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동생은 나보다 가지 면에 있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바로 외국어였다.

 

내가 아무리 대학 시절 스페인어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고 해도, 회사 다니며 틈틈이 스페인어를 공부했다고 해도 동생이 페루에서 자라 한국어만큼이나 스페인어를 한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는 영어, 일어, 중국어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언어가 비인기언어이며 그걸 웬만큼이나마 하는 사람을 찾기가 하늘의 따기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겨우 찾아 봤자 찾은 아홉은 한국말 구사력이 엘에이 출신 아이돌 가수보다 엉망진창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모두 완벽한 데다가 의류업체를 운영하시던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느라 어느 정도의 비즈니스 지식까지 갖춘 동생은 그야말로 하늘이 보낸 인재였다. 협업 경험 없는 남미 업체 상대도 막막한데, 다른 팀에서는 생초짜 신입을 보냈다고 입이 나와있던 과장은 동생의 진가를 알게 , 동생을 사랑하다 못해 그와 결혼이라도 기세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생 찬양이 끊이지 않았고, 호랑이 표정을 짓다가도 동생 얼굴만 보면 풀리다 못해 녹아 바닥에 흘러 내렸다.

 

               과장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일에는 흥미가 없어진 오래인 연차. 하지만 구걸을 해서라도 건사해야 자식이 . 회사가 작정하고 그를 먹이듯 꼬일 대로 꼬인 일만 던져놓던 차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어찌 다행스럽고 감사하지 않겠는가. 언어의 장벽 말고도 그에게는 넘어야 고개가 산더미 같았다. 그런 그의 지리한 회사원 인생에 조금이나마 숨통 트이게 해줄 후배에게 애정이 샘솟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후배가 되고 싶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진심으로.

 

               하지만 팀에서, 회사에서 나는 어느새 투명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폭탄은 아니었지만 시계탑 아주 작은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기성품으로 언제나 대체 가능한 톱니바퀴. 과장이 동생을 칭찬할 때마다 칭찬이 너는 저렇게 하지 못하냐는 다그침처럼 나를 찔러왔다. 회사에서 지내는 내내 나는 가시방석 위에 앉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엉덩이만 들썩였다.

 

               아무리 애써봐야 지금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없는 외국어 공부는 뒤로 하고, 나는 다른 업무에서나마 두각을 나타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신입 시절의 1 차이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식별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작다. 동생도 어느덧 이상 회사에 담은 사원이자 업무태도와 이해력, 상황판단력이 우수한 인재였다. 번은 보고자료에 들어갈 표에 사용될 지표의 종류를 두고 나와 동생의 의견이 충돌했다. 동생은 과장에게 어느 쪽이 나을지 물어보고 오겠다며 사라졌다 돌아왔다.

 

내가 말한 대로 하재.”

 

               느낌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생도 짜증난 어조였다. 머릿속에 제일 먼저 생각은 동생이 과장에게 자신의 아이디어가 어느 쪽인지 먼저 얘기한 것이 아닌가였다. 그리고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쟤는 회사에서 나한테 반말이야?’

 

               이런 일이 , , 그리고 여러 거듭됐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초조해졌고, 남몰래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동시에 잘난 동생을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이쯤에서 나는 믿을 만한 상대에게 구조 요청을 보냈다. 상대는 전문의 과정에 있는 친구로, 얼굴 보기도 매우 힘들뿐더러 인생의 웬만한 걱정은 고민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상당히 건조하고 밥맛인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친구는 고민에 진심으로 공감해 주었다. 내가 인간쓰레기 같지 않냐는 질문에 친구는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예를 들어주었다.

 

생각을 해봐. 니가 공부를 쌔빠지게 해서 의대에 왔어. 합격해서 고기 먹고 마시고 좋았지. 그런데 입학하면? 이제 학교 6 다니고 인턴 뛰고 레지 뛰어야 된단 말야. 옆에 애들? 양아치 있어? 없어. 공부 못하는 있어? 없지. 고만고만 나름 가닥 하던 놈들만 모였단 말야. 근데 너랑 허구헌 엎치락 뒤치락 하던 하나가 ! 손놀림이 기가 막히게 좋아. 그건 그냥 타고난 거야.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주신 거라고.   손은 , 손은 앞발. 너도 연습이야 하겠지만 그게 하루 아침에 되냐? 수련하는 내내 교수한테 비교 당하고 쿠사리 먹어야 된단 말야. 상황에서 돌아, 돌아? 돌면 인간이 아니지. 같아도 돈다.”

 

근데 과장님이 나한테 쿠사리를 먹인 아니고…”

 

하여튼 대놓고 편애하는 아냐. 눈칫밥 먹이고 있는 거라고. 너는 황희 정승 누런 검은 얘기도 모르냐? 검은 소가 잘한다고 말하고 싶으면 뒤에 가서 몰래 해야지. 너도 과장한테 가서 과장이 능력 있다고 하잖아.”

 

생각해 보니까 그건 그렇네. 이씨.”

 

, 때리는 뭔지 알아? 학교에서 비교 당하고 마는 거면 그나마 낫지. 선배들 얘기 들어보면 수련 마치고가 헬이야. 걔네 페루에서 엄청 부자래매. 걔는 앞으로 인생 그냥 고속도로인 거지. 같은 의사래도 누구는 돈이 남아돌아서 턱턱 개업시켜주고 어느 집은 부모님이 잠실 노른자위 자기네 건물에 내과 하던 그대로 물려받더라. 그런 애들이 공부도 잘해요. 공부 말고 걱정거리가 있어야 공부가 망하지. 꼬인 데가 없으니 마음도 여유로와. 그럼 나만 쓰레기 되는 거야. 인생 불공평하다니까.”

 

               맞다. 이거였다. 너무나 불공평했다.

 

               외국어는 애가 노력이 아니었다. 내가 한국에서 수능과 씨름하며 소중한 10대를 보낼 동안 동생은 부모님이 좋게 이민을 결정하시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나라 말을 배웠고, 부모님이 나름 의식 있는 분들이셔서 한글 학교도 보내고 대학도 물로 보낸 덕에 흔한 동양계 페루인이 아닌 코스모폴리탄으로 다시 태어난 아닌가. 내가 상황에 놓였어도 정도는 했을 것이다.

 

학벌도 사실 걔가 다닌 학교가 얼마나 들어가기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하버드를 나온 것도 아니고. 외국 학교가 입학보다 졸업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주위에 유학생들을 보면 웬만하면 졸업하지 않는가. 나도 최고의 학교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이름을 말하면 나름 부끄럽지 않은 학교를 나왔다. 그런데 쟤가 한국에 있었으면 과연 정도 레벨의 학교를 있었을까? 모르지. 머리가 비상한 같진 않지만 성실하니 열심히 해서 서울대를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애도 학교와 학원에 처박혀 답답한 10대를 보냈을 것이라는 거였다. 한국의 청년이라면 누구나 응당 치러야 대가도 치르지 않고 나와 같은 수준의 기회와 인정을 받다니 이건 처사가 불공평해도 너무도 불공평했다.

 

그뿐이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내 헬스장에서 다졌다던 몸매도 한국에서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학생 시절 내내 운동은커녕 독서실에 앉아만 있고, 기껏 하는 대외활동이라는 하나 같이 부어라 마셔라 술자리로 끝나는 환경에서 저런 몸은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면 가질 없었다. 동생을 헐뜯고자 하는 아니다. 애는 성실하고 똑똑하긴 했지만 주위에서 가끔 법한, 하루에 16시간씩 공부해 1년만에 고시에 합격했다던 초인은 아니었다. 마디로 말해 동생은 본질은 나와 같지만 나보다 조금 나은 인간이었다.

              

               내가 참을 없는 점은 나보다 낫다는 조그마한 차이가 과연 동생과 나의 노력의 차이에서 나온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지만 내가 보기에 동생이 가진 모든 , 나와 비슷하지만 조금 나은 모든 것들은 개인의 노력보다는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같았다. 동생이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동생의 노력보다는 부모님의 노력이나 처한 환경이 기여한 바가 같다는 말이다.

 

               어찌됐건 이런 식의 사고가 머리 속에서 진행될수록 나는 초조해지고 실수가 잦아졌다. 그런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어느 직속사수인 김대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은정씨.”

 

, 대리님.”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뭔지 알아?”

 

“…뭔데요?”

 

평정심이야.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 회사 하루이틀 다닐 아니잖아. 초저녁부터 빛나는 별도 있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조금씩 깎이고 다듬어지면서 빛나는 거야. 당장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보는 날까지 묵묵히 일을 하고 제자리를 지키면서 살아가도록 하자.”

 

               말에 나는 왈칵 눈물을 쏟을 했다. 속마음을 낱낱이 꿰뚫어 보였다는 점도 부끄러웠지만 타박하지 않고 우리 하자라며 토닥여주던 그의 다정함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무엇보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나의 진심을 온전히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왔다. 당시 나는 그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그는 잘생긴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크지 않은 키에 멋없고 소박한 데다 과묵한 편이었다. 서울대를 나왔지만 비상하다기보다는 오히려 허당인 편이어서 아니 저런 사람이 서울대를하는 반응을 이끌어내곤 했다. 하지만 행사 때면 빼지 않고 가장 열심히 궂은 일을 도맡아 했고 그가 입을 열면 모두들 기울여 들었다. 누구 앞이든 바른 말만 했고 신기하게도 남의 흉을 보는 것을 번도 적이 없었다. 말만 앞서고 대리 주제에 벌써부터 후배들에게 꼰대로 군림하는 그의 동기들과는 근본부터 달랐다. 나는 그를 존경했다. 그야말로 빠르게 흐르는 냇물 아래 무심히 빛나는 소중한 돌멩이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의 말로 인해 나는 깨달았다. 동생 때문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동생과 나를 둘러싸고 벌어진 상황 때문에 내가 불안해졌지만 나의 인복, 곁의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만은 변함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알아보는 나의 또한 말이다. 밥을 먹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배가 불러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든든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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