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라한테 마티어스는 처음부터 남자였고 저 아래 감정까지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카일은 분명 편한 사람임에도 레일라에게 확신을 주진 못함
그래서 오랜 시간 관계가 이어졌음에도 레일라의 내면이나 사정은 전혀 공유받지 못해. 이건 레일라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빌 레머도 마찬가지임
마티어스랑 레일라는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고 기대했다 실망하고 상대를 감정적으로 진창 구르게 한 관계임에도 서로로 인해 결핍이 채워지는 관계성이 뚜렷하거든
마티어스는 어릴 때부터 명문가 가주로 키워지면서 겉으론 정중하게 웃고 다녀도 사실상 자기 속내를 비치는 혈연/친구가 일절 없었음
걍 정해진 궤도로만 살아가다 만난 게 레일라.
마티어스에게 레일라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존재이자 삶의 생동감임
이 세상에서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햇빛을 모아 빚어 놓은 듯한 여자였다. 마티어스는 그 빛에 사로잡혔다. 눈이 멀었다. 그 빛 속에 살고 싶어 움켜쥐었다. 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갈망이 결국 너를 그늘 속에 살게 하겠구나.
처음으로 깨달은 그 사실에 머릿속이 조금 멍해졌다.
영원한 그늘 속에서도 너는 지금처럼 반짝일까?
완벽한 삶을 망친 갈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갈망에 사로잡힌 날 이후로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된 것도 같았다.
발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인데 추락 같지 않았다.
날개 같았다. 그 여자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는 그 작은 여자가 꼭 자신의 구원처럼 보였다.
레일라는 어릴 때부터 버려지고 이집 저집 전진하면서 웃지 않는 아이는 누구에게나 미움받는다는 걸 깨달아버림
고아+평민으로 제 감정 다 내비치면서 살아가기엔 결국 본인만 상처받을 삶이라는 걸 아는 거
어떻게 보면 되게 현실적인 성향이라 자기 감정이나 진심같은 건 웃는 얼굴 하나로 다 덮고 외면함
스스로 꾸려나가고자 하는 인생관이 뚜렷해서 상처녀지만 자낮은 아닌 캐릭터가 됨
그래서 평생을 미움받을까봐 울지 않았는데 마티어스 앞에선 온갖 감정이 다 표출되고 마티어스는 그런 자신조차 끌어안아줌
나 혼자만 진심인 관계 같아 비참하고 수치스러우면서도 레일라도 본인 트라우마가 마티어스로 인해 치유됐다는 걸 알아
그걸 긍정하면, 이 남자를 계속 사랑하면. 상대는 약혼녀가 있고 고아이자 평민인 내 결말은 정부 밖에 못되고 그건 떳떳하지 못한 삶인데.
마티어스는 진심도 아닐텐데. 걔한테 나는 클로딘처럼 여자로 대우받지 못하는 존재일 거고, 절대 내 마음만큼 보답받지 못할테니 마티어스도 나만큼 크게 오래 상처 받았으면 좋겠음 > 그래서 통수치고 떠나지만, 떠나고 나서도 못지킨 약속을 생각하고 자기같은 건 잊고 곧 행복하게 결혼할 그 사람들을 생각하고 여주 찌통이 이어짐
레일라가 마티어스의 존재를 내가 울든 웃든 어떤 모습이든 언제나 내 곁에 머무를 '새'로 포지셔닝한 것도 같은 맥락
"어린 시절부터 참 많은 곳을 떠돌았지만 새는 언제든, 어디에든 있었어요. 가까운 곳에, 항상. 계절이 변하면 멀리 떠나는 새들도 기다리면 돌아와 줬어요. 새는 돌아왔어요." (16화)
그가 와줄 것 같았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항상 그랬으니까.
원하든 원치 않든 그는 늘 레일라의 곁에 있어 주었다. 언제, 어디에나 있는 새들처럼. 그러니까 올 것 같았다. 국경을 넘고 전쟁터를 지나서도 내게 온 사람이니까.(141화)
참 이상했다.
우는 고아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데. 그래서 웃고 또 웃어 왔는데. 이제 누구보다 밝고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는데.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쉬워 조금 허무하기까지 했다. (168화)
레일라에게 마티어스도 솔직한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기반 자체임
레일라를 의미하는 연분홍 장미의 꽃말도
ㅇㅇ
처음부터 원앤온리가 너무 확고한 관계성이었음
누구보다 상처를 준 게 바로 서로였지만(물론 마티 업보 많을 다)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방임
결핍을 채워줄 수 있었던 이유가 상대의 캐릭터성에 있어서 서로가 아니라면 아무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었겠고
그래서 마티어스가 클로딘이랑 결혼하거나 레일라가 카일이랑 결혼했다면 글쎄... 표면적으로 안정적인 부부가 됐더라도 마티어스/레일라 내면의 결여는 평생 그대로였을 거라고 장담함
이미 카일은 해소를 시도했지만 '그냥 내가 아는 레일라는 그래'로 답을 한정했고, 클로딘은 노력조차 하지 않음 거리를 두면 뒀지
애초에 상대가 마티어스/레일라가 아니었으면 본인들도 그 결핍이나 한계를 돌아볼 구석이 없었거든
마티어스가 레일라한테 자신이 이런 놈이라고 고백하는 장면, 레일라가 푸른 사탕을 매개로 어린 시절의 상처를 마주하는 장면(당신은 내 슬픔의 빛깔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구나(25화)->내 행복의 빛깔(147화)) 등
카일의 한계는 사실 레일라와의 약속을 못지키고 레일라 혼자 맨발로 돌아가게 만든 파티 때부터 뚜렷했다고 생각하지만 시엔에서의 태도가 종지부였음
감정의 극한까지 내몰리고 결국 여주>>>본인이 돼서 온전히 여주의 선택을 존중하게된 남주랑 다르게 카일은 처음부터 여주>본인 스탠스인 것 같으면서도 매번 여주는 원하지 않는, 여주의 생각은 고려하지 않아서 실질적으로 도움은 되지 않는 결말로 나아감
난 울빌 자체도 섭남 퇴장씬까지 제대로 챙겨준 몇안되는 작품 중 하나라고 느낌ㅋㅋ
레일라 처음 만난 복숭아 에피랑 섭남 엔딩을 같은 구도로 대치시키면서 섭남도 여주에 대한 미련없이 잘 살아갈거라는 암시. 여기서 나오는 '친구이자 누이였고 연인이었던' 이걸로 레일라 카일 서사가 더 아름답게 마침표 찍었고
남주랑 섭남 밸런스 조절을 잘 해서 둘다 캐릭터성 뚜렷하게 빛났징
카일뿐만 아니라 클로딘같이 비중 있는 여조 서사도 잘 마무리됨
서브캐를 망가뜨리지 않고 입체적으로 조형하면서 남여주 원앤온리를 굳히는 전개인 게 제일 안정적임 ㅋㅋ
섭캐들 호감인 입장에서도 보기 편했고ㅎㅎ 글이 길어졌넹 아무튼 울빌 재밌음 이 글에 다 언급은 못했지만 이래저래 전반적으로 깔린 서술 장치가 많아서 복습할수록 씹뜯맛즐임 판타지 요소 하나없이 감정 서사만으로 장편 끌고 갈 수 있었던 이유가 이런 섬세한 빌드업 덕분이라고 생각함
나 같이 문장 뜯어먹기 좋아하는 톨들은 츄라이 해보길
시리즈 댓글에 복선 얘기 많아서 감상 비교하는 재미도 이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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