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지금 읽고 있는 임지은 시집 <무구함과 소보로> 에 실린 두 편의 시야 너무 좋아서 같이 읽고 싶은 마음에 남겨보아 ღ'ᴗ'ღ



<과일들>

필통에 코끼리를 넣고 다녔다
지퍼를 열었는데 코끼리가 보이지 않았다
거짓말이었다
오렌지였다

나는 덜 익은 오렌지를 밟고
노랗게 터져버렸다
가끔은 푸른 안개가 묻어 있어도 좋았다

이제 나는 오렌지가 어떤 세계의 날씨인지
알아내는 일에 빠졌다

박스째 진열된 과일 가게에 갔다
기다린다는 건 잘 익은 바나나
지갑을 열고 거짓말을 꺼냈다
딸기였다

손바닥 위에 씨앗 코끼리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있는 분홍의 과즙
딸기 속에는 아주 작은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이제 거짓말이
어떤 세계의 바다인지 알아내는 일에 빠졌다
오렌지 속에 코끼리를 넣고 나왔다



<생선이라는 증거>

욕조에 잠긴 나는 팔과 다리를 잃었습니다
멸치들의 대화가 들렸습니다
수족관에 갈치와 고등어는 모두 죽었답니다
울음에서 어떻게 걸어 나가죠?

나는 늘 진심이 모자랐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입을 가리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내게서 비린내가 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습니다

계단에서 미끄러질 때마다
앉아 있던 의자가 축축하게 젖어 있을 때마다
나를 의심했습니다

입안에서 돋아나고 있는 짧은 가시와
아침이면 베갯잇에 수북이 쌓인 비닐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바짝 마르고 싶은 심정으로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한 번만이라도 불러주었더라면
생선이 되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텐데요

기분은 왜 물 위에 뜨지 않죠?
멸치들은 모든 배수구로 빠져나가고
창밖으로 밤이 흘러넘쳤습니다
물에 녹은 손금이 모르는 방향으로 뻗어나갔습니다

누군가 나를 발견한다면 그는 희귀한 낚시꾼으로 불리게 될 테죠

몸은 하얗게 썩고 있지만
이제 막 생겨난 지느러미만은 빛나는
온몸을 진심으로 뒤덮은
옥상 냄새가 나는
날씨는 잊은

나는 다가오는 금요일 욕실에서 발견될 것이지만
생선에게 미래 따위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


그런데 이렇게 시 전문을 올려도 되는지 불안하네 혹시 문제가 되는지 아는 톨이 있으면 얘기해줘 ( ˃̣̣̥᷄⌓˂̣̣̥᷅ )

다들 좋은 오후 보내

앞에서 얘기했지만


시집 이름은 <무구함과 소보로>야
  • tory_1 2019.10.12 14:44
    헉 좋은 시다.. 톨 덕택에 좋은 시 알고가 고마워!
  • W 2019.10.12 17:08
    그치! 뿌듯하다 ๑>ᴗ< ๑ 남은 하루 잘 보내
  • tory_2 2019.10.12 14:49
    와 시 너무 좋다 ㅠㅠ
  • W 2019.10.12 17:09
    웅 다른 시들도 다 좋아 ㅜㅜ
  • tory_3 2019.10.12 17:05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2/11/14 21:44:14)
  • W 2019.10.12 17:12
    웅 좋은 시 보면 또 올게!
  • tory_5 2019.10.12 17:25

    와 진짜 좋아.. 시집사고 싶었는데 추천 고마워,, ㅜㅜ 

  • tory_6 2019.10.12 21:10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1/12/01 15:09:36)
  • tory_7 2019.10.12 23:40
    시가넘귀엽다♡
  • tory_8 2019.10.13 02:04

    첫 시가 되게 인상깊고 맘에 든다 고마워!

  • tory_9 2019.10.14 09:59

    생선 미쳤다...고마워 토리야

  • W 2019.10.14 15:03
    톨들이 공감해주니 기뻐 다른 시들도 넘 좋으니까 관심 생긴 톨들은 시집 사도 좋을 거 같아~ 잘 되셨으면 좋겠다ㅜ
  • tory_10 2019.10.14 21:35
    생선 시 정말 좋다 고마워 올려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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