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선배는 술이 약하다.


나는 그 사실을 선배와 처음 통성명을 하고 자그마치 6개월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 내게 그걸 알려준 건 한승현이었다. 그 애는 내가 딱히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저 혼자 신이 나서는 소곤소곤 선배 얘기를 늘어놨다. 학생회며 동아리며 모두 활발하게 하는 사람이라 술자리가 제법 많았을 텐데도 영 술이 늘지 않는 모양이라고, 술을 썩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도 했다.


"뭐, 다들 그런 점이 귀엽다더라. 너도 그러냐?"


말을 다 마친 한승현이 빈 잔에 소주를 따르며 짓궂게 웃었다. 조금만 더 말했으면 숟가락으로 머리를 쳐버렸을 텐데 적잖이 아쉬운 타이밍이었다. 내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거나 말거나 녀석은 마치 모든 걸 다 안다는 것처럼 얄미운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짠~ 하고 멋대로 잔을 부딪혀올 뿐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술잔이나 털었다.


실은 나도 그래. 하마터면 그런 말이 튀어나올 뻔 했다. 때마침 선배네 테이블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면 분명 말해버렸을 것이다.


"……나 이제 그만 먹을래."

"그런 게 어딨어요, 선배! 선배가 먼저 먹자고 불러놓고!"

"그랬지……. 그랬는데……."

"이거 다 네 거야, 네 거. 이거 다 먹어야 보내준다?"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이거 다 먹으면 응급실로 보내주겠다는 거냐고……."


하필이면. 나는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들이켜고서는 다시 소주잔을 채웠다. 학교 앞의 그 많은 술집 중에 왜 하필 여기였는지 묻고 싶다. 한승현과 나야 일주일에 한 번씩은 얼굴도장을 찍는 단골집이라지만 선배와 선배 동아리 사람들은 다른 가게를 더 자주 갔으면서. 왜 하필 오늘 여기로 왔느냔 말이다.


운명의 장난인가? 신의 농간인가? 생각 같아서는 벌써 몇 번이고 벽에 머리를 쾅쾅 박았지만 정말 그랬다가는 당장 내일부터 학교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터였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저 얌전히 술이나 비울 수밖에.


딱히 선배랑 깊은 관계를 바란 건 아니었다. 선배는 내게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가끔씩은……, 바라보기만 하는 게 마치 뾰족한 가시를 삼킨 것처럼 불편했다. 선배와 마지막 강의가 겹쳐 한 시간 남짓 같은 지하철을 타는 날을 고대하다가도, 마음에 있는 말은 차마 하지도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시답잖은 소리나 해야 하는 게 비참하기도 했다. 미쳤다고 해도 할 말이 없지만 나는 그랬다. 선배로 인해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오락가락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호의를 베푸는 선배를 보고 있노라면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오늘은 후자였다. 내 자신이 비 맞은 생쥐보다 더 초라하게 느껴져서, 선배와의 귀가를 부러 피하고픈 날이었다. 그래서 도서관에 과제하러 가겠다는 한승현을 억지로 붙들고 빠져나온 것이다. 술을 한 병 채 비우기도 전에 다시 선배를 맞닥뜨리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나와 한승현을 발견한 선배는 곧장 이쪽으로 다가왔다. 선배네 동아리 사람들을 뒤로 하고. 내가 좋아하는 그 다정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 선배를 처음 좋아하게 된 이유가 뭐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선배의 웃는 얼굴이 좋았다. 단정한 이목구비의 흰 얼굴 위로 다감한 빛의 미소가 떠오를 때면 사로잡힌다는 말의 의미를 체감하고야 마는 것이다. 선배를 가게에서 맞닥뜨렸을 때도 그랬다. 눈이 마주치자 선배는 버릇처럼 눈매를 접으며 웃었고, 나는 또 속절없이 선배에게 눈길을 빼앗기고 말았다. 선배가 일행들에게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꼴사나운 일이었다.


소주잔을 비우고, 다시 채우고, 그리고 다시 비우고……. 뒤늦은 후회를 곱씹으며 술을 퍼마시는 동안 앞에서는 한승현이, 조금 떨어진 뒤쪽에선 선배네 무리가 떠들어댔다. 시끌벅적한 소음 속에 선배의 웃음소리가 섞여들고 있었다.


"야."


입안이 쓴 게 소주 때문인지 선배 때문인지 이젠 나도 모르겠다. 선배네 테이블에서 와르르 웃음이 터진다. 어느 새인가 비어버린 잔을 잠깐 내려보다가 소주병을 찾았다. 그러나 한승현이 내 손을 잡아채는 것이 먼저였다.


"야, 너 괜찮아?"


물론 괜찮았다. 내가 괜찮지 않으면 어떡해. 나는 아무것도 바랄 수 없는 사람인데. 이번에도 나는 그 모든 말들을 꾹 삼켰다. 그냥 고개를 끄덕거렸을 뿐이다. 내 무언의 대답에, 한승현은 언제나 반질반질 웃던 낯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싸한 얼굴로 나를 봤다.


낯선 얼굴이었다. 잔뜩 올랐던 취기마저 가라앉을만큼. 잡힌 손을 빼려고 했지만 한승현은 꿈쩍도 하지 않고 도리어 내 손을 더 꽉 쥐어왔다.


"……집에 데려다줄 테니까 일어나."









어제까지 급한 일 다 해치우고 오늘 조기퇴근 기다리다가 시간이 너~무 안가서 예전에 쓰던 캠퍼스로맨스물 짧게 토막내서 올려보았다!

짝사랑하는 애들 조아해 ㅎㅎ 귀여워 ㅎㅎ 

친구랑 대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얘기하다가 쓰게 됐고 그 친구가 만화로 그려주기로 했었는데.. 이직하면서 너무 바빠져서 취미생활 1도 못하게 된 친구 덕분에 흑역사 하나를 봉인할 수 있었지.. 비루한 글이지만 톨들의 지루한 귀성길 귀경길 혹은 월루타임에 심심풀이라도 되면 좋겠당

다들 즐추되자~

  • tory_1 2019.09.12 14:06
    잘읽었어. 토리도 즐추~
  • W 2019.09.12 16:51

    별 내용도 없는데 읽어주고 댓글까지 달아줘서 고마워 톨아><

  • tory_3 2019.09.30 17:41
    오오 토리 상황묘사를 찰지게 잘한다 진짜 여운에 젖어드는 글인 것 같아...!!!
  • W 2019.10.02 14:17

    헉.. 1인칭이 익숙하지 않아서 긴가민가하면서 썼는데 토리가 섬세해서 부족한 글인데도 좋게 봐준 것 같아!  과분한 칭찬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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