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 응답하라1988 스핀오프 - replay 1988 > -후일담 1- 




"절대로 안 된다."



일화의 '절대'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일찍 퇴직하면 안 된다며 내잘랐으면서도 동일의 힘없는 어깨에 그래, 되았다마. 당신 충분히 고생했다. 담담한 위로를 건네던 때가 그랬고, 선우와 결혼하겠다며 동성동본도 불사한 보라에게도 그러했다. 대학을 가지 않고 동일의 퇴직금으로 연 작은 가게에서 일을 돕겠다 선언한 노을의 말에 자리를 보전했지만, 결국 나란히 이른 아침 길 나서는 두 부자에게 아침밥을 내어놓고 돌아선 때가 또 그랬다.

그래서, 택과 덕선이 나란히 고개를 숙여 앉은 그 앞에서 붉어진 눈시울로 도리질하는 그 말이 결국에는 사그라들 것을, 좁디 좁은 쌍문동 사람들이라면 전부 알았다.


 "택이랑 덕선이가 그런 줄은 또 몰랐네."


끙끙 드러누운 일화의 빈 자리가 휑하다. 미란의 집 부엌 식탁에 도란히 앉은 선영은 정작 말짱한 얼굴이라 미란은 영 미심쩍은 모양이었다. 아니, 자기는 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선우 때는 팔팔 뛰더니만 택이 때는 왜 이렇게 조용해? 막 깐 마늘 껍질을 털어내며 선영이 옅게 웃었다.


 "아들이 내가 안된다 칸다꼬 굽힐 아들인가."


덕서이는 형님한테 맘 약해가 어떨지 몰라도 우리 택이는 말 없어가 조용하다 뿐이제 고집도 그런 황소고집이 읎는데. 반대한다꼬 절대 굽힐 아가 아닌데 만다꼬 나까지 괜히 아들을 잡는대요. 


 "그럼 그냥 둬? 아니, 동성동본에 겹사돈을?"
 "오빠도 그냥 두라 카데요. 한 번을 엇나간 적 없고 뭐고 반대한 적도 없는 아가 저카고 죽자 사자 조아리는데 결혼은 지 맘대로 해주고 싶다꼬."


거, 뭐라카드라. 지 잘못도 있다 카든데. 어릴 때부터 보라 아부지가 거 만날천날 사돈사돈 최서방최서방 하는 거 허허 웃고 말았드니 아가 진짠 줄 알았납다 하믄서 또 흰웃음이나 짓드만. 근데 그건 그렇긴 하데, 생각해보니까 또. 으른들이 잘못이다, 으른들이. 지금 와가 하는 말이지만서두 보라 아부지랑 그, 오빠랑 아들 어릴 때부터 덕서이 고 가시내가 싫다 싫다 울고불고 난리 칠 때부터 손 붙들어가 뭘 알지도 못하는 아들 데꼬 신랑각시 시켜놓고 와 이제사 난리데, 할끼지. 


아이고ㅡ 고마 내는 모른다. 형님도 그냥 모르는 척 하이소. 나도 머리 싸매고 드러눠 봤지. 나도 다 해봤는데, 결국 자식새끼는 못 이기겠드만요.






* * *






 "아직 아줌마 편찮으셔?"


조용히 물어오는 택의 얼굴을, 덕선은 곧이 바라보지 못한 채 시선을 낮추어 두어 번 끄덕거렸다. 다 알고 있으면서. 속없이 말간 얼굴에 떠오른 기색이 그저 무른 염려 뿐이다. 자리를 보전하고 머리를 싸매 누운 일화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제 독감보다 우선인 그가 다시 잔기침을 토했다. 눈이 펄펄 내리는 밤에 파란 대문 앞에 장승같이 오래 섰던 까닭이다. 옆을 지켰던 덕선의 몫까지 제가 다 아플 요량인 듯, 지독한 감기까지 택은 모두 다 제가 품었다. 오래된 그의 쪽방은 이제 다 큰 둘만으로도 오롯이 빽빽했고, 선영이 챙겨 준 죽 그릇만 벌써 말 없이 오 분은 휘휘 젓고 있는 덕선의 손 위로 큼지막한 손이 가만히 얹혔다. 그제야 떨궜던 고개가 모로 들려 저를 들여다보는 눈 한 쌍과 마주치는 것이다.


 "이제야 나 보네."


너 오늘 나 한 번도 안 봤어. 하얗게 질린 얼굴 가운데 또 마냥 흰 웃음이라, 왈칵 밀려오는 아픔이 제 가슴 어딘가를 먹먹하게 저며오는 통에 덕선은 찡그리듯 웃는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얼굴이 아프게 박히는 것은 택 역시도 마찬가지라, 둘은 잠시 또 말이 멎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그냥, 다."
 "미안할 것도 없다."


무겁게 고였던 감정이 결국에는 그의 손등을 적셨다. 뚝. 뚝. 서럽게 떨어지는 눈물을 닦는 대신 아예 눈을 닫아버렸지만 이미 젖은 길을 따라 눈물은 쉼없이 아래로 흘렀다. 뚝. 뚝. 흥건한 자욱을 지워주는 손이 까칠해서 조금 더 서러워졌다.


 "아주머니 많이 놀라셔서 그래."
 "....응."
 "그래서 그러시는 거야."
 "..응."


세상 사람들 다 좋은 얘기만 할 것 같나. 아니. 사람들이 그렇다. 남 안 좋은 이야기, 흉을 더 많이 본다꼬. 그럼 잘난 택이, 택이한테 손가락질 할 줄 아나. 이 가스나야, 니라꼬.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뒤에서 수근거릴 쪽은 덕서이 니란 말이다. 보라 이 가스나도 안된다, 안된다 하는 거 기를 쓰고 힘든 길 가드만 덕서이 니까지 어매 속을 와 이렇게 힘들게 하노? 와 그러는데? 대체 내 속은 은제까지 이렇게 꺼멓게 썩어야 하노? 나는 차라리 죽을란다. 니 어매 죽어 나자빠지믄 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 이 문디 가스나야!

벌겋게 충혈된 눈이 부러 독하고 야멸찬 말들을 비수처럼 쏟아내는 동안 결국 덕선은 꾹꾹 채웠던 눈물을 떨궜다. 차마 다 전하지 못한 말들이지만 좁은 동네였다. 어떻게든 돌고 돌아 귀에 들어온 아픈 말들이 택에게도 분명 생채기를 냈을 터다. 그래서 이렇게 아픈 것일 테다. 이미 터진 눈물부터 너무 멀리 가버린 마음까지 어느 하나 제 뜻대로 되는 게 없다. 덕선이 오래 우는 동안 말라붙은 입술이 가로로 길게 호선을 띄웠다. 저 대신 우는지 웃는지 모를 얼굴 둘은 판이한 듯 닮았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뚝."
 "누가 해, 그런 거."


눈물자욱을 문질러 지우면서도 핀잔이다. 억지로 일으켜 앉은 몸을 다시 뒤로 밀어 누이면서도 제 입술을 열이 오른 이마에 누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잔기침을 콜록이는 게 감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샐쭉 웃는 덕선의 미소 아래, 반듯하던 얼굴이 애열로 흐트러졌다. 그녀는 그게 좋았다. 돌부처라 불리는 이 남자가 제 앞에서만 허물어진다는 사실이. 그래서 제 앞에서조차 어른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택을 볼 때면 반대로 응석을 부리는 버릇이 생겼다. 못 말린다는 듯 순식간에 무너지는 철옹성이 보고 싶어서, 마치 지금처럼.

그래서 한 번 더 입술을 내렸다. 이번엔 마른 입술 위로 가볍게 겹치고 떨어지려 했던 것을 조르듯 놓아주지 않아 생각보다 길게 머물고 말았다. 메말랐던 입술이 촉 하고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에 부은 눈으로 키들거리며 웃었고, 이윽고 약기운으로 가물가물 잠든 눈꺼풀 위에도 깃털같은 입맞춤을 남겼다. 그러나 식은 죽그릇을 들고 나선 문 밖에서는 급격하게 침침해진 낯빛을 손등으로 급히 덮었다. 다시 눈물이 흐르기 일보 직전이었다. 지금 제가 봉황당에 와 있는 걸 알면 일화가 대번에 경을 칠 일이다. 눈까지 퉁퉁 부어온다면 다녀왔다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애초에 요 앞 슈퍼에 들른다는 핑계로 잠시 눈을 피한 참인데 그대로 봉황당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면 난리가 날 테다. 좁은 동네가 삭막해지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고, 그 원인이 '나'라는 추는 더더욱 버티기 힘든 무게였다. 잠시 호흡을 고르다 눅눅해진 소매를 힘없이 내렸을 때, 덕선은 눈을 깜빡거렸다. 


 "아줌마.."


아줌마가 뭐꼬, 인자 사돈처녀가. 장난스런 구박에도 호칭이 잘 입에 붙지 않아 여러 번 실수하던 덕선에게, 니가 내 며느리가 될라꼬 그라고 잘 못불렀납다. 하며 별 말 없이 웃어주던 선영이었다. 택이 아부지랑 나는, 암 말도 안할란다. 느그들이 어련히 억수로 생각하고 을매나 고민하고 한 말이겠노. 괘안타. 성님은 딸 가진 어무이라 내보다 더 힘들어서 그럴끼다. 너무 섭섭타 생각지 말고 쪼매만 참아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아이가. 야윈 덕선의 어깨를 안아주던 선영이 오늘도, 전부 다 안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많이 힘드나."
 "........"


아니라고는 차마 못 하겠다. 차라리 웃자. 웃어 보이자. 힘없이 입꼬리를 끌어올린 덕선에게 선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가 저번보다는 길어지는 참이라 저들 행복하자고 부모에게 반기를 드는 것도 이 세상 착한 아이들에게는 차마 못할 짓일게다. 둘째 딸 설움도 제법 아무 내색 없이 갈무리할 수 있을 만큼 훌쩍 큰 덕선의 양 볼이 푹 패여 있었다. 맘고생이 대번에 눈에 띈다. 며칠 째 보지 못한 일화의 낯도 저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기운 내라. 택이 좀 봐라, 저가 사람 꼴이가. 너라도 건강 단디 붙들고 있어야 된데이. 내 늙어가 산 송장 둘씩이나 못 치운다."
 "아이, 그런거 아니에요."


이제야 조금 웃음이 번지는 덕선의 손에서 반쯤 빈 죽그릇을 빼앗듯 들고는 거실에 앉혔다. 여서라도 좀 쉬고 가그라. 집에 들가믄 눈칫밥이라 입맛도 없을낀데. 죽을 새로 데운다며 자리를 비켜주는 선영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덕선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부은 탓에 비좁아진 시야 속 천장이 핑그르르 돌고 있었고, 급하게도 습해지는 세상을 눈꺼풀이 무거이 안으로 가둔다. 댐처럼 안으로부터 차오르는 물기가 손등의 무게에 짓눌린다. 뜨거운 온도. 가파르게 들썩이는 들숨과 날숨. 덜 마른 소맷부리가 보람없이 기어코 다시 젖어들었다.











*  *  *




수미니들 모두들 안녕하니? 벌써 2018년 마지막 날이야! :)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내 겨울의 일부는 아마 택이가 첫눈 맞던 어느 밤에 박제된 것 같아.
그냥 문득문득, 어떤 겨울날에는 잊었던 첫사랑처럼 선택이 생각나.
리플레이랑 연재분을 다 가져오기는 양이 많아서 고민했고, 
또 너무 오래 다듬다가 시기를 놓쳤지만 그래도 뒤늦게 뒷이야기 조금 쪄왔어. 
혹시 아직 선택을 기억하는 수미니들이 있다면 같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ㅠㅠ




  • tory_1 2018.12.31 03:31
    오오 반갑다 토리야ㅠㅠ
  • tory_2 2018.12.31 06:24

    이런 선물같은 토리를 보았나!!!!

    고마워 토리야 잘 볼게 ㅠㅠㅠㅠㅠ

  • tory_3 2018.12.31 06:54
    고마워 토리야!
  • tory_4 2018.12.31 09:11

    와 고마워 톨아! 겨울엔 택이지 ㅠㅠ

  • tory_5 2018.12.31 11:39
    토리야 잘 볼게ㅠㅜㅜㅜㅠ
  • tory_6 2018.12.31 18:55
    토리야 왔구나 ㅠㅠㅠ 고마워 ㅜㅜㅜ
  • tory_7 2019.01.02 00:26
    반가워서 단숨에 읽었어~ 잊지않고 와줘서 고마워^^
  • tory_8 2019.01.02 14:22

    오랜만에 창작방 왔는데 선택글이 보여서 정말정말 너무너무 반갑다!!! 읽기 전에 댓글부터 달고ㅠㅠㅠ 와줘서 고마워! 새해 복 많이 받아!

  • tory_9 2019.01.02 15:34

    새해 첫 선택글 너무 좋다 헤헤

    수미니들 모두모두 해피뉴이어

  • tory_10 2019.01.02 20:51
    내 겨울의 일부는 아마 택이가 첫눈 맞던 어느 밤에 박제된 것 같아222 내 겨울도 그러하다ㅠㅜㄴ
  • tory_11 2019.01.04 01:14
    와 너무 좋아ㅠㅠㅠㅠ
  • tory_12 2019.01.07 17:02
    미쳤어ㅜㅜㅜㅜ 선택글이라니ㅜㅜㅜㅜ 금손수민아 어서 또와라♥♥♥
  • tory_13 2019.01.08 15:51
    헐 이게뭐야 ㅜㅜ 겨울이고 재방도해서 선택보고 추억에 잠겼었는데 오야 잘왔데이ㅜㅜ 그래서 뒷편은? ㅋㅋㅋ 우리 택이 아프면 안되는데ㅜㅜ
  • tory_14 2019.01.13 03:59
    안그래도 요새 선택 생각이 부쩍 났는데 이런 금쪽같은 글이 올라왔다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또 와라 수민아!!!나 맨날 기다릴거다!!!
  • tory_15 2019.01.15 10:47

    나 이거 ㄱㅇㅋ시절부터 10번 넘게씩봤다!!!!!! 더더더더더덛 올려주세요ㅠㅠㅠ

  • tory_16 2019.01.16 21:53
    고맙다ㅠㅠㅠㅠㅠ
  • tory_17 2019.01.18 16:57
    ㅠㅠㅠㅠㅠㅠㅠ토리야 너무 반갑다ㅠㅠㅠ겨울하면 늘 생각나는 택이....덕서니......계속계속 많이많이 올려주렴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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