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여자는 젊은 백작의 친구들과 하인들에게 은밀히 접근한 후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총동원해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아냈다. 단순히 백작의 공식적인 일정과 친목을 알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그의 좀 더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사생활까지 파헤쳤다. 늘 새 물건이 들어오기만 했지 나가는 법은 없었던 여자의 보석함이 점점 가벼워졌고, 그녀에게 쓸만한 정보를 줄 만한 입 가볍고 행실 가벼운 남자들과 자주 접촉하느라 절벽위에 꽃 같던 평판도 떨어져갔지만 여자는 개의치 않았다. 그러기를 여러 달, 여자는 기어이 백작과 그 친구들이 찾는 고급 창관을 알아냈고, 창관의 주인 마담과 담판을 지었다. 백작이 찾아오면 코르티잔이 아니라 그녀를 방으로 들여보내기로.



그렇게 잘나고 사랑받는 남자가 창관을 찾는다는 것이 조금 의외일 지도 모르겠다. 순순히 정략 약혼에 따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남자는 귀족 남자들 중에서는 비교적 온건하고 성실한 축에 속했지만, 금욕적인 성인은 아니었다. 그를 사모하는 수많은 여인들은 그의 눈짓 하나, 말 한마디에도 과장된 의미를 부여했고, 그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듯한 기미가 있는 여인을 견제해댔기에 그는 늘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어딜 가나 주목받는 군계일학인 그가 아렌토의 사교계 내에서 은밀한 교제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나친 건 모자란 것만 못하다고 했던가. 자신을 사모하는 여인들에게 둘러 싸였으면서도 정작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은 전무하다시피 한 그의 모습은 신의 저주를 받아 입이 꿰매진 채 천상의 과수원에 감금되었다는 성서 속 마물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고급 코르티잔들은 그에게 무척 편리한 상대들이었다. 잃을 것이 많은 부자들만 상대하는 그녀들은 기본적으로 입이 무거웠고, 아무리 그에게 반했느니, 기다렸느니 해도 그에게 화대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네들끼리의 견제와 물밑 작업은 철저히 손님들이 모르는 곳에서 일어났다. 사교계의 어느 유명한 난봉꾼이 한, 남자가 창녀에게 화대를 지불하는 이유는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룻밤이 지난 후 그녀가 떠나게 하기 위한 것이란 농담에, 그는 비록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마음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그런 허세 섞인 농담마저 그에겐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남자는 재수 없으리만치 잘난 삶을 살아왔으니까.



만약 여자가 조금만 덜 오만했더라면, 창녀가 뭔지도 몰라야 하는 귀족 여식으로서 이런 남자의 이면에 실망해서 제 사랑을 포기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오만했고, 자신의 사랑과 배경과 미모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순진했다. 꽤 충격을 받긴 했고 그와 관계를 가진 여인들이 미칠듯이 질투났지만, 결국 그 여인들은 ‘분수를 모르는, 천하고 더러운 것들’이었고 그녀가 적개심을 불태울 가치조차 없는 대상들이었다. 그녀는 자신처럼 아름답고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는 고귀한 레이디가 그만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 그리고 그런 그녀를 안게 되면, 그는 그런 더러운 것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녀에게만 충실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천하고 더러운 여인으로 가장하여 그에게 안긴 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였다. 그녀는 처녀였지만 남자가 약간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고, 때문에 그는 다음날 아침까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음날 새벽, 침대 시트를 선명하게 물들인 처녀혈을 당당하게 내보이며 여자는 그녀의 정체를 깨닫고 망연자실한 남자에게 그녀의 애타는 사랑을 고백하며 결혼을 요구했다.



남자는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분명 여자는 그에 버금가는 높은 신분의 미녀였지만, 그에게는 사랑보다 질긴 혈연과 이해관계로 얽힌 약혼녀가 있는 몸이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지병으로 쇠약해진 아버지를 대신해 공작위를 물려받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결혼할 예정이었다. 어느 가문이던 가주가 흔들리면 이런 저런 잡음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런 상황에서 가문 내에 제법 세력이 있는 약혼녀의 집안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는 해도 이런 무모하고 기막힌 짓을 저지르는 여자라는 점도 꺼림칙했다. 하룻밤을 같이 즐겼을 지언정 평생을 함께 할 여자는 결코 아니었다.



하나 그렇다고 후작가의 여식의 정조를 망쳐놓고 없던 일처럼 넘어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여자가 그의 앞에서 내숭을 떨어 댔어도 그녀의 보통 아닌 성깔에 대해선 그도 어느 정도 들은 게 있었고, 굳이 소문이 아니라도 그녀가 저지른 짓으로 충분히 증명되었다. 거기다 아무리 공작가보다 세가 떨어진대도 혼담 넣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딸을 아낀다는 후작이 가만히 있을 것인가. 거기다 가뜩이나 쇠약해져 있는 아버지는 모두의 부러움의 대상이던 잘난 아들이 약혼 도중에 창관에 가고, 거기서 후작의 딸을 농락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 충격을 받아 돌아가실 지도 몰랐다. 평생 다리보다는 마차를 더 자주 쓰고, 귀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고 산 공작의 지병에는 고혈압과 심근 경색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자신은 이 과감한 속임수의 피해자일 뿐이고 모든 것이 여자의 주도 하에 일어났다고 항변해 봤자 그의 평판만 더 떨어질 것이 뻔했다. 여자의 정조가 더없이 귀한 물건 내지 가문 사이에 오가는 화폐 취급 받는 사회에선, 그 정조를 취한 게 누구인가가 중요했지, 여자의 의사는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누가 물건에게 왜 주인이 아닌 사람의 주머니에 들어가 있냐고 욕하겠는가. 궁지에 몰린 그는 그 상황에서 남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비겁한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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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아래에 있긴 하지만 전편 주소는:https://www.dmitory.com/maker/76049638

남주의 어머니는 또라이고 아버지는 견공자제분이셨습니다. 싹수 노란 떡잎이 나려면 토양부터 썩어야 하는 법이죠.

참, 전편에 소감 남겨준 톨들 고마워! 자기 만족으로 쓰기 시작한 글인데 (실제로 만족하는 지는 별개로 하고;) 반응이 올라오는 게 참 신기하고 기분 좋네. 진도도 잘 안나가는 지지부진한 글이지만 읽어줘서 고마워.
  • tory_1 2019.05.17 16:41
    전편까지 보고 왔어. ㅎㅎ 재밌다~ 여자가 착각했다 하고 창관에 안 갔다고 주장하려나... 궁금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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