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정원
풀 패덤 파이브 FULl FATHOM FIVE
3부 완결, 현재 3부 연재중
이북 출간 확정(인듯)

<리뷰: 잘못된 사랑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는가>


완전 궁예. 찐톨 멋대로 해석 주의.
구구절절 주의. 정론이 아닙니다.
거의 잡담에 가까운 서평입니다.
1-3부 시점을 왔다갔다 합니다.
줄거리 위주로 따라가며 리뷰
대사나 상황 인용을 했으므로
조금의 스포도 싫으면 뒤로가기




1.
글은 조연이자 서브공인 안요한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안요한은 전형적인 엘리트이자 자신만의 철칙을 지닌 사람이다. 52시간째 깨어 있는 과로 상태에서도 남들 다하는 약물 복용에 의존하지 않으며(그래야겠다고 빈말만 할 뿐)자신이 속한 대형로펌 노즈인파이드 사의 마피아 자금세탁 건에 착수하라는 선배의 말에 마뜩찮아하는 듯한 태도는 언뜻 보수주의자로 비치기도 한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지닌 채 뉴욕의 한인 마피아 거물인 메들리 일가와의 미팅을 가서 그는 유우라는 존재를 만나고 첫눈에 사로잡히게 된다.-'요한 안은 생각했다. 나는 태어나서 저런 것을 처음 본다.'- 이후 유우 외의 인물인 새턴이나 바흐를 보며 나름의 감상을 적지만 그에게 가장 크게 남은 것은 유우의 이미지이다. 선배인 셀레스트는 어쨌건 미팅은 잘 마쳤으니 승진을 노리며 열심히 하라는 태도다. 그게 과연 바람직한 조언일까? 메들리 일가의 아지트에서 본 유우의 화려한 모습은 아름답고 매혹적이며 허영심이 가득하다. 그것이 메들리와 일하는 낙수효과의 본질일 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잘 보여 커리어 상승을 바라는 것은 사실 부질없는 정당화이다. 그런 큰손 고객에게 회사가 일개 주니어인 자신을 꽂은 이유는 토사구팽하기 딱 좋기 때문이란 걸 바로 알아챌 만큼 요한은 똑똑하다. 그래서 초반부까지만 해도, 안요한은 그들과 함께 하는 건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2.
메인수인 유우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인생에서 남들이 쉽게 겪기 힘든 일들, 굳이 안 겪어도 되는 일들, 겪어선 안 될 일들을 골고루 다 맛보았기에 무엇이든 척 보면 안다. 유우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옷과 보석-에 집착하며, 술과 마약, 진통제 없이는 살지 못한다. 작가는 요한을 처음 만났을 때 입은 유우의 차림새를 제법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독자에게 유우가 지닌 외양적 특색을 알려주는 장치로도 사용된다. 바흐와 요한, 새턴과 모여 있을 때에도 유우는 그저 넷 중의 한 명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원탁에 앉아 자신만의 존재감을 내뿜는다. 비단 그곳이 아니라 넘쳐나는 군중 속에서도 대번에 유우를 찾을 수 있을 만한 강렬한 인상을 남김으로서, 요한과 독자로 하여금 계속 해서 이 메들리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한다.



3.
유우는 메인공 바흐의 양아버지인 아벨 노이만, 즉 풀패덤 파이브의 1부상 메들리 일가 회장의 어린 애인이다. 보통의 마피아 정부들과 유우간 차이점이 있다면 유우는 그 위치에 적응하길 극렬히 거부하는 동시에 또 극도로 잘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루 24시간을 허투루 쓸 유흥과 사치에만 집중할 뿐, 부를 과시하며 파티를 열거나 패거리를 만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모든 사람들을 피한다. 자기연민에 빠져 있는 대신 누구든 조롱하고 신랄하게 비아냥대며, 약한 모습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보통 유우와 같은 비참한 사연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갈 때 대부분은 신이나 구원자, 의지할 존재를 찾지만 유우는 자신의 신세를 자조하면서, ‘신이 기도에 응답해준다는 건 신자들의 망상이다’는 말과 함께, 양성구유인 자신,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비난받는 자신을 스스로 남성이라 정의한 다음 오롯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파 한다-'나는 바꾸고 싶어. 제압하고 싶어. 명령하고 싶어.'-있는 그대로의 자기자신으로 살아갈 것임을 천명하며. 유우는 그걸 위해서라면 정부라는 지위쯤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는 인물이다. 이처럼 유우는 피상적이기 짝이 없고 자기중심적인 동시에 지독하리만큼 단단한 긍지를 지닌 채 사는 양가적인 미인수 캐릭터인데, 그가 이렇게 된 데에는 양성구유라는 선천성과 더불어 메들리 일가에서 만난 자신의 첫사랑, 바흐의 탓이 크다.


4.
요한은 위기에 몰려있다. 자신이 원하던 진지한 변호사로서의 임무는 상실당했고, 어느새 메들리 일가에 협조하여 착실히 자문을 해주고, 바흐와의 술자리에 불려나가 꼼짝없이 독주를 마셔야 하는 처지다. 가시돋힌 유우의 말에는 한 마디도 안 지지만, 결국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 제 마음을(담백하게나마)전하기까지 한다.



5.
새턴이 요한에게 유우를 건드리지 말라고 넌지시 주의를 주는 장면이 나온다. 요한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만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유우에게 고백한 행동은 요한이 그간 살아온 발자취에 비하면 매우 충동적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감정을 포기하지 않은 자신을 뿌듯해하거나 대견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본래 하던대로 무상하게 고백을 한 다음 유우에게 인사를 하고 자기 할 일을 하러 돌아간다.



6.
유지호였던 유우는 한국 나이로 열 아홉에 아벨에게 팔려간다. 글은 아벨의 친딸인 모니카가 소유한 아름다운 별장 '마누쉬'에서, 아벨과의 첫만남을 시작으로 곧이어 유우와 바흐를 만나게 한다. 유우는 메들리 일원들에 의해 호수에 빠져버리고 허우적댄다. 그러다가 어떤 목소리로부터, 물에 빠진 자신을 직접 구해주는 게 아닌, 수영을 모르는 자신에게 뭍까지 올라 오는 법을 듣고 따라한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가까스로 땅 위에 올라온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아벨의 아들 바흐이다. 바흐는 유지호에게 안녕, 유우. 라는 말을 건네며 새로운 호칭을 건넨다.(물에 빠졌다 나오면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매우 유서깊은 상징 체계다.) 유우는 그런 바흐에게 매우 강하게 이끌린다. 어두운 유년기를 보낸 유우에게 바흐는 난생 처음으로 온정을 베풀어 주는 인물이므로, 그는 친형이나 다름없이 근사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 곧 유우는 동경과 연심이 섞인 설렘을 지닌 채 금세 바흐를 따르게 된다. 그 해 여름, 바흐가 '할 일'이 있으니 제 방으로 오라던 '그 날'에도, 유우는 아무런 의심조차 없이 얌전히 그의 말을 따른다.


7.
한여름, 근 일주일 간, 아벨이 바흐에게 명령한 '훈련'이 끝난 후 불우한 소년이었던 유지호는 악에 받친 채 죽지 못해 사는 메들리의 유우가 된다. 바흐에게 툭하면 욕설을 내뱉고, 시비를 걸며, 일부러 곤란한 사건에 휘말려 바흐를 화나게 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유우는 바흐를 자신의 '첫사랑'이라고 일컬었지만, 바흐는 그를 그저 섹스토이로 만든 뒤 아벨에게 넘겨야 할 애인1 쯤으로 여겼다. 배신감과 증오, 수치심, 그 와중에 느낀 쾌감과 절정을 곱씹으며 유우는 바흐를 평생 저주하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바흐를 자신에게 반하게 하여 평생 그를 괴로움과 슬픔에 빠지도록 복수하겠다는 생각뿐이다.



8.
바흐 노이만이 얼마나 속내를 감추는 데 능숙한지 기억해야 한다. 그는 유우만큼이나 표리부동하게 구는 일에 능하다. 유우가 고베 파 야쿠자들에게 잡혀가 해코지를 당하고 난 뒤 그들을 모두 몰살한 후 강제로 관계를 맺는 것을 보라. 바흐는 자신과의 성관계를 유우에게 일종의 체벌처럼 가한다. 바흐는 유우에게 혼자 돌아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기어이 알았다는 말과 함께 부탁한다고(please) 하자 그제야 유우를 안아준다. 출장을 가기 전에도 방종하지 말란 경고를 주듯이 자고 있는 유우와 억지로 관계를 맺는다. 1부 11편인 "회심의 일격"에서 유우의 도발이 최대치에 다를 때까지, 그는 희노애락이나 격한 감정을 단 한번도 내보이지 않았으며 유우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숨기는 데에도 성공적이었다.

유우의 무모한 도발에 격노한 뒤 폭력에 가까운 섹스를 마친 그가 '잘 생각해. 네가 뭘 감수하고 다른 새끼랑 떡을 치는지' 하며 운을 떼자 유우는 이미 바흐의 심중을 간파한 뒤이므로 ‘누가 안 시켰어도 넌 나랑 잤을 거야'라고 받아친다. 바흐는 유우가 정확히 짚은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시 원래의 차분한 바흐 노이만으로 돌아와 치료를 권한다.



9.
바흐는 유지호와 접촉한 이후 그에게 빠져들고 있는 상태였으나 유우가 1.자신의 것이 아니므로 2.상사이자 아비인 아벨을 치고 가질 만큼은 반하지 않았으므로 제 감정을 숨긴다. 이후 바흐가 하는 강압적인 관계를 반대로 생각하면 그건 전부 바흐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성애적 행위일 것이다.


10.
작가의 강점 중에 하나는 1-2부에서 꾸준히 나타나는 여성 캐릭터의 활용이다. 매들리 일가의 모니카와 시시, 뉴욕경찰국의 줄리아 포웰, 노즈인파이드사의 셀레스트, 회색지대에 놓인 에밀리아 뒤 모리에를 필두로 모든 여성 캐릭터가 주도적이며 상당히 매력적인 언변을 구사한다. 특히 작중 모니카 노이만은 아벨의 친딸이자 메들리 일가가 뉴욕을 거머쥘 수 있게 해준 일등공신이다. 비상한 머리로 화학에 능통해 남미 곳곳에서 고순도 코카인 제조 총괄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세탁하여 융통하는 일은 주로 새턴이 하는 듯 보인다. 모니카는 레온하르트 폰 바이에른이라는 헝가리-오스트리아계 남자와 낳은 딸 엘리자베트, 통칭 시시와 함께 남미에서 주로 머물고 있다. 그녀는 똑부러지며 거침없고 털털한 성격으로, 풀패덤 파이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우 훌륭한 조연 역할을 해낸다. 그녀는 자신을 황금알 낳는 거위 정도로 취급하는 친부를 혐오하고, 유우와 바흐간의 뒤틀린 관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며, 유우와 매우 친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도 바흐-유우가 엮인 사정에 지나친 간섭을 하진 않는 현명한 여자이다. 1부에서 그녀는 귀국 후 바흐가 그녀에게 공수해달라고 부탁한 반지를 유우에게 주며 바흐의 진심을 대신 전한다. '레인(바흐 노이만의 본명)은 너 없이 살 수 없어.'


11.
꽉 막힌 심정으로 바흐의 자택에 선물받은 반지를 돌려놓은 채 집에 돌아간 유우와 요한 사이에서 때아닌 스파크가 튄다. 그러다 화제는 새로 선출된 대통령의 뉴욕 검찰 지검장 지명으로 넘어간다. 유우, 유지호의 친부이자 유우를 볼모로 팔아넘긴 트리스탄은 이를 이용해 아벨에게 또 다른 거래를 제안하고, 아벨은 의외의 대답으로 트리스탄을 놀라게 한다. 아벨은 '혈연으로 인해 무너지는 자신의 동료들' 을 너무 많이 봐왔다고 하며 족벌주의 경영을 꺼릴 만큼 몹시 냉정한 남자다. 그에겐 명예나 권력보다는 자신과 딸, 손녀의 안위와 여태껏 쌓아온 어마어마한 재력 유지가 더 중요하다. 트리스탄은 주니어 변호사와 유우, 새턴, 바흐를 모두 넘겨주겠다는 아벨의 말에 다시금 놀란다. 그는 주니어 변호사인 안요한에 대해 이미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스포라 생략)


12.
유우는 며칠간 요한의 집에서 머물며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트리스탄과 용역에게 납치되어 고문을 당하게 되고, 요한의 눈앞에서 양성구유인 자신을 성적으로 희롱하며 비웃는 트리스탄에게 끝까지 대항한다. 우리는 여기서 유우가 한 발언에 비추어 유우의 '꿈', '목적'에 대해 좀 더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13.
유우의 꿈은 뭐였을까.-'수많은 이들이 내 말에 귀 기울이게끔 권능을 갖고 싶어. 내 전 부양인 같은 개새끼들이 어린애를 건드리면서도 아무런 피해 없이 살아가는 이 거지 같은 도시를 내 힘으로 부수고 싶어.'- 이는 유우의 목적이자 계획이지 꿈이 아니다. 글에서 유우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소망, 진짜 꿈(dream)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그는 매우 에고가 강하며 툭하면 위악을 떠는 인물이다. 요한에게 메들리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말하면서도 자신이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유우가 스스로 밝히지 않는 첫 번째 꿈이 뭐였는지는 글을 보면서 찾아내야 한다.



14.
이 글은 바흐와 유우 관계에서 일어나는 언동간 상당한 수미상관 구조를 갖추고 있는데, 바흐가 폭주한 날 바흐는 유우에게 '네 목숨은 내 것'이라는 말을 한다. 이 명제는 애정과 소유욕, 자신의 자존심을 거스른 데에 대한 분노에 기반한 아주 복잡하고 함축적인 대사이다. 납치된 가건물에서 유우는 '내 목숨은 너의 것' 이라고 하며 바흐의 애정에 간접적인 화답을 하지만, 바흐에게 있어 유우와 함께 총을 맞고 죽는 것 따위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자신은 죽더라도 유우만은 살리는 것이 제 1의 목표이기에 그를 보낼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수미상관은 바흐를 '유령취급'하던 1부의 유우와, 2부에서 유우를 '유령취급'하는 바흐에서도 나타난다)


15.
아벨의 예상치 못한 우회에 바흐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바로 꿰뚫어본다. 자신이 유일하게 신뢰하는 새턴과 모니카를 불러모아 버그(도청)유무를 검사한 다음 아벨의 진짜 계획을 추리한다. 그는 나름의 대응책을 짠 다음 유우와 요한이 납치된 곳에 홀로 찾아가 생포령이 떨어진 유우를 놔두고 요한을 구사일생으로 살려낸다. 요한은 바흐에게 유우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유우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바흐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자신을 살려준 이유를 묻자 바흐는 묘한 대답을 한다. '그냥 지호가, 당신을 많이 좋아해.'


16.
바흐는 어느 순간 유우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는 동시에 이 사랑이 이루어지기 아주 어렵다는 것을 이미 각성한 인물이다. 유지호를 메들리의 유우로 만든 건 자신이다. 아벨의 애인이 되도록 공조한 것도 자신이고, 트리스탄이 넘긴 유우의 생명줄을 묵과한 것도 자신이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의 실패로 연결된다. 그래서 바흐는 유우를 '그나마' 웃게 하는 것, 살아가게 하는 것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 그것이 다른 남자인 요한일 지라도 말이다.



17.
유우가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꾸리며 날고 싶어 하는 자(winged figure)라면 바흐는 자신과 메들리를 떼어놓을 수 없는 지상인(ground admin.)이다. 둘은 육체적 관계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불균형하다. 유우는 남부지검장인 오코너의 대공분실로 끌려가 성고문을 당하지만, 모니카와 새턴, 요한, 그리고 바흐의 지략으로 간신히 구출된다. 물론 그를 직접 꺼내어 구출해내는 자는 지상인인 바흐이다. 바흐는 생에 대한 갈망으로 이루어진 존재인 유우를 잘 안다. 그래서 그를 절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 하극상을 일으켜 아벨을 제거하고 메들리를 뒤집어 놓고, 특수부대팀에게 벌집이 된채 겨우 유우를 구해낸다.



18.
크게 다친 바흐가 뉴욕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 리가 없다. 둘은 사막의 살인적인 더위를 피해 아무도 없는 낡은 교회로 몸을 숨긴다. 바흐는 수신기를 건네주며 새턴과 모니카에게 연락을 하라고 말하고, 자신은 여기에 놔두고 가라고 한다. 유우는 현실로 닥쳐온 바흐의 죽음에 그제야 사랑을 고백한다. 완벽한 교감의 일치가 이루어진 극중 최고 클라이막스이다.



19.
가까스로 살아난 바흐는 유우를 고문한 오코너에게 마지막 한 방을 날린다. 그 한 방에 그의 가족(어린 자식들과 부인)을 끌어들인 것을 알게 된 유우는 그런 바흐에게 다시 실망을 한다. 메들리 회장이 된 바흐 노이만은 이제 더욱 잦게 자신을 실망시킬 것임을 예상하며. 유우가 바흐의 고백을 듣고 호수에 밀어 바흐를 빠뜨리는 장면은 마치 미래를 암시라도 하는 것 같다. 이 역시 유우가 호수에 빠진 초반의 장면과 수미상관 구조를 이루는데, 호수에 빠진 바흐를 홀로 두고 가는 유우와 가만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바흐의 장면은 둘의 사랑이 다시 중단되었음을 보여준다. 유지호가 바흐를 좋아했을 때는 바흐가 유지호를 배신했고, 바흐가 유우를 사랑했을 때는 유우가 그것을 거부했다. 죽음이 주는 환상의 여운 속에서나 사랑을 확인하지만,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없다.



20.
다시 새롭게 거듭난 유우는 요한을 떠나보낸다. 요한과의 1년은 평온하고 비교적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둘은 웃으며 작별을 하고 요한은 급하게 쓴 듯한 메모 하나를 건넨다. 유우는 묻는다. ‘러브레터야?’ 요한은 대답한다. ‘그런 셈이긴 한데.' 유우는 요한의 짧은 글귀를 읽고 눈물을 터뜨린다. 요한은 끝까지 자신의 깔끔함과 담백함을 잃지 않은 채 그렇게 유우의 마음 한 편을 차지한 뒤 보스턴으로 발령을 나간다.


21.
2부. 유우는 여전히 바흐와 애증관계이다. 일부러 자신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바흐를 자극하여 기어이 섹스를 하고, 다음 날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스카일러를 만나게 된다. 바흐는 본능적으로 스카일러를 경계하지만 유우는 보안 점검원이라는 그의 말에 별다른 의심도 않고 집으로 들인다. 거기에서 우연히 스카일러의 상처를 보게 된 뒤 그 둘은 친구가 된다.



22.
바흐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스카일러는 집의 구색부터 잰이라는 동생, 유우에게 접근한 이유까지 모든 게 불투명한 수상한 인물이다. 그러나 스카일러와의 만남, 대화를 통해 유우는 공명을 느낀다.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는 소망이 얼마나 하찮은 취급을 받는지 첫 번째 꿈을 실패한 유우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유우는 스카이에게 매우 깊은 연민을 느낀다.



23.
바흐는 유우를 자신의 집으로 부르는 동시에 경호원들에게 무언가를 따로 지시하고, 둘은 또 다시 관계를 맺는다. 얼핏 서로가 통하는 이심전심의 순간 같지만 따져보면 동상이몽이다. 바흐가 이때 지시한 것에 미루어 보면(강스포라 생략)이미 그는 스카일러가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유우 모르게 배수진을 짜놓은 상태였다. 바흐가 유우 모르게 긴밀히 처치를 하는 이유는 허탈할 만큼 간단하다. 유우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후에 모니카가 왜 위험요소를 알면서도 가만두었냐는 질문에 바흐는 굉장히 가슴아픈 말을 한다. -'모니카. 나는 왜 매번 유우의 행복을 망쳐가며 그 애를 지켜야 하는 거지?'



24.
이미 바흐 자신은 유우에게 큰 죄를 저질렀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유우를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늘상 돌아오는 것은 자신을 향한 비난과 실망어린 유우의 눈길이다. 바흐는 그 모든 고뇌를 혼자 감내한다. 그것조차 자신의 업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우도 그런 바흐를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 지는 모르는 상태다.



25.
스카일러가 쳐놓은 덫으로 큰일이 날 뻔한 유우에게 바흐는 다시 예전처럼 '벌칙'의 의미로 성관계를 수행한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따지면 사전적인 벌칙의 의미를 많이 잃은 지 오래이다. 이는 서로가 이미 사랑하는 사이이며, (비록 애증관계일지라도), 몸을 섞을 때의 쾌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유우는 이틀을 내리 자다가 요한을 만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요한은 유우에게 뉴욕을 떠날 자신이 있냐고 묻는다.



26.
요한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장면에서 우리는 유우가 10년을 가까이 목숨처럼 붙잡고 산 다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바흐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다->나도 바흐를 사랑한다->그러나 그걸 전하면 바흐는 바흐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갖게 된다->그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 이 논리에 요한은 안타까워 하며 충고를 한다. 당신들은 서로 아무리 사랑하네마네 고백한다한들 마냥 행복해지기 힘든 사이라는 뉘앙스를 전달하며 떠나지 말라고 붙잡는다.



27.
스카일러의 진심어린 말들을 떠올리며 유우는 잠을 설친다. 바흐는 몹시 지친 낯으로 집에 돌아온다. 유우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다. 그런 바흐에게 유우는 위화감을 느끼고 바흐를 달래보려 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어두운 방 안에서도 영롱하게 빛나는 반지와 엉뚱한 대답 뿐이다. 어딘가 위태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어쩌면 바흐는 이때 어떤 방식으로든 유우와 이별하게 되리란 것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28.
그럼에도 바흐는 나지막하게 말한다. 가더라도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고. 떠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떠나더라도 너무 멀리 떠나지 말라고.-'네가 없으면 나는 나를 다 써버리게 될 거야.'-그때 도달할 미래는 이미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이다. 그러니 기원하듯 읊조릴 수밖에.



29.
바흐는 뉴욕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는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되지만 요한과 모니카의 도움으로 금방 풀려나게 된다. 요한이 모니카에게 자신의 가설을 들려줌으로서 작가는 독자들에게도 얼마간 스카일러의 정체를 까발린다. 유우는 자신을 돌보러 온 새턴에게 스카일러의 실체를 대강 듣게 되고, 모두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미안함에 빠져 바닥을 기며 오열을 한다.



30.
유우는 스카일러의 실체를 듣고도 그를 미워할 수 없다. 스카일러는 자신과 너무나 닮은 운명의 궤를 지녔으며 처음으로 자신이 사귀게 된 친구이기에. 그리고 스스로를 '무국적자'라고 칭하던 그간의 삶을 공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 머릿속의 독백이므로 유우는 놀랍도록 솔직하다. 우리는 이제 2부에 와서야 유우의 첫 번째 꿈이 뭐였는지 발견할 수 있다.

유우는 평범한 가정에 속한,
평범한 몸을 지닌 평범한 남자아이가 되고 싶었다.



31.
유우의 첫번째 꿈이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남자아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소설을 읽어보면 모든 장면이 새롭게 다가온다. 유우는 자신의 외모나 스타성을 숭배하다시피 하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파파라치들이 지껄여대는 문장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의 자기파괴적 성향 때문에 그는 친구도 없다. 그는 아무에게도 정 붙이지 못하는 외톨이다.



32.
이런 가정을 해보자. 어쩌면, 바흐가 아닌 유우야말로 자유로운 사랑을 하는 게 두번째 꿈이었다. 유우는 스카이 말대로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일절 없는 뉴욕을 떠나 '사슴나무'를 키우며 바흐를 마음껏 사랑하길 원했을지도 모른다.



33.
유우는 좀처럼 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생모가 자신을 돌보지 않았을 때도 꾸역꾸역 밀키트를 타내 밥을 먹었고, 이웃에게 언어를 배웠으며, 자신이 양성구유라는 것을 알고도 탐폰을 구비해두고 위탁가정을 전전한다. 부양인에게 성폭행을 당할 때엔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방어하고, 바흐와의 충격적인 첫 관계에서는 차라리 혀를 깨물어 버린다. 고베 파에게 얻어터지고 자신의 비밀을 들은 상태에서도 끝까지 반항을 하다가 수장을 죽여버린다. 그랬던 유우가 어쩌다 첫번째 ‘꿈’을 포기하게 된 걸까. 성질이 만만치않은데다 '메들리에선 아무도 유우를 건드리지 못한다' 고 할만큼의 위계도 있는데 뭐가 모자라서.

소설은 내내 그 이유를 보여준다.



34.
스카일러의 사슴나무 꿈을 들은 유우는 말한다. ‘너의 사슴나무가 어떻게 자랄지 궁금해.’ 유우는 스카이의 꿈이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지 이미 안다. 그래서 스카일러가 자신의 옷을 훔쳐 입고 싸구려 크랙(마약)을 팔아댄다는 이야길 처음 들었을 때에도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돈을 모으려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꿈이 불가능해서 더욱 스카이의 꿈을 응원한다고 볼 수도 있다.



35.
스카이는 유우의 과거, 꿈을 좇던 시기의 유지호이기도 하다. 유우는 스카일러처럼 도망치기 위해 돈도 모아봤을 것이고, 사슴나무에 집중하는 스카이러럼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혼신의 노력을 다할 무언가를 찾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메들리에 속해 있는 내내 아주 깊이 상처받았을 것이다. 자신이 이미 겪었고 지나온 길이므로 유우는 스카이에게 아무런 화를 낼 수 없다.



36.
유우가 언제 스카이(잰)의 말을 듣고 언제 반박하는지 살펴보면 흥미롭다. 스카이가 아닌 잰에게 계속 스카이가 어디 있냐고 묻는 것, 개소리 집어치우라는 것은 과거에 자신을 지운 것이나 마찬가지인 잰에 대한 반발이다. 마음이 아픈 건 이 부분이다. 유우는 스카일러의 진심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스카이의 꿈을 절대적으로 지지했다. 본인은 이미 꿈을 포기한 상태인데도, 마치 자신에게도 계속 꿈꿀 권리가 있음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37.
유우는 복수심, 증오로 들끓는 잰의 심정을 잘 안다. 시시를 들먹이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할 때 잰은 정말로 비참한 일이란 일은 다 겪어본 사람 앞에서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우는 잰에게 잡혀가 펜타닐을 건네 받고 메들리의 파멸을 원하는 잰을 보면서도 확신한다. 바흐가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그러면서도 바흐가 오지 않길 바란다. 자신의 희생만으로 이 모든 비극이 끝나길 바란다. 바흐가 메들리의 파멸을 막을 것이라 예측한 것처럼, 유우가 자신의 꿈을 접었을 때의 판단 또한 옳았을 것이다. 아예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의 운과 기회가 없었다.



38.
첫 번째 꿈의 실패와 뒤이은 포기.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실패한 꿈은 포기할 수밖에 없으며 그 뒤 유우는 어떤 꿈이었는지 언급조차 안 한다. 그리고 유우는 두번째 꿈(바흐에 대한 사랑)마저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39.
한편 스카일러, 즉 잰은 유우와 반대이다. 복역을 마치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자신만을 위한 배역을 만들며, 온전히 자신의 꿈에 집중하는 지금이 더없는 행복이다. 그러니 충만한 기쁨에 젖어 자신만의 살육과 피비린내나는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한다.



40.
유우는 펜타닐을 먹고 과거를 회상한다. 수 년 전 아벨은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바흐가 보는 앞에서 유우를 범한다. 바흐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안다. 거기에서 자신이 뭐라도 했다간 유우가 다친다는 것을 알기에 바흐는 초인적인 힘으로 유우를 달래며 자신 또한 괴로움을 참아낸다. 유우가 아벨의 애인이고 아벨과 섹스를 한다해도 자신이 유우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유우는 여전히 불행할 것이고, 그러니 바흐가 단지 아벨을 쳐죽여버린다 해서 유우를 당장 행복하게 할 수는 없다. 그때부터 조금씩 '준비'를 해서 반역을 일으켜 조금이나마 유우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다.



41.
바흐는 (강스포라 생략) 모든 사건의 전말을 이미 파악한 상태이고 NYPD, 요한과 함께 협동하여 잰이 시킨 대로 유우가 있는 잰의 아파트에 현금을 들고 찾아간다. 그러나 유우는 바흐가 온 것을 마냥 기뻐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나가려면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한다. 잰은 자신이 모든 패를 다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는 중이므로 해독제를 맞은 뒤 정신을 차린 유우에게 칼자루를 쥐어준다. 바흐를 죽이든지, 네가 자살을 하든지. 결론은 하나다. 바흐가 아무리 유우의 마음을 돌리려 해보아도 유우의 생각은 확고하다. 자신이 나쁜 선택을 할까봐 눈물 흘리는 바흐를 '환각'이라고 착각하고, 그 장면을 보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잠시 들 정도로 바흐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생각만은 떨치지를 못한다.



42.
잰은 바흐 얘기를 꺼내며 유우에게 죽음을 부추긴다. 처음부터 어긋난, 타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엔 한없이 난잡한 관계. 그러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식의 발언을 한다. 베란다 난간에 편안하게, 그리고 위태로이 있는 잰에게 유우는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묻고 무언가를 말한다. 그리고 유우는 제 3의 선택을 한다. 바로 잰을 부둥켜 안고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유우가 진정 원하는 건 유우가 아니다. 유지호의 자리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한 첫번째 ‘꿈’임을 안다. 그래서 유우는 스카이를 위해, 자신을 위해, 메들리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두번째 꿈, 사랑, 즉 바흐를 위해, 바흐를 사랑하는 채로 죽기 위해, 아파트 난간에서 떨어진다. 곧이어 행인들의 비명이 이어진다.



43.
바흐가 전부터 예감했던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유우는 기억을 잃었고 자신을 무서워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별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맞아버렸다. 그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동시에 유우를 위한 낭보이기도 하다. 바흐는 유우가 기억을 잃은 채로 그냥 살게끔 한다. 자신의 어린 딸 시시에게마저 들킬 만큼 심신이 나약해지고 괴로워하지만, 자신과 관련된 인터넷 자료 등 남은 흔적을 철저히 다 지우면서까지 유우의 '모를 권리'를 지켜주기로 한다.



44.
2년 후, 2012년이라는 머릿글과 함께 현대미술관에 앉아 있는 유우가 나온다. 유우는 살아남았지만 다리를 절고 기억을 잃었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나 좋아하던 풀 패덤 파이브를 바라보며 아무런 시름 없이 감상을 한다. 그는 결국 날개를 달았다(winged figure). 그러나 자꾸만 가슴 속에서는 아련한 옛 기억이 돌아올 듯 말 듯 맴돈다. 그런 자신에게 전 상담의였던 에밀리아 뒤 모리에가 나타나 노트를 한 권 주고 사라진다. 유우는 그 노트를 통해 과거의 자신이 바흐를 사랑했음을 알게 되고 2부는 막을 내린다.



45.
우리는 유우가 1-2부 내내 바흐를 사랑하면서도 왜 증오하는지를 알 수 있다. -'아벨과 바흐가 유달리 잔인하고 몰지각해 보이지? 그 개새끼들이랑, 개새끼들 너머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뭐 별다를 것 같아? 서로 죽고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된 산호들을 보면서,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바다 속 풍경 참 아름답다고 말하는 게 인간들이야. 그런데 어떻게 감히 해결을 꿈꿔.'-퍼즐을 맞추다 충동적으로 요한에게 던진 말이지만, 유우가 그런 사고방식이 가능한 사람임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어른과 고양이가 한 방에 있는데 휴지가 뜯겨 난장판이 되었다면 대부분은 고양이 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어른에게 너 왜 휴지를 건드렸냐고 화를 내려면, 일단 ‘어른도 휴지를 뜯을 수 있다’라는 사고방식이 가능해야 한다.) 유우는 회장이 되어 점점 자신이 아예 모르는 세계로 건너갈 바흐를 보며 초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반인과 동일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그를 사랑하면서도 끊임없이 서로의 잘못된 시작에 대해 슬퍼했을 것이다. 따라서 바흐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죽음은 올바른 선택이다. 유우에게 있어 자신이 착각이라 생각한 바흐의 눈물은, 네가 날 위해 그래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안타까움이 아니라 수백 번 돌아가도 이루지 못할, 애초에 불가능한, 정말 말그대로의 ‘환상’이다.



46.
2부까지에 따르면, 글은 요한이 보는 유우로 시작해서 에밀리아가 보는 유우로 끝난다. 이미 실패했던 사람이 새로운 도전(죽음)을 하지만 그것마저 실패하는 이야기이다. 누군가의 해피엔딩을 보여주면서 사랑을 이루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한다고 훈수두는 글이 아니다. 꿈꾸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네 사랑이 현실과 조화롭지 못하더라도 그건 분명 가치가 있었다고 지지해주는 글이다. 현실에 따른 기준만으로 재단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니 마음껏 꿈꾸고 사랑하라고.



47.
어쨌거나 유우는 기억을 잃음으로서 평안을 얻었고 바흐는 모든 것을 놓쳤다. 유우와의 만남이 바흐에게 남긴 건 대체 무엇이런 말인가? 자신을 무서워하는 옛 연인 상대로 온갖 상상을 하며 궁상맞게 미술관에 쫒아가는 미련?



48.
바흐는 유우에게 굳이 자신과의 관계를 밝히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로선 그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유우와 보낸 시간은 자신이 기억하면 되기에. 그것이 바흐로 하여금 유우의 역행성건망을 긍정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니 유우는 자신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며,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유우가 덜 불행하기만 하면 족하다.



49.
이 글은 마피아 느와르 물이지만, 각 부마다 일어나는 사건의 수사방향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물꼬를 잘못 튼 사랑의 과정 자체를 계속 반복해서 보여주고 싶어한다. 오프닝에서, 유우의 이야기에서, 요한과의 대화로 추측되는 유우와 바흐의 과거에서, 간간히 작가가 추천하는 노래에서, 가끔 글의 서문에 인용되는 다른 작품에서, 글마다 있는 소제목에서. 집념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The end' 이후에도 글은 끝나지 않는다. 작가가 추천하는 음악까지 들어야 한다.


50.
풀 패덤 파이브.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원제는 living near the full fathom five라고 명시되어 있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지옥도, 다섯 길 깊이. 이 소설은 1.실제로 그 작품이 걸려 있는 뉴욕 현대미술관 근처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2.그로테스크한 그 그림과 제목처럼 다섯 길 깊이 그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행복과 생존이 허락되는 비율은 일정하기에 압도적으로 더 많은 에피소드들이 불안하고 피폐할 것만은 분명하다. fff로 간단하게 줄어드는 즐거운 울림은 잔인하다. 그러나 매 부 오프닝만은 보는 사람을 벅차게 한다. 작가의 연출력만으로도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51.
결과에 상관없이 사랑했던 그 순간은 남는다. 유우는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남자아이로 살고 싶던 꿈에 실패했고, 그 상처가 너무 커 꿈이 아닌 절망만을 가지고 살았는데, 갑자기 바흐가 나타났다. 나아가 생에 대한 열정, 그럼에도 순수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유우에게 반해서 사랑하게 된 바흐. 거기서 유우의 새로운 꿈(사랑)이 시작되었다. 그 또한 이룰 수 없었지만 유우는 스카일러와의 대치를 통해 마음 속 깊이 묻어두기만 했던 실패를 정면으로 극복하고 자신을 긍정하는 동력을 얻었다.



52.씬맛집, 캐릭터맛집 등의 표현을 넘어 이 글이 BL 상업 느와르 치고도 상당히 진지하고 치열해 보인다면, 그 이유는 주인공 모두가 불가능한 사랑의 번복을 실현하려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뒤늦게 큐피드의 화살에 맞은 지상인(바흐)는 낭만을 꿈꾸지만 그것을 얻을 수 없다. 낭만은 선택받은 자들만의 혜택이다. 바흐는 자신이 거절당한 유우의 세계를 존중한다. 사랑할 가치가 있는 대상(유우)을 꾸준히 사랑할 뿐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독자에게 전달될 때, 글은 결코 로맨틱해질 수 없는 지상인의 이야기를, 그 충실한 사랑을 '낭만의 정서’로 만들어 내고야 만다. 3부를 기대하며 주절주절을 마친다.
  • tory_1 2022.06.13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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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2 2022.06.13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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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2 2022.06.1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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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3 2022.09.1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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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4 2022.09.2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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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5 2022.11.2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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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6 2023.12.07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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