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마로니에공원 <구 서울대 본관>
문패에는 ‘예술가의 집’이라고 적혀 있다. 원래는 일제 강점기인 1931년 경성제국대학 본관으로 지어졌다. 최초의 한국인 건축가 박길용(1899~1943)이 설계했다고 한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외부는 밝은 갈색 타일로 꾸며졌다. 평지붕과 장식 없는 외관이라는 건축양식은 1930년대 근대주의적 디자인의 대표작으로 설명된다. 중앙 출입구 포치와 완만한 곡선 벽면 등이 세련되고 우아한 느낌을 준다. 해방 후 1972년까지 서울대 본관으로 사용돼 사적(278호) ‘구 서울대 본관’으로 등록돼 있다. 서울대가 관악구로 옮긴 후에 대학로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옛 서울대 시설이다. 현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교류공간인 ‘예술가의 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3.구 조선중앙일보 사옥
서울 종로1가사거리(지하철 종각역)에서 북쪽으로 안국동사거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붉은 벽돌에 흰색 머리띠를 두른 듯한 오래된 건물이 보인다. 행정구역상 종로구 견지동으로 현재는 NH농협은행 종로금융센터다. 지난 1926년 완공됐는데 조선일보·동아일보와 함께 민간 3대 신문으로 꼽혔던 조선중앙일보 사옥(1933~1937년)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조선중앙일보는 1936년 8월13일자 지면에서 독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실으면서 일본 국기를 지워버린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인공이다. 당시 사장은 여운형이었다. 같은 날 지방판에서 역시 일장기를 지워버린 동아일보와 함께 일제에 의해 정간 처분을 받았다가 경영난 등으로 1937년 결국 폐간됐다. 이 건물은 1970년부터 농협중앙회에서 사용해오고 있다.
4.서울 용산구 후암동 '지월장'
서울 남산의 남서쪽인 용산구 후암동에는 이른바 ‘문화주택’이라는 일본식 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일제강점기 1920년대부터 일본인들이 집단 거주하면서 일본식에 서양식을 섞은 건물들이 생겨났고 당시 전통주택과 다른 이들을 문화주택이라고 불렀다. 현재도 300여채의 문화주택이 남아 이국적 풍경을 띤다. 왜 이 지역일까. 이는 용산에 주둔한 일본군과 관계가 있다. 남쪽으로는 일본군 주둔지(현재 용산 미군기지), 북쪽으로는 한양도성 남대문 사이라는 위치 때문이다. 지금 용산 미군기지 옆 이태원에 외국인들이 몰려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일본식 문화주택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사진의 ‘지월장(指月藏)’이다. 1920년대 초 황해도에서 철도사업을 하던 일본 서선식산철도주식회사 상무이사였던 니시지마 신조의 별장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고 있다.
5.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 - 구 공업전습소
근대 국가의 핵심은 상공업의 진흥인데 대한제국 시기 명칭으로는 식산흥업(植産興業)이다. 제국 정부는 근대공업 기술교육 기관으로 지난 1906년 공업전습소(工業傳習所)를 만든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 교내에 있는 ‘구 공업전습소’는 이를 위한 건물로 세워졌다. 1907년 설계를 시작해 1909년 완공됐다. 주로 목공·토목·화학·도기 등의 기술을 교육했다고 한다. 대한제국이 근대국가 건설을 위해 사회·경제 전 분야에서 진행했던 개혁작업의 한 사례다. 회백색 색깔의 건물은 멀리서 보면 석조건물처럼 보이지만 놀랍게도 목조건물이다. 2층의 르네상스 양식 건물로 외벽은 나무비늘판붙이기 식으로 시공했다. 궁궐을 빼고는 대한제국 시기에 지은 목조로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지금은 방통대의 역사관으로 사용 중이다
출처 : http://www.sedaily.com/NewsView/1RZIMBW5HU
오오오 신기하다 지나다니면서 많이 본 덴데!!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