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로 그렇게 생각함.
왜냐면 내가 우울한 독거인이고 미니 식세기로 인생이 바뀌었거든. 과장 아니고 진짜 인생이 바뀜.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거야. 주기적으로 그 시기가 오는데, 내 생활이 망가지기 시작하는 딱 그 시작점이 있음. 아,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걸 알아. 알지만 막을 수 없음. 막아지면 병이 아니지 ㅎㅎ
내 경우는 늘 싱크대에 그릇이 쌓이면서 시작됨. 그릇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하는데 그걸 씻을 의욕과 에너지가 없음. 그러다 싱크대가 꽉 차고 당연히 음식을 해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사다 먹거나 시켜 먹게 됨.
배달 음식 먹고 난 쓰레기도 치울 수 없음. 왜냐면 싱크대가 꽉 차 있기 때문에. 그래서 주변에 그냥 두게 되고 쓰레기가 점차 쌓이기 시작함. 그러다 온 집안이 쓰레기로 가득 차게 됨.
인터넷에 많이 떠도는 쓰레기집 사진 있지? 우리집이 그랬어. 그것도 주기적으로. 심할 땐 일 년 가까이 그 상태로 지낸적도 있음.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될수록 당연히 점점 더 일상 회복이 힘들어짐. 그 후 과정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거야.
오랫동안 그렇게 살다가 어느날 미니 식세기를 샀다. 당연히 여건이 된다면 큰 식세기를 놓는게 좋음. 그치만 나는 여건이 안되었고 그거라도 놓기로 했음.
미니 식세기 뭐 그릇 얼마 안들어가고 애벌 설거지 해야돼서 그게 그거고 물도 직접 채워야 하고 시간 오래 걸리고 큰 냄비나 후라이팬 안들어가서 어차피 직접 해야하고 등등 사람들이 말하는 단점들 모두 맞는 얘기야.
몸과 마음 건강하고 그릇 한두 개 바로 바로 씻어버릴 수 있는 사람들에겐 굳이 필요 없음. 있으나 마나일 수 있음. 그치만 나같은 사람에겐? 구세주임.
여전히 나는 주기적으로 우울에 빠지지만, 이전의 그 삶으로 돌아가지는 않아. 위에서 말했던 내 생활이 망가지기 시작하는 시점, 그게 조기에 차단됨.
고작 식세기 하나가 그렇게까지? 싶겠지만 그렇게까지 되더라. 가장 큰 건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마무리 짓지 않아도 된다는 거. 그게 심리적으로 엄청나게 도움이 됨.
뭐 엄청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서 할 수 없는 게 아니거든. 정신이 건강할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해버릴 수 있는 일도 사람이 힘들 때는 1에서 10까지의 과정을 미리 머릿속으로 세세하게 그리게 되고, 생각만으로 이미 지쳐버려서 시작도 못하게 됨.
그런데 식세기가 있으면 나는 1에서 3까지만 하면 되는거야. 그럼 얘가 4에서 10까지를 해 줌. 내가 끝까지 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부담감을 엄청 줄여줌.
싱크대 가득 그릇이 쌓여도 원상복구 하는데 부담이 없음. 이전엔 손도 대기 싫었다면 이제는 쉽게 시작할 수 있어. 일단 시작만 하면 끝은 식세기가 해주거든.
내가 하면 20분에 끝낼 설거지를 식세기 돌리면 1시간 걸린다? 맞음. 근데 그 1시간을 내가 하지 않는다는게 중요함. 내가 끝까지 하면 20분 걸릴 설거지지만 식세기가 있으면 3분만에 내 일이 끝남. 그 뒤는 막말로 1시간이 아니라 2시간 3시간이 걸려도 내 알 바 아님.
절대적인 시간과 노동량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부담감을 줄여준다는 게 진짜 중요함.
덕분에 내 생활이 악순환에 빠지지 않고 꽤 오래 썩 괜찮게 유지되고 있어.
우리집 진짜 작고 싱크대도 당연히 좁고… 싱크볼 옆에 식기 건조대 놓을 수 있는 공간 딱 그만큼 있어서 건조대 대신 식세기 겨우 올렸음.
그리고 식세기는 당근에서 샀음. 당근에 10만원 이하로 꽤 많이 나와. 아기 어릴 때 젖병 세척용으로 쓰고 그 시기 지나면 파는 사람들이 많거든. 나는 그런거 7만원인가 주고 삼. 꽤 무겁긴 한데 아예 못들 정도는 아니라서 용달도 필요도 없고 타다 같은 거 불러서 옮기면 됨.
이렇게 길게 구구절절 적는 이유는 나랑 비슷한 톨이 꼭 있을 것 같아서. 그 톨도 나처럼 조금 나아졌으면 싶어서. 뭐라도 해보자고.
누구도 거들어주지 않는 내 삶을 식세기가 거들어주더라. 작은 도움이라도 받아서 빠져나오자.
+ 제목에 제품명을 적어야 한다고 해서 추가했어.
내가 산 제품은 대우 미니 식세기인데 사실 비슷한 가격대의 제품은 브랜드 상관 없이 구조와 기능이 거의 동일함.
최근에 나온 제품은 자동 문열림 기능이 있는데, 이게 더 비싸지만 여건이 된다면 이걸 사는게 훨씬 좋음.
그리고 좀 더 여건이 된다면 당연히 큰 설치형 식세기가 훨씬 훨씬 좋음 ㅎㅎ
그치만 알지? 비용과 공간도 문제지만 나같은 사람들은 식기 세척기 설치하러 사람이 집에 오는 것도 굉장한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이사 할 때가 아니면 꿈도 못꿈...
삶이바뀐다
난 1인가구인데 6인용 쓰다가 결국 12인용으로 바꾼 사람도 여럿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