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그 날, 오빠와 나는 학교를 쉬었다. 


철물점에서 달려온 아버지는 외투도 챙겨입지 못한체 내 어깨를 감싸안아 경찰서로 발을 뗐고, 뒤에 엄마와 오빠가 같은 모양새로 따랐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죄지은 양 한껏 움츠린 어깨 넷이 어기적어기적 큰 길 아래 걸어갔다. 무려 수행평가 날이었지만 그 아무도 학교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우리들이 현장에 버리고 온 가방들도 압수되어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서는 히터의 작은 반경을 제외한 모든 곳이 추웠고, 길고 긴 질문 공세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 즈음 우리 가족은 귀가를 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는 땅거미가 진 거리 위에 나섰는데, 점심 저녁을 굶은 우릴 달래줄 요량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손에 들린 떡볶이와 튀김 2인분, 참치 김밥 한줄. 검은 분식 봉다리를 보자마자 나는 묽은 즙이 올라올 때까지 빈속을 게워냈다. 


“누구 손이래?” 


“그러게요.”  


“암두 제대로 못 봤지?” 


손은 작고, 거무스름했다. 


“뭐, 애들 말고는 제대로 본 사람은 없죠. 경찰이나 빤히 봤겠네.” 


“얘 민수 엄마. 어디 사라진 사람 몰라? 왜 거 있잖아. 주원이네 아빠.” 


“그 사람은 그런게 아니라요, 그냥 그 여자랑 붙어먹은거래. 내가 다 들었잖아요.”  


옆집 아줌마와 현이 이모는 굳이 우리 집 거실까지 찾아와 과실을 깎아먹으며 이런 얘기를 나누었고, 덕분에 눈에 독기가 오른 엄마한테 실컷 혼나고 쫓겨났다. 그 둘이 남긴 사과를 집어먹던 오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른 침묵. 안방 천장에 박힌 곰팡이의 눈을 맞서 노려보다 관두길 반시간, 간격을 띄고 앉은 엄마와 오빠, 그리고 나 사이 텁텁한 공기가 감돌았다. 


“전화 좀 하고 올게. 여서 나가지 마. 알았지?”


"..."


"알았지?"


재차 답변을 확인한 엄마는 못 참겠다는 듯 일어나 문을 걸어잠글 기세로 세게 닫고 나갔다. 철물점 간 아버지 몰래 담배라도 하나 꺼내드신걸까. 오빠는 뒤돌아 가뜩이나 부운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아이 손이었지?” 


“응.” 


“우리 또래 손이었지?” 


“응..” 


빈 접시를 내려놓으며 오빠는 다시금 물었다. 


“우리 아는 사람 아니야?” 


퀭한 얼굴로 날 쳐다보는 오빠 눈을 마주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짚히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 = = = =



그 아이는 우리 또래였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길쭉하고 낮은 코 끝에는 늘상 마른 콧물이 눌어붙어 있었고, 어딘가 어수룩해보이던, 나름 선한 인상의 사내아이. 아이들 사이에 좀처럼 끼질 못해 늘 겉돌던 아이. 이름이 동현인가, 동우인가 그랬다.


동현인가 동우는, 그 선하고 어수룩한 얼굴로 매일 소매치기를 했다. 


이씨 아저씨네 문방구가 주요 타겟. 형아들이 전기를 튀겨 꽁으로 게임을 할 동안, 동현인가 동우는 몸에 비해 과하게 큰 야상 잠바에 비비건 총알이나 알사탕 따위를 숨겨 도망치곤 했다. 그럴때면 카운터 뒤에서 날라오는 이새끼야 저새끼야. 이씨 아저씨는 육중한 몸을 날려 동현이나 동우를 쫓았고, 잡히기라도 하는 날은 나무 등긁개가 대활약을 하는 날. 살점 하나 없는 동현이나 동우의 엉덩이를 내리치는 이씨 아저씨의 팔뚝에 둔한 근육의 형체가 맺혔다 사라졌다, 아저씨의 도툼하니 옹졸한 입은 늬집 부모 데려와, 라며 가래낀 쇳소리를 내질렀다. 늬 애미애비 면상이나 함 보자고, 뭐하는 새끼냐고 넌. 하지만 동현인가 동우는 데려올 부모님이 없었나보다. 쌈지에서 돈을 꺼내 고개를 조아리는건 늘 등이 굽은 고모할머니. 


그런 동현이나 동우가 나는 싫었다. 


왜냐하면 공통 분모라곤 나이 밖에 없는 나를 동현이나 동우는 제법 의식했는데, 유독 문방구 근처에서 대놓고 나를 쳐다보곤 했기 때문이다. 친구가 나눠준 자두 사탕을 입에 넣을 때라던가, 머리를 다시 고쳐 묶을 때, 어째 기분 나쁜 기운이 들면 백이면 백 그 아이가 시선이 내 몸 어디에 머무른 것이었다. 그게 무척이나 기분이 나빴다. 


“쟤 또 너 쳐다본다?” 


“좀. 그런거 알려주지마.” 


“너 밖에 안 본다 쟤는.” 


“아니거든?” 


너한테 맘있네, 너 색시 삼고 싶나보네, 참사랑이네—오빠 역시 그렇게 나를 놀렸다. 아무리 타협을 해보아도 동현이나 동우 색시가 되고픈 마음은 없어 나는 오빠에게 승질을 부렸다. 너나 시집 가라고, 너나 참사랑 많이 하라고. 오빠는 답변을 했다, 남자는 장가야 멍청아. 


이런 실없는 대화가 오갈 때 동현이나 동우는 어느 순간 사라져 있었다. 그러다 짜잔하고 나타났다. 짜잔하고 나타난 그의 주머니엔 문방구 잡동사니가 한가득. 잠시나마 아이들의 영웅이 된 그는 한층 더 강렬한 눈빛으로 나에게 구애를 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한번은 갖고 싶던 머리핀를 호주머니 속에 넣은 적도 있다. 뭐, 사탕도 몇개 받았다. 오빠 역시 비비탄 총알을 몇 줄이나 타간 전적이 있다. 총도 없는 주제에, 멍청이. 더 받고 싶은 사람 여기여기 모이라며 동현이나 동우는 의기양양하게 자기가 훔친 보물들을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그렇게 삼일천하도 아닌 반나절 천하를 누리고는, 다른 아이들이 저녁 식사를 하러 집에 불려갈 때 즈음 사라지던 아이. 어차피 찾는 사람도 없는 아이였던 것이다. 


“동현일지도 몰라.” 


오빠가 단정지었다. 


“동우 아니야?” 


“동현이나 동우나, 이름이 중요한게 아니잖아. 멍청이.”


어림짐작은 아니었다. 며칠 전 사건이 마음에 걸렸다. 이씨 아저씨가 1등 상품으로 내건 모형 건담, 1등 당첨지를 숨긴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로봇은 매해 먼지만 쌓여갔다. 문방구 상품 중에서 단연 최고가라 다들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무려 십몇만원으로 건담 자체를 사려 했던 동네 복학생 청년도 있었다. 하지만 이씨 아저씨는 거절했다. 코묻은 아이들의 돈을 얻는 방법을 잘 알고 있던 것이다.


동현이나 동우는, 간 크게도 그 큰 모형을 들고 튀려고 했다. 


이번에는 이 새끼야 저 새끼야가 아니었다. 모든 분노가 가라앉은 표정으로 아저씨는 동현이나 동우의 팔을 잡아 끌었고, 그 둘은 가로등이 꺼진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그게 벌써 이틀 전. 


 “근데 왜 손을 잘라? 나머지는 어디가구.” 


“뭐 쌔비다 잡힌거 아냐?” 


“뭐 훔쳐서 손만 자른거라구?” 


“그만해. 무서워.” 


오빠는 내게 한번도 보인 적 없는 창백한 낯으로 고개를 떨궜다. 




다음날, 왠일로 이씨 아저씨 문방구가 닫혀있었다. 365일 명절에도 열려있던 문방구는 철제 셔터 뒤에 숨어버렸고, 오빠와 나는 어쩌면 오동통한 이씨 아저씨가 범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이씨 아저씨 아니야?”  


“맞네. 그치? 원한이 있는 사람이 범인이랬어.” 


“빙신아 묻지마 범죄 몰라? 묻지마 범죄.” 


“모르면 어쩔건데?” 


타겟이 잡혀지자 아이들은 분노에 휩싸였다. 우리 중 아무도 동현이나 동우의 “베스트 프렌드”였던 애는 없었지만, 괜시리 같은 편이 죽었단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씨 아저씨는 우리가 정정당당하게 뽑기에 당첨되어도 상품 없는 척 하기의 고수, 하루 외상조차 받아주는 잔정도 없는, 한번도 우리에게 웃어준 적이 없는 어른 아닌가. 눈을 감으면 자꾸만 자꾸만 떠올랐다. 나를 쳐다보던 당돌한 꼬맹이의 눈이, 내 것보다 작았을지도 모르는 고사리 같은 손이. 왠지 손에는 로봇 모형의 팔이 들려있었던 것만 같았다. 아니, 백 퍼센트 그랬던 것만 같았다. 


“이씨 아저씨야. 그 사람 밖에 없어.” 


우린 이렇게 단정을 지어버렸다.



  • tory_1 2019.01.09 07:41
    으아 전개예측불가네
  • tory_2 2019.01.12 16:43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0/08/17 13:30:20)
  • tory_3 2020.02.29 19:17
    하편 안올리니 톨아..왜 안와ㅠ 뒤가 너무 궁금해뒤지겠어..1년째 기다리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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