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어휴, 또 손톱이 이렇게나 자랐어. 링거고 죽이고 먹는 영양분이 다 손발톱으로 가는 거 같아.
 
영숙씨의 속상한 어투에 영숙씨 어머니가 겨우 고개를 들어 링거가 꽂힌 당신의 손끝을 바라본다. 하지만 제대로 맞지 않는 초점에 보이지 않는다. 영숙씨는 굳이 그걸 보려고 하냐며 살짝 타박하고는 어머니를 다시 눕혀 이불을 목까지 꼭꼭 덮어준다. 하지만 영숙씨는 알고 있다. 영숙씨 어머니는 곧 있으면 답답하다면서 이불을 걷을 것이고 영숙씨는 굽어 버린 어머니의 등을, 거죽밖에 남지 않은 어머니의 팔을, 마디마디가 불거진 어머니의 손을 봐야한다는 것을. 그래서 둘 곳을 잃은 영숙씨의 시선은 늘 어머니의 손끝에만 자리 잡는다는 것을.
 
주무셔?
 
엊그제만 해도 이 정도 거리에서는 들렸던 당신의 숨소리였는데 이제는 귀를 대고 있지 않으면 심장이 덜컥, 하고 내려앉을 정도로 미약해졌다. 영숙씨는 자신의 귀에 들리는 어머니의 얕은 숨소리에 휴- 하고 불안한 숨을 내쉬고는 서랍에서 손톱깎이를 찾는다.
 
똑똑. 고요한 병실에는 영숙씨가 영숙씨 어머니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는 소리만 가득하다. 친탁을 한 그녀가 유일하게 어머니를 닮은 것은 손발톱이었다. 그 언제고 더운 여름 날, 고향 집 마루에 나란히 앉아 찧은 봉숭아를 그녀의 손에 하나, 어머니의 손에 하나 올리며 똑닮은 손톱을 보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와 장에 갈 때마다 하나도 닮지 않았다며 놀리는 아주머니들에게 보여주겠다며 그녀는 꼼꼼하게 봉숭아를 그녀의 어머니 손톱 위에 올려놓았다.
 
오늘 하루도 고단했던 영숙씨가 간이침대에 누울 생각조차 못하고 영숙씨 어머니 곁에 엎드렸다. 포개어진 두 사람의 똑닮은 손톱은 단정했다.
 
그리고 그 날 새벽, 영숙씨 어머니는 영면했다.
 




 
아이고.. 왤케 바짝 깎아. 이러믄 아퍼..
아녀- 이래야 눈에 안 거슬려. 깔끔하고 얼마나 좋아.
 
영숙씨 어머니가 노환으로 병상에 누운 지 이제 2년이 지났다. 그동안은 간병인을 썼었는데 영숙씨의 아들 무영씨가 입대 하자 영숙씨의 남편이 직접 보살피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왔다. 자신은 알아서 잘 먹고 잘 지낼 테니 마음 편히 모시라는 말에 영숙씨는 그 날 바로 짐을 싸 어머니가 있는 지역으로 넘어왔다. 매일 같이 간병인에게 어머니의 상태를 물어도, 주말마다 병원을 방문해도 늘 마음이 불편했던 영숙씨였다. 간병인을 돌려보내고 영숙씨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어머니를 씻기는 일이었다. 자신이 직접 머리를 감겨주고, 세수를 시켜주고, 길었던 손발톱을 깎아주고 나서야 답답한 가슴이 탁, 하고 터진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넘어가지 않는다는 저녁밥을 간신히 두 숟갈 먹이고 정리를 하고 온 영숙씨는 그 사이 잠에 든 영숙씨 어머니를 가만히 바라본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만해도 세상 정정했던 당신이었는데, 손바닥만한 하늘과 삐꺽거리는 철제 침대가 당신을 너무나 약하게 만든 것 같았다. 이제는 자리에 일어나는 것조차 버겁고 걷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약해버린 뼈와 근육에 영숙씨 어머니는 천천히 혹은 빠르게 어린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너어.. 그 감나무 기억허냐...
 
다음 날, 의미 없이 틀어놓은 티비에서는 감나무가 주렁주렁 열린 풍경이 나오고 있었다. 역시나 의미 없이 화면을 바라보면 영숙씨 어머니가 흘리듯 질문을 해온다. 올케가 보낸 사과 하나를 깎으며 영숙씨가 고향집에 있던 감나무 말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래.. 그거.. 아직도 있냐아..
 
영숙씨 어머니가 고향을 떠난 지는 10년이 되었다.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감나무가 베어진지는 8년이 지났다. 아직도 당신의 고향집을 그리워하는 목소리에 영숙씨는 애써 울음을 삼키고는 곧 있으면 따러 갈 거라는 거짓말을 해버린다.
 
옛날에 말이다이.. 니가 고 감 하나 따보겠다고 오르지도 못하는 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져서 나가 식겁했던 거 기억허제..
아이고 참- 그게 몇 십 년전 일인데 아직 기억하고 있어?
느그 아부지가.. 니 죽는다고- 죽는다고- 니 업고 읍내까지 뛰었어야..

벌써 20년도 전에 돌아가신 영숙씨 아버지가, 늘 근엄하고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모습. 그 때의 일이 생각나 영숙씨가 한참을 웃었다.
 
아이고, 흰소리 고만하고 이거나 드셔. 꿀이 뚝뚝 떨어지는구만.
감나무가 보고싶다야...
 
고향 생각에 우울해진 것인지 영숙씨 어머니는 손에 들려주었던 포크를 내려놓으며 티비 화면만 바라본다. 마음이 무거워진 영숙씨가 산책이나 가자며 쟁반을 옆으로 치운다. 날이 많이 쌀쌀해졌으니 두툼한 가디건을 입히고, 모자를 씌우고, 양말을 신겼다. 영숙씨 어머니는 당신이 직접 걷겠다며, 휠체어를 가져오겠다는 영숙씨를 말린다. 영숙씨가 영숙씨 어머니 옆에 섰고, 영숙씨 어머니는 깡마른 손으로 영숙씨의 팔을 잡았다. 그래도 아직은 아구힘이 있네, 하고 영숙씨가 기쁜 듯 말한다.
 
한 발 디디는 것조차 힘든 영숙씨 어머니였기에 병원 밖으로 나오는데에는 십 여분이 걸렸다. 영숙씨의 걸음으로는 3분 내로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휴우.. 영숙씨 어머니가 굽은 허리를 한 번 피고는 깊은 숨을 내쉰다. 늘 그랬다. 허리가 굽은 영숙씨 어머니였기에 다섯 발자욱에 한 번씩은 이렇게 휴 하는 한숨과 함께 허리를 펴주어야 했다. 힘들지만 오랜만에 쐬는 바깥공기가 좋은지 영숙씨 어머니의 얼굴에도 미소가 서린다.
 
감나무 근처 벤치에 다다랐을 때 영숙씨 휴대폰이 울렸다. 동창 진숙씨였다. 반가운 이름에 영숙씨가 얼른 영숙씨 어머니를 벤치에 앉혀놓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진숙아! 이게 얼마만이야~ 응응, 나 엄마 간호 때문에 와있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듯 영숙씨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간간히 웃음을 터트렸다.

가만히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영숙씨 어머니의 눈에는 54살의 영숙씨가 학부모가 되었던 32살의 영숙씨로 보였고, 하이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인사를 올리던 23살의 영숙씨로 보였고, 어색한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첫 출근을 하던 20살의 영숙씨로 보였고, 교복을 입고 꺄르르 웃던 16살의 영숙씨로 보였고, 함께 손을 잡고 운동장을 뛰었던 8살의 영숙씨로 보였다.
 
엄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이제야 알았는지 영숙씨가 영숙씨 어머니를 향해 손을 흔든다.
55살의, 32살의, 23살의, 20살의, 16살의, 8살의 영숙씨가 웃는다.
그 모습에 45살의, 53살의, 57살의, 60살의, 69살의, 그리고 92살의 영숙씨 어머니도 웃었다.
 
어휴, 오랜만이라 할 말이 너무 많았네. 추웠지, 엄마.
영숙아..
?
이 애미가 없어도 괜찮제..
그게 무슨 말이야.

모든 게 괜찮다는 듯 의연했던 영숙씨였다. 노환으로 홀로 지내는 것이 어려워지자 제일 먼저 자신이 모시겠다고 한 사람도 영숙씨였고, 심한 멀미로 지역을 벗어날 수 없는 영숙씨 어머니를 위해 좋은 병원을 찾아낸 사람도 영숙씨였고, 간병인을 구한 사람도, 매 주말마다 3시간을 달려 얼굴을 비춘 사람도, 지금 이렇게 당신을 모시고 있는 사람도 영숙씨였다.
그리고 영숙씨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제일 많이 울 사람도 아마 영숙씨 일 것이다.
 
아녀.. 우리 막둥이가.. 이리 다 큰 게 기뻐서 그랴.. 기뻐서.
아이참.. 식사 잘 하시고 괜한 소리 하셔.
 
영숙씨가 고개를 돌려 몰래 눈물을 훔친다. 영숙씨 어머니의 눈에도 맑디 맑은 눈물이 고였다.
들어가자, 춥다. 영숙씨가 다시 자신의 팔을 내민다. 이번에는 영숙씨 어머니가 영숙씨 팔이 아닌 손을 원한다. 영숙씨와 영숙씨 어머니가 서로의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을 내딛는다.


 


 
엄마, 들어가서 좀 쉬어. 여긴 내가 있을께.
 
영숙씨 어머니의 부고에 출장을 갔던 큰 딸도, 입대한 작은 아들도 부랴부랴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저 어린 줄만 알았던 자식들은 의젓하게 조문객들을 챙기고 친척들을 위로한다. 영숙씨는 자신에게 향하는 모든 위로도 거절한 채 그저 가만히 영숙씨 어머니의 영정사진만 바라보았다.
그래도 주무시듯 가신 것이 감사하다가도 이렇게 빨리 곁을 떠난 것이 원망스럽고, 함께 있으면서 효를 다했다고 생각하면서도 해드리지 못한 것들이 생각나 후회스러웠던 사흘이었다. 생전 당신의 유언대로 화장을 하기 위해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오기 전에 이미 한 번 까무러쳤던 영숙씨라 몸도 마음도 엉망이었다. 큰 딸의 품에 안겨있던 영숙씨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말이야..
? 엄마, 뭐라구?
원영아. 그래도 엄마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손톱이랑 발톱 다 깎아드린 게.. 그게 너무 다행이다 싶어.
.....
무영이 입대하기 전에 다 같이 와서 할머니한테 인사 한 것도 잘했다 싶고..
응응.. 엄마.. 엄마 잘했어. 진짜 잘했어.
그래도.. 그래도 보고 싶어..
 
눈을 감은 영숙씨의 눈에선 하염없이 그리움의 눈물이 흐른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엄마. 나는 그저 엄마를 사랑했을 뿐인데. 엄마를 사랑하고 사랑하다보니 이렇게 이별까지 와버렸어. 엄마가 사랑했던 그 바다가 마를때까지 기다리라면 기다릴께. 다시 와주라. 다시 와서, 그 땐 함께 늙어가자. 엄마.

 
















**

실제로 우리 엄마가 나에게 해주셨던 이야기 홍홍홍..

  • tory_1 2019.11.16 23:07
    이야....진짜 너무 먹먹하네...글 너무 좋다 자주와..
  • tory_2 2019.11.23 17:09

    ㅠㅠ 눈문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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