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정원
“……손해를 보는 건 틀림없이 교주님이실 텐데요. 괜찮으십니까?”

앞서 걷던 천마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문평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빨갛게 익은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지금 네 입으로, 그 거래를 성사시키자고 말하고 있는 거냐?”

“거래 이전에 흥정부터 하자는 겁니다. 저는 교주님께 사기를 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이 거래는 제가 아니라 교주님께서 손해를 보시는 겁니다. 그래도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마음만 먹으면 덜덜 떨면서도 충분히 맹랑해질 수 있다는 게 문평의 장점이었다. 천마는 당신이 손해를 보는 게 확실하다고, 그래도 진짜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냐고 묻는 상대를 향해 어이없는 미소를 머금었다.

‘이 바보 같은 놈.’

천마는 계산이 형편없는 문평을 보며, 저놈은 절대로 상인만은 시키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분명히 말했다.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 것은 이쪽이라고. 사람 말을 제대로 안 들으니 저따위 질문이나 하는 거다. 이쪽은 결코 빈말이라는 걸 하지 않는데, 문평은 그렇게 겪고도 그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내가 무슨 손해를 본단 말이냐. 손해를 보면 네가 보는 거지.”

“저는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교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평범한 하급 무사였고, 가진 자질도 변변치 못할뿐더러 특출한 재능도 없습니다. 하지만 교주님은 천고에 이름을 남길 분이 아니십니까? 이런 관계가 대등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물론 나는 보잘것없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얻을 것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이는 많고, 직업은 없고, 자식은 없어도 제자며 손주며 줄줄이 딸려 있지. 나와 같이 있으면 종종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고, 때로는 너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복잡한 사연에 휘말려 골치 아픈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도 괜찮다고 하고 있다. 너는 왜 나만큼 뻔뻔하질 못한 게냐?”

거기까지 말한 천마가 문평을 확 하니 앞으로 끌어당겼다. 얼떨결에 그의 팔에 안기고 만 문평은 머리 위에서 웃고 있는 천마의 기척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내 이름이 천고에 기억될 이름이라고? 그런 것 따위 한 번도 바란 적 없다. 내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한 사람이면 된다. 만인에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에게 천 번의 가을 동안 기억되는 것. 그게 내가 바란 전부였다.”

천마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문평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목소리에선 진솔한 진심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단단한 팔에 끌어안긴 문평은 멍한 시선으로 천마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런 가식도 없이, 비웃음도 없이 그저 맑게 웃는 천마의 웃음은 몹시도 아름다웠다.

“어떠냐? 네가 내 소원을 들어줄 테냐? 천 번의 가을 동안 내 이름 하나를 기억하며 살아 줄 테냐?”



천추세인 8권 (완결) | 란마루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이 긴 이야기가 천마의 작은 바람 하나로 수렴한다는 게 너무 좋음....
할배 평소엔 나잇값 쥐뿔도 못하면서 중요한 순간에는 연륜 느껴지는 말 툭툭 내뱉는 거 진짜 인상적이야
  • tory_1 2022.01.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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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2 2022.01.2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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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3 2022.01.2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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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4 2022.01.2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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