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들 안녕
나는 현재 영미권 로스쿨 재학 중인 학생이고
학교 내 무료 법률상담 클리닉에서 일하고 있어.
좀 이따도 변호사 보러 가야 되는데 공부하기도 싫고 ㅋㅋ 그래서
여기 살면서 법률상담에 대해서 알면 좋을 것들 몇 가지 써봐.
1. 톨이 살고 있는 지역 로스쿨에는 다 무료 법률상담 클리닉이 하나씩 있을 거야.
사실 살면서 내가 소송하거나 걸릴 일 뭐가 있겠어 싶어서
(나도 그랬지만) 보통은 신경 안 쓰고 살지만 일단 이런 자원이 있다는 걸 알아두면 좋아.
로스쿨에서 하는 클리닉 이외에도 변호사협회나 해당 지역의 Legal aid 단체에서는
직접 만나서 무료법률상담 서비스를 하거나 전화로 간단한 상담을 해주기도 해.
위에서 말하는 직접 만나는 서비스는 단순히 팁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건 수임한 변호사처럼 공문 작성해주거나 법원에서 사무대리를 해주기도 해.
물론 이런 서비스는 저소득층 대상이긴 하지만 학생이거나 내 소득이 엄청 높지는 않다고 하면 필요할 때 한 번 전화 걸어봐.
정책상 정확히 소득 기준이 얼마인지는 알려줄 수 없지만 접수하는 쪽에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적합하면 적합하다고 알려줄 거야.
2. 어차피 닥치면 다 찾아볼 텐데 이걸 미리 알아두고 있으라고 굳이 얘기하는 이유는
사실 법과 관련된 일들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고,
소송 얘기는 1도 없고 나 스스로도 이게 법에 걸릴 만한 일인가 긴가민가 한 일들도 법적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
아이고 그러면 재판 가야 되는 거 아냐? 막막하게 느껴지겠지만
실제 케이스 중에 재판까지 가는 비율은 매우 소수야.
대부분은 재판 가기 전에 양쪽이 합의해서 끝남.
우리가 신문에서 보는 연방대법원까지 그런 케이스들은 그런 정말 극소수 중 극소수고.
소송이 쉽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최후의 보루이긴 하지.
그런데 내게 이런 옵션이 있다는 걸 알고 필요할 때 상담 받아서 이를 저울질해보는 것과
그 옵션 자체를 아예 배제해놓고 상대방과의 대화에 임하는 건 천지차이야.
내가 법적 조치를 불사할 각오가 됐다는 걸 알고 종종 상대방이 태도를 바꿔서 합의에 이르기도 해.
법적 조치까지 갈 것도 없이 영미권 사는 톨들,
여기 회사나 온갖 잡놈들 지들이 잘못했어도 막 던져보고 간 보고 내가 지랄하면 깨갱하는 거 알지?
그러니까 결론은 어이쿠 재판 ㅎㄷㄷㄷㄷ 미리 겁먹지 말고 유사시에 일단 상담만이라도 받아보라는 얘기야.
(법률 서비스 영업 아님. 내가 현재 일하는 클리닉은 전부 무료로 운영되는 자봉단체 + 난 이쪽 분야로 취업할 생각 없음.)
3. 사실 법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부정적인 면이 크고, (무전유죄 유전무죄 비싼 변호사 사면 무조건 이긴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은 송무에 휘말리는 것 자체를 꺼리는 편이 커서인지
분명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이 많을 텐데 한국분들 전화는 적은 거 같아서
그냥 법적으로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속는 셈 치고 전화해봤으면 좋겠어.
어차피 택도 없는 건이면 우리가 판단해서 택도 없다고 알려줄 거니까 걱정노.
상담전화 받다보면 도움이 진짜 필요하신 분들도 있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여기저기 소송 걸고 다니고
너희는 날 도와야 한다고 돈도 안 내면서 갑질하는 이상한 사람들도 많은데
정말 필요하신 분들에게 도움이 갔으면 좋겠다능...
4. 소송을 안 당했는데도 법률상담이 필요한 이유:
예를 들어 톨이 취직을 했는데 직원(employee)이 아닌 계약사업자(independent contractor)로서 계약을 했고
월급의 대부분을 기본급이 아닌 인센티브 형식으로 받는 조항을 넣어서
정작 일한 걸 따져보니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거나 연장근무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했을 경우,
회사에서 “너는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최저시급 및 연장근무 보상에 대한 규제가 있는
노동근로법(Employment Standards Act)이 적용되지 않거든? 빠이” 이럴 거야.
그런데 직원인지 계약사업자인지에 대한 판단은 근로계약서에 써진 단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내용, 직원 본인이 업무에 가지는 자율성, 업무에 필요한 자원을 누가 제공했는가 등의 요소를 따져서 판단하는 거야.
위의 예시 외에도 “계약관계에서 내가 손해를 받았지만 계약서에 나에게 안 좋은 쪽으로 써있고 거기에 내가 싸인했다”고 해서
무조건 상대방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포기하지 말고 소득기준에 부합한다면 무료 법률상담을 받아봐.
물론 계약에 대해서는 보통 양측이 동의한 바가 무엇인가가 중요하긴 한데 (이상한 계약이라도 일단 동의했으면 계약 내용을 존중함)
양측이 가진 파워 밸런스, 혹은 보호받아야 할 상대가 누구인가에 대해 법적으로 고려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
5. 하여튼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법률상담 = 재판 <- 절대 아니니까 괜히 겁먹지 말고 필요한 경우 받아보길 바란다는 것.
어차피 재판도 내가 가고 싶다고 아무나 가는 거 절대 아님.
나에게 정당성이 있고 심지어 변호사 살 돈이 있어도 다른 세세하고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소송을 걸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6. 그리고 법정에 회부되었으면 꼭 가.
나 이 일 하면서 소환장 받고도 그냥 그거 무시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거 첨 알았넴;;;;
소환에 불응하면 영장 나오고 영장 내용에 따라서 콩밥 먹을 수도 있어
법원에 가서 합의를 보든 논리로 패서 이기든 말로 해서 끝날 걸 감방까지 가야겠냐고...
여기 경찰이 한국처럼 막 열일해서 조사하고 쫓아가서 체포하지는 않는데
하다못해 길 가다 경찰이랑 부닥쳐서 신원조회에 영장 뜨면 그대로 은팔찌 참
경찰한테 내 사정 잘 설명하면 “에휴 그 때 그냥 나가지 그러셨어요 어쩐대...” 이런 거 노노 일단 체포함
나 작년에 담당했던 의뢰인은 8년 동안 안 잡혔었는데 재수없게 친구가 술 먹고 난동부리는 옆에 같이 있다가
경찰이 와서 신원조회에 걸려서 하룻밤 유치장 신세 지고 정신차렸음
내가 대체 재판에 왜 안 갔냐고 그랬더니 그냥 자기가 바보 같았었대ㅠㅠ ㅋㅋㅋㅋ
내가 어떠한 이유로 재판 준비가 안 되었다면 가서 판사한테 잘 설명하고 빌어
이유가 타당하면 판사가 adjourn해줄 거야 하여튼 뭘 하든지 일단 가서 설명해...
한국 사람들은 그래도 그렇게 패기 쩌는 분들 얼마 없을 거 같지만 그래도 꼭꼭 가기로 해요.
그리고 무면허운전이든 뭐든 법정 소환날짜까지 잡혔으면 최대한 빨리 법률상담 받아.
내일 법원 가야 되는데 오늘 전화하는 분들 환장..
우리 클리닉이든 다른 단체든 다 자봉단체고 공급이 수요에 비해 한참 모자라기 때문에 일이 그렇게 바로바로 되지 않아.
민사 건이면 대부분의 민사 claim은 2년의 시효가 있기 때문에 바쁘더라도 이것도 제때 문제제기해줘야 하고.
하여튼 문제가 있으면 빨리빨리 해결해야 함
대충 이 정도면 할 얘기 다 한 거 같은데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면 답해줄게.
근데 법에 관한 거면 나도 법 잘 몰라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로스쿨에서 법도 배우긴 배우는데 법을 중점으로 배운다기보다는 체계를 배우는 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