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여즉껏 살아있었냐고 지겨운 눈으로 묻는 아이가 보인다. 퀭한 눈으로, 아파트 지하의 창고 앞에 몸을 수그리고서 좁은 공간에서 양 무릎과 손바닥이 닿는 안정감을 즐기고 있다. 고작해야 그것 정도의 만족 밖에 모르던 아이였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죽음이 꿈이고 미래였다. 저 먼 곳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의 물살이 하얀 부들 하나라도 멀리 옮기는 것처럼, 그녀에게도 인생은 과거로부터 죽음으로 흘러가는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죽음을 살폈고 때때로 시도했고 대학병원의 응급실에서 깨어나 화들짝 먼 목소리로 여기가 어디냐 물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담배를 끊지 못하듯, 나는 삶을 끊지 못하였다. 큰아버지가 보고 온다던 경마와 삶은 닮았다. 우승마를 뽑긴 참 어려운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끝없이 마표를 뽑아 객석에 앉아 오도카니 기다린다. 찬 바람이 코끝을 얼얼하게 얼려도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온갖 것을 전당포에 팔고,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 휑한 머리칼을 하고서도 그저 더! 더! 한판만 더. 한판만 더하면 무언가 달라질 것 같아… 우리네 인생도 그와 닮았다.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가능성이 민들레 홀씨만큼이라도 있음 어떡하냐고. 그래서 끝끝내 죽지 못하고 엄지발가락에 힘만 주었다 낭떠러지에서 돌아오길 번번이 수십 번쯤. 아직 행복은 오지 않았다. 이쯤 되면 도박 중독자들만큼이나 삶 중독자들도 그저 고통을 즐기는 것뿐 아니냐는 반문이 가능하다. 나도 때때로 나의 마조히즘을 의심한다.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는 글줄들을 찾아 헤매며 수많은 책등을 뒤집어 엎고, 재미도 없는 술자리에 나가서 새로운 남자를 만날 때마다 어쩌면 나는 그저 피학을 즐기는 것뿐이 아니냐는 자조가 든다. 실제로 나는 인생에 끔찍한 일이 생김 희한하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기분 좋은 느낌이 슬며시 고양이 털결처럼 뇌를 쓰다듬는 느낌이 난다. 이럴 줄 알았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 또 여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우리가 더 행복하길 원하기보다, 덜 불행하길 원해. 친구에게 그리 말하며 친구의 석사 자퇴를 찬성하고 돌아오는 날에 씁쓸한 회의감이 달무리처럼 내 발 뒤꿈치를 잡아당겼다. 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더 행복해질 권한도 없는 걸까. 내가 불행한 일들을 기록해보면 다 별 수 없는 것들 뿐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가족들. 경제적 빈곤. 쑤시는 몸. 이미 고장난 꼬리뼈 부근의 척추. 부푸는 위장. 한번은 숫자로 감정을 추려 일일이 기억해보았는데 간혹 기쁜 일이 생기더라도 슬픈 일이 몇배로 닥치며 그의 대부분은 내 가족과 경제 사정, 플러스로 몸의 쇠락 때문임을 알았다. 그때 참 비참했다. 이것들이 없이 태어난 자들은 삶을 누리며 행복을 찾는 것이고 나와 친구는 그저 죽어가는가 싶어서. 하루를 살아도, 영화관을 가도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할 수 있는 보통의 사람이란 것들이 참 부러워 하루를 꼬박 우는 날들도 많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노력하는 일뿐이라고. 그래서 몸이 더 사방으로 잡아당겨져 쥐어뜯어 터지는 느낌이 날 정도로 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건강이 더 악화되어 몇시간을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게 되었다. 스펙은 좋단다. 스펙은, 좋단다. 얼마나 더 살아야 하나. 나는 또 그 미래로 흐르는 강물 위에 서있다. 여즉껏 살아있어? 열네 살 그 애가 뾰족한 눈으로 내게 되묻는다. 그러게 말야. 인간이란 건 참 우스운 존재라. 온 사람들이 서로에게 죽으라 떠밀고 있는데 정작 포탈 사이트에 자살이란 단어조차 검색하면 난리가 난다. 희한한 노릇이다. 다정함은 약자의 몫인가보다. 나는 맘이 너무도 아파 사람들이 서로에게 다정하길 꿈꾸었는데, 보통의 사람들은 마음이 참 단단하고 가정도 좋고 경제사정도 좋아서 서로에게 그렇게 칼을 들이대나보다. 그도 아니면 그들도 그들인가. 그들도 나와 같이 강물을 보고 있는가. 그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질 가능성을 찾아 좁은 틈으로 칼을 찔러넣는 것이 그것들이었는가. 누군가는 남에게 500원을 주면 행복하듯 누군가는 남에게 500원을 빼앗아야 행복한가. 그야말로 수라도 같은 이 삶 속에서 행복을 쟁취할 사람이 있긴 한가. 나와 당신은 행복한가. 

  • tory_1 2018.10.08 17:12

    아직도 살아있냐는 말이 내 가슴도 찔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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