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소에 들어선 최광혁(31․강원도청)은 시종일관 밝았다. 민감한 질문에도 쿨내 풀풀 풍기는 답변으로 개의치 않아했다. 훈련장에서 돋보였던 선수도 최광혁이었다. 31세로 팀에선 중간급 나이지만 최광혁은 마치 막내처럼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동료들과 투닥대며 훈련장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다.
최광혁의 어린 시절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난한 가정 형편에 먹을 것을 구걸해 다니는 ‘꽃제비’ 생활을 전전했다. 13살 때는 기차에서 떨어져 한쪽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열악한 상황에서 최광혁은 마취도 받지 않은 채 구더기가 들끓는 왼쪽 발목을 잃어야 했다. 최광혁은 “하도 오래 전 일이라 덤덤하다. 그런데 수술 상황은 아직도 기억 난다. 지금 생각해도 아프고, 생각하기 싫은 부분이다”라고 전했다.
희망이 없었던 그때, 소식이 끊겼던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탈북 후 브로커를 통해 아들을 찾았고, 아들 최광혁은 이 소식을 듣고 탈북을 결심한다. 결국 최광혁은 2001년 8월 중국을 거쳐 한국 땅을 밟았다.
최광혁은 스스로 네 가지의 인생을 살아왔다고 얘기했다. 한국에서의 삶과 북한에서의 삶, 그리고 비장애인으로서의 삶, 장애인으로서의 삶. 우여곡절이 많은 삶이었지만 최광혁은 그렇기에 “모든 이들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최광혁은 “4개의 삶을 살다보니 방황도 많이 했다. 나처럼 (중도)장애인과 탈북자들 중에서도 힘들어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장애인이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한편, 한국에 와서도 한창 방황하던 그에게 아이스하키가 찾아왔다. 장애인으로서 취미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장애인 아이스하키를 접한 그.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다가 점점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친구들을 보며 오기가 생겨 이 악물고 뛰었다고 한다.
하지만 팀 스포츠인 아이스하키에 몰두하다보니 자연스레 긍정적인 모습이 발현됐다. 학교 다닐 때 적정선(?)의 사고를 치고 다녔다던 최광혁은 아이스하키 시작 후 방황에서 벗어났다. 그는 “마인드 컨트롤이나 타인을 대하는 방법, 성격 모든 게 많이 변했다”고 말하며, “내게 긍정적인 면을 많이 가져다 준 스포츠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최광혁은 “아이스하키는 한국에서의 제2의 삶이다. 아이스하키는 내 분신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됐다”라 말하며, “내가 스틱질을 못하지 않는 한, 즐길 수 있는 체력이 있는 한 계속해서 아이스하키를 하고 싶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출처 : STN SPORTS(http://www.stnsport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