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가끔 꽃을 던지곤 했다. 거뭇하게 물든 강물 위로 꽃은 깜짝 놀란 듯한 파문을 일으키며 멀리 밀려 내려갔다. 강렬한 붉은 색은 해사하고 청일한 자태로 물살에 떠밀리는가 하면 가끔은 조밀한 강물 아래로 가라앉을 때도 있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꽃을 던진다는 그 행위 자체가 의미 있었으므로.

 

 계절이 피고 지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결코 네게 보내지 못한 편지처럼, 그리움만 고이는 편지 조각은 계절이 바뀌는 순간 한 송이의 꽃이 되어 시간마저 흐르는 강물에 던져버렸다. 너에게 보내려던 편지는 언제나 묵직하기보다는 질척한 느낌이었다.

 

 나는 결코 너에게 미안해하고프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리울 뿐이었다. 해가 저물면 하늘이 짙은 어둠으로 가라앉는 것으로 당연한 그 그리움은, 언제나 종이 위에서 얼룩이 되곤 했다. 편지지에 옮겨지는 얼룩은 나의 발목 만 아니라 너의 발목까지 튀어 오르곤 했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꽃을 던졌다. 현저하게 어두운 물빛에도 잠기지 않는 그 엷은 빛이 내 눈에서 멀어질 때에 나는 이 꽃이 언젠가는 네게 닿지 않을까 멍하니 생각하곤 했다. 네가 살고 있는 그 도시에 이 강의 물줄기가 닿아, 귀가하는 네 눈에 얼핏 닿은 이 작고도 서글픈 꽃잎은 구구절절 긴 편지보다 명확히 나를 담고 있을 것이었다.

 

 너는 나를 알기나 할까. 하나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너는 놀랄 것이라는 점이다. 네 손 안에 혹시나 펼쳐질 편지는 존재만으로도 희미하면서 어렴풋한 구걸을 띠고 있을 터였다. 톡톡, . 점점이 박힌 편지 속의 마침표를 보며 너는 생각해본 적도 없을 내 얼굴을 애써 구상해보려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너를 떠올릴 때마다 심장이 비어있는 느낌을 받는다. 세차게 피가 흐르는 와중에도 씁쓸하게 비어있는 그 한 켠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너만을 위한 자리이다.

 

 겨울의 끝자락 무렵, 피어나는 목련과 함께 드리워지는 네 옆얼굴이 그 공간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주 찰나였다. 이름을 붙이기조차 짧을 정도에, 나는 그리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가 지닌. 나에게는 왜 너였느냐는 물음보다, 왜 목련이었느냐는 물음이 더 정확할 것이다. 네 옆얼굴에 겹친 그 목련을 본 순간 그저, 다만, 오로지, 너여야만 했기에. 흑백으로 젖어간 세계에서 네 입술이 붉었다. 친구와의 짧은 대화에서 피어난 그 웃음을 통해서야 흰 꽃이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가느다란, 그리고 단정하여 삶조차 의미 없는 그 담백함이 바로 그 순간 그득하게 채워졌다, 그 때부터, 나는 네게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쓰게 되었다. 몇 번이고 구겨버린 그 편지가 내 학창 시절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감정의 덩어리였다.

 

 네 이름조차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찍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흑백사진처럼 단정한 네 옆모습과 목련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모든 사진 속에서 홀로 붉게 피어난 꽃잎인 네 입술로도 나는 충분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너를 눈으로 쫓으며 나의 감색 세일러 카라는 초 봄 녘 덧피어난 벚꽃 향을 담아 강렬한 여름 햇살을 삼켰고, 스산한 가을바람과 투명한 겨울눈을 사그라뜨렸다. 아마도 네 하얀색 셔츠, 혹은 짙은 감색 넥타이 또한 그랬을 테지. 나는 그 작은 연결 고리만으로도 네게 말하지 못할 무수한 기쁨을 삼켜내곤 했다.

 

 떨어지는 목련.

 

 목련을 닮아 하얗고 가느다란 네 목선을 해마다 멍하니 뒤쫓으며 나는 여러 번 숨을 삼켰다. , . 꽃이 떨어지는 소리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랗게 소리를 내며 낙하하는 목련잎을 가려지지 않는 시계로 가만히 주워 담을 때 스쳐 지나가는 너를 본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마도 네 풍경 속 한 번도 전경이었던 적이 없는 배경일 테지. 내 편지의 첫 머리는 항상 이런 식이라,

나는 어쩔 수 없이 꽃을 던지고 마는 것이다. -단 한 번, 새벽녘의 학교에서 너를 만났을 때를 제외하고.

 

 무슨 일이었을까. 우습게도 시퍼렇게 날 선 새벽, 그 이른 아침에 왜 학교에 갔는지 정작 그 이유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모르겠지만 그 날 공기는 잔인하리만큼 선명하게 떠올랐다. 공기 뿐 아니라 차박 차박, 움푹, 발자욱을 남길 때마다 스쳐지나가는 온기들과 코끝을 찡하니 쥐어 감싸던 새봄녘 달큰하게 싸늘한 냄새까지도 모두. 좀처럼 타인에게 보인 적 없는 아가미를 드러낸 신서는 제 몸 귀퉁이를 떼어 걷는 내가 못 견디겠다는 듯 느릿하게 태양을 흩어놓곤 했다. 늑장을 부리며 먼 산 너머 기어오르는 햇살을 먼발치로 쳐다보다 아다지오의 발걸음으로 학교 벤치까지 걸어간 나는 일없이 춘추복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문득 시선을 들었다. 그래, 문득. 아주, 불현,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시선을 내렸고, 너 또한 무심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우습기도 하지. 나는 네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욕심 내지 않는다 말한 것치고는 그 잠깐의 시선에 두근대는 심장을 억눌러야 했다.

 

 마법에 걸리는 시간.

 

 연보랏빛으로 피어오르던 효서가 안개꽃처럼 송이송이, 서리서리 네 어깨와 내 목덜미 위에 얹혀갔다. 뿌옇게 흐려지는 공간 속에서 너는 환영처럼 반투명했고, 그 투명과 불투명의 경계 속 모호한 네게서는 어렴풋하게 목련꽃 향기가 나는 듯도 했다. 너 또한 새벽의 불청객에게 조금쯤은 당황했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하얀 셔츠의 옷깃을 문질러댔다. 그때마다 목련꽃인지, 혹은 섬유 유연제 향기인지 모를 향기들이 새벽 공기 속으로 뒤섞여 갔고, 나는 일순 황홀했노라, .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말아다오. 그것은 누구보다도 너와,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일일 것이다. 구겨 신은 운동화의 뒤축을 꺾어가며 나는 나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내었고, 그리고 그것으로 너와 내가 함께 찍힌 풍경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저물어갔다. 날이 선 듯하면서도 친구들에게 웃어줄 때에는 동그랗게 보조개가 접히는 그 뺨에 아침노을이 선명하게 흘러내리자 너는 불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곧장 고개를 돌려 학교로 걸어가 버렸으니. 그러나, 우습기도 하지. 다시 한 번 더,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온 생애를 통틀어 그 순간이 가장 황홀한 영원이었음을-, 너는 아마도 평생, 모를 테지.

 

 꽃을 꺾었다. 소담하게 피어난 보랏빛 이름 모를 꽃은 질척거리는 즙도 내지 않고서 기꺼이 내 손가락에 얽혀온다. 소름이 끼치도록 맑은 하늘이 거꾸로 내려 거뭇한 강물 위에 윤슬처럼, 이슬처럼 맺힌다. 까맣게 물결치는 홍채 위에 계시와 닮아 신앙을 떠올리게 하는, 다섯 개의 꽃잎을 가련하게 펼친 꽃이 떠밀려 내려온다. 마치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 처럼.

 

 그래, 안녕. 나의-, 일방적인 영원아.

 

 그래도 오늘은 반드시, 네게 쓴 편지를 우체통으로 넣어야겠구나.


-

글을 안 쓰면 가끔, 안 될 것 같은 날이 있어, 톨들아.

이 글은 내가  고등학교 때 짝사랑했던 친구를 생각하며 쓴 글이야.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오늘, 그 친구는 나를 기억하기나 할까.

톨들도 혹여나 이 글을 읽고 누군가를 떠올렸다면, 나는 그걸로도 좋아 :)

행복하자 톨들아 !!

  • tory_1 2019.01.05 22:37
    좋다. 덕분에 좋은 글 읽었어.
  • tory_2 2019.01.10 22:54
    좋다 좋다 올려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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