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톨하!

우선 TED 강연 하나 보고 시작할까?



나톨이 좋아하고 굉장히 공감하는 강연이야.

시간 있는 톨들 꼭 봐줘.

12분 정도밖에 안 함.


이 강연을 보면 "스카우트(정찰병)" 이야기가 나와.

보병이나 궁병 같은 일반적인, 다수를 차지 않는 병사들 말고 미리 적진을 파악하고, 적이 오는지 살피는 정찰병 말이지.


나토리는 정찰병 같은 타입이야.

호기심도 많은 편이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걸 좋아해.

근데, 그만큼 쉽게 질리는 타입임...


아무튼, 새로운 일을 좋아하는 정찰병 나토리는 페이퍼 워크의 끝을 달리는, 인식을 맞춰보지 못하면 일을 못하고, 확인에 재확인을 거듭거듭한 후에 5영업일이 걸려서 일하는 일본계 회사에 입사했어.


입사하자마자 난관에 부딪혔지.

이 놈의 회사는 매뉴얼도 많았고, 무엇 하나 하려면 본사를 다 거쳐서 나와야 했어.

그리고 내가 취약한 게 남이 만들어 놓은 룰에 따라 움직이는 거거든.

정확하게는 "처음"이 약해.

다른 사람이 다 익숙한 업무를 나 혼자 "처음" 해보는 순간 사고를 많이 치거든.

회사에 입사해서도 사고를 몇 번 치고 그렇지 않아도 나와 성향이 맞지 않던 외국인 상사는 늘 나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잔소리를 했어.


근데 내가 가진 장점 중에 하나가

처음은 못 하지만, 두번째 할 때부터는 남들만큼 한다는 게 있어.

업무 최고 수준이 10 이라면 나는 9나 10은 못 하지만 두번째 할 때부터 바로 7이나 8을 찍어.

그리고 계속 7-8-7-8-7-8을 왔다갔다 하지.

언제까지 이 수준을 유지하냐고? 내가 업무에 질리기 전까지지 당연히.....T_T

요상한 책임감이 있어서 업무에 질려도 한 5나 6까지는 유지해. 얼굴과 태도로 "아 일 세상 재미없어 집에 가고 싶어"라는 걸 보이면서.


참 다행이었던 건

우리 회사는 일본 회사이긴 했는데 글로벌에 진출한 지 얼마 안 된 회사라는 점이었어.

즉, 본사와 결부된 건 전부 룰이 있었는데 한국관련 업무는 거의 룰이 없었고, 프로세스도 없었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을 해야하는 게 많았지.

작게는 날인이 필요한 서류에 날인을 요청하는 것부터, 크게는 사무실 이사하는 것까지.

한국 시장을 전혀 모르고, 룰을 만드는 사람들이 한국을 전혀 모르다보니 그냥 니가 알아서 잘 해봐

라는 상황이었어.

흔히들 "체계없음" 또는 "레퍼런스 없음"의 정말 완벽한 "무"의 상태였지.


하지만 나는 새로운 일을 좋아하잖아요?

꺄아 존잼.

새롭게 룰 만드는 거 재미있고 프로세스 만드는 거 존잼.

내가 처음부터 룰 만들고, 프로세스 만들고 거기에 가이드 만들어서 애들한테 따라하라고 가르치는 거 갓제너럴킹왕짱 존잼.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일본이랑 다른데 하는 애들(feat. 상사놈들)을 차근차근 설득하고 내가 원하는 방식을 관철해 나가는 게 정말 정말 재미있었어.

솔직히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고 가끔씩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나 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루하지 않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님?

지루함 >>>>>>>>>안드로메다>>>>지옥의 입구>>>>>>>> 힘듬

(지루한 거 존싫)

게다가 내가 만든 룰대로 사람들이 막 움직이는 거 보는 것도 엄청 재미있고, 또 거기에서 문제점 찾아서 룰과 프로세스 업그레이드 하는 것도 좋고.

이 얼마나 보람차고 재미있는 에너지 소비인가!!!!!


그리고 다행히 앞뒤 꽉꽉 막힌 상사놈들 사이에 유니콘처럼 존재하는 머리가 유연한 사람이 내 상사가 되면서 나는 점점 인정을 받기 시작했어.

내 상사는 내부 조정자이자 영업들이 만들어 놓은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 문제가 지금까지 전례가 없는 케이스가 많았거든.

그러니 매뉴얼이 없으면 못 움직이는 일본애들은 아랫돌 빼다 윗돌 괴기(=누군가가 해결해줄테니 일단 시한이나 기한 연장해두고 다른 사람이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리기, 혹은 문제가 있으니 안 한다고 버팅기기)만 주구장창 했거든.

그리고 그런 곳에 나를 투입시켰지.

나는 새로운 일이니까 또 재미있어서 열심히 했고, 문제를 내 방식으로 해결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었어.

그리고 그 프로세스대로 사람들이 움직이면 다시 다른 문제거리로 이동이 되었지.

사실 이 회사 생활이 그렇게 길지는 않은데 업무 종류만 따지면 벌써 4번은 바뀐 것 같아. 거의 6개월 마다 새로운 일로 이동되었음.

재미있는 건 난 즐겁다는 거야.

매일 매일로 쪼개면 중간 중간에 내가 하기 싫다고 날뛰거나 같이 일하는 놈들 머리 나빠서 같이 못하겠다고 징징거리는 때가 있긴 했지만.

큰 줄기로 보면 꽤나 즐겁고 보람차게 일을 하고 있더라고.


별 다른 요령이나 팁 없이 이야기가 엄청 길어졌는데.

내가 썼던 팁이나 내 방법을 이야기 하자면


1. 일단은 룰을 따라 일한다(처음엔 망친다. 이건 자의적인 거 아님. 나름 열심히 하는데 늘 망함)

2. 룰에 맞춰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인다

3. 성과를 보인 것을 바탕으로 상사와 딜을 한다.

(내가 이러이러한 곳에 성과를 보인 것은 이러이러한 능력을 가졌다는 증거임으로 그러그러한 업무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데 님 생각은 어떠하신지?) / 이 경우 상사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제안하면 가능성이 높아짐(상사에게 계속 안테나 세우고 있어야함)

4. 새로운 업무 착수. 레퍼런스가 없었더라도 일단 내가 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받아들이도록 제안서 등을 작성한다

5. 새로운 룰을 정하거나 프로세스를 정할 때 기준은 "이 업무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 아주 기본적이고 단순하고 직관적이게 룰을 짤 것

예를 들어 우리 회사는 회사 직인이 일본에 있어서 아주 단순한 서류(예: 재직증명서, 퇴직연금 가입신청서)에 날인할 때도 본사를 나갔다 들어와야 하는데, 어떤식으로 날인을 요청하는지 서류는 정해져 있는데 방법은 제대로 안 정해져 있었음.

그래서 본사 법무팀이랑 계속 길게 메일 왔다갔다 하고 처음엔 엄청 피곤했는데-

내가 새롭게 룰과 프로세스를 만듦.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서류에 도장을 받는" 것이고, 일본애들이 한국어를 못해서 어디다가 도장 찍을지 몰라(나랑은 몇 번 싸워서 자존심 상해서 나한테 안 물어봄) 본사에서 일하는 타팀 한국인과 연결이 되야 도장을 찍어주는 그런 돼먹지 않은 상황이었어서, 처음에 날인 요청할 때부터 서류 캡쳐하고 그 위에 빨갛게 "여기에 찍음"이라고 PPT로 만들어서 본사에 보냄.

이 방식을 정착화 시킨 후 부터는 쓸데없는 시간 안 들고 바로바로 도장 찍혀서 날라옴.

내 미션(쓸데없이 시간 안 쓰고 도장을 빨리 받음) 컴플리트.

6. 내 룰이나 프로세스를 지적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의견 경청해서 합리적이면 바로 반영함.

7. 이렇게 2개월 운용하고 괜찮으면 가이드 만들고 타팀에도 배포함

8. 타팀에서도 문제없이 운용되는 걸 확인하면 상사한테 내 미션 컴플리트 되었다고 이야기 함(대체적으로 6개월 걸림)

9. 다른 문제점 있는 업무로 이동함


이 되겠음.

.....너무 조잡하네...

아무튼 그렇습니다.


나톨은 이렇게 업무하며 나름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음.

늘 새로운 일 쑤시고 다녀서 워라밸 극악아닌가 걱정해주는 톨들도 있겠지만 저는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는 그런 토리입니다.

야근은 제 사전에 없어요.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오늘 일본 휴일이라 일이 별로 없어서 업무 정리하다가 이것저것 생각난 김에 퇴근해서 글 써봄.


톨바~

(토리들 바이라는 뜻)


  • tory_1 2018.02.1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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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2 2018.02.12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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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 2018.02.12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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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3 2018.02.12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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