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어느  동생이  말이 있다며 퇴근  회사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하자고 문자를 보내왔다. 망설임 없이 그러자고 대답하긴 했지만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말이란  뭘까. 동생도 그간의 나의 내적 갈등을 눈치챘던 것일까. 만일 그게 대화 주제라면 이걸 어떻게 어색하지 않게 풀어나가야 하나. 나는 맘이 불편해서 퇴근   시간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퇴근 직전 다른 부서에 심부름을 갖다 왔더니 카페에는 동생이 먼저  있었다. 유리창 너머 멀리서 오는 나를 보자마자 동생은 해맑게웃으며 팔을 휘저었다. 그런데 동생 곁에  명이  있었다. 카페에 들어서고 나서야 나는 그게 김대리라는  깨달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나는 동생이  말이라는  뭔지 눈치챘다.

 

               동생은 둘이 벌써  달째 만나는 중이라고 했다. 어쩐지 한국에 아는 사람도 없는 애가 주말마다 바쁘길래 만나는 사람이 있나 했더니그게 바로 사수였다. 그동안은 조심스러웠지만 이제는 확신이 들어 공개적으로 만나려 하는데 나한테는 먼저 말해주고 싶었단다. 해맑게 커플링을 자랑하는 동생 곁에서 싱글벙글 하는 김대리의 모습을 난생처음 보고 있자니  사람이 내가 알던 김대리가 맞나 싶었다.

 

               나는 사적인 감정을 떠나 공개적인 사내연애는 재고해보라고 했다. 서른인 대리야 그렇다 치지만 이제 20 초중반인 동생은 너무 어렸다. 하지만 동생은 자기는 그런  상관없단다. 오히려 일찍 결혼하면 페루에 계신 부모님이 좋아하실 거라는 반응이었다.

 

언니, 그거 알아?  사람 진짜 멋있는 사람이야. 겉모습은 그냥 아저씨 같아서 사람들이 놀리는데 속이 진짜 멋있어. 알고 보면 엄청 똑똑하고. 그래서 내가 재빨리 ! 잡았지. 그랬더니 뭐라 그러는  알아? 내가 자기 이상형이래. 나는 맨날 혼내길래  싫어하는  알았어.”

 

               김대리는 내가 입사하던  날부터  사수였기에 나는 본의 아니게 그의  여자친구를 알고 있었다. 6년을 사귀었다던 그의  여자친구는 나와 동생과는 정반대로 날카로운 눈매에 종이    들어갈 것처럼 빈틈없는 이미지의 멋있는 미인이었다. 한국은행이었나, 어딘가  나는 명함이 나오는 직장을 다니며 내외에서 인정 받는 인재라고 했다. 사수의 여자친구로는 너무나 예상 밖인 사람이라고 부서 사람들도 수군댔다. 사실 내가 사수에게 고백하지 못했던 이유에는 그의  여자친구의 존재가 컸다. 그의 이상형이 그토록 완벽하고 빈틈없는 사람이라면 실수투성이에 딱히 빠지는 것도 없지만 반대로 무엇 하나 내놓을  없는  같은 사람은 가능성이 별로 없을  같아서였다. 그런데 동생의 고백을 흔쾌히 받은 것도 모자라 동생이 이상형이라고 하다니.  여자친구에 빠진 남자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지만 의문을 가지지 않을  없었다. 그럼 내가 먼저 고백했다면? 동생이 나타나기  내가 먼저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회사 사람들은 둘의 만남을 축복해주었다. 사수는 신입을 낚아채갔다며 동생네 팀장에게 면박을 당했고, 몇몇 선배들이 정말 괜찮겠냐며 나와 동생에게 걱정 어린 말을 건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  주위에서 호감을 사고 있었고 공사 분별을  하는 성미였기에 부정적인 반응은 없었다.

 

               나는 놀랍게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람의 관계를 처음 알아차린  순간의 충격을 제외하고는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사실이런 반응에는  자신이  놀랐다.  달간 김대리의 존재에 심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있었기에 내가 어떠한 감정을 보일지  자신도 예상할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이 사귀고 있다는, 그리고 그가 동생에게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순간 그에 대한 이성적 관심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동생이나 그에게 악감정은 없었다. 다만 그는 다른 대리들보다는 조금  나은, 그저 회사에   되는 사람 좋은선배  하나가 되어버렸다.

 

비교를 하자면 그는 나에게 소라 과자와 같았다. 지금은 이름도 잊어버려서 나는 그냥 소라 과자라고 부르는 것인데 달달한 맛에 소라 껍질 모양을 했다. 그것은 노인분들이 많이 드시는 옛날 과자로 어렸을  나는 그것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밥은  먹고 오로지 그것만 먹으려 들었다고 한다.  과자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 지금의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지만 그때의 일이 조금은 기억난다. 그러나 그저 내가 그랬었다는 기억만   지금도 가끔 마트에서 마주치는  과자는  이상 나에게  어떤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사수도 내게  하나의 소라 과자 같은 존재가 되어버릴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남자를 두고 자매가 싸우는 꼴이 얼마나 우습겠는가. 천하의 절세미남을 두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하나 다행인 점은  일로 인해  정신이 매우 차갑고 건조해졌다는 것이다.  하나 없는 이른 새벽에처럼 나는 가라앉은 기분으로 드디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일상의 모든 잡음을 차단한 , 나는 퇴근 후와 주말에 짬짬이 해외유학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학부전공이나 지금 다니는 회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였지만 나는 사실 인테리어 디자인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도 심각하게 고려했던 분야였다. 십여 년이 지난 후에도 관심이 사그러지지 않은 지금, 나는 언젠가부터 뉴욕에 있는 유명 대학원에 진학해 아예 업을 바꿀 꿈을 꾸고 있었다. 때문에 나는 가끔 기회가  때마다 인테리어 분야에 있는 지인들과 만나거나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보며  진로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매우 지지부진한 속도였지만 말이다.

 

동생의 커플 선언은 예상치도 못하게  활동에 기폭제가 되어주었다. 그동안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미뤄오던 것을 그만두고, 정말로 여러 유학원을 다니며 상담 받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서도 써보고 포트폴리오에 들어갈 그림들을 하나씩 구상해 보았다. 도움이  만한 전시회에는 시간을 내서 들러 영감을 얻으려 했다.  모든 일을 부모님도, 친구들도 모르게 혼자서 조용히 진행했다.  비밀에 대해 누군가에게 터놓고 말하고 싶었지만 왠지 그렇게 하는 순간 내가 가진 운이 나를 떠나버릴  같았다.

 

 과정을 통해 나는 난생처음 비밀이란 것이 얼마나 사람을 고독하게 만드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나의 비밀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목숨이라도 내놓을 텐데. 그런 마음으로 나는 하루 하루,    달을 버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정작 원서를 넣을 지원철이 가까워지자 회사 일도 눈코뜰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회사에 퇴사하고 유학  준비 때문에 바쁘니 야근  하겠다 선언할 수도 없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11 넘어 집에 오면 겨우 씻고 쓰러져 자는 날들이   넘게 계속됐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 대학원에서 지원을 마감하는 주를 2 앞두고, 나는 지원을 포기했다. 자기소개서는 첨삭 받지 못해 엉망진창이었고 추천서 써줄 교수들은 어딜 갔는지  연락두절 상태였다. 그리고 포트폴리오는 내가 보기에도 수준 이하였다. 이대로 원서를 넣으면 보나마나 원서 접수비만 백만  넘게 깨질  분명했다. 군자의 복수는  년을 기다려도 늦지 않다던가? 딱히 복수는 아니었지만 나는 다음을 기다리며 이번 기회는   접기로 했다. 종이와 재료를 가득 안고 뉴욕 도심을 뛰어다니는 나의 미래가 아득하게 사라져갔다.

 

 결심을  날은 마침 부장이 일이 없다며 일찍 퇴근하라 직원들을 몰아냈다. 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원대한 계획의 끝을 홀로 애도하며 대낮부터  근처 식당에서 술을 마셨다. 나의 계획은  자신만큼이나 외롭게 불타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로부터   후의 일이었다. 오전 10시쯤, 갑자기 부장이 부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깜짝 발표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발표의 주인공은 바로 동생이었다.

 

선배님들께는 정말 죄송하게 됐는데요, 제가 이번에 대학원에 합격해서 퇴사하게 되었어요. 저도 솔직히 이렇게  번에  줄은 모르고 그냥 넣어본 건데 어떻게 덜컥 돼서 우리 회사 너무 좋고, 선배님들  너무 좋아서 오래 다니고 싶었는데 너무 좋은 기회라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대신에 뉴욕 오시면  연락 주세요. 제가 가이드 해드릴게요!”

 

               동생이 합격한 학교는 나도 지원했던 학교  하나로 인테리어 디자인으로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학교였다. 그리고 동생이 지원한 전공은 물어볼 것도 없이 인테리어 디자인이었다.

 

               청천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을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고 하는데 내가 경험해본 바로는 아니었다. 무너지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땅이었다. 내가 딛고 서있는 바닥이 모래처럼 부서져 아래로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일순간 휘청 하더니  몸뚱이가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추락했다.  아득한 심연의 깊이에 현기증을 느낀 나는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보니 의무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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