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하얗게 김이 서리는 겨울의 창문.

손등까지 덮은 스웨터 소매로 쓱싹거리며 창문을 닦고 눈이 내리는 먼 거리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은 큰길에서 잠깐씩 보이고, 나는 그 사이 넓은 동네길로 걸어올 누군가를 생각한다.

팔을 넓게 창틀에 받치고 머리를 기대어 비스듬히 바라본다.

다시 뿌얘지는 창을 마지막으로 닦아내고 나면, 거짓말처럼 멀리에서 종종걸음으로 목도리를 휘휘 두르고 네가 가까워진다.

1층에서 뚜렷한 인기척이 들리고 나는 바로 내려간다.

"왔어?"

"비오 잘 있었어? 어휴 눈이 너무 내려서 모자에 눈 쌓인 거 봐. 엄청 많지?"

너는 한숨을 푹 쉬어보이며 손가락 끝으로 머리 위를 가리켰다. 귀여워... 앗, 마냥 귀여워할 때가 아니다. 얼른 옷 갈아입고 씻으러 가야지.

"춥지? 옷 갈아입고 얼른 씻어."

"응. 따뜻한 물... 너무 그리웠어."

너는 언제 울상 지었냐는 듯 눈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로 방으로 한 걸음씩 옮겼다.

다 씻고 기분 좋은 향을 내며 나오는 너는 식탁에서 작업하던 내 앞에 앉아 엎어지듯 눕는다.

"비오야, 지금 바빠?"

"응? 아니... 안 바빠."

객관적으로는 사실이 아닐지 모르지만, 너에게는 늘 시간이 많기 때문에 이건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몸에 변화가 생기는지 집중해봤지만 마음을 존중해주는지 잠잠했다.

너는 빙긋 웃다가 손을 뻗어 노트북 화면을 그대로 천천히 덮었다.

"나랑 놀자."

단축키 만드신 분... 감사합니다. 이미 너의 말을 듣자마자 저장 버튼을 늘렀던 나는 굳이 더 신경쓰지 않고 잠시만, 말하며 노트북을 방에 두고 나오러 방으로 향했다.

들어가는 김에 아까부터 입고 있던 스웨터를 홈웨어로 갈아입고 있는데, 뒤에서 문이 소리없이 크게 열렸다.

"근데, 비오야... 아...!"

들어오던 너는 놀란 듯 쾅 소리나게 문을 닫았다.

나는 잠시 멈춰 있다가 상의를 마저 내리고 차분하게 문을 열어 거실로 나갔다.

소파에 두 다리를 끌어안아 웅크리고 앉아있는 너.

"...미안."

"미안."

우리는 동시에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다.

"왜 너가 미안해?"

"네가 뭐가 미안해?"

이번에도...

이러다가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가만히 바라보니 너가 발을 바닥에 내리고 앉았다.

"네 허락도 없이 방에 그냥 들어가서."

그래서 미안하다고... 아래 어디쯤을 바라보는 너.

나는 낮게 웃고 말했다.

"나야말로, 문을 열어둔 건 내 책임이잖아. 그러니 너도 그냥 들어온 것이겠지. 마음 쓰지 마."

"그래도...!"

난 집주인이고, 넌 세입자인데, 내가 갑인데, 몸을 그렇게 막 아무 때나... 말하던 너는 입을 꼭 다물었다.

"내 몸이 이상해?"

묻는 말에, 너는 입이 떡 벌어져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안 이상해! 완전 예뻐! 비오 벗은 몸 최고!"

속사포같이 내뱉은 너는 갑자기 또 우주에 덩그러니 남겨진 표정을 짓더니 웃기에도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된 거 아닐까? 난 너한테만 좋은 모습으로 보이면 돼. 그리고..."

변함없는 웃는 표정으로 너의 얼굴 옆에 속삭인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잖아."

천천히 뒤로 물러서면 보이는 얼굴은 순식간에 홍당무가 돼있었다.

꽤 매운 주먹으로 '그런 말은 아디서 배웠어' 얘기하며 쾅쾅 내 가슴께를 때리다가 너는 서서히 멈추고 물었다.

"운동했어? 요새?"

티가 나나? 그냥 작업이 막히면 생각나는 대로 몸을 풀어주려고 하긴 했는데.

"그건 왜?"

"상체가 근육이 붙은 거 같아."

원래도 근육이 좀 있었지만 좀 더 제대로랄까, 중얼거리며 너는 말했다.

"운동을 하긴 했는데 가끔씩 한다고 생각해서 티가 날 줄은 몰랐네."

"와 역시 했구나! 어쩐지. 아까 뒷모습도..."

"?"

"...좀 달라보였는데."

그래서 그랬구나, 작아지는 목소리 끝에 나는 다정하게 물었다.

"그래서 우리 뭐 하고 놀까?"

"청소하고 놀면 되겠네."

방금... 뭘 들은 거지? 갑자기 들리는 낮고 청아한 목소리의 주인은.

"김태희? 오늘은 좀 일찍 왔네?"

"형, 청소하고 논다니 무슨 말이야?"

현관에 서있던 형은 화이트보드를 톡톡 두드리고는 말했다.

"오늘 거실 대청소 하기로 한 날이잖아. 전에 해서 오래 안 걸려. 다들 잊어버린 거 아니지?"

"아, 이런..."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익숙하게 청소도구를 가져오려는데 태희 형이 먼저 방에서 오래된 노란 전화기를 가져왔다.

"이거 누구 물건이야?"

"난 아니야."

처음 보는 물건이고 오래되어 보이니 아마도 그 애의 것이 아닐까. 역시 너는 멀리에서 한달음에 달러오더니 말했다.

"그거 우리 엄마 거야!"

"아 그렇구나, 어쩐지. 오래되어 보인다 했어."

"그게 거기 있었구나..."

말하던 너는 엄마 물건이라는 말과는 조금 다르게 꼭 자신의 물건인 것처럼 소중하게 전화기를 만졌다.

"전화기에 소중한 추억이 있는 것 같네."

"맞아. 나 어릴 때부터 있던 전화긴데, 이걸로 엄마랑 통화 많이 했거든."

나는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는데 태희 형이 예리하게 질문했다.

"집에서 쓰는 전화기라지만 엄마 거라면서요. 왜 엄마가 아니라 네가 이 전화기를 더 많이 썼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

그렇네. 1초의 정적이 잠시 영원처럼 느껴지고, 너는 입을 열어 밝은 척 말했다.

"우리 아빠가 엄마랑 전화할 때, 나도 바꿔 달라고 했거든."

마른 걸레로 바닥을 훑으며 생각했다.

그 전화기를 어머니에게 선물한 너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하고.

집번호를 어머니 휴대전화에 저장해주고 집에 있는 시간에는 항상 바쁜 당신을 기다리며 여기에 있다고 말해주는 아버지의 애정이 모델 일로 늘 바쁜 어머니에게는 어떤 의미였을지.

어느날 너의 곁에서 조금 일찍 하늘나라에 가신 너의 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전화기에 닿고 싶으셨을지, 아니면 멀어지고 싶으셨을지.

아무렇게나 대해서가 아니라 너무 소중해서 사라졌던 게 아닐까.

그 전화기는.

"요즘은 엄마를 이해할 수 있어서, 전화기가 아무 데나 있었던 게 엄마의 진심이 아니란 걸 알아. 차라리 사라져버리면 좋을 정도로 아빠를 떠올리는 게 많이 속상했을 거야."

나는 묵묵히 들었다. 너는 역시 굳세고 선한 아주 멋진 사람이다.

"지금은 그런 생각도 들어. 어쩌면... 그 전화기보다도 더 많이 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는 나였을 것 같다고."

혼란스럽고 바쁜 모델 생활. 동경하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마냥 기쁘지만도 평화롭지만도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너는, 그럼에도 늘 빛나고 있다.

창밖을 수놓은 밤하늘의 별이 빛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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