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109/0004506213
마동석의 어린 시절과 배우가 된 계기는 이렇다. OSEN 취재에 따르면 마동석은 1980년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미국에 있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온 가족이 이민을 준비했고, 6~7년 만에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마동석은 1980년대 말, 온 가족과 함께 친척 집인 미국 몬타나로 이민을 갔다. 친척 집에 얹혀살며 가난을 벗어나고자 10년 동안 설거지, 막노동, 건물 청소, 분유 장사, 트럭 운전, 낚싯바늘 공장, 바텐더, 클럽 가드, 트레이너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는 그다. 특히 클럽 가드 일은 5년 정도 했고 험한 일이라 부상도 달고 살았다고.
마동석은 배우가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고 어릴 적부터 직업 군인이나 경찰이 되는 꿈을 안고 살았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경찰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싸이더스HQ 김상영 이사로부터 한국 영화 캐스팅 제의를 받았고, 고민 끝에 제의를 수락하게 돼 영화 배우로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일할 수 있게 됐다.
처음 배우로서의 발을 내딛은 마동석에게 업계에서는 '과연 될까?'란 눈초리들이 있었지만, 2007년 방송된 MBC 드라마 '히트'의 '미키성식'은 모든 의심을 뒤집어놨다.범인을 한번에 제압하는 강한 모습으로 ‘터미네이터 형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지만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귀엽고 순수한 반전매력을 뿜뿜 발산하는 그에게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마블리의 탄생이다.
그러나 탄탄대로였던 것만은 아니다. 운이 좋았던 만큼 많은 시련도 그를 가로막았다. 아프리카에서 드라마 촬영 도중 6M 높이의 철제 계단이 무너지며 추락해 척추 2개 골절, 어깨 골절. 가슴뼈 골절 부상을 당하는 등 하반신 마비의 위기와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 후 다른 작품 촬영 중 생긴 다수의 사고들로 온 몸에 크고 작은 부상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걸 견뎌내며 끝까지 버텨냈다.
또 지금의 마동석이 있기까지에는 저예산 실험영화에서부터 블록버스터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내공을 다진 역사와 함께 주연을 맡거나 제작하는 많은 작품을 통해 입봉을 하지 못한 힘든 상황의 영화감독들을 데뷔시키는 등 선한 영향력을 전파한 면모도 컸다. 그렇게 한국영화판에서 입지를 다진 마동석은 이제 글로벌로 또 다시 나아갔다.
이 기사보고 경찰하고 싶어했다고? 하고 검색 더해보니까 어릴때 집에 칼든 강도 든 적 있대...
https://m.sedaily.com/NewsView/1OM5AQKFAX
실제 경찰이 되고 싶었다던 마동석에게 그와 관련한 시도가 있었는지 묻자 “미국에 있을 때 경찰 시험을 준비하려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안 됐다. 예전에 집이 어려웠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강도가 들어왔다. 그걸 보고 ‘이건 좀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그 때가 10대 초반이었다. 집에 누가 칼을 들고 들어오면 느낌이 이상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난 ‘쏘우’ 같이 팔이 잘리고 피가 많이 나오는 장르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나는 피가 안 나오고 경쾌한 액션을 하고 싶다. 그래서 성룡을 진짜 좋아한다. 내가 스턴트는 못 하지만 성룡의 마인드를 너무 좋아한다”고 앞으로 선보이고 싶은 연기 스타일을 밝혔다.
마동석의 어린 시절과 배우가 된 계기는 이렇다. OSEN 취재에 따르면 마동석은 1980년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미국에 있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온 가족이 이민을 준비했고, 6~7년 만에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마동석은 1980년대 말, 온 가족과 함께 친척 집인 미국 몬타나로 이민을 갔다. 친척 집에 얹혀살며 가난을 벗어나고자 10년 동안 설거지, 막노동, 건물 청소, 분유 장사, 트럭 운전, 낚싯바늘 공장, 바텐더, 클럽 가드, 트레이너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는 그다. 특히 클럽 가드 일은 5년 정도 했고 험한 일이라 부상도 달고 살았다고.
마동석은 배우가 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고 어릴 적부터 직업 군인이나 경찰이 되는 꿈을 안고 살았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경찰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싸이더스HQ 김상영 이사로부터 한국 영화 캐스팅 제의를 받았고, 고민 끝에 제의를 수락하게 돼 영화 배우로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일할 수 있게 됐다.
처음 배우로서의 발을 내딛은 마동석에게 업계에서는 '과연 될까?'란 눈초리들이 있었지만, 2007년 방송된 MBC 드라마 '히트'의 '미키성식'은 모든 의심을 뒤집어놨다.범인을 한번에 제압하는 강한 모습으로 ‘터미네이터 형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지만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귀엽고 순수한 반전매력을 뿜뿜 발산하는 그에게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마블리의 탄생이다.
그러나 탄탄대로였던 것만은 아니다. 운이 좋았던 만큼 많은 시련도 그를 가로막았다. 아프리카에서 드라마 촬영 도중 6M 높이의 철제 계단이 무너지며 추락해 척추 2개 골절, 어깨 골절. 가슴뼈 골절 부상을 당하는 등 하반신 마비의 위기와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 후 다른 작품 촬영 중 생긴 다수의 사고들로 온 몸에 크고 작은 부상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걸 견뎌내며 끝까지 버텨냈다.
또 지금의 마동석이 있기까지에는 저예산 실험영화에서부터 블록버스터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며 내공을 다진 역사와 함께 주연을 맡거나 제작하는 많은 작품을 통해 입봉을 하지 못한 힘든 상황의 영화감독들을 데뷔시키는 등 선한 영향력을 전파한 면모도 컸다. 그렇게 한국영화판에서 입지를 다진 마동석은 이제 글로벌로 또 다시 나아갔다.
이 기사보고 경찰하고 싶어했다고? 하고 검색 더해보니까 어릴때 집에 칼든 강도 든 적 있대...
https://m.sedaily.com/NewsView/1OM5AQKFAX
실제 경찰이 되고 싶었다던 마동석에게 그와 관련한 시도가 있었는지 묻자 “미국에 있을 때 경찰 시험을 준비하려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안 됐다. 예전에 집이 어려웠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강도가 들어왔다. 그걸 보고 ‘이건 좀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그 때가 10대 초반이었다. 집에 누가 칼을 들고 들어오면 느낌이 이상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난 ‘쏘우’ 같이 팔이 잘리고 피가 많이 나오는 장르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나는 피가 안 나오고 경쾌한 액션을 하고 싶다. 그래서 성룡을 진짜 좋아한다. 내가 스턴트는 못 하지만 성룡의 마인드를 너무 좋아한다”고 앞으로 선보이고 싶은 연기 스타일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