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벌써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빠르게 흐르는 것 또한 시간이다. 그리고 길던 짧던 그 시간 안에서 많은 이들은 저마다의 행동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시경은 재하와 헤어진 후 작은 암자에 와 있는 상태였다.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 한양에서 제 마음을 다 잡는 것은 무리라 여겨서였다. 창문을 열면 보이는 것은 푸르른 숲이고 들리는 것은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 밖에 없는 조용한 암자에서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을 정리해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자신의 굼뜬 결심이 늦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늦어도 행할 것은 행해야 하기에 시경은 짐을 꾸리는 손을 재촉한다.

 


*


 

내의원에서 연통이 왔습니다. 이번 주를 넘기기 힘들 듯 하답니다.”

 

병판 김천수의 말에 은규태의 눈가 주름이 깊어진다. 모든 준비는 끝이 났으니 저만 결단을 내리면 된다. 그토록 원했던 것인데 어째서인지 쉬이 결단이 서지 않는다. 뭔가 놓친 듯한 기분이 든다. 아주 사소하지만, 아주 큰 파장을 몰고 올 것만 같은 무언가.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간 중독 시켜 놓은 것이 빛을 발했습니다요. 고작 손톱만큼만 더 넣은 것뿐인데 이리 바로 쓰러져 주시다니.. 킬킬킬.”

자네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리는 듯하이. 괜히 영의정 대감의 책사가 아니구만.”

 

김천수의 칭찬에 기분이 좋은 것인지 봉구 그 특유의 웃음소리가 커진다.

 

그나저나 해경이는 어딜 간 게야. 이리 중요한 시기일 때 경거망동을 해서는 안 되건만.”

모란각에 계신답니다. 아무래도 공주 자가와의 혼사가 틀어진 것에 분이 나신 듯합니다.”

쯧쯧, 지애비의 큰 뜻을 모르니.. 시경이는 언제 돌아온다고?”

오늘 돌아오신다 합니다. 허면, 시경 도련님도 함께 움직이십니까?”

 

원래의 계획이라면 시경은 아무것도 몰라야 하지만 이미 뒤틀린 계획이니 시경이 쓰임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은규태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재신과의 관계가 좋은 듯하니 좀 더 쉽게 재신을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병판대감은 내의원에 일러 주상 전하의 용태를 시시각각으로 보고하라 해주시오. 봉구 너는 공주 자가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해경이 놈을 찾아오너라.”

 

병판과 봉구가 은규태의 명을 이행하기 위해 사랑방을 나선다. 그리고 그들을 스쳐 시경이 들어온다. 병판과 봉구를 바라보는 시경의 눈빛이 잠시나마 차가워진다.

 

아버님, 시경입니다.”

들어오너라.”

 

오랜만에 부자父子가 마주했다. 원래도 규태의 눈을 잘 마주하지 못하던 시경이지만 규태의 속마음을 알게 된 지금은 더더욱 규태의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키려는 재하와는 다른, 뺏기 위한 규태의 날카로운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제 속마음을 다 발설할 것만 같아 시경은 주먹 쥔 제 손만 바라보았다.

 

그래, 주지스님은 잘 계시더냐.”

, 안 그래도 주지스님께서 아버님의 안부를 여쭈셨습니다. 한가하실 때 한 번 들려 주셨으면 한다 하십니다.”

허허, 그래. 한 번 뵈러 가야지. 불공을 드린 지도 오래 되었고... 허면 피곤할 터이니 가서 쉬거라.”

“.....청이 있습니다, 아버님.”

 

? 규태가 가볍게 시경을 훑는다. 언제나처럼 겁을 잔뜩 먹은 모양새에 작게 혀를 찬다. 하지만 저 겁먹음이 자신에게는 큰 득이라 별 말은 하지 않는다.

 

무슨 청 말이냐.”

“......궐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순간 시경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규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문자 그대로 궐을 방문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관직을 얻고 싶어 하는지 되물으려는 규태에게 시경은 아주 작은 관직이라도 좋으니 재강의 곁에 있을 수 있는 관직을 달라 다시 청한다.

 

어찌 그런 소리를 하는 게냐. 혹 공부 하는 것이 싫어진 게냐?”

 

가벼운 농에도 시경은 전혀 웃지 않았다. 그저 줄 수 있는지 없는지만 물을 뿐이었다. 호오, 규태의 눈이 가늘어진다. 시경의 패가 좋은 줄은 진즉에 알고 있었건만 이리 좋을 줄은 몰랐다. 재신과의 관계도 꽤 득이었는데 이제는 나서서 재강을 보필하겠다 한다. 물론 제 쪽에서는 보필이 아닌, 그저 재강의 감시하는 눈일 뿐이지만.

 

무슨 연유로 네가 그런 청을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 자식이 원하는데 해주어야 부모겠지. 그래, 원하는 자리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그저 전하의 곁에 있을 수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승정원이 좋겠구나. 참의 자리 하나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게야.”

그럼 언제 입궐할 수 있습니까?”

하핫. 뭐가 그리 급한 게냐. 입궐이야 명일이라도 가능하지. 내 이따 봉구를 시켜 관복을 가져오라 하겠다. 내 죽기 전에 시경에 네가 관복을 입은 모습을 보는구나.”

 

감격스럽다는 은규태의 말에 시경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규태는 이 기쁜 날은 허투루 보낼 수 없다며 하인을 시켜 술상을 봐오라 이른다. 규태는 술잔을 기울이며 시경에게 궐에 대한 이것저것을 알려 주었다. 시경은 규태의 그 순수한 기쁨을 속이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은규태라는 단단한 성을 함락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더 알아야 하기에 묵묵히 경청하였다.

 

동상이몽同床異夢. 부자의 밤이 깊어간다.

 


*


 

놓으시오!”

 

시경이 규태와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재신은 봉구에게 잡힌 팔을 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직도 시경이 암자에 있다고 알고 있는 재신은 시경에게 보낼 서찰을 적고 있었다. 하지만 다짜고짜 별당으로 들어 온 봉구에 의해서 그 짧은 평화가 깨져버렸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게요! 내 알기론 이 별당에는 시경 도련님과 연산댁 외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걸로 알고 있네만!!”

 

억지로 방에서 끌려 나온 재신이 소리친다. 연산댁은 어디로 간 것인지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자신을 도와줄 이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혹 해경에게로 데려가는 것은 아닐지 하는 두려움 때문에.

 

걱정 마십시오, 그저 다른 곳으로 뫼시는 것일 뿐이니, 킬킬킬.”

시경도련님은 이 일을 알고 계시는 것인가!!”

“.......알고 계십니다만?”

 

잠깐 생각에 빠졌던 봉구가 믿을 수 없는 말을 내뱉는다. 그 말에 재신의 눈이 커진다. 도련님께서 알고 계신다고? 그럼 어째서 직접 오지 않고 이렇게 산적 같이 생긴 자를 보낸 것이지? 그리고 도련님께서 알고 계신다면 나를 이리 거칠게 다루지 않게 하실 터인데...? 재신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봉구를 쏘아봤지만 봉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지 계속 저항하는 재신의 팔만 당길 뿐이었다.

 

도련님을 뵈어야겠네. 그리고 내 발로 직접 가겠네.”

송구합니다만 도련님께서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킬킬.”

“........”

 

점점 잡힌 손이 아파온다. 언제고 태울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가마의 문을 보자 궐에서 납치당한 그 날의 기억이 떠올라 더 격하게 저항한다.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언제 준비한 것인지 하얀 천으로 제 입을 막아 버린다. 읍읍읍!! 차마 지르지 못한 소리가 억눌려 나온다. 에이씨, 라는 작은 욕설과 함께 시야가 캄캄해져버린다. 그렇게 보쌈을 당한 재신은 가마에 태워져 어디론가 옮겨졌다.


 

*


 

호호호, 우리 시경이가 이리 늠름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참으로 보기가 좋습니다.”

 

관복을 입은 시경을 앞에 둔 규태와 정경부인이 담소를 나눈다.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관복에 시경이 멋쩍게 웃는다. 이 모습으로 별당 재신을 만나고 싶지만 아침부터 입궐하자는 규태의 재촉에 별당에 눈길조차 주지 못하고 이리 마당에 서 있는 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시경을 승정원의 참의로 임한다는 재강의 교지가 내려진 후에나 입궐할 수 있겠지만, 재강은 현재 사경을 헤매는 중이었고 규태의 권력은 그 법도를 무시할 정도로 막강했으니 이리 교지를 직접 받기 위해 입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님. 추우실텐데 얼른 들어가셔요.”

호호호, 그래요, 은참의. 어유, 관직도 잘 어울리네.”

 

아무것도 모르는 정경부인의 미소에 시경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규태를 저지하지 못하면 정경부인은 만백성의 지어미가 될 것이고, 규태를 저지한다면.... 시경이 섬뜩한 상상에 고개를 절레 젓는다. 규태를 태운 평교자와 시경이 탄 말이 천천히 움직인다.

후우, 깊게 숨을 내쉬어본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이 나라의 군주를 뵈러 가는 것이 이리도 긴장되는 줄은 몰랐다. 후우, 후우. 이럴 줄 알았으면 공주 자가를 먼저 만나는 것인데.. 해서 중전마마나 주상 전하께 전하고 싶으신 말을 전해 드릴 걸.. 시경이 고개를 돌려 멀어지는 제 집을 바라본다. 재신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사실을 모르는 시경은 별당에게 얌전히 잠들어 있을 재신을 떠올린다.

 

궐은 조용했다. 아니, 고요했다. 먹먹한 슬픔이 깔린 고요함에 시경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곧 이 고요함은 곡소리로 변할 것이고, 그 곡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피바람이 불 것이다. 눈만 감아도 떠오르는 그 참상에 시경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규태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강녕전까지 다다랐다. 규태의 등장에 모두가 허리를 굽힌다. 상궁이 고한 것인지 대전내관이 나와 규태를 맞이한다.

 

영의정 대감 오셨습니까.”

전하께오선 어떠시오.”

다행히 기력을 회복하셨나이다. 허나 아직 알현은...”

잠깐이면 되니 고해주시오.”

 

대전내관은 규태의 뒤에 서 있는 시경을 흘끗 바라보고는 강녕전 안으로 들어간다. 대전내관이 사라지자마자 규태가 얼굴을 찌푸린다. 기력을 회복했다니, 헛참. 어의의 의술이 화타의 뺨을 치는구나.

기력을 회복했다는 재강은 규태를 만나겠다고 한 것인지 대전내관이 안으로 들으라한다. 시경이 관복 매무새를 매만진 후에 규태를 따라 재강이 있는 동온돌 방으로 들어섰다. 따로 명이 있기 전에는 절대로 마주해서는 안 되는 용안이기에 방에 들어선 시경의 눈에는 계속 규태의 버선 뒤 코만 보였다. 규태를 따라 재강에게 예를 올린 시경이 준비 된 방석 위에 앉았다. 시선은 여전히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영상.”

기력을 회복하셨다니 참으로 다행이옵니다, 전하.”

다 영상 대감이 보필해준 덕입니다. 헌데 어인 일로 이리 강녕전까지 오신겝니까.”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교지를 내려주셨으면 해 이리 결례를 범하였습니다.”

교지...?”

 

교지라는 이야기에 자연스레 재강의 시선이 시경을 향한다. 몰래 재강을 바라보고 있던 시경은, 재강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풍기는 분위기가 규태와 비슷한 것으로 보아 친인척인 것인가 싶어 재강은 시경을 유심히 바라본다. 자신에게 규태와 관련된 이는 우선적으로 적으로 간주하기에.

 

, 얼마 전 승정원에 결원이 생겼기에 이리 천거를 하게 되었습니다. 본디 천거라 함은 정해진 수순이 있지만 전하를 보필할 승정원이기에 급하게 결정하게 된 것 통촉하여 주십시오.”

“.......승정원이라.. 내 보니 영상 대감과 닮은 것 같은데 혹..”

.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천신의 아들놈이옵니다.”

 

아들, 아들이라는 이야기에 재강의 눈에 진한 적대감이 서린다. 자신의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규태의 사람은 넘쳐난다. 순간 재하에 대한 원망이 다시 고개를 든다. 그리고 그 원망은 시경을 향한 미움이 된다.

 

예를 올리거라.”

“....은가 시경이라 하옵니다, 전하. 앞으로 승정원의 참의로써 전하를 보필하게 되었나이다.”

 

예상한 것보다 더 심한 재강의 적대감에 시경이 굳은 얼굴로 예를 올린다. 이대로라면 힘들어 질지도 모른다. 시경이 살짝 입술을 깨물다 순간 떠오른 생각에 무례를 무릅쓰고 재강에게 말은 건넨다.

 

...그리고 공주 자가께오선 무탈히 잘 계시옵니다.”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규태는 괜한 소리를 하지 말라는 듯, 책하는 눈빛으로 시경을 바라본다. 반면에 재강은 더 이야기 해달라는 듯한 눈빛으로 시경을 바라본다. 시경은 그 눈빛들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 놀란 상태였다.

 

우리 윤의공주를 만났소?”

“......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아버님의 명에 따라 제가 공주 자가를 보필하고 있습니다.”

이만 가봐야 하겠습니다.”

 

규태가 시경의 말을 자른다. 규태의 냉랭한 말투에 움찔한 시경이 입을 다문다. 규태가 예를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규태를 따라가야 할지 아니면 남아있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경의 귀에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나는 은참의와 좀 더 담소를 나누고 싶소만..”

하오나 전하의 옥체 미령하지 않으시옵니까.”

기력을 많이 찾았소. 앞으로 날 보필할 자이니 좀 더 가까이 지내도 되겠지요, 영상?”

 

뼈가 있는 말. 어쩌면 비꼬는 말일지도 모르는 재강의 말에 규태가 가만히 재강과 시경을 번갈아보고는 먼저 방을 나선다. 문이 닫히고 재강이 가까이 오라 손짓한다. 시경이 재강 가까이로 자리를 옮겼다.

 

정녕 윤의공주는 잘 있는 것이오? , 혹 중전의 서찰을 전해주는 이가 그대요, 참의?”

, 그러하옵니다. 우연히 상궁마마님을 뵈어 서찰을 전해드린 후엔 제가 직접 전해드리고 있사옵니다.”

 

재신의 소식에 재강의 적대심이 조금 누그러진다. 좀 더 말해달라는 재촉에 시경이 설픈 미소를 짓는다. 이리도 누이를, 오라비를 그리워하고 있는데 자신의 아비는 이 천륜을 끊으려 하고 있다니. 시경의 마음속에 규태를 향한 증오가 조금씩 불타오른다.

만났을 때부터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중간 중간 힘이 벅찬 재강이 시경의 말을 끊기도 했지만 별 탈 없이 전부를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중요한 이야기를 할 시각이다.

 

“........승록대군마마를 뵈었습니다, 전하.”

승록대군을? 어찌..?”

대국에 있을 적, 저와 동문수학을 하던 사형께서 실은 승록대군이셨습니다.”

하하. 깊은 인연입니다.”

“......슬픈 인연이기도 하지요.”

 

재하에 대해 몇 마디를 나누던 시경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승록대군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자신의 아비의 일을 고해야 할 차례이건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 입으로, 제 아비의 역모죄를 고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웠다.

 

재강은 열심히 이야기를 하던 시경이 입을 다물자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듣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이야기꾼이 말을 하지 않으니 어찌 할 방도가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참으로 이상하게도, 시경이 입을 다문 연유를 알고 있는 표정이다. 그런 미소다.


 

*


 

뭣이야?! 그게 참이란 말이냐????”

 

봉구가 놀란 눈으로 소식을 가져 온 사내를 바라본다. 소식을 전한 사내가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급하게 외친다.

 

왜 그 소식을 이제야 알린 것이야!!”

.. 죄송... ..!”

 

사내가 갖고 온 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봉구가 발로 사내를 차버린다. 씩씩거리는 봉구는 규태를 만나기 위해 사랑방으로 향한다.

 

대감마님! 봉구입니다!”

“....웬 소란이냐.”

 

다짜고짜 문을 열고 들어와 부복하는 봉구에게 무슨 일이냐 묻자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전한다.

 

승록대군이 조선이 있는 듯합니다!”

“........뭐라?”

해경도련님의 행방을 찾던 중 모란각 기생에게 들었다 합니다. 한 달 여전 암행어사가 도련님을 데리고 사라졌다 하온데 인상착의를 들으니 승록대군과 비슷하다 합니다.”

허나 승록대군은 아직 대국에...”

해서 저 역시 연통을 넣어보았는데... 꽤 오래 전에 승록대군을 닮은 자가 조선으로 향하는 배를 탔다고 합니다...”

이런!!”

 

규태가 책상 위의 서책들을 집어 던진다. 이 중요한 시기에 다른 이도 아니고 승록대군이 나타나다니. , 재강과 만났을까 싶어 규태가 황급히 대전상궁에게 연통을 넣는다. 만약, 재하가 재강을 만났다면 자신의 목숨은 풍전등화 신세가 된다. 답신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길다. 그저 앉아있기엔 너무 초조한 규태가 마당을 서성인다. 시경이 재강과 오랜 시간을 보낸 것 또한 신경에 거슬리는데 그보다 더 큰 거슬림이 생겨버렸다.

헌데 궐에서의 연통보다 또 다른 소식이 먼저 당도했다. 봉구의 명으로 재하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사내가 규태에게 예를 올린다. 규태보다 먼저 봉구가 묻는다.

 

알아왔느냐.”

, 알아본 바로는 이조판서 윤택수의 집에서 기거하고 있습니다.”

윤택수의 집...?”

 

3대를 멸할 역모죄를 뒤집어쓰고 죽어 현재 그 집은 폐가라 부를 정도로 엉망일 턴데, 어찌 궐이 아닌 그런 곳에서 기거하고 있는 것인지, 재하의 속내를 알 수 없는 규태가 인상을 쓴다. 그 와중, 궐에서 연통이 왔다. 급한 손으로 서찰을 꺼내 읽는다.

 

승록대군마마는 아직 대국에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승록대군마마께선 전하를 뵌 적이 없사오니 걱정 마십시오.

 

“......, 무슨 꿍꿍이지.”

 

규태에게 건네받은 서찰을 읽은 봉구는 무언가 결심한 듯 규태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하늘은 이미 대감마님의 편입니다. 승록대군은 제가 처리할 터이니 대감마님께오선 후의 일만 생각하시지요.”

봉구 네가 처리 한다고?”

, 맡겨만 주십시오. 머물고 있는 곳도 알아냈으니 오늘 밤, 목숨을 거두겠습니다.”

 

봉구가 허리춤의 칼집을 만진다. 규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리고 봉구는 제 뒤의 사내와 함께 윤택수의 집으로 향한다.

 


 

달이 밝다.

 

한양 곳곳을 비추는 달은,

 

재하를 죽이러 가는 봉구를,

 

시경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재신을,

 

부디 제 결정이 옳은 결정임을 바라는 시경을,

 

조용히 잠들어 있는 재하를 바라본다. 말없이 바라본다.

 

 

 


** 

늦었어ㅠㅠ 기다린 토리들이 있다면 미안해ㅠㅠㅠ

  • tory_1 2020.01.09 15:17

    우리 재신이는 괜찮은 거겠지ㅜㅜ?  은신이들 행복해지면 좋겠다아ㅜㅜㅜㅜ 톨아 매번 올려줘서 고마워ㅎ

  • tory_2 2020.01.11 00:43
    ㅠㅠㅠㅠ 바탕체톨 짱이야ㅠㅜ 부디 모두 무사하기를 역모죄를 품은 규태랑 봉구는 다 처단되고 은신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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