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이 길드에서 가장 강한 용병을 찾고 있어요.”

 

 바 테이블 위로 잘그락대는 동전 소리가 들렸다. 접시를 닦고 있던 블라크는 스튜가 반 정도 남은 그릇에서 시선을 떼어 눈앞의 앳된 모험가를 쳐다본 후 마지막에야 바 테이블을 슬쩍 흘겼는데, 그곳엔 스튜 값에 넉넉히 팁을 더 얹어 지불한 듯 말끔한 은화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블라크는 짐짓 놀란 기색을 숨기며 내리깐 눈을 올렸다. 눈을 올리자 후드 아래의 호박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는데, 꼭 기다렸다는 듯 그를 향해 눈매가 휘는 게 퍽이나 선한 인상이었다. 그는 부러 헛기침을 했다. 두어 번 정도.

 

“용병들에 대한 정보라면 게시판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건데, 길드 로비에 부착되어 있는 걸 보지 못했나?”

“물론 보았습니다.” 모험가는 선뜻 대답했다. 차분하고도 정직한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거기에서 찾는 게 나을 거요. 뒷돈을 찔러 넣어주니 뭐니 얘기가 많아서, 이런 식으로 알선해주는 건 여기에선 금기시되어있으니까.”

“제가 찾을 만한 사람은 주인장께서 알고 있을 거라 하던데요.”

 

 그는 무심코 한산한 식당 안을 눈짓으로 훑었다. 어떤 자식이야? 나한테 미룬 게! 보아하니 처음 보는 얼굴에 멀끔하니 별로 떠돌아보지도 않은 것 같은데. 또 어딘가의 저택에서 글을 쓰는 게 지루해 뛰쳐나온 도련님이거나, 소농가에서 칼질이나 몇 번 해보다 온 뜨내기겠지. 그는 이 상황이 슬슬 내키지 않게 느껴졌다.

 

“누가 그런 헛소릴 지껄인 진 모르겠지만, 여긴─”

“갈카쉬 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갈 겁니다.”

“그래, 그러니까 갈카쉰지 뭔지……… 뭐?”

 

 블라크의 버석하게 굵은 눈썹이 기우뚱 올라갔다. 몇 초 후, 그는 막 목을 친 생선의 눈알처럼 마냥 험상궂던 미간을 풀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란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갈카쉬 산맥을 넘겠다고? 자네 제정신인가?”

“…다행히도 멀쩡한 것 같네요.” 후드 아래 마냥 반듯하기만 했던 얼굴이 처음으로 머쓱한 기색을 표했다.

 

 어쨌거나, 눈앞의 모험가는 이제 블라크에게서 물러날 생각이 조금도 없는 듯했다.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었겠지만. 장갑을 낀 두 손이 스튜 그릇을 옆으로 밀어내고 그 위를 꿋꿋하게 짚었다. 자연스레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져 두 사람의 간격이 좁혀졌다.

 

“그러니 강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등급은 상관없어요. 체격이 좋으면 더 환영이고요. 마법사는 조금 곤란하니, 되도록이면…”

“잠깐, 잠깐, 잠깐!”

 

 후드 아래 동그랗게 드러난 코에서부터 반 뼘 정도의 거리에 손바닥이 섰다. “그만하게.” 그 말을 꺼내자 모험가는 꾹 입을 다물었다. 이어진 약간의 정적.

 

“알겠네, 알겠어. 자네 같은 어린 도련님이 무슨 연유로 그 산맥을 넘으려는 진 모르겠다만,” 그 대목에서 호박색 눈은 세 번 정도 깜빡여졌고, 동시에 약간 기울어지는 고개를 블라크는 알아채지 못했다. “강한 녀석이라면 알고 있긴 해. 북방 출신이라 기골도 만만찮지. 다만….”

 

 그는 약한 한숨을 쉬었다.

 

“용병 짓을 삼 년이 넘게 했는데도 아직 동패를 못 뗐네. 의뢰를 세 번 받으면 한 번은 고용인을 두들겨 패거나 산에 버려두고 혼자 내려와 버리던가 하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나? 아주 망나니 같은 녀석이라는 거야.”

“마법사인가요?”

“아니. 하지만 손에 잡히는 거라면 뭐든 휘두를 줄 알지.”

“좋네요.”

“좋다고?”

“네, 좋아요. 당장 만날 수 있다면 더 좋겠어요.”

“자네, 내가 한 말은 방금 어디로 흘려들은 건가? 걘…”

“이름이 뭐죠?”

“하!”

 

 블라크는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그는 이제 죽고 싶어 안달 난 듯한 이 어린 모험가의 안위엔 신경을 꺼버리기로 하고, 대신 바 테이블 위의 동전들을 손날로 긁어 챙겼다.

 

“아무도 그 망나니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

 

 다시 시선을 마주했을 때, 호박색 눈은 어쩐지 빛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건 어떤 모종의 확신에 차 있는 눈이었다.

 

“그 녀석은……….”

 

 

 

*

 

 

 

 라도넨에 도착했던 게 노을이 뉘엿 져가는 무렵이었건만, 식당의 문을 열자 벌써 하늘엔 어둑하게 밤이 깔려 있었다. 지붕 처마 끝에 걸려 일렁이는 램프 불을 가만 바라보던 모험가는 곧장 걸음을 옮겼다. 내딛은 걸음 위로 습한 흙냄새가 났다. 곧 비가 올 것이다.

 

 도시 외곽의 인적 드문 골목 옆, 주인장이 알려준 벽에 기대어져 있는 붉은 나무간판과 검은 누더기를 걸친 늙은 노숙자를 찾기까지 꼬박 삼십 분이 더 걸렸다. 그 사이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비는 골목 안의 악취를 느리게나마 가라앉혔다. 모험가는 왼 손을 들어 눌러쓰고 있던 후드를 조금 당겼다.

 

 골목의 어둠 사이에서 열려 있는 덧창 너머로 노란 불빛이 흔들대었다. 그 사이로는 주점 특유의 시끌벅적한 소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거친 녀석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니만큼 행실을 조심해야 할 것이라던, 떨떠름한 주인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렴.

 

 평정심은 자신의 가장 큰 무기였다. 적어도 모험가는 그렇게 생각했다. 문고리를 잡아 열자마자 눈앞에서 박살나 날아가는 이 몇 개와 흩뿌려진 코피를 보았을 때에도 그리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실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동그랗게 판을 만들어 몰려든 인파의 웅성거림과 피떡을 만들라니 죽이니 하는 용병들의 목소리가 일제히 멎고 수많은 시선이 문으로 꽂혔다. 이제 소음이란 걸 만들어내는 작자는 바닥에 널브러져 제 으스러진 코를 쥐어 잡고 돼지 같은 신음을 흘리는 가죽옷의 남자밖에 없었다.

 

 모험가는 그 몇 초간의 정적 동안 정말 수많은 생각을 했다. 모른 척 얌전히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선다. 아니면 야아,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게 없죠! 라고 능청을 떨며 다가가 자연스럽게 인파 사이에 끼어들던가, 혹시라도 본인이 멱살을 잡힐 가능성, 얼굴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 그런 것들을. 하지만 그 어디에도 ‘문을 닫고 되돌아 나간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어쨌거나 곤란한 상황임이 분명했다. 그렇다 할지라도 움직여야 한다고 결정을 내리기까진 단지 그 몇 초만이 걸렸을 뿐이다. 그래, 들어가자. 모험가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지금 어디에 한 눈을 파는 거야?”

 

 술이라도 들어간 마냥 나른한 어조에 비해 분을 삭이지 못하는 듯 거칠게 긁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 꼴 좀 봐라.” 시선의 집중점이 이동하기까지는 다시 순식간이었다. 따라서 모험가의 시선도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옮겨졌다. 제 피가 아닐 게 분명한 것이 움켜쥔 주먹에 얼룩덜룩 달라붙어 있었다. 북방인 특유의 형형한 붉은 눈이 인상적인 젊은 여자였다.

 

“이 새끼 꼴 좀 보라고.”

 

 목까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여자는 친히 본인이 으스러뜨려준 코를 부여잡고 있는 남자의 배를 향해 몇 번 발길질을 했다. 묵직하게 사람의 몸이 걷어차이는 소리를 중심으로 인파의 웅성거림이 다시 퍼져 오르기 시작했다. 흥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대로 물어뜯어!” “아주 그냥 병신을 만들어 버리자고!” 모험가는 그 광기 같은 분위기 속에서 슬그머니 걸음을 옆으로 옮겨 벽에 붙어 걸었다. 여자와 시선이 마주친 건 그 도중이었다. 여자는 분명 웃고 있었다. 마치 보란 듯이. 그리고 그 웃음을 본 순간, 모험가는 단숨에 알아채고 말았다.

 

 당신이 ‘들개’구나.

 





-

정통 판타지 소설이 너무 고파서 쓴 글이야 ㅋ 내가 좋아하는것들을 막넣어서 주무르고싶었어

엘프와 드워프 인간 수인 용과 마물이 있는 대륙이고 마법사도 용병도 모험가도 있어 완전 흔한 정판세계관이지 챠하하

진리를 찾아 떠나는 모험가와 그 모험가에게 고용된 용병의 이야기인데

장편으로 계획해놓긴 했지만 현생이 넘 바빠서.. 시간나는대로 끄적대는 중 ㅎㅎ

손가는대로 막 쓰니까 더재밌는거같아 ㅋㅋㅋ 취향인 글을 쓰는것도 참 즐겁구 그췽~~~~  읽어줘서 고마워 !!




  • tory_1 2018.11.04 23:09
    분위기 취저다ㅜㅜ 담편도 써주세요 센세...
  • W 2018.11.05 12:18
    우핫ㅋㅋㅋㅋ 토리의 취향을 저격했어?? 기쁘닷!!!
    쪼꼼쪼꼼씩 적어나가고 있으니 담편도 꼭 올릴게! 기..기다려줫~!!~!
  • tory_2 2018.11.05 01:39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일시: 2020/10/28 03:02:48)
  • W 2018.11.05 12:19
    항상 나 혼자만 쓰고보고 하다보니 누군가가 내 글을 재밌다고 생각해주는게 넘 감동으로 다가오는것같아ㅋㅋㅋㅋ
    고마워!! 힘내서 더 써올게ㅔㅔㅔ
  • tory_4 2018.11.08 15:42

    뭐야뭐야재밌어 ㅋㅋㅋㅋㅋ 연재해줘 ㅋㅋㅋㅋ 뭔가 막 그림 그리고 싶어진다 ㅋㅋㅋㅋ

  • W 2018.11.08 23:08

    아 정말? ㅋㅋㅋㅋㅋ 사실 난 이 이야기가 웹툰으로 연재되면 더 재밌겠다고 생각하거든 ㅋㅋㅋㅋㅋㅋ 그런 마음이 들다니 너무너무기쁘다 ㅠㅠ 한 100년쯤뒤에 이 소설이 재밌다고 인정받으면 그림 작가 구해서 웹툰으로도 구현해봐야겠어 챠하하(대빵 큰 꿈..)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전체 【영화이벤트】 7년만의 귀환을 알린 레전드 시리즈✨ 🎬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예매권 증정 66 2024.04.23 1234
전체 【영화이벤트】 F 감성 자극 🎬 <이프: 상상의 친구> 예매권 증정 56 2024.04.22 1359
전체 【영화이벤트】 이미 2024년 최고의 공포 🎬 <악마와의 토크쇼> 레트로 핼러윈 시사회 107 2024.04.16 5529
전체 【영화이벤트】 두 청춘의 설렘 가득 과몰입 유발💝 🎬 <목소리의 형태> 시사회 15 2024.04.16 4289
전체 디미토리 전체 이용규칙 2021.04.26 566208
공지 창작방 공지 29 2017.12.15 14091
모든 공지 확인하기()
1154 만화 [BL] 애정전선 3화 4 2024.04.18 70
1153 만화 [BL]애정(愛情)전선 2화 6 2024.03.29 127
1152 그림 동물 캐릭터 연필 드로잉 8 2024.03.16 267
1151 만화 [BL] 애정전선 7 2024.03.15 185
1150 그림 플레이브 팬아트 3 2024.02.12 322
1149 그림 2024 새복많이 받아라!~ 6 2024.02.09 251
1148 소설 [열시십오분/BL][센티넬버스] 윤지호 가이드입니다 完 1 2024.01.31 125
1147 소설 [열시십오분/BL][센티넬버스] 윤지호 가이드입니다 24 2024.01.30 86
1146 그림 프린세스메이커Q 카렌 6 2024.01.25 380
1145 소설 [열시십오분/BL][센티넬버스] 윤지호 가이드입니다 23 2024.01.24 59
1144 소설 [열시십오분/BL][센티넬버스] 윤지호 가이드입니다 22 2024.01.17 72
1143 그림 뉴진스 민지 7 2024.01.14 449
1142 소설 [열시십오분/BL][센티넬버스] 윤지호 가이드입니다 21 2024.01.10 77
1141 그림 그림 좀 봐줄래?어떤지 학원을 다녀야 할지... 4 2024.01.09 491
1140 그림 청룡 자매 7 2024.01.05 340
1139 소설 [열시십오분/BL][센티넬버스] 윤지호 가이드입니다 20 2024.01.03 70
1138 소설 [열시십오분/BL][센티넬버스] 윤지호 가이드입니다 19 2023.12.27 100
1137 기타 [BL] 2년전에 그렸던 거 다시 그려봤어 3 2023.12.20 481
1136 소설 [열시십오분/BL][센티넬버스] 윤지호 가이드입니다 18 2023.12.20 280
1135 그림 칙칙한 크리스마스 그림 외 몇장 13 2023.12.18 643
목록  BEST 인기글
Board Pagination 1 2 3 4 5 6 7 8 9 10 ... 58
/ 58

Copyright ⓒ 2017 - dmito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