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엄마.
밍이예요.
2개월 때 헤어졌으니 벌써 9년하고 3개월이나 지났네요.
잘 지내요?
나는 잘 지내요.
콩이도 잘 지내구요.
그동안 소식 전할 생각을 못했네요.
그래서 이벤트 핑계 삼아 우리 얘기를 하려구요.
길어져도 이해해줘요.
헤어져 있었던 시간 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까요.
* *
엄마는 길에서 살았다고 들었어요.
엄마에게 밥을 주던 임보 엄마가
임신한 엄마 혼자 겨울을 못날까봐 걱정이 돼서 집으로 들였고,
다행히도 우리는 겨울과 봄 사이에 집에서 태어났어요.
가끔 우리 보고 길고양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보 같아요.
나는 집에서 태어났으니까 집고양이잖아요.
그쵸?
나는 장남이니까 동생들을 잘 챙기고 싶었어요.
그래서 동생들이 우는 게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쓰였어요.
알았나봐요.
우리가 언젠가는 헤어질거라는 걸.
둘째 달이랑 제일 먼저 헤어질 줄 알았으면 더 핥아주고
엄마 젖도 양보하는 건데..
달이는 잘 지낼까요?
콩이는 너무 작아서 더 신경 쓰였어요.
콩알만한게 이리저리 우다다다 뛰어다니는데
어디 다치지는 않을까 항상 조마조마했었어요.
겁도 없어서 맨날 어디 들어가고 올라가고 ...
그러다 갑자기 픽 쓰러져서 자고. ㅎㅎ
그럼 엄마가 이렇게 막 핥아 줬던 기억이 나요.
한 번은 콩이가 엄마가 쓰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못 나왔었잖아요.
내가 귀를 물고 아무리 당겨도 못 빼서 임보 엄마가 빼주고 ... ㅎㅎ
나 그때 임보 엄마네서 쓰던 변기형 화장실 아직까지 써요.
처음 썼던 모래도 아직 쓰고. ㅎㅎ
인간 엄마가 일부러 안 바꾸는 거래요.
엄마도 여전히 그래요?
우리 같은 화장실, 같은 모래를 쓰고 있을까요?
임보 엄마가 내가 콩이를 더 챙겼단 얘길 내 소개글로 썼나봐요.
지금 같이 사는 인간 엄마가 그 소개글에 반했다더라구요.
콩이는 그냥 사진만 보고 반했으면서...
나도 이렇게 잘 생겼었는데!
인간 엄마가 콩이의 이 눈빛이 너무 좋았대요.
보자마자 자식 같았대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좋아했는지 알 거 같아요.
표정이 인간 엄마랑 똑같아요. ㅡ.ㅡ...
인간 이모는 맨날 입버릇으로 인간 엄마한테 그래요.
니가 고양이를 낳았다구요.
엄마.
기억 나요?
내가 젖을 제일 늦게까지 먹었잖아요.
엄마 젖이 너무 좋아서,
엄마 품이 너무 좋아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엄마가 기지개를 켜는 척 몸을 돌릴 때까지 더 붙어 있고 싶었어요.
젖을 제일 늦게까지 먹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꾹꾹이를 해요.
그때마다 인간 엄마가 자꾸 미안하다고 하는데
왜 미안한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 *
인간 엄마가 인간 이모랑 같이 대구에서 서울까지 우리를 데리러 왔었잖아요.
임보 엄마도 이렇게 멀리까지 우리를 보낼 줄은 몰랐대요.
근데 어쩌겠어요.
나랑 콩이가 인간 엄마 마음에 콱 박혀 버린 걸. ㅎㅎ
임보 엄마랑 임보 할머니가 헤어질 때 우셨다는데
기억이 잘 안 나요.
사실 너무 무서웠거든요.
콩이랑 같이 있지 않았으면 더 무서웠을 거 같아요.
새집에 오니까 인간 삼촌도 있었어요.
덩치가 얼마나 큰지 가끔 무서운데 사실은 엄청 착해요.
등도 내주고
맨날 예쁘다예쁘다 하면서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거든요.
(근데 가끔 인간 엄마가 인간 삼촌보다 우리를 더 예뻐한다고 질투해요 . ㅋㅋㅋㅋ)
한 번은 내가 옷장에 들어가서 잔 적이 있거든요.
마침 인간 삼촌이 나랑 콩이 보면서 간식 먹으려고 인간 엄마 집에 왔다가
내가 안 보인다고 난리가 났어요.
밖에 놀러 나갔던 인간 이모도 뛰어오고
인간 엄마는 자다가 잠옷 채로 밖으로 뛰어나가고
인간 삼촌은 문이란 문은 다 열어봤대요.
심지어 냉동실 문도 열었었다는데 거기에 내가 어떻게 들어 간다고 ...
시끄러운 소리에 야옹 울었더니
인간 엄마랑 인간 삼촌이 옷장을 붙잡고 울더라구요.
나중에 인간 엄마가 인간 삼촌한테 왜 울었냐고 물어봤더니
내가 없으면 인간 엄마가 너무 힘들어할텐데 그게 너무 속상해서 울었대요.
뭐야 ...
이 집에 와서도 콩이가 있어서 덜 무서웠어요.
우리가 조금이라도 덜 외로워했으면 해서 나랑 콩이를 같이 데리고 온 거래요.
그러고 보니 엄마 뱃속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린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네요. ㅎㅎ
새집으로 오고 우린 이름이 바뀌었어요.
나는 이후추, 콩이는 이소금.
후추 고추 부추 단추 중에 두 개 골라서 지으려다가
먹는 걸로 이름 지어야 오래 산다는 말에 인간 엄마가 후추랑 소금이라고 지었대요.
인간 엄마가 고기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근데 고기를 구울 때는 후추랑 소금이 꼭 필요하니까
우리가 인간 엄마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거라는 뜻이었다는데,
지금은 조금 후회한대요.
너무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라 아주 나중에는 힘들 거 같다구요..
엄마.
애기 때부터 소금이 코에 고소영 누나처럼 점이 있던 거 기억하죠?
그래서 인간 엄마는 종종 소금이를 고소금~ 이라고 불러요.
또 가끔은 금소~ 그러기도 하고,
금금~ 엄마 금이~ 라고 부를 때도 있어요.
나는 계속 후츙츙(충이 아니라 츙이에요)이라고 부르면서... 칫.
사실 새집에서 빨리 적응을 못해서 한동안은 구석만 있으면 숨었어요.
나는 소금이를 지켜야 하는 오빠니까 무서워도 용기를 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소금이는 별로 안 무서웠던 거 같네요...
나 혼자 무서웠나봐요. ㅎㅎ
그래도 인간 엄마랑 생각보다 금방 친해졌어요.
인간 엄마가 우리한테 자꾸 치댔거든요.
자고 있으면 인간 엄마가 슬금슬금 기어 와서 자꾸 만지고,
소금이랑 나랑 자다가 눈을 뜨면 항상 옆에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인간 엄마가 좋아졌던 거 같아요.
지금 인간 엄마가 쓰는 휴대폰 케이스도
우리한테 치대다가 찍힌 사진으로 만들었대요.
인간 엄마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도 몇 년째 <순후추꽃소금> 이예요.
나는 순하고, 소금이는 꽃처럼 예쁘대요.
엄마.
몰랐는데, 난 고구마를 좋아하더라구요.
아니, 풀을 좋아해요!
보는 쪽 말고 먹는 쪽으로요. ㅎㅎ
인간 엄마가 키우던 고구마 줄기랑
미니장미를 몽땅 다 씹어 먹었어요.
이렇게요.
와앙.
무섭죠? ㅎㅎㅎㅎ
(요즘엔 내가 좋아한다고 새싹보리를 키우고 있어요. ㅎㅎ)
나랑 다르게 소금이는 이렇게 감상만 했어요.
너무 예쁘죠?
생각해 봤는데요,
소금이는 평소에도 예쁘지만, 풀이랑 같이 있으면 더 예쁜 거 같아요.
누구 동생인지
코에 있는 점만 닮은 게 아니라 외모도 고소영 누나처럼 예쁘다니까요!
그리고 여전히 용감하고 날렵해요.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소금이가 커튼을 막 타고 올라갔었거든요?
나는 걱정되는데 인간 엄마는 박수까지 치면서 스파이더냥이라고 좋아했었어요.
아무래도 인간 엄마는 철이 좀 없는 거 같아요.
근데 지금은 커튼 말고 캣폴 봉을 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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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요, 엄마.
엄청 멋있죠?
사실 우리...
이 집에 오고 나서 잠깐 아팠어요.
미리 말하지만, 병 걸린 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
창문 난간에 앉아서 바깥 구경을 하면서 보니까
건물 전체와 통하는 통로가 있더라구요.
우린 고양이니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당연히 들어가야 되잖아요?
그건 본능이니까!
그래서 통로를 따라 건물 곳곳을 탐험했어요.
인간 엄마가 출근하면 건물 이곳저곳을 다니고
인간 엄마가 집에 오는 소리가 들리면 집으로 돌아왔어요.
완전범죄라고 생각했는데,
곰팡이 피부병에 걸려 버린 거 있죠..
병만 안 걸렸어도 계속 건물 탐험을 할 수 있었는데!
들킨 날 인간 엄마가 바로 나무 조각을 사다가 틈을 다 막아버렸다니까요. 쳇.
그래서 두 달 동안 약 먹고 주사도 맞았어요.
소금이는 너무 심해서 병원에 입원까지 했어요. ㅜㅜ
아, 걱정하지 마세요.
아파서가 아니라 털 밀려고 입원한 거니까. ㅎㅎ
소금이 혼자 병원에 있으면 무섭다고 나도 같이 병원에 있었어요!
우린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다고 했잖아요. ㅎㅎ
다음 날 퇴근하고 병원에 왔던 인간 엄마가 소금이를 보고 너무 놀라서
집에 가다가 사고 날 뻔 했대요.
이거 봐요.
미용하는 누나야가 엄청 잘 밀어줬죠? ^.^
피부병이 꼬리까지 번져서 얼굴 빼고 다 밀 수밖에 없었대요.
근데 얼굴에 병을 대고 밀었나봐요.
어떻게 저렇게 동그랗게 밀었지...?
원래도 이렇게 예쁜데 털 미니까 인기 폭발이었어요.
얼마나 예뻤던지 인간 엄마는 한동안 소금이를 쳐다보지도 못하더라니까요.
그리고 난
어느새 덧니로 났던 송곳니도 빠지고 중성화도 해서 어른이 됐어요.
소금이는 중성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몸무게가 안 늘어서 나보다 조금 늦게 했어요.
임보 엄마네 있을 때도 소금이는 입이 짧아서 잘 안 먹었잖아요.
편식도 얼마나 심한지 인간 엄마가 밥 먹으라고 사료 들고 쫓아다녔는데
그때마다 인간 이모가 그러더라구요.
어디서 입 짧은 것도 자기랑 똑 닮은 앨 데리고 왔다구요.
칭찬이겠죠?
닮으면 좋은 거잖아요. ㅎㅎㅎ
마침 추석 연휴도 있었고,
몸무게도 겨우겨우 맞춰서 소금이도 중성화를 했어요.
사실 아픈 거라 소금인 안 했으면 했는데, 임보 엄마랑 인간 엄마가 약속한 거라면서요.
우리 둘 다 중성화하고 죽을 때까지 같이 살기로요.
아, 엄마도 우리가 떠난 후에 중성화했다고 들었어요.
그럼 이제 이 세상에 엄마, 아빠 피를 나눈 건
영원히 나랑 달이 랑이 콩이 이렇게 넷밖에 없는 거네요..
중성화를 한 후로 우린 한 번도 안 아팠어요.
인간 이모, 인간 삼촌하고도 잘 지냈구요.
(인간 이모가 우릴 엄청 예뻐하는데, 우리 외의 동물은 다 싫대요.)
소금이랑은 여전히 사이 좋으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ㅡ^ㅎㅎ
엄마.
다행히도 나랑 소금이는 인간 엄마를 많이 좋아해요.
가끔 인간 엄마가 없을 때면
인간 이모나 인간 삼촌이나 인간 할아버지랑 친해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제일 좋은 건 역시 인간 엄마예요.
인간 엄마가 얼마나 좋았던지
소금이는 인간 엄마 발목에 도장까지 찍었어요.
그냥 발만 대고 있었는데 저렇게 찍혔대요.
신기하죠?
인간 엄마가 그러는데
이 쪼그만 발로 도장을 쾅 찍어 버렸으니 인간 엄마는 영원히 소금이 거래요. ㅎㅎ
소금인 여전히 밥을 잘 안 먹어요.
사료를 세면서 먹는다고 인간 엄마가 맨날 손으로 떠서 먹여주고,
아직도 소금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찾아다녀요.
난 뭐든 잘 먹어서 소금이가 안 먹는 간식은 다 내 차지예요.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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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인간 이모 삥 뜯어서 산 거래요. ㅎㅎ
소금이가 입에 뭘 넣기만 하면 인간 엄마는 앓는 소리를 내요.
이때도 아구구구 하면서 먹이더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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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난 인간 엄마가 먹으려고 깎아 놨던 참외 먹으면 되니까요! ㅎㅎㅎ
소금인 콩이일 때도 예뻤지만, 지금은 더 예뻐요.
인간 이모는 맨날 소금이 보고 이 세상 미모가 아니래요.
근데 인간 엄마 닮아서 사진이 너무 못 나온다고 속상해해요.
그건 안 닮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한탄하면서 사진을 엄~~청 찍어요.
가끔은
이렇게 웃긴 사진도 찍구요. ㅎㅎ
물론 나도 엄마를 닮아서 엄청 잘생겼어요.
인간 엄마가 우리를 찍은 사진이 오조오천장 정도 될 거 같아요.
나중에 천천히 보여줄게요.
기대해도 좋아요! ㅎㅎㅎ
아, 나 보여주고 싶은 거 있어요.
인간 엄마가 우리 5살 생일 기념으로 만든 발도장이에요.
난 진짜 너무 찍기 싫었거든요.
인간 엄마는 원래 잘 안 안기는 소금이 발도장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는데,
예상외로 내가 더 어려웠던 거죠. ㅎㅎ
엄마 모르죠?
소금이가 안기는 거만 싫어하지
목욕하는 것도 털 미는 것도 엄청 쉽게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여름만 되면 우린 자꾸 털을 밀려요.
이건 인간 할머니랑 인간 할아버지한테는 비밀인데요,
인간 엄마한테 고양이 알레르기가 생겼대요.
어쩌다 그런 몹쓸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약 먹고
공기청정기도 돌리고
빨래 건조기도 쓰면 괜찮대요. ㅎㅎ
알레르기 있다면서 맨날 뽀뽀해서 솔직히 좀 귀찮아요.
뽀뽀 귀신 같아요.
엄마 기억 속의 우리는 얼마나 작은 아기예요?
이만할 때 헤어졌으니까 엄마는 아기일 때의 나밖에 모르겠네요.
나는 이제 많이 컸어요.
엄마보다 훨씬 클 거예요.
인간 엄마만 하거든요.
사실 저때보다 아주 쪼오오금 더 커졌어요.
정말이에요.
정말 쪼금... 컸어요.
인간 엄마는 아직도 나한테 애기야~ 그런다니까요.
애기는 작으니까 나도 작은 거 맞죠?
나는 아직 애기라서 인간 엄마가 매일 안아줘요.
인간 엄마가 잘 때도 옆에서 안아 달라고 울면 자다가 깨서 팔을 벌려 주거든요.
분명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고 했는데,
내가 안아달라고 우는 소리는 잘 들리나 봐요.
근데 가끔은 잠결에 팔을 벌리는지
아침에 안겨있는 날 보고 놀라기도 하더라구요.
가끔 내가 안 자고 안겨서 그릉그릉할 때가 있거든요.
그럼 인간 엄마가 토닥토닥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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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잠이 더 잘 와요. 히히.
아,
소금이는 안겨 자는 걸 안 좋아해요.
그래서 가~~끔 소금이가 안기면 인간 엄마는 숨도 크게 안 쉬어요.
소금이가 갈까봐 겁이 난다고 아예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더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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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요.
저렇게 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다가 소금이가 일어나니까 굳어버리잖아요. ㅎㅎ
내가 안기는 거랑 소금이가 안기는 건 차이가 있대요.
나는 포근하고
소금이는 사랑스럽대요.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요?
우리가 9살이 되니까 인간 엄마가 걱정이 많이 되나봐요.
조금만 이상해도 자꾸 병원에 데리고 가요 ㅠㅠ
난 병원 싫은데...
저번엔 병원 가는 거 싫어서 아픈 것도 숨겼는데
인간 엄마가 집에 들어오면서 나를 보자마자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갔어요.
인간 이모가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평소랑 달랐대요.
그래도 일찍 병원에 가서 방광염이 될랑말랑 할 때 약 먹어서 건강해졌어요. ㅎㅎ
아!
저번엔 인간 엄마한테 짜증 내고 심통 부렸더니
어디 아픈 거 같다고 또 병원에 데리고 갔어요. ㅠㅠ
그냥 간식 달라고 했던 건데...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난 아픈데는 없고 그냥 비만이래요.
비만의 범위가 1 ~ 9까지라면 난 12라고 ....
인간 엄마가 맛있는 다이어트 사료를 사줘서 조금씩 살이 빠지고 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히히.
요즘 인간 엄마의 최고 고민은 내가 물을 많이 마시게 하는 거래요.
수컷 고양이들은 신장이랑 방광에 문제 생길 위험이 많다면서요?
정수기 물 마시는 고양이 동영상 보고 혹해서
정수기를 두 개나 샀던데 난 그냥 물그릇에 있는 물이 제일 좋아요.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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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요.
맛있게 먹죠?
요즘에 인간 엄마가 사료에도 물 섞고,
주식캔도 매일 줘서 물을 많이 마시고 있어요.
부끄러워서 못 보여주겠지만,
저번엔 내 감자가 엄청 크다고 인간 엄마가 동영상까지 찍어서 동네방네 자랑하더라니까요.
근데 고양이 키우는 인간 엄마 친구들이 다 부러워했대요.
다들 좀 이상한 거 같아요.
엄마, 그거 알아요?
방광염이 의심되면 방광에 주사기를 넣고 (ㅜㅠ) 그대로 오줌을 빼서 검사한대요.
나도 이번에 건강검진 할 때 겸사겸사하려고 했거든요?
주사기 길이가 3cm인데 마침 내 뱃살도 3cm라서 못 했대요 ㅎㅎㅎ
다행인가? ㅎㅎㅎ
조만간 인간 엄마가 내 오줌 받아서 병원 가서 검사 할 거래요.
변기형 화장실이라 오줌 받기는 수월할 거라고 좋아해요. ㅡ.ㅡ...
아! 나 요즘 별명 생겼어요.
맨날 후츙이라고 불리다가 생긴 별명이에요.
인간 엄마가 가끔 이강준이라고 불러요.
혹시 <너도 인간이니?>라는 드라마 본 적 있어요?
거기서 서강준 형아가 가끔 윙크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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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요.
나도 윙크하는 게 버릇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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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ㅎㅎ
근데 윙크할 때마다 인간 엄마가 막 좋아하면서 쓰러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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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누가 집에 와서 잠깐 숨었던 건데
윙크는 시도 때도 없이 나와요. ㅎㅎㅎ
부끄러워라...
인간 엄마는 요즘 부쩍 우리 수염을 모아요.
마음의 준비를 하는 중이래요.
벌써 그럴 때가 됐대요.
그럴 때가 뭔지는 난 잘 모르겠지만요.
엄마.
인간 엄마는 가끔 우리를 안 데리고 왔으면 좋았을 거라는 말을 해요.
그랬으면 엄마 옆에 남은 랑이처럼
나나 소금이가 엄마랑 살았을 수도 있었을 거라구요.
바보.
그러면 인간 엄마는 우리가 있다는 것도 몰랐을 거잖아요.
인간 엄마가 좋아하는 만화책에 이런 말이 나온대요.
' 네가 행복하다면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어. '
나도 그래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엄마.
거듭 이야기 하지만, 우린 잘 지내요.
그리고 앞으로도 잘 지낼 거예요.
엄마랑 랑이는 거기서,
달이는 또 달이대로,
나랑 소금이는 여기서 살다가 나중에, 아주 나중에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만나요.
인간 엄마가 약속했어요.
여기 있을 때 원 없이 사랑할 테니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그때는 엄마랑 있어도 좋다구요.
어디에 있든 나랑 소금이가 행복하다면 꼭 인간 엄마랑 같이 있지 않아도 된다구요.
난 엄마를 닮았고,
소금이는 달이, 랑이랑 닮았으니까
우린 분명 모두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때 만나면 인간 엄마랑 있었던 일 많이많이 얘기해 줄게요.
엄마도 임보 엄마랑 임보 할머니 얘기 많이 해줘요.
그때까지 우린 이렇게 잘 지내고 있을게요.
하고 싶은 말이 엄청 많아요.
근데 지금도 그렇고 나중에도 그렇고 변하지 않을 얘기가 있어요.
난 많이 사랑받고 있다는 거요.
나랑 소금이는 매일매일 인간 엄마, 인간 이모, 인간 삼촌에게 사랑받고 있어요.
인간 엄마가,
엄마에게서 우리를 데리고 왔으니까 엄마만큼 우리를 사랑하겠다고 한 약속은
죽을 때까지 꼭 지키겠대요.
그러니까 우리 걱정은 하지 말아요.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ㅎㅎ
다음에 또 소식 전할게요.
엄마...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마워요.
인간 엄마가 우리를 보내줘서 고맙다고 전해 달래요.
엄마...
오래오래 건강해야 돼요.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p.s.
가끔 깨고 나면 잊어버리는 꿈을 꿔요.
그때마다 난 우리가 함께 살던 날을 꿈꾼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우리 나중에 꼭 만나요.
그때는 헤어지지 말고 우리 이렇게 함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