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업

30대 중반 직장인이야. 어제 전세집 계약하러 갔다가 생각난 게 있어서 여기에 쓴당. 


우선 이 글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토리들과 나누고 싶어서 쓰는 거야. 


비슷한 처지라 함은 흙수저 / 여자 / 비수도권 출신.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정서적으로도 사랑받지 못하고 불행한 10대와 20대를 보내고 있는 토리들을 위한 현실적인 위로야. 그동안 내가 길진 않지만 사회 생활을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깨달은 것들을 쓸게. 물론 주관적인 거니까 공감가는 부분만 보면 될 거야. 참고로 내용 정말 우울하거든? 상쾌한 기분이고 싶으면 읽지 않는 걸 추천함. 


1. 혈연에 발목 잡히지 마라 


나는 경상도 산골에서 태어났어. 어느 정도냐면 하루에 버스가 3대만 들어오고,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해도 전기가 안 들어와서 나무 장작을 때던 곳이야. 요즘에야 이런 곳이 없겠지만 ^^;... 나의 부모님은 맞선을 봐서 사랑해서 결혼을 했는데, 문제는 두 분 다 돈이 없었다는 거. 그 와중에 나와 오빠가 태어났지. 


축약해서 말하자면 나는 10대 때 가족 때문에 엄청나게 불행했어. 아빠와 엄마는 끊임없이 나를 후려쳤어. '네가 뭘 하겠냐' '너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 딴에는 겸손함을 가르치겠다는 인성 교육이었던 거 같은데, 덕분에 나는 어딜가서도 눈치보고 주눅이 드는 아이로 자랐어.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자신감이나 안정감은 지금까지도 내가 가질 수 없는 요소라는 걸 알아. 


그리고 오빠한테는 폭력을 당했지. 남매 지간에 싸우면서 크는 거 아니냐는 말 많이 듣는데. 난 그게 당사자에게 어떻게 들릴지 생각을 안 한 말이라고 생각해. 아직도 맞기 싫어서 화장실 문 잠그고 울던 기억이 생생해. 심지어 내가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칼을 목에 대고 죽겠다고 했는데 오빠라는 새끼는 히죽거리면서 '죽을 수 있으면 죽어봐'라고 말하더라. 근데 부모님 앞에서는 세상 입만 살아있는 효자가 따로 없어. 아예 다른 인격이 나오더라고. 거짓말은 밥 먹듯이 하고. 그건 30대 중반인 지금도 그렇더라. 


결론적으로 나는 가족이랑 지금 연락 안 해. 경제적인 지원이라도 받았으면 모를까 계속 연락할 이유가 없었거든.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내 발목을 잡았고. 아무리 혈연이더라도 같이 보내는 시간이 불행하면 잘라내는 게 맞다고 봐. 


2. 싸우는 것, 'NO'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마라 


어릴 때 나는 가족들에게 '독한 년'이란 소리를 밥 먹듯이 들으면서 자랐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계속 아니라고 말하고 달려들고 싸웠거든.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별 소리 다 들었어. 근데 후회 안 해. 내 말이 다 맞았으니까. 


가족들의 말이 나를 위한 거라는 착각은 안 하는 게 좋아. 그런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아. 내 인생과 방향성은 내 자신이 더 잘 아는 거니까. 일례로, 내가 대학 졸업하고 원하는 회사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는데, 부모님이 전화가 와서 전라도 어느 항구에 있는 사무직(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겠지?)에서 일하지 않겠냐고 하더라. 너도 나이 먹을만큼 먹었는데 돈을 못 벌면 사람 구실 못하는 거라고. 만약 내가 거기다 대고 알았다고 하면 어떻게 됐을까? 그 직업을 비하하는 게 아니야. 단지 내게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다는 걸 의심하지 말라는 거야. 


이건 비단 가족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냐. 사회에 나와서 살아보니 '젊은 여자'는 진짜 동네 북이더라. 택시 기사부터 부동산 중개인, 회사 꼰대, 클라이언트까지 일단 한 번 후려치고 들어가려고 하더라고. 절대로 그렇게 놓아두면 안 돼. 정말 아닌 순간에는 칼 같이 거절하고 의사표현을 하는 걸 망설이지 말아야 해.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는 솔직히 중요하지 않아. 그들은 본인 입맛대로 내가 움직이는 걸 원할 뿐이니까. 내가 행복해야지. 


3. 열등감을 기폭제로 써라 


10대 때 너무 불행했지만, 본능적으로 서울로 탈출해야 내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 가족한테서도 도망칠 수 있고,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 봤거든.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고, 그럭저럭 이름은 들어본 대학에 입학했어. 결과적으로 맞는 판단이었지. 


서울에서 시작한 20대 생활도 행복하지만은 않더라. 정신적으로는 안정됐지. 더 이상 시도때도 없이 울지도 않았고, 이유 없는 분노 때문에 잠을 설치는 날도 점점 줄어들었어. 근데 역시 돈이 내 발목을 잡더라. 등록금을 내고, 방세를 내느라 오만가지 일을 다 했는데. 그때는 열등감이 극에 달해서 집에서 부모님이 해주는 밥 먹으면서 학교 오가고, 5~6천원짜리 커피 고민없이 마시는 애들만 보면 화가 나더라.


그래도 계속 버텼어. 취직만 되고, 경제력이 확보가 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걸 알았으니까. 걔네들이랑 출발선은 다르지만, 내가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는 명제였으니까.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어. 


장점도 있더라. 하도 여러가지 고생을 하다보니 이제 웬만한 일에는 멘탈이 안 흔들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남들은 다 뒤집어지고 난리나도 나는 눈 하나 깜짝 안 해. 다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더라. 생계형 고생이 비결이다 이것들아...


4. 나의 일은 곧 나의 자긍심이다 


20대 때 나는 광화문과 여의도, 강남에 즐비한 빌딩들만 보면 슬펐어. 저렇게 회사가 많은데 내가 밥 벌어 먹고 살만한 곳은 정말 없는 걸까 싶고. 막막하고. 두렵고. 근데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아무런 감정이 안 들어. 광화문에서도, 테헤란로에서도 일해봤고, 지금도 그렇게 사니까. 


나는 내 일을 정말 사랑해. 남들 눈에는 그냥저냥 별 특징없는 오피스룩 입은 회사원 1이겠지만, 내 일과 월급이 날 지탱해주고 있으니까. 그래서 일을 할 때도 감사한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해. 덕분에 또래에 비해서는 승진도 좀 빨랐어. 그리고 어디가서 일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들어. 최고라는 말은 솔직히 못들어봤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고, 뭘 맡겨도 평균 이상은 한다는 평가는 꾸준히 들어. 


5. 남자에게 기대지 마라, 남는 건 통장 잔고와 건강뿐 


그렇게 구질구질하고 궁상맞게 살면서도 몇 번의 연애는 했었어. 근데 내가 복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지나치게 눈이 높은 건지 다들 눈에 안 차더라. 첫 경험부터 별로였어. 어릴 때 기억 때문인지 나는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게 책임감을 의미하지는 않더라. 같이 좋아서 밤을 보냈는데 혼자 놀라서 전화기 꺼놓고 도망치더라고. 


그 뒤로 만난 남자들도 다 별로였어. 지나치게 허세가 심하거나, 가부장적이거나, 게으른데 자기 합리화에만 능하거나 등등. 어떻게 봐도 이 사람을 믿고 내 남은 인생을 설계하기는 싫더라고. 그래서 주변에서 결혼 왜 안하냐고 성화여도 별 생각이 없어. 남들 다 하니까 마음 급해져서 하는 건 나를 불행과 고생으로 몰아넣는 일이니까. 같이 있을 때 플러스가 되어야지 마이너스가 되면 안 되는 거잖아?


연애에 대한 환상이 깨진 뒤로 내가 몰두했던 건 저축과 재테크, 운동이야. 덕분에 30대에 진입하자마자 통장 잔고 1억 넘겼고 그걸로 좀 넓고 괜찮은 분리형 원룸 반전세를 얻었어. 입주하고 이삿짐 센터 아저씨 보내고 난 뒤에 혼자 거실에 주저 앉아서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10년 넘게 월세 15만원짜리 반지하에서 살았거든. 그 축축한 공기랑 곰팡이랑 이별하고 햇볕이 드는 멀끔한 곳에서 내가 산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그뒤로 몇년이 지나서 5천만원을 더 모았어. 그리고 대출을 조금 받아서 방 2개짜리 전세집을 얻었어. 남들 눈에는 별 거 아니겠고, 집을 산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유난이냐고 하겠지만 내 힘으로 여기까지 오는데 10년 넘게 걸렸거든. 나한테는 정말 의미가 큰 일이야. 


운동의 중요성은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 삶에서 안전망이 없는 사람에게 건강은 거의 전부나 마찬가지야. 난 아침에는 유산소+퇴근 후 근력 운동으로 하루에 1시간 30분을 쓰는데, 전혀 아깝지 않아. 평생 운동할 생각으로 하고 있어. 



여기까지가 흙수저 집안에서 태어나서 상경 후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고 있는 내 이야기야. 


그냥 그 말을 해주고 싶어. 태어났을 때 환경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내 미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거. 아무리 힘들더라도 버티면 좋은 날이 온다는 거.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고, 누군가한테 저평가 당할 이유도 없다는 거. 우리가 가진 건 없지만, 더 나은 삶을 살 기회는 충분히 있어.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믿고 힘내자. 원래 사는 건 외로운 거 아니겠니 ㅎㅎ





  • tory_96 2019.07.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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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98 2019.07.20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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