중 두목으로 보이는 귀신이 박문수에게 다가왔고
박문수는 헛기침하고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갈 곳이 있을 터인데 왜 사람의 길을 막는 거요?
전 지금 급히 가야 할 길이 있으니 비켜주기 바라오."


그러나 귀신의 두목은 대답 대신 칼을 내밀었습니다.


"흥! 니놈도 보아하니 양반의 씨 같은데
네놈을 내가 살려줄 것 같으냐."


"무슨 소리요?
양반이 뭐 어쨌다는 거요?
혹 관리들한테 죽은 데에 앙심을 품은 겁니까?
하지만 그건 당신들이 죄를 지어서 그런 거 아니요?"


박문수의 말에 귀신은 화를 냈습니다.


"누가 산적이라는 게냐?
우린 백정이다.
오랜 가뭄으로 우린 오래 굶었다.
그래서 관아에 바칠 고기를 좀 먹었는데
그 사또란 놈은 우릴 죽이고 산적으로 만들었다.

우린 억울해서 저승에도 못 가고 있는데,
그놈들은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지.

네놈도 양반의 피를 이었으니
네놈이라도 죽여야 원통함을 풀겠다."


박문수가 듣기엔 억울한 일이 엮습니다.
박문수는 귀신들에게 큰절하며 말했습니다.


"그대들이 이리 억울한지 몰랐소.
내 약속을 하리다.
내가 관리가 되면 억울한 백성이 없도록 하겠소이다."


"개수작…. 마라. 내 양반놈 말을 믿을 것 같으냐?"


"그쪽이 믿지 말든지.
내 알 바 아니오.
하지만 저도 가난하게 살아서
당신들의 애환을 어느 정도 짐작은 가오.

내가 벼슬길에 오르지도 하는 것도
다 억울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돕고자 함이요."


박문수가 똑바로 말을 하자 귀신들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몇 걸음 물러나며 말했습니다.


"그놈 기세가 등등 하구나.
좋다. 네놈이 얼마나 훌륭한 관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번 믿어보겠다."


곧 귀신들은 사라졌고
박문수는 무사히 고개를 넘어 의원을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년 뒤 어머니마저 잃고 고아가 된 박문수였으나
박문수의 조부인 박장원의 사위인 경상도 부사 이 광 좌의 도움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서른 살이 되자 과거 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오는 도중
한 억울한 노파의 소송을 대신해 주는 일에 휘말려 몇 주간 지체했기 때문에
제날짜에 한양으로 가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자는 시간까지 아끼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힘들어서 쉬고 있는데
한 초립(소년이나 장가 안 간 남자들이 쓰던 풀로 만든 갓)을 쓴 동자가 말을 타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동자는 박문수를 보더니
대뜸 물을 달라고 했고
박문수가 얼마 안 되는 물을 주자
동자는 물값 대신 박문수를 자신이 가는 데까지 태워준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아깝던 박문수가 동자와 함께 가고 있는데
동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선비님은 어디까지 가십니까?."

"난 과거를 위해 한양까지 간다네."

"무슨 말이신지 과거는 벌써 끝났습니다만."

"뭐라고? 며칠 남지 않았나."

"착오가 있으셨나 봅니다.
전 이번 과거 시험의 과제 글과 장원한 글까지 외우고 있답니다."


과거가 끝났다는 말에 박문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어차피 늦기로 각오한 것.
장원한 글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 과제 글과 장원한 글귀는 무엇인가."


"과제는 낙조(落照)고 운자는 산(刪)자로,
장원한 글은 이렇습니다.

떨어지는 붉은 해가 푸른 산에 걸릴 때,
외로운 까마귀 흰 구름 사이로 가는구나.

동산에서 풀 뜯는 소 그림자 커다란데
망부석 눈물 어린 여인은 고개를 숙였도다.

갈 길을 묻는 나그네 채찍은 급하고,
깊은 절 늙은 스님 지팡이가 한가하구나.

고목 사이로 푸른 연기 서리는 계서리에~.

이런 소생이 아둔하여 마지막 구절을 잊었군요.
하지만 훌륭한 시조가 아닙니까?"


"그렇곤 아주 훌륭한 시네.
누군가? 이런 명시를 지은 사람은?"


박문수의 질문에 동자는 피식 웃더니 말을 했습니다.


"곧 아시게 될 터입니다.
단! 남은 절대 아닙니다.

이제 저는 갈 길로 가야 하니
선비님과 헤어져야 갰습니다."


"아, 알았네…. 신세를 져서 미안 하는구먼."


"미안 하실 것 없습니다.
이렇게 안 하면 그놈들이 갈 길로 안 간다고 어찌나 성환지.
선비님이 꽤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그럼…."


초립동 자는 이상한 말을 하며 피리를 부르며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피리 소리를 들으며 얼이 빠져 있던 박문수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들러 보았습니다.

그러자 박문수의 눈앞에 큰 성문이 보였습니다.
박문수는 성문을 지키던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여긴 어딥니까."

"어디긴 어디요. 한양이지."

"예? 한양 이라고요?"


잠시 말을 얻어 탔는데 한양이라니 박문수는 어리벙벙했습니다.


"거 보아하니 과거를 보러온 선비 같은데
조금 있으면 문이 열리니 어서 들어 가시요."

"과거 날짜가 지난 게 아닙니까."

"걱정 마 쇼…. 아직 닷새나 남았으니."


한양으로 들어온 박문수는 이광자를 찾아가 과거 준비를 하면서도
그 동자가 읊어준 시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주 훌륭한 시였다. 그런데 마지막을 못 들은 게 아쉽구나."


박문수는 시를 외우다가
갑자기 동자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렇구나….
시의 마지막은 초립동이 동자는
피리를 불으며 돌아가더라. 이거구나!"


이윽고 박문수는 과거를 치르게 됐는데
과제 글이 낙조(落照)고 운자는 산(刪)자였습니다.


"이럴 수가.
동자는 남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 그 시는….
나한테 준거란 말인가."


박문수는 실성한 것 퍼럼 시를 적어냈습니다.


그날 밤 박문수가 잠을 자고 있을 때
꿈에서 초립동 자가 나타나서 말하기를….


"난 사실 저승사자인데….

내가 데려가야 할 백정의 혼들이
선비님을 안 도와주면 안 간다며 고집을 부려서
부득이 시간을 앞당겼습니다.

부디 명 관리가 되길 바랍니다."


며칠 뒤 박문수는 장원 급제를 했습니다.



  • tory_1 2020.09.29 11:25
    오... 근데 귀신들은 그렇게당하고도 박문수를 믿고싶었을까?
  • tory_3 2020.09.29 12:31
    조상님들 순박했구만ㅜㅜ
  • tory_12 2020.09.29 22:36

    우리나라 귀신들은 일본 귀신처럼 음험하지 않아 ㅎㅎ

  • tory_17 2020.09.30 21:09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03/21 20:58:34)
  • tory_2 2020.09.29 12:01
    너무 재밌다 진짜 와
  • tory_4 2020.09.29 12:37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08/13 20:57:08)
  • tory_5 2020.09.29 12:46

    백정의 혼들이 도운거야ㅠㅠㅠㅠ? 뭉클.. 몇수를 내다보신 거임 그분들은

  • tory_22 2020.10.01 21:07
    그러니깐 ㅠㅠㅠ나 진짜 소름 돋았다 ㅜㅜㅜㅜㅜ
  • tory_6 2020.09.29 15:32

    오 재밌다 추석특집같애 ㅎㅎ

  • tory_7 2020.09.29 16:12
    글게 추석특집같구만ㅋㅋㅋㅋ
  • tory_8 2020.09.29 18:38
    훈훈한 얘기다ㅎㅎ
  • tory_9 2020.09.29 18:51
    와 신용사회였다
    훈훈하네
  • tory_10 2020.09.29 19:19
    헐 소오름~~~
    나 저승사잔데랑 나 도지산데랑 겹쳐서 웃기다 ㅎㅋㅋㅋ
  • tory_14 2020.09.30 00:04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07/17 20:19:24)
  • tory_15 2020.09.30 01:44
    이름도 문수야ㅋㅋㅋㅋㅋㅋ
  • tory_23 2020.10.01 21:08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
  • tory_26 2020.10.02 15:20
    @15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쳨ㅋㅋㅋㅋ
  • tory_27 2020.10.02 17:31

    으앗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tory_37 2020.10.08 11:09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tory_42 2020.10.23 15:23

    아낰ㅋㅋㅋㅋㅋ...내 감동 돌려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tory_11 2020.09.29 21:22

    대박이다...

  • tory_13 2020.09.29 23:21

    백정들이 보기에 될성 부른 떡잎이었나 봄 그러니 도와줘서 성공하게 해줬겠지 박문수 덕분에 억울한 사람들 줄어들었을테고

  • tory_16 2020.09.30 15:50
    와 진짜 신기하다 진짜 있었을법한 일같아ㅋㅋㅋ
  • tory_18 2020.10.01 12:26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09/16 00:13:50)
  • tory_19 2020.10.01 12:30
    캬 조상님들 므찌네
  • tory_20 2020.10.01 13:23
    난 정답 알려줘도 까먹었을듯..평소에 공부많이 했나봐
  • tory_21 2020.10.01 13:50
    나 이런거 좋아한다... 평소 개쫄보라 공포방은 발걸음도안하는디.. 추석특집 전설의 고향같고 뭔가 좋으다...bb
  • tory_24 2020.10.01 23:27
    흥미롭기도 하고 따숩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다 한다 크 명절엔 이런 훈훈한 이야기지!
  • tory_25 2020.10.02 01:00

    와 너무 멋있고 재밌다..... 이런거 너무 좋아

  • tory_28 2020.10.03 18:43

    박문수라면... 좋은 선택이었다...

  • tory_29 2020.10.03 21:21
    과거 보러 갈때도 억울한 노파 사정 도와 주다가 늦었다는 거 보니 귀신이고 사람이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덕이 있는 인재였나 보다
  • tory_30 2020.10.04 04:26
    따수워서 좋아 ㅠㅠ
  • tory_31 2020.10.04 13:44
    오.. 신비로와
  • tory_32 2020.10.04 19:54
    억울하게 산적만든거라니 허허
  • tory_33 2020.10.05 08:34
    눈물 핑 성불들 하셨길
  • tory_34 2020.10.05 15:16

    선비님을 안 도와주면 안 간다며 고집을 부렸다는 부분 찡해 ㅠㅋㅋㅋㅋㅋㅋ 신비로운 이야기다

  • tory_35 2020.10.06 14:13

    나 왜 눈물나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tory_36 2020.10.08 00:39
    정말 한국적인 스토리라 좋아 알고보면 귀신도 사정이 있고 맺힌 한을 풀고 돌아간다는 설정도 좋아
  • tory_39 2020.10.16 18:22

    2222222222222222

  • tory_41 2020.10.17 10:30
    333
  • tory_42 2020.10.23 15:23

    4444444

  • tory_45 2020.11.14 22:52
    55555 맞아... 우리 이야기엔 온정이 있어ㅠㅠ
  • tory_38 2020.10.08 21:47
    눈물나ㅜㅜ 귀신들 너무 착하네
  • tory_40 2020.10.16 22:53

    너무재밌고 감동적이다...

  • tory_43 2020.11.11 17:42

    뭔가 찡하네 ㅠㅠ

  • tory_44 2020.11.13 11:35

    흐억 저승사자님이셨다니 다 착해 ㅠㅠ

  • tory_46 2020.11.29 22:43
    너무 좋다ㅠㅠ잘 읽었어
  • tory_47 2021.01.01 11:56
    박문수 시리즈 너무 흥미진진해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전체 【영화이벤트】 제76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 🎬 <퍼펙트 데이즈> 시사회 28 2024.06.10 6330
전체 디미토리 전체 이용규칙 2021.04.26 587518
공지 꿈글은 오컬트방에서 작성 가능합니다. 2021.02.25 265183
공지 공포방 공지 69 2017.12.18 281308
모든 공지 확인하기()
3124 실제경험 지하철 도플갱어(?) 만난썰 3 2024.06.17 345
3123 공포괴담 (스압) 귀신 보는 친구 이야기 4 2024.06.17 527
3122 창작 내가 바로 네가 청산해야할 업보야(꿈 이야기임!) 6 2024.06.12 699
3121 실제경험 자기직전에 드림캐처 흔들리고 가위 눌림... 12 2024.05.30 1270
3120 범죄기사 남녀 살인사건 4 2024.05.30 1600
3119 실제경험 어제 저녁에 겪은 일 10 2024.05.25 2286
3118 질문/잡담 너네 최애 괴담 있어?? 64 2024.05.24 3310
3117 질문/잡담 (찾아줘) 죽은 친구가 길을 찾을 수 있게 집에 불 켜고 밤 내내 통화하던 괴담? 아는 사람 있을까? 11 2024.05.22 1536
3116 공포괴담 숙박업소에 존재하는 10가지 미신 21 2024.05.21 2891
3115 질문/잡담 나도 괴담 찾아볼래 민박집 관련 2024.05.18 907
3114 실제경험 어제 이상한 여자가 쫓아왔어 8 2024.05.18 2230
3113 실제경험 (별일없음주의) 나 쇠소깍 놀러갔다가 되게 무서웠던 적 있는데 여기에 뭐 얽힌 썰없나? 25 2024.05.17 2756
3112 공포괴담 얘들아 혹시 이 이야기아는사람 10 2024.05.16 2689
3111 공포괴담 송정 민박집 11 2024.05.14 7440
3110 공포괴담 무서워서 아침에 읽은 괴담 2 2024.05.14 6656
3109 공포괴담 소름 쫙 돋았던 고양이와 새우깡 괴담 6 2024.05.14 6335
3108 미스테리 찐 흉가랑 폐가는 다르다는거 있잖아 2 2024.05.14 6307
3107 미스테리 사자 사진을 못본다는 글쓴이 8 2024.05.14 7029
3106 공포괴담 부산 남포동 심야버스에서 소름돋는 실화 7 2024.05.14 6386
3105 미스테리 최근에 구제옷 샀는데 2 2024.05.14 5747
목록  BEST 인기글
Board Pagination 1 2 3 4 5 6 7 8 9 10 ...
/

Copyright ⓒ 2017 - dmi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