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사람을 함부로 단정 짓는 건 옳지 않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험난하겠군.’

 

 모험가는 사과주를 두 모금 정도 마시며 생각했다. 몇 모금 더, 그러니까 얼음이 혀끝에 닿기 시작했을 쯤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두자 무의미한 상념이 가시기 시작했고 현실로 돌아오자 등 뒤에서 왁자지껄 떠들썩하던 폭력적인 소음 역시 어느새 제법 잦아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손끝이 시렸다.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펴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뒤편을 곁눈질해 보니 문 밖으로 핏자국 같은 게 질질 문대져 나간 흔적이 보였다. 설마 아직까지 재미를 보고 있을까. 약간 질린 표정을 하고 있을 적에, 귀 뒤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라도넨은 처음인가?”

 

 주점의 주인장이었다. 그는 막 물로 씻어 닦아낸 목잔을 걸어놓으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처음은 아닙니다. 4년 전에 한 번 왔었거든요. 많이 바뀌었더군요.”

“뭐, 아까 얼굴이 시퍼렇게 변하는 게 웃겨서 물어봤네. 그 때야 비교하면 많이 번성했지. 전쟁의 여파는 아직 한참 남아있지만. 보아하니 용병은 아닌 것 같고….”

 

 노골적으로 본인을 흘기는 시선이 느껴졌기에, 모험가는 대답 대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분위기가 참 자유로워서 마음에 드네요.”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그 들개 녀석이 덧창을 몇 개나 부쉈는지 알아? 그것도 사람 얼굴로다가!”

“유명해 보이던데요.”

“나쁜 쪽으로 말이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박차진 문이 쿵쾅대며 열렸다. 이윽고 구부려진 건 얄궃게 생긴 주인장의 하얀 눈썹이었다. 어느새 모험가에게서 시선을 떼어 저 무식한 소음의 주인공을 봐버린 탓이다. 마치 내가 여기 있다고 대문짝만하게 홍보라도 하는 듯 저벅 저벅대는 부츠 굽 소리가 들렸다. 이어진 욕지거리. 수준 낮은 욕설에 선동당해 반응하는 주변의 호응. 공기의 흐름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저 정도면 골치겠지.

 

 모험가는 검지로 테이블을 두 번, 톡톡 두드렸다.

 

“곤란하시겠어요.”

 

 문득 주인장의 눈이 빤히 후드 아래의 얼굴을 보았다. 그 시선을 멀거니 받아주고 있자니, 큼큼대며 헛기침을 하고선 아까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모험가의 등 너머 금세 시끌벅적해진 무리를 노려보는 주인장. 입술이 우물우물 거렸다. 분에 차지만 차마 마구잡이로 내뱉을 순 없다는 듯 짜증에 억눌린 목소리로 대답이 이어져 나왔다.

 

“…그걸 말이라고! 저 녀석이 여기 눌러 붙게 된 뒤로, 하루도 마음 놓고 자질 못 한다고.”

“사과주 맛이 좋아서 그런가.” 모험가는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저 분이 없는 쪽이 주인장의 불면증과 가게 매출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굳이 행패를 부리지 않더라도 말이야, 저 짐승이 달아 놓은 외상도 이젠 셀 수가 없네.”

 

 쯧! 그는 수염을 만지며 혀를 찼다.

 

“하지만 딱히 좋은 수가 없지 않은가.”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겁니다.”

 

 이번 역시도 확신에 찬 어조로 모험가는 말했다.

 

“제가 데려가면 되니까요.”

 

 본인이 뭘 들었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있는 게 분명한 멍청한 낯으로 바라보는 그의 얼굴을 외면하고, 모험가는 허리춤의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잘각잘각대는 동전들의 묵직한 마찰음이 들렸고, 그것을 테이블에 내려놓자마자 호기로울 정도로 명쾌하게 주머니를 쥐었던 손이 제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외상 값, 포함해서. 저 분이 가장 좋아하는 술과 음식들을 전해주세요. 넉넉히요.”

 

 

 

*

 

 

 

 모험가는 흘긋 열려 있는 덧창 사이를 보았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멎고 구름 한 점 없이 까만 하늘이 있었다. 얼음이 다 녹아버린 사과주 잔을 곁에 둔 채 가만히 시간을 죽이길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그 말마따나 정말 주인장은 끊임없이 음식을 내어 자신을 스쳐 지나가 이름 모를 들개에게 바쳤다. 지친 얼굴이었음을 미루어 보았을 때 본인의 장사를 위해 일부러 가져다주기보단 엄청난 대식가에게 재수 없이 걸린 것이려니 싶었다.

 그 뒤로 십 여분의 시간이 더 흘렀다. 모험가는 졸린 기색도 없이 아직까지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무의미하게 오른손으로 미적지근해진 사과주 잔을 흔들며, 모험가는 끊임없이 다음의 여정에 대해 생각했다. 몇 번을 골몰했지만 계속해서 같은 결과가 도출되었다. 다음의 여정을 위해선 내일 아침 저 사람이 자신의 곁에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또 몇 분의 시간이 더 흘렀다. 더 이상의 추가 주문은 없는 모양인지 주인장이 비틀비틀한 걸음으로 카운터 안쪽에 들어가는 걸 보면서, 모험가는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둔탁한 부츠 굽 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벅, 저─벅, 저벅, 제대로 술기운이 도는 모양인지 일정치 못한 발소리였다. 모험가는 그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약 한 시간이 넘는 기다림 끝에 그녀를 등 뒤까지 불러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야.”

 

 거리가 좁혀지자 물씬 술 냄새가 풍겼다. 어떻게 반응할지 고민하기도 전에, 턱하니 테이블 위에 단단한 손이 얹혔다. 천장의 불빛을 삼키고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모험가는 눈동자만 굴려 자신을 가두듯 올려진 손을 보았다. 흉터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자리였다.


 이어지는 나지막한, 호흡.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주변의 소음 속에서 들릴 정도의 긴 숨소리가 느껴졌다.

 마침내 들개가 입을 열었다.

 

“너 뭐야.”

 







-

읽어줘서 고마워 ! 흔한 정판 배경의 모험가와 모험가에게 고용된 들개(...)의 이야기야 ^ㅅ^

쓰고싶은 장면과 이야기는 저허어어엉어어어기 멀리 있는데 이제야 주인공 둘이 얘길 나누기 시작하다니 ㅋㅋㅋ큭..큽..

비 엄청 많이 온다.. 다들 감기 조심해~~


  • tory_1 2018.12.10 00:54
    헐 ㅠㅠㅠ토리야 다음편 기다렸었어....
    너무 재밌어... 계속 연재해줘!! 기다릴게 ㅠㅠㅠ
    글 읽으면서 장면들이 상상되는거 같아.. 글 너무 잘쓴다!!
  • tory_2 2019.02.27 20:31

    정통 판타지 진짜 좋아하는데 뒷 내용이 궁금하다 8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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