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안녕 톨들아. 나는 11개월 동안 계약직으로 외국계 팀 어드민으로 일을 했어. 그리고 그 결론은... 웬만하면 비정규직이면서 어드민(총무..?잡무?)은 하지 않았음 해서 글을 써 봐.

물론 요즘 취업이 많이 어려운데 고르고 자시고 할 여유 없다는 건 알아 ㅠㅠ 나도 나이만 29세되구 정규직은 안되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시작한 거니까..

1. 처음에 들어갔을 때: 나는 마케팅 팀 어드민이었어.직접계약. 팀 분들도 나랑 서너살 차이나는 분들이었고 잘 대해 주심. 회사 분위기 매우 프리해서 휴가 금,월요일에 붙여써도 뭐라고 안 함. 정규직 상품권 나올 때 나도 받음. 겉보기에 너무나 좋은 조건...

무엇보다 4년제 대학 졸업하고 처음으로 길게 일한 거라 계약직이라는 생각 없이 정규직 되었다는 맘으로 기쁘게 열심히 했던 것 같음.

2. 근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돌아감.
보통 계약직 톨들은 들어봤을 거야 자기가 나서서 이것저것 해야 나중에 이직에 유리하다고.
나도 그래서 이것저것 하다보니 동영상 편집도 하게 되고(업체에서 하나에 200만원 부른 거 내가 에펙 배움..^^) 업체랑 전화통붙들고 납기땜시 싸우고 심지어 해외 공장에 연락하게 됨.
그러다 보니 점점 작은 회사일수록 그레이존에 있는 업무나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귀찮은 업무가 있음 다 나한테 던져짐.
'톨씨가 이번만 도와 줘요~' 라고 시작한 업무는 내 전담이 되거나, 나중에는 왜 오히려 내가 신경을 안썼냐며 욕받이 무녀가 되기도...

3. 그리고 계약직+어드민 업무 특성상 나서서 이것저것 해도 결국 경력기술서에 쓰기 힘든 잡무만 얼씨구나 떠안는 겅우가 많아. 그러다 보니 처음엔 열심히 한다-> 잡무만 던져진다 ->일단 열심히 또 한다(나!!!2달 야근함) -> 어느 순간 이게 경력이 1도 안된다는 걸 알고 손을 놓는다-> 왜 의욕이 없냐고 평판 떨어짐-> 점점 이력서에 쓸 거리 사라짐의 악순환.

나는 운이 좋아서(?) 중간에 브랜드 매니저(회사가 파는 상품을 애기라고 하면, 브랜드 매니저는 부모같은 거야. 전반적인 제품군 관리를 맡아)가 번아웃으로 휴가를 급 6개월 들어가신 바람에(이 단락에서 이 회사 정직원이 얼마나 꿀인지 알 거라고 믿어) 그 브랜드 받아서 걍 내가 하게 됨. 오히려 나는 재미있어서 주말 꼬박 잠 4시간씩 자면서 행사용 동영상 번역도 하고 그랬었다. ㅎㅎ sns도 만들었어. 근데 현타 두드려맞고 폐쇄함.

4. 이건 사람마다 다른데, 어느 순간 쎄함을 느끼면서 아, 내가 이 정도 취급이었구나. 나한테 친절하게 해 준 사람들이 오히려 겉치레 매너였지 진심은 아니었구나 싶은 순간이 와. 우리 회사 계약직 애들은 한 번씩 다 겪었어.

나같은 경우는 나랑 정규직 bm분이랑 같이 행사를 준비해서 직원들도 참가했는데, 외부에서 하다 보니 빨리 뒷정리하고 나가달라는 요청이 있었어.
치우고 있는데 정말 나만 청소하고 있고 아무도 없는 거야. 알고 보니 다들 그동안 나가서 사진 찍고 단톡에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이러고 올렸더라. 너무 바빠서 몇 시간 후에 확인하고 나 쓰레기장 가서 울었음.
그리고 같은 팀 직원들도 점점 편해질수록 결국 좀 더 본심이 드러나니까 나를 아래로 보고 떠날 사람이고 잡일해줄 사람으로 본다는 게 느껴져서, 그리고 실제로 일을 던지거나 하는데 많이 힘들더라.
저렇게 좋은 사람이었는데 나한테 그렇게 대하는 모습을 보는 게 현타가 와서 더 힘들었어. 


그리고 아주 최근 일인데 내 직속 상사가 내 이름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 그것도 두 글자 다 틀림ㅋㅋㅋ 아니면 '어드민' 이런 식으로 불릴 때도...


5.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고용 형태와 직무로 가장 크게 내가 바뀐 건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거야.
나는 원래 뭐 퍼 주는 거 좋아하고 여행갔다오면 꼬박꼬박 선물사서 돌리는 스타일인데 더 이상 그런 짓을 안 하게 되었고, 오히려 좀만 친절하게 누가 대해도 언제 일을 던질 구실로 삼을지 몰라. 뒤에서는 나를 시혜적인 시선으로 보겠지 하는 꼬인 마음도 생겼어

그리고 이 마음이 100퍼센트 의심으로만 끝나지 않고, 실제로 그 예상이 적중했을 때는 정말정말 속상하고 힘들었어.

그러다 보니 점점 사람들하고 거리를 두니 더 데면데면해지고... 오죽하면 나도 인생 모토 자체가 [멋대로 기대하고 속상해하는 게 제일 꼴불견이다.] 이렇게 바뀌어서 회피주의적인 성향이 된 것 같아. 그래도 마음을 100퍼센트 내려놓는 건 여전히 힘들어서 혼자 상처는 계속 받고 그러네. 


6. 섬세하고 여리고 배려많고 남들 잘 도와주고 친절하다, 상냥하다 소리 듣는 톨들은 더 힘들 것 같아... 난 사실 이런 성향이라 내가 서포트직인 어드민에 적합할 것 같았는데 아니야. 차라리 선 딱 긋고 내 일만 한다는 톨들이 훨씬 맞을 거야.
그리고 정 잘 주는 톨들도 비추. 나는 동료라고. 같이 일했다 생각했는데 저들은 한 번도 그렇게 생각 안 했다는 거, 직간접적으로 아는 순간 마음이 많이 상하더라.

7. 그리고 필연적으로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 같아. 나도 구 외커 때 스펙 올리면 다들 대기업 갈 거 같다고 했는데 결국 잘 안 풀렸거든. 취업 처음엔 그저 감사하고 좋은 마음이었지만 그 후엔 사회구조나 경제상황 원망하다, 결국엔 내가 무능하니까.. 이거나 하고 있지. 대기업 가기 어렵다 해도 나보다 어린 애들도 척척 붙는데. 인생 망했다. 앞으로 어드민으로만 돌겠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

*그래도...일하면서 하나 내가 바뀐 게 있다면 항상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께 이전보다 더 관심갖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 갖고 꼬박꼬박 인사드리게 된 거야. 뭐 하나라도 더 챙겨 드리고.
전에는 우리 엄마가 허리아프다 무릎아프다 해도 솔직히 아이궁 ㅠㅠ하면서도 밤에 나 자러 가는데 좀만 주물러 달라고 하면 엄청 귀찮고 그랬거든. 이제는 내가 시간내서라도 꼭 주물러 주고 그래.

나는 일하면서 어쨌든 이 직무와 고용 형태를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어드민: 며느리. 가정주부. 잘하면 더시키고 좀 못하면 욕먹음. 꼭 필요한 일을 하지만 그 가치가 평가절하됨. 가끔 어버이날에나 고마워하고 다들 그러려니 함. 힘들다고 해도 오히려 귀찮아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음. 

비정규직: 콜센터 직원. 음.. 있으면 ARS보다 편하니까 다들 바로 #버튼 눌러서 젤 먼저 찾는데 그 대상이 누구여도 사실 상관없고 궁금해하지 않음. 그냥 내 불편이나 해결해라 그러려고 니가 있는 거잖아?

정도로 느꼈어.

오늘도 비정규직으로 일한 (어드민이나 총무라면 더더욱) 톨들 수고 많았고... 다들 힘내자.

  • tory_1 2019.06.2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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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2 2019.06.2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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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3 2019.06.2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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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4 2019.06.2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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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12 2019.06.2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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