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주소: https://www.dmitory.com/garden/92458960
생각보다 정말 많은 토리들이 좋아해 줘서 2편도 써왔어. 읽어주는 토리들 모두 고마워!
전편 서문 요약:
남적남은 진리. 여자보다 남자들이 남자를 더 잘 팸. 혹시나 주변의 찌질한 남성들의 심리가 궁금하시다면 남자가 쓴 고전들을 읽어보세요. 세계적인 대문호들께서 그 쩌는 통찰력으로 남자의 찌질함을 나노 분자까지 분석해 주실 겁니다. 가까운 출판사에 문의하세요.
남자 작가들이 주로 쓰는 여주인공의 분류:
1. 존나 예쁘고 자고 싶은데 돈/명예/기타 하찮은 것들을 밝혀서 고오오오귀한 남자의 감정을 몰라주는 나쁜년
2. 존나 예쁘고 착하고 현명하고 자애로워서 남자에게 영감을 주든, 사랑을 주든, 어쨌든 남자를 성장시키는 여신님 (플러스 여신님은 다른 여자들과는 달라 운운)
3. 육욕/돈/명예/기타 하찮은 것들에 굴복해서 타락하는 나약한 인간. (똑같이 타락했어도 남주가 재산 잃고 명예를 잃는 데 그친다면 여자는 재산 잃고 명예 잃고 가족 잃고 병까지 걸려서 죽는 수준)
4. 우리 사회엔 문제가 존나 많은데 그게 왜 문제인지 보여주는 장치로 쓰이는 희생양. 매애애애애~
아 그리고 스포 있으니까, 혹시라도 읽고 싶었던 책이고,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는 걸 좋아하는 톨들은 피해줘. 그리고 읽고 난 뒤에 나랑 같이 참을 수 없는 남주의 찌질함을 주제로 토론하자 ㅋㅋㅋ
아, 또 하나. 글 속 작품 인용은 내가 의역한 거라, 매끄럽지 못하거나 오류가 있을 수 있는 걸 감안해줘. 고전 덕질의 장점은 저작권 따위, 진작에 소멸해 버렸기 때문에 얼마든지 공짜로 판본을 구해 볼 수 있다는 점인데, 서양 문학 쪽 무료 판본은 영어가 압도적으로 구하기 쉽거든.
카르멘 - 프로스페르 메리메
카르멘은 위의 분류에서 1번, 예쁜 나쁜년 캐릭터이자 팜므 파탈임. 왠지 한국에선 팜므 파탈 하면 섹시한 옷 입고 찐한 화장에 담배 꼬나문 여자를 떠올리는데 나의 팜므 파탈은 그러치 아나. 고전적인 의미의 팜므 파탈은 섹시한 악녀가 아니라 본인이 의도치 않았는데도 주변을 파멸시키는 여자야. 일종의 자연 재해임. JYP 가사마냥 너무 예뻐서 남자들이 가만 못 두는 여자를 뜻하는 빻은 워딩임. 정작 미쳐돌아가는 건 주변 남자들인데 원인을 여자에게 돌리는 게 참 찌질하지 않니? 메리메 옹도 그 점에 주목하셨음. 그리고 소설 전체를 '예쁜데 나쁜년'에 대한 남자들의 원형적 공포를 분석하시는 데 투자하시지.
카르멘의 남주는 돈 호세인데 스스로 주장하기로는 산속을 누비며 자라서 날쌔고 테니스를 좋아하는, 정직하고 성실한 나바르 남자야. 힘든 군대 훈련도 잘 받고 승진도 빠르고, 여직공들의 속살에만 관심있는 양아치들이랑은 격이 다른, 아주 괜찮은 남자. 음란한 집시 여자따위에겐 관심 없고, 푸른 치마를 차려입고 땋은 머리를 어깨까지 내려뜨린, 순결한 고향 처녀들만이 취향이라고 TMI까지 방출해가며 셀프 금칠을 시전하심. 그런 훌륭한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어어어쩌다가, 예쁘지만 악마같은 집시년 하나 잘못 만나서, 군법도 어기고, 사람도 죽이고, 오갈 데 없어져서 밀수꾼으로 전락해 버린 아주 비이이련의 범죄자임.
오페라가 워낙 돈 호세 이미지를 세탁 잘 해놔서 오페라만 본 사람들은 카르멘을 만나기 전에는 돈 호세가 순수하고 선량한 시골 청년이었다고 착각하는데, 원작에서 이 새끼는 고향에서 테니스 치다가 공만 칠 것이지 사람까지 쳐죽이는 바람에 쫓겨나서 군대로 도망간 분조장 환자임. 고향 처녀 말고는 관심 없다면서 처음 본 카르멘의 스타킹에 난 구멍이 몇 갠지 헤아리고 구두 색깔까지 기억함. 킁킁, 어디서 익숙한 냄새 안 나요? 거울 속 볼록한 뱃살과 칙칙한 피부쯤은 자체 필터링 하고 '나 정도면 괜찮지' 하는 K-자뻑의 장독 냄새가? 근데 이건 스페인 발효 식품 냄새니까 하몽 냄새라고 해 두자.
메리메 옹은 작품 내내 남자들 특유의 자체 필터링과 허세를 내부 고발하셔. 왜 내부 고발이냐면 돈 호세의 자뻑이 너무나 양판소 판타지 수준임. 이야기가 돈 호세의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어느 부분에서 돈 호세가 자뻑하고 어느 부분에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남. 자기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는 부분은 존나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아 그땐 내가 초큼 병신 같았지, 싶는 부분은 얼렁뚱땅 넘어가.
병신짓 1: 고향에서 사람을 죽여서 군대로 도망갔던 일
"우리 나바로 남자들이 테니스를 칠 때는, 다른 모든 것들을 잊어버립니다. 하루는 내가 경기를 이겼는데, 알라바 출신의 어린 녀석이 시비를 걸었지요. 우리는 쇠곤봉으로 한번 더 붙었고, 내가 또 이겼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고향을 떠나야만 했어요."
병신짓 2: 카르멘 스토킹 하다가 카르멘이랑 군대 선임이 같이 있으니까 눈이 돌아서 선임을 죽여버린 일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어요. 마비된 것 같았죠. 소위는 내가 나가지도, 모자를 벗지도 않자 화를 내면서 내 멱살을 잡고 흔들더군요. 내가 그에게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가 검을 뽑길래 나도 내 검을 뽑았죠..(중략)...소위가 계속 날 공격하던 중에 내 검 끝을 그의 몸을 향해 트니까 그가 달려와서 박혔어요."
자랑스러워 하는 짓: 카르멘의 남편인 애꾸눈 가르시아를 죽여버린 일.
"가르시아는 벌써 쥐를 덮칠 준비를 하는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었어요. 왼손에는 방어하기 위해 모자를 쥐고, 칼을 앞으로 겨눴는데 그건 안달루시아 식 자세지요. 나는 나바르 식으로 자세를 취했어요. 왼팔을 올리고, 왼발을 앞에 두고, 칼은 내 오른쪽 허벅지와 평행으로 두고요. 어떤 거인보다 강해진 기분이 들었어요. 그가 쏜살같이 나한테 달려왔죠. 나는 왼발을 짚고 돌아서 그의 정면을 완전히 비웠어요. 그리고 그의 목을 찔렀는데, 칼이 어찌나 깊게 박혔는지 내 손이 바로 그의 턱 밑에 있을 정도였어요. 나는 날이 부러질 정도로 칼을 세게 돌렸죠. 그게 끝이었어요. 칼을 뽑자 내 팔뚝만큼이나 굵은 핏줄기가 쏟아졌고, 그는 얼굴부터 처박으면서 쓰러졌어요."
보이니 이 온도 차이가? 이 새끼는 똑같이 살인을 해도 상대에 따라 선택적 치매가 오나 봐. 나는 정직하고 착하지만 테니스만 치면 기억을 상실해요. 나바르 남자의 특성이죠. 칼만 탁!하고 뽑았는데 선임이 억! 하고 와서 박혔어요. 나는 내 사랑을 가로막는 못생긴 안달루시아 놈을 찔러 죽이는 존나 센 나바르 남자. 하지만 내 여자도 찔러 죽이겠지.나바르 남자의 단검술은 세계 제이이이일!
ㅅㅂ 나바르는 대체 어떤 마굴이길래 저런 분조장 치매 환자가 지역 특산물인 걸까? 나바르 여자들 지못미...돈 호세가 자기 합리화가 얼마나 쩌는 새끼냐면 카르멘이랑 원나잇 후 스토킹 하다가 군대 선임 죽이고 밀수꾼이 됨. 밀수꾼 짓 하면서 카르멘한테 남편이 있는 걸 알게 되자 남편 죽임. 이 일련의 범죄 과정이 이 새끼 뇌내 필터를 걸치면 한 여자를 너무 사랑해서 저지른 지고지순한 순애보가 됨.
여기서 킬포는 카르멘은 처음 부터 이건 원나잇이니까 계속 나 쫓아다니면 넌 교수대에 매달릴 거라고 선을 그었다는 것임. 이 언니 입장에선, 잠깐 써먹은 군인한테 보답으로 데이트 한 번 해 줬더니 이새끼가 사업 방해하고 애인 죽이고 남편 죽인 꼴임(...). 거기다 적반하장으로 돈 호세 새끼는 카르멘한테 니 애인들 죽이기도 지치니까 이번엔 널 죽여야겠다고 윽박지른 다음에 같이 모은 돈 다 싸갖고 미국으로 이민가서 살자며 이렇게 애원해:
"부탁인데 이성적으로 굴어. 내 말 좀 들어봐. 과거는 다 잊을게. 하지만 네가 날 망친 걸 알잖아. 너 때문에 나는 강도와 살인범이 됐어. 카르멘, 나의 카르멘. 내가 널 구하게 해 줘. 널 구함으로써 나 스스로를 구하게 해 줘."
아아, 이것은 여친 썅년 만들기라는 것이다...! 난 저 이성적 운운에서 구남친한테 당한 맨스플레인이 떠올라서 뒷목을 잡았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돈 호세는 카르멘 만나기 전부터 위에 쓴 병신짓 1 때문에 살인범이었구요? 강도가 된 건 병신짓 2를 저지르는 바람에 백수 된 놈 카르멘이 밥은 먹고 살아야지 않냐며 밀수꾼 무리에 꽂아줘서구요? 이성적으로 굴자면서 칼 들고 협박하는 건 돈 호세구요? 만약 돈 호세같은 새끼가 미국으로 이민오려 한다면 난 트럼프한테 투표해서 벽 쌓을래. 단 멕시코가 아니라 스페인 있는 대서양 쪽으로. 갓 블레스 아메리카.
이 다음 장면이 바로 내가 메리메 옹께 '오오 작가님' 하고 무릎 꿇은 장면임. 전개도 고전 답게 아주 클래식해. 아마 연애할 때 똑같은 전개로 싸웠던 톨들 분명히 있을 것임. 돈 호세는 카르멘이 거절하자 자기가 잘못했던 건 잊어버리고 "딴놈 생겼냐?"를 시전하고 카르멘은 "뭐래 이 병신이. 듣기 좋은 말로 설명하기도 귀찮으니까 헤어져" 라고 답함. 돈 호세는 무릎을 꿇고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줄 테니 제발 날 사랑해 달라고 울면서 빌다가 카르멘이 계속 거절하니까 빡쳐서 마지막 기회라며 칼을 꺼내들어. 그때를 회상하는 독백은 이래.
"난 그 여자가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자비를 애원하게 만들려고 했어요 - 그러나 그 여자는 악마였어요."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내 머릿속엔 상투스가 울리면서 메리메 옹의 계시가 들려왔어.
Ecce Jjijilnam (이 찌질남을 보라)!!!
이 부분이 바로 메리메 옹이 쩌는 통찰력으로 '예쁜 나쁜년 공포'의 근원이자 모순을 까보이는 부분이야. 돈 호세는 카르멘이 뭘 요구해서 죽인 게 아니야.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서 죽인 거지. 나한테서 뭘 뜯어가서 악마같은 년인 게 아니라 내 돈도 내 사랑도 내 자비조차 바라지 않으니까 악마같은 년인 것임.
1번 타입의 여자가 나쁜년인 이유가 돈/명예/기타 하찮은 것을 밝히는 바람에 남자의 고오오오귀한 감정을 몰라줘서랬잖아. 근데 이건 사실 남자가 여자한테 줄 수 있는 최저시급이 그 고오오오귀한 감정이라 그럼(...). 돈 있는 남자는 여자가 돈 밝힌다고 지랄 안 하고 명예 있는 남자는 여자가 명예 밝힌다고 지랄 안 함. 정공법을 선호하는 남자는 여자가 밝히는 걸 갖추려고 노력하고 꼼수 쓰는 남자는 자기가 줄 수 없는 것들을 '하찮은 것'이라고 후려침. 그래서 여혐할 때 돈 없는 새끼는 된장년이라 욕하고 좆 작은 새끼는 걸레년이라 욕함. 근데 내가 줄 수 없는 걸 바라는 년은 나쁜 년인데 아예 바라는 게 없는 년은 무서운 년임. 이런 여자는 정공법을 쓰든, 꼼수를 쓰든 공략 자체가 불가능하거든.
돈 호세가 참 여러모로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새끼긴 한데,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평가한 게 딱 하나 있어. 성실하다는 거. 그래서 이 새끼는 범죄도 참 성실하게 저질러. 카르멘도 열심히 스토킹 하고, 밀수도 열심히 하고, 사람도 열심히 죽여(...). 만약 카르멘이 난 더 돈 많은 남자가 좋다고 하면 돈 호세는 노오오오오력을 해서 소처럼 벌었을 거고, 귀족 남자가 좋다 하면 노오오오오력을 해서 족보를 샀을거고, 딴 남자가 좋다 하면 노오오오오력을 해서 그 남자를 죽였을 거임. 근데 카르멘이 뭘 노오오오오력 해야 되는 지 안 알랴줌. 바라는 것 자체가 없으니까 그따위 하찮은 걸 바래서 네년이 썅년인 거라고 후려치기 할 수도 없음. 존나 무서움. 그래서 죽였음.
...메리메 옹, 나 좀 소름 돋았어요. 왜 꽃뱀들이 거들떠도 안 보는 남자들이 꽃뱀 욕에 거품을 무는지 정확히 알려주셨어요. 역시 세계적인 대문호는 다르다니까. 남자들의 허세를 까는 동시에 남자들이 그 허세 때문에 차마 밖으로 못 내뱉는 내면의 소리마저 까주심 (e.g. 내가 갖고 있는 것들만 좋아하라고 이 썅년들아). 캬 이런 게 내부 고발이지. 여자들은 기껏해야 남자들이 하는 말 갖고 패지 하는 생각 갖고는 못 패는데, 남자들은 자기들 외적인 면 내적인 면 가리지 않고 팰 수 있음. 이게 내부 정보의 힘이고 기업들이 산업 스파이들을 눈에 불을 키고 단속하는 이유임.
참, 그리고 돈 호세는 끝까지 자기 객관화를 못함. 소설 속 그의 마지막 대사는 이래.
"불쌍한 여자지요. 그 여자가 그리 된 것은 모두 칼레(피부 검은 집시)들의 탓입니다."
아놔 니가 죽여서 불쌍해진 거잖아 새끼야.
긍데 마지막에 카르멘은 뭔 깡으로 셋이나 쳐 죽인 놈한테서 도망가지도 않고 대거리를 하고 있었냐...나같으면 이미 돈 호세가 돌아와서 내 눈에 띈 시점에 줄행랑쳤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