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정원
중요한 것은 여성에게는 꾸밈노동이 오로지 조건부로만
면제된다는 사실이다. 마치 병가처럼 말이다. 여성의 얼굴에
매겨진 기본값이 높기 때문에 이 기본값에 맞추지 않으려면,
그래야만 하는 아주 설득력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즉,
기본값을 맞추지 않기 위해 만족시켜야 하는 조건 역시
기본값만큼이나 무척 높다. 기본값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만족시킬 이유가 있거나 혹은 구태여 그 이유를
해명하고 싶지 않다면, 여성은 업무에 성실히 임하는 태도를
보이기 위해 출근 전 추가 노동을 통해 몸을 긴장시키고
피로하게 하는 외양을 만드는 편이 낫다.


문화적으로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에게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도록 강제하는 각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수치심과 죄책감이 윤아가 느낀 감정과 같은 까닭은 우연이
아니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한국 사회에서 꾸미지 않는
여성이 임신중지한 여성과 동일한 목표에 달성하는 데
동일하게 실패한 몸으로 전락했다는 신호인 것이다. 여기에서
동일한 목표란 바로 여성이 모성을 가진 이성애자로 자동
전제됨으로써 수행해야 한다고 요구받는 규범적
여성성'이다.


탈코르셋 운동이 외모 중심주의 전반을 비판하는 대신 규범적
여성성으로부터의 이탈에 집중하는 이유는 바로 단풍이
지적한 바를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사회에서 제시하는 미의
기준 바깥에 존재하는 남성이 겪지 않는 일을 여성은 겪기
때문이다.


'안 보이고 싶어요'라는 말이요, 우리가 몸을 숨겨야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거죠. 무대의 안이 아닌 밖에 있고 싶은.


"남자에게 소비되는 이미지를 구사하지 않는달까요? 자기의
잠재적 애인이 될 수 없다는 거, 성욕을 분출했을 때 반응을
얻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뭐 그런 거 아닐까요? 단순히
못생겨졌다는 문제보다도 자기랑 똑같은 남자처럼 보이는 데
충격을 받아서 거부반응이 엄청났어요. 저를 기존의
여성상처럼 성애화해서 상상하고 싶은데 전면으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니까 싫었겠죠."


다이어트를 하고도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는 이들의 일화로
인해 다이어트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감추지 못한 개인들은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찍는다. 격렬한 춤을 추고 놀라운
노래 실력을 선보이는 여자 가수의 볼품없는 식단이 완벽한
자기관리의 증거로 제시될 때 낙인은 뚜렷해진다.


한 초등학교 교사가 트위터를 통해 학급에서 실시한 '자신의
눈에 대해 설명해보자'는 활동의 결과를 공유한 적이 있다.
여자아이들은 '눈이 작다', '쌍꺼풀이 없다' 등으로 적은 반면,
남자아이들은 '0.3이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만일 누가 도박을 하면 뜯어말릴 텐데, 이 문제는 워낙
흔하고, 다들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아니까 그냥 내버려둬요.
그저 그 사람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니까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해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개인적 부분이기도 한데다가
너도 나도 다 하니까 개입을 할 수 없어요.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모두 가담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공범인 거예요. 나도
외모에 집착하는 그 기분이 어떤지 아니까, 극단적인 상황은
말리고 싶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요."


'탈코르셋은 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탈코르셋을 했다고 해서 여성이 곧장 편해질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애초에 이 운동에 여성의 영역 내에
존재하는 불편함을 제거하기를 넘어 규범을 위반할 때
생겨나는 불편함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음을
주지하기도 한다.

남자들에게서 일었을 감정이자, 이수역 폭행사건이 유발한
분노의 표현인 '감히'는 오직 한쪽에만 붙는다. 여성에게 과거
남성의 전유물이던 의복 규범이 이미 허락된 상태라고
하더라도 위반의 역사는 분노가 일지 않을 때까지 계속
수밖에 없다.


'몸으로 쓸 수 있는 힘은 많을수록 좋다'는 당연한 인식은
남성들한테는 미리부터 공유되었지만 여성들은 탈코르셋
이후에야 접근이 허락되었다. 여성의 몸에 대한 '건장하다',
'튼튼하다'는 평가는 '편해 보인다'와 마찬가지로 글자에 담긴
긍정적 가치와는 달리 부정적 의미로 통용된다.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해 긍정적 가치를 부정적으로, 부정적 가치는
긍정적으로 느끼도록 학습된다.


선택의 자유를 넓히는 접근으로는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꾸밈
압박을 해소할 수 없다는 인식, 꾸미지 않을 자유를 선택해도
여성에게는 사실상 그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발견,
그러나 꾸밈을 중단한 이후로 그간 수행하던 행위를
잊음으로써 경험한 자유, 후순위로 미루어졌으나 뒤늦게
감각한 고통, 왜곡된 자기인식으로부터의 탈출, 패션 산업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 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선망했다는
자각, 꾸밈을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다양성의 전부로 보았던,
협소한 시선에 대한 반성, 위반을 거듭함으로써 얻은 존재에
대한 재정의까지


선을 넘지 않고 규범적 여성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성은
자신의 경제력이 결혼에 맞추어 고갈되도록 설정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주제의 특성상 탈코르셋 운동의 투쟁 상대는 자기 자신이다.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미디어와 사회구조를 비판하더라도
결국은 욕망을 파고들어 내면화된 압력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어떤 싸움보다도 도망가고 싶은 싸움을 해내고,
동시에 한 강박을 다른 강박으로 대체하지 않으며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가는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입트페도 잘 읽었는데 이 책도 좋았어
읽으면서 충격적인 부분도 있었고 나도 정의하기 어려웠던 부분에 대한 답이 되는 문장도 많았어
토리들도 읽어봤으면해서 공유해봐
  • tory_1 2020.04.27 16:45
    나도 읽기 전보다 많이 명확해졌어 탈코한 사람들 응원하게 되었음 나도 예전보다 꾸밈노동 확연히 덜하게 됐고.
  • tory_2 2020.04.27 17:46

    이거 읽어보고 싶었는데 고마워 꼭 사봐야겠다

  • tory_3 2020.04.27 18:57

    중요한 것은 여성에게는 꾸밈노동이 오로지 조건부로만
    면제된다는 사실이다. 마치 병가처럼 말이다. 여성의 얼굴에
    매겨진 기본값이 높기 때문에 이 기본값에 맞추지 않으려면,
    그래야만 하는 아주 설득력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즉,
    기본값을 맞추지 않기 위해 만족시켜야 하는 조건 역시
    기본값만큼이나 무척 높다. 

    ㄴ 왜 화장 안해? ㅡ 늦잠자서.. 피부가 안 좋아서... 화장 못함/ 왜 안경껴? ㅡ 렌즈를 눈이 못 버텨서 안경낀다

    주저리주저리 변명 하고 다닌거 생각난다... 특히 렌즈 얘기 엄청 많이 해봤음.. 고딩때까지는 안경 낀 애들이 대부분인데 대학교 가니까 주변에선 나만 안경껴서 ㅋㅋ ,, 나중엔 좀 바꼈지만

  • tory_4 2020.04.28 09:06
    공감된다 글쪄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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