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에 회사를 관뒀다.
이래저래 다니면서 불안과 스트레스와 이래저래 날 괴롭히던 회사를 여름 휴가를 앞두고 사직서를 냈고 9월이 되어서야 정리했다.
사직서를 내기까지는 그렇게 고통스럽던 날들이 사직서를 내자마자 생각보다 마음이 가뿐해 졌는데 막상 관두고 백수가 된 첫날 불안감이 엄습했다. 과연 나에게 다음이 있을지 이직이 쉽게 될지 갑갑해진 마음에 뭔가 전환점이 필요할것 같아 스카이스캐너를 들어가 가장 싼 티켓이 적용되는 날짜로 미얀마행 티켓을 끊어버렸다. 직장 다니며 가졌던 작은 로망중 하나가 바로 가장 싼 티켓이 있는 요일로 여행 떠나보기 였던지라 퇴사자 1일째에 나름 버킷리스트를 저질러 버렸다고나 할까
약간 아니 솔직히 많이 운명론자인지라 꽤 괜찮은 가격으로, 베트남 국적기로 13일짜리 티켓이 내 눈에 보인게 난 왠지 운명인것만 같았다. 그래, 이건 떠나라는 계시야! 이런 얼토당토 않는 이유를 갖다붙여 그렇게 19일뒤 훌쩍 17키로짜리 배낭을 둘러 메고 떠나버렸다. 버킷리스트 2번에 있던 나라 미얀마로
평소 반년전엔 티켓팅한 뒤 가보지 않았음에도 가본것 마냥 정보를 줄줄 꿸만큼 공부해가던 여행도 아니었고 직장인으로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시간이래봐야 고작 1주일이 최선이던 여행도 아니었고 항상 있던 여행메이트가 있는 여행도 아니었다. 꼼꼼한 계획도 친구도 없는 13일의 여행길에 올라버렸다. 그렇다고 기본 성격이 어디가는건 아닌지라 2주간 할 수 있는 준비는 최대한 하고 갔지만 평소 내 준비량에 비하면 택도 없는 수준이었다. 10월 중간의 찰나의 짧은 황금같은 가을 날씨를 두고 그 찜통같은 동남아로 떠난다는게 아깝긴 했지만 왠지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단 느낌에 여행을 강행했다. 양곤, 바간을 거쳐 세번째로 도착한 껄로라는 미얀마에서도 깡시골급인 그곳에 도착 한 건 새벽 세시, 바간에 있던 숙소에서 버스티켓을 끊을땐 분명 10시간정돈 걸릴거란 소리에 여유있게 밤 8시표를 끊었던건데 10시간은 아마 종점까지 걸리는 시간이었던 모양이고 그 중간지점인 껄로에는 새벽3시에 그렇게 자다말고 깨워져 비몽사몽 버스정류장도 아닌 도로 한복판에 그렇게 떨궈져버렸다.
나를 구제해준 식당
나는 뭐 맨날 이렇게 새벽에 길가에 떨궈지고, 공항에서 쫒겨나는 운명인건지 또 앞길이 캄캄해지려 할때
백인 여자 둘, 백인 남자 한명의 무리가 함께 떨궈진걸 발견하곤 낯가림이고 뭐고 없이 그들에게 붙어버렸다.
그들은 뭐라도 알고 온건지 저 앞에 카페에 간다고 하는 소리에 나도 함께 좀 갈 수 없겠냐며 염치도 없이 무작정 쫒아갔는데 환한곳에 다다르니 새삼 낯가림과 영어울렁증으로 그들과 멀찍한 자리에 자릴 잡고 짜이 한잔을 시킨채 날이 밝아오길 기다렸다.
그 백인들도 마냥 무시하긴 그랬는지 어디서 왔는지 몇살인지 정도는 물어봐 줬지만 그게 대화의 전부였다. 그 뒤론 정처없는 나 혼자만의 기다림일 뿐....
이곳에서 아침 한끼
다섯시가 되어가자 날이 슬슬 밝아왔고 혼자 남아있던 이탈리아 여자에게 인사를 건낸뒤 식당을 나와 내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길을 건넜다. 그래도 시간이 너무 이른건 아닐까 싶었는데 마침 화장실을 빌려쓴 곳이 아침 장사를 시작하려던 식당이었던지라 그 집 개시를 국수 한그릇으로 시작해 주고 숙소가 있는 산등성이를 올랐다. 거의 밤을 새다시피 했고 여전히 어마어마한 무게의 배낭이 숙소를 향해 걷던 산등성이 오르막 내내 내 어깨를 짓눌렀던 터라 정말 죽을 맛이었다.
동화속 나무집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6시,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 짐과 그 몸으로 그 미얀마 시골에서 마땅히 갈곳도 없었다. 다행히 사장님과 직원은 조식 준비중이었고 숙소 사장님인 벨기에 아저씨의 방청소가 될 때까지 식당에서 기다려달라는 말씀에 그 조용한 숙소에서 지친 몸으로 넋을 빼고 앉아있었더니 사장님이 보기에 딱하셨던건지 오늘이 마침 시골 5일 장날이니 구경이라도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그 사이에 방에 짐은 옮겨놔주겠다는 제안을 하셨다. 분명 다 죽어갈것 같았는데 갑자기 그 체력에서 무슨 기운이 솟았는지 5일장 구경을 나서기로 했다. 겸사겸사 내가 이곳에 온 목적, 트레킹 에이전시를 찾아 예약할 일도 할겸 또 20분 남짓 걸리는 그 길을 터덜터덜 내려갔다.
활기찬 껄로 5일장, 운이 좋았다.(인물 사진은 모두 당사자들에게 허락을 받았음)
껄로라는 곳이 산도 많고 해발도 높이가 좀 있는 편인데다 무엇보다 공항이 있던 양곤보단 북쪽에 위치한 탓에 더위가 그나마 낫긴 했지만 그래도 해가 뜨는 아침부터 한낮은 습기만 없는 동남아 땡볕더위였다. 시장 매니아의 괴력이었을까? 시장의 활기찬 에너지를 받은 탓일까? 시장에 도착하자마자 몇날 몇일 잠을 제대로 못잔 사람답지 않은 쌩쌩함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잠을 못잔것도 못 씻은것도 더위도 다 잊은채 껄로 장날에 나는 신이나 있었다. 원,투,쓰리,포도 할줄 모르는 그 사람들의 손가락 셈법도, 사진을 찍고 보여 줬을 때 그네들이 보여주는 예쁜 미소도 그리고 너무 맑간 그 순박함이 내 피로따위는 애저녁에 다 앗아가버
미얀마 여행은 하루하루 참 뜻깊고 좋은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이 깡시골 껄로에서의 매력은 날 그냥 이곳에 주저앉고 싶게 만들어버렸다. 뒤에 다음 지역 숙소를 미리 예약해둔게 이렇게 애석하고 후회스러울줄은 몰랐다.
분명 여행 후기엔 볼것도 할 것도 없는 그냥 그런 깡시골이라고만 들었는데 트레킹을 위해서 가는 곳일 뿐, 관광지로선 별 매력 없는 곳이란 이야기만 잔뜩 들었는데 아...잊고 있었다. 내 취향이 보통의 흔한 취향이 아니란걸...양곤과 바간에선 길거리 음식은 철저히 외면했었는데 여기선 별별걸 다 사먹었다. 길거리 코코넛을 뿌려먹는 찰밥이라던가 파인애플, 드래곤푸르츠, 빵, 노점상의 중국식 볶음 국수 등...항상 깨끗한 식당인지 구글맵에 별점은 어떤지 따지고 재던건 다 접어두고 궁금하면 덥썩덥썩 잘도 사먹었다.
이 이후로 중국식 볶음면에 빠져 한국에서 와서 많이 사먹어 봤지만 저 노점상 아저씨 요리만큼 맛있는 볶음면은 없더라.
미얀마인들은 그림을 참 잘 그린다. 그 재능이 착취 당할 만큼
그저 트레킹을 위해 잠시 들리는 출발지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반나절 사이에 껄로는 날 사로잡아 버렸고 3시간을 힘든줄도 모른채 누비고 다닐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곳에 나를 오게한 목적이었지만 정작 도착하고선 과연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에 빠드렸던 트레킹도 우선은 에이전시를 찾아가기로 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엉클샘과 후기가 두개쯤 있던 정글킹 두개를 놓고 저울질을 거듭하다 인원이 덜 모이면 가격이 확 뛰는 엉클샘을 포기하고 고정가격의 정글킹으로 예약을 한 뒤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미얀마의 노화가의 작업실에 들어가 그가 그림그리는걸 한참을 구경한 뒤에야 별이 빛나는 밤이 되어서 숙소에 들어갔다. (중간에 한번 숙소에 들렀다가 다시 나왔었음)
쇼핑은 즐거워 / 저 잎 안에 있는 찰밥을 코코넛 가루에 뭍혀서 먹는건데.....꿀맛, 더 살걸...
그곳에서의 하룻밤은 미얀마 여행 11박 여행을 통틀어 가장 제대로 잠다운 잠을 잔 유일한 날이었고 꿈같은 날이었다.
산새 소리가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깨는 아침이라니 영화속 한장면의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아...잠다운 잠을 잤구나 싶어 또 한번 껄로를 떠나기가 더더욱 아쉬워 지는 아침이기도 했다.
숙소에서 마련해준 3단 도시락에 담겨진 진수성찬의 아침을 먹고 8시에 날 픽업온 정글킹의 트럭에 올라타 주인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정글킹앞에 도착해 내 짐을 미리 다음 날 도착할 숙소에 보내기 위해 맡기고 문앞 의자에 앉아있는데...스물스물 느껴지는 불안한 기운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고 30명 가량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람이 모였는데 나만 동양인 여행자다.
심지어 다 백인이다. 아, 백인 남자분과 커플이던 프랑스 흑인여성분이 한분 계시긴 했지만 스윗해 보이던 그녀는 다른팀....
정말 EU 민간인 연합모임에 내가 불쑥 잘못 끼어 들어간건 아닐까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갖고 있던 서양인의 이미지는 왠지 프렌들리하고 곧잘 인사를 먼저 거내는 이미지였는데 꼭 그런것만은 아닌가보다. 아닌가? 나만 예외였던건가?
누구하나 내게 인사를 먼저 건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투명인간이자 구경거리였다. 분명 다들 아는 사이는 아닐텐데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건내고 어디서 왔는지
여행코스가 어떻게 되는지 등의 이야길 스스럼 없이 나누고 웃어댔지만 눈만 동그랗게 뜨고 앉아있는 동양인 여자는 그들 눈에 없는 존재인것 같았지만 또 막상 우리팀의 가이드였던 제리가 내가 한국에서 왔단 사실에 관심을 보이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꽂혔다. 미얀마에 와서 가장 맘에 들었던것도 껄로였으나 가장 도망가고 싶은 순간도 껄로에서 만난것 같았다. 일주일넘게 혼자 여행하는 재미에 빠져 외로움이나 허전함따위는 잊고 살았는데 잊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외로움이 한번에 물밀듯이 밀려와 나를 덮치는 느낌이었다.
팀은 2박 3일팀과 1박2일팀 도착지는 냥쉐라는 호수마을, 아마 차로 가면 2-3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내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굳이 걸어서 거기까지 돈주고 가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트레킹을 하고 있었다. 2박3일팀이 먼저 걸어서 출발했다 20명이 넘어보이는 서양인들이 그렇게 우르르 떠나버렸다. 남은 사람은 나를 비롯해 7명....네덜란드 커플 2명, 독일 여자 커플 2명, 벨기에 커플 2명....그렇다 나는 그냥 영어 못하는 동양인인것도 모자라 커플사이에 어줍잖게 낀 솔로 동양인이었다.
하늘이시여....어제 5일장 보여주신걸로(5일장 맞춰가기 어려워서 보기가 어렵다고 함) 제 운빨을 다 쓴걸로 치고 절 버린겁니까 ㅠㅠ
아까보다 외로움이 더 복받쳐 오르는 느낌이었지만 우선 트럭에 올랐다. 나머지 여섯은 유럽인들이라 그런지 처음부터 말도 잘 통하고 영어도 어쩜 그렇게들 잘 하는지...또 한번 투명인간이 되어버렸다. 우린 2박 3일팀과 달리 1/3지점까진 트럭을 타고 이동하고 그 뒤로 걷게 되었는데 우리팀 가이드였던 제리가 다가와 내게 말을 걸어주었다. 어지간히도 불쌍해 보였나보다 했더니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에 관심이 많았는데 생각보다 한국인 만나기가 어려운 모양인지 날 만나 반가워하는 모양새였다. 본인이 본 한국 드라마와 영화 이야길 아기새처럼 재잘거렸다. 아이유를 좋아한다며 호텔델루나 결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데....미안 보다 말았어.ㅠㅠ그런데 내가 이렇게까지 반가울일인가 싶어 여행객을 많이 상대할텐데 한국 사람들이 트레킹 많이 안오냐고 물으니 "아시아인들은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가지 이런 걷는 투어엔 잘 안와요."
나중에 안건데 정글킹은 미,유럽쪽에 유명한 트레킹 에이전시였고 엉클샘은 한국 미얀마카페에서 유명한 곳이라 한국인들은 아묻따 거의 엉클샘으로 향하는거 같았다. 물론...택시나 버스를 이용한다는 말도 아예 틀린말 같진 않았다. 내 친구들도 왜 여행을 가서 1박2일을 걷다가 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들 입을 모아 말했던걸 보면
그런데 한류가 참 그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심어준건지 제리는 한국사람은 굉장히 패셔너블하고 어려보인단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한류에 대한 깊은 오해가 내 거지꼴에도 이어져서 검은색 츄리닝 바지를 검정색 등산양말에 쑤셔 넣어 조거팬츠를 만들고 미얀마 시장에서 산 검정색 4천원짜리 트레킹화를 신고 손이 탈까봐 낀 등산용장갑까지 낀 내 패션을 자꾸 그 유럽인들 앞에서 한국 사람은 역시 패셔너블 하다며 극찬해대는 바람에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음 숨고 싶었다. 아냐 제리 그러지마 ㅠㅠ 그거 아니야ㅠㅠ 정작 그 꼬라지 사진을 본 내 친구는 난민으로 오해받아서 신고 당하진 않았냐고 물었는데...
제리가 극찬했던 껄로 시장에서 4000원 주고 산 트레킹화
점심 먹고 나온 후식...난 너무 맛있었는데 다들 밥을 남겨서 나만 돼지인건가 싶었던 ㅠㅠ
분명히 미얀마 음식 맛없다고 듣고 왔는데....미얀마가서 먹는 족족 잘 먹고 다녔다.
이것 또한 다녀온 뒤에 알았지만 정글킹은 이름답게 정글, 즉 산길을 중심의 코스였고 엉클샘은 민간인 마을 길을 중심으로 다니는게 코스라고 한다. 정글킹도 중간 중간 여긴 무슨농사를 짓고 여기선 사람들이 뭘 하는지 이 산은 뭔지 등의 자세한 설명을 해주곤 했지만 내 영어 실력으로 그 모든 내용을 알아듣기엔 무리수였다. 도로를 걷고 옥수수밭을 헤치며 걷고 풀더미를 헤치고 진흙이 질척질척한 산길을 걷고 넘고 헤치며 우리의 트레킹은 이어졌다.
중간 중간 휴식 타임엔 유럽인들끼리 통하는 어릴적 동요라던가 요즘 유럽에서 핫한 EDM DJ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역시나 머나먼 아시아에 사는 나로선 어디하나 낄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이야기 뿐이라 멀뚱멀뚱 알아들을 수 없는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도 하늘이 날 버리진 않으셨는지 마냥 외톨이는 아니었다. 독일인 커플이 한참 뒤쳐진 내 걸음에 발맞춰 주었기 때문에 그나마 외로움은 덜할 수 있었다.
함께 걸어주려고 했던건지 아니면 같이 걷던 파트너 한명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 속도를 늦춰 걷다보니 나랑도 함께 걷게 된건진 몰라도 버벅대는 내 영어에도 끈기있게 들어주고 답해주며 부끄러워 하지말고 자신있게 말하라며 무슨 이야길 하려는건지 다 알아들을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그녀들이 난 참 고마울 따름이었다. 길을 걷다가 제리를 통해서 우리팀 멤버들의 나이도 알게 되었는데 네덜란드, 벨기에 커플들은 25살 동갑내기들 독일인들도 32,31살 솔직히 예상했던 나이보다 훨씬들 어려서 많이 놀라긴 했다. 서양인들 나이는 가늠이 안돼...
나이를 공개하고 보니 내가 가장 연장자...그런데 뭔가 이 중에서 가장 바보같아 보이는건 내가 영어를 못해서일까. 유럽인들에 못녹아드는 동양인이라서 위축된 기분 떄문이었을까...그래도 어찌어찌 나의 트레킹은 무사히 이어지고 있었다. 점심은 민간인 집에서 점심식사를 먹고 또 걷고 걷고 우리의 1박 장소인 산속 절에 드디어 오후 4시쯤 되어서야 도착했다. 이 절을 설명하자면 남자 스님들과 그들을 보필하는 남자분들이 사는 곳으로 동자승들까지 이삼십명의 남자들만 사는 곳이었다.
깊은 산속에 있는 이 절에서 정글킹은 매번 숙박을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의 잘 곳은 절 대강당의 구석탱이에 천으로 구역을 정해놓은 공간에 담요 7세트가 펼쳐져 있었다. 8시간은 걸었을테니 온몸에서 땀내가 진동했지만 시멘트로 벽만 쳐진 문과 천장도 없는 샤워장에 빗물로 받아놓은 낙엽이 둥둥 떠다니는 그 물로 도저히 씻을 용기가 나지 않아 물티슈로 대충 쓱쓱...도저히 땀내로 잠은 잘 수가 없어서 윗옷은 가져온 다른 옷으로 바꿔입었다. 그리고 이 절의 관건이....하나 또 있는데 바로 화장실, 내가 정말 비위가 강한편이라 자부하는 편인데도 아...이 절의 화장실은 정말 힘들었다. 넘치기 직전의....푸세식 화장실은 날씨까지 더워...휴...그냥 한 번 다녀오고선 그냥 물을 안마시기로 했다.
트레킹 숙소
동자스님들
진짜 맛있었던 절밥
대충 짐을 정리하고 식사를 하기 전 이 절에서 수양중인 동자승들을 발견하고 미얀마어 어플을 이용해 동자승들에게 말을 걸었다. 신문물에 신이난 동자승들은 핸드폰 마이크에 대고 한마디씩 하기 바빴는데 우리보다 전날 출발했던 2박3일팀의 눈이 참 예뻤던 유럽남자가 다가와 미소로 그게 뭔지 물어보았다. 그에게도 알려준 뒤 열심히 동자승들과 또 한바탕 수다를 떨었는데 귀요미들이 어서 식사하라고 되려 날 챙겨주는 통에 뭔가 외롭던 오늘 하루 찡한 감동이 몰려왔달까
절에서 차려준 밥상은 가히 진수성찬이자 미얀마여행 13일을 통틀어 가장 맛있었던 식사였다. 나중에 진지하게 절밥은 전세계적으로 다 맛있는건지 아는 스님께 여쭈어보기까지 했다. 결론은..글쎄요셨지만...산속 절밥은 너무너무너무 맛있었지만 유럽인들 참 밥을 조금 먹는것 같은건 내 기분 탓인가? 점심때도 밥그릇을 싹 비운건 나뿐이고 나보다 키가 훨씬 커보이는 남자들도 밥 한그릇을 다 못 비워대니 그 앞에서 밥그릇 싹싹 비워대는 내가 밥충이 기분, 기가 어지간히도 눌려 있던 모양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밥 잘 먹는게 문제가 될건 아닌데 왜 그런것까지 기죽어 신경 썼는지 후회 스럽지만 당시엔 그런 기분에 이 밥을 다 비워도 될지 좀 고민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우리의 식탁을 탐내는 절 고양이가 여러번 날 곤욕스럽게 했는데 나는 동물 공포증이 있다. ㅠㅠ 제리는 그 고양이를 만지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들 고양이가 귀여워 죽을 지경, 예뻐 죽는 그들 안에서만 놀면 좋으련만 자꾸 고양이가 내게 다가와 질겁하고 일어나자 옆에 있던 그 눈이 예쁘던 유럽남자가 왜 그러는거냐고 내게 물었다. 난 동물이 무섭다고 대답하자 그 예쁜눈의 눈빛이 어떻게 동물을 무서워할 수가 있지?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지? 라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얘기란 듯한 눈빛으로 돌변했다. 좀처럼 섞이지 못했던 우리팀에 비해 나에게 호의적이던 2박3일팀이 참 맘에 들었는데 뭔가 그 눈빛이 마음에 꽂혀버렸다.
새삼 외롭던 그날 밤 그래도 날 위로해준건 고지대 산속에서 바라보는 떨어질듯한 별빛들과 은하수
독일인 커플도 둘만 사라져 버리고 벨기에와 네덜란드 동갑내기들 사이엔 낄 수조차 없고 한류에 관심 많던 제리는 잠자러 들어가버린 그날 밤 멍하니 마당에 혼자 앉아 그렇게 쏟아질듯한 별을 쳐다봤다. 별이 너무 크고 많아서 손을 뻗으면 하나쯤 딸 수도 있을거 같은 기분인데 함께 이 기분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게 이 멋진 풍경을 같이볼 사람이 없다는게 괜스레 서글퍼졌다. 너무 예뻐서 위로가 되면서도 너무 예쁘니 서글퍼지는 이 감정은 뭐람...괜히 기분이 멜랑꼴리해져 전기도 나간 캄캄한 밤 핸드폰 불을 손전등삼아 잠자리에 들기 위해서 빤적은 있는건지 의심드는 그 담요위에 몸을 뉘었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짐을 풀자마자 내 자리에 떡하니 자고 있던 고양이...이때부터 불안했다.
그렇게 몇시간을 잔걸까?
다리 위에 뭔가 묵직한게 느껴졌다. 한번도 눌려본적 없는 가위가 다리만 누르는건가 싶었지만 다릴 움직이자 뭔가 말캉함이 느껴졌다. 갑자기 소름이 돋으면서 벌떡일어나 보니 세상에 마상에 고양이가 내 담요 덮은 다리 위에 자고 있었다. 순간 비명이 나올뻔 한걸 간신히 참았다. 심장이 터질것 같고 식은땀은 줄줄 흐르고 발을 빼려해도 어찌나 묵직한지 잘 빠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고양이가 움직이지도 않았다. 다시 누워 잠이 들어볼까 했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잠이 싹 달아난 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새벽녘 나의 미얀마에서의 7번째밤이 지나갔다.
다음날 날이 뜨고 고양이도 떠난 내 담요를 박차고 마당으로 나온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탓에 몰골은 상상 그 이상이었을테니 굳이 거울로 확인까지 하고 싶진 않아서 마당에서 몸을 풀어주며 그렇게 그 아침을 맞이했다. 또 다시 아침을 먹고 절을 떠나 산길을 걷고 호수마을 입구까지 도착해 마지막 점심을 먹은 뒤 보트를 타고 인레에 도착한 것을 끝으로 내 1박2일 트레킹여행은 끝이 났다.
두번째날 트레킹은 정말 버거웠는데 전날 산길을 8시간 걷고 잠은 3시간도 자질 못했더니 체력과 컨디션이 정말 최악이었다. 안그래도 젊은이들 속도를 쫒아가질 못했는데 다음날은 정말 버거울 정도
트레킹 마지막 식사
아이유를 좋아했던 우리의 가이드 제리
그래서 재밌었냐 재미없었냐라고 딱 잘라 감상을 말해야 한다면 어느쪽도 대답하기가 힘들다.
분명히 유럽인들 사이에 못 섞이고 언어로도 그들과 소통하기에 부족했던 1인의 동양인으로서 외롭지 않았다면 그건 순전 뻥일테지만 그 와중에도 따듯한 독일친구를 만날 수 있었고 한류덕에 한국에 관심 많은 제리의 배려도 톡톡히 받았기에 그저 외롭고 우울하기만 한 여행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트레킹하면서 보았던 그 풍경은 어메이징을 입에 달고 다닐 만큼 정말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다시 미얀마에 가서 또 트레킹을 하겠냐고 한다면 굳이 뭘 두번씩이나 싶은 마음이지만 코로나의 막바지가 보일 즈음엔 꼭 다시 한번 껄로를 찾아가보고 싶다. 다시 티토 아저씨가 하시는 그 오래된 나무집 게스트 하우스에서 산새 소리 듣고 일어나 5일장에 가서 코코넛찰밥을 원껏 먹어보고 싶다. 중국인 아저씨가 노점에서 볶아대던 그 중국식 볶음 국수도 입에 물릴만큼 다시 먹고 싶다.
꼭 이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이런 특별한 기억을 만들어준 아름다웠던 껄로, 따뜻했던 미얀마, 상냥했고 순수했던 미얀마 사람들이 이 악재 속에서 모두 무사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