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정원


0. 100살 소년이 11살 소녀를 납치해 가둬놓는 걸로 시작하는 스토리에 거부감이 없다 or 존나 좋다


1.남주가 예쁘고 나른하고 섹시하고 독설 날리고 다하는데 존나 안쓰러운게 좋다


2.불쌍하고 불쌍하고 불쌍한 남주가 소설 내내 구르고 구르고 구르는게 좋다


3.남주가 여주에게 간도 쓸개도 콩팥도 내장도 다 빼주는 게 좋다


4.남여주가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는 과정이 자세히 나오는 쌍방구원물이 좋다

5.키잡물도 잘 본다. 혹은 키잡이어도 인외남주+먼저 대쉬하는 여주면 볼 수 있다

6. 서브남은 없거나 쩌리로 나오고 남여주 둘이 서로만 죽어라 아끼고 좋아죽는 이야기가 좋다

7.설정 복잡하고 조연 많이 나오고 전쟁얘기가 메인이어도 좋다 or 위의 장면들을 보기위해 견딜 수 있다




위에 해당하시는 분들은 '윈터브라이드'를 필히 보셔야 합니다요.





그래서, 윈터 브라이드는 뭐 하는 책인가요?

얼굴은 열 다섯살 속은 백살 먹은 노인네가 파릇파릇한 미성년자를 납치 감금한 끝에 스톡홀름 증후군을 일으켜 백년해로하는 내용입니다

신의 계약을 통해 죽지 못하는 몸이 된 후로 온 세상에게 적대받고 고립된 전쟁영웅이 자길 적대하는 반란군의 수장을 물먹이려고 그 동생을 납치했다가 그 순수하고 맹목적인 애정에 감화되어 목줄이 메여진다는 내용입니다. 또, 하나 뿐인 오빠에게 방치 당한채 외롭게 자라고 있던 어린 아이가 자길 납치한 남자에게서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받지 못한 절대적인 애정을 받고, 자라나서는 그 남자의 저주를 풀어준다는, 쌍방구원의 이야기입니다.



라는게  작가님의 주장입니다.










글빨이 딸려 이 밑으론 인터넷 서점에 소개글 그대로 긁어봤습니다.







“사랑스러운 리즈벳.”

대륙의 공포가 된 살인귀, 죽지 않는 몸을 지닌 신체(神體) 윈터 드레스덴. 사랑을 모르고, 자비를 모르고, 그저 파괴와 살인만을 반복하며 제국의 적들을 처단해왔던 그는 충동적으로 반란군 수괴의 어린 동생을 납치하기에 이른다. 그냥 죽여버릴까, 조금만 더 살려둘까. 봄날같이 해사한 소녀는 그의 인생에서 낯선 것이었기에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사이, 그녀는 그에게 점점 대체하지 못할 존재가 되어버린다.

네가 내 종말이라면,

내가 그토록 발버둥 치며 지키려 했던 그 모든 것의 파멸이라 하더라도

그게 너라면 그조차 나쁘지 않겠지.

어차피 내가 쥐고 있던 것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이 너인데.

이 긴긴 삶 중 가장 아름다웠던 것이 너인데.

이토록 사랑스러울진대.

* * *

“그 사람한테만큼은, 내가 제일이었으면 좋겠어.”

부모의 이름도, 단 하나 있는 오라비의 얼굴도 모르고 자라난 소녀 리즈벳 클렌디온. 난데없이 그녀를 납치해 온 남자는 그녀에게는 공포와 꺼림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저 살고 싶었기에 매달렸고, 홀로 남겨지는 외로움이 괴로워 잡았다. 나를 길들여 너를 헤치지 못하게 만들어봐. 그렇게 속삭였던 삭막한 겨울 같은 남자는 점차 그녀에게 더 많은 것을 내어주기에 이르고, 어느새 그녀는 그가 그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는 것을 깨닫는다.

당신만큼은 언제나 내가 필요할 때 곁에 있어줬어요.

날 필요로 해줬어요.

그게 좋아하게 된 이유라는 게 그렇게 납득이 안 돼요……?

나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미래의 내가 불행해진다는 이유 때문에 지금의 나를 아프게 하지 마요.




++++)남여주 대사 핑퐁도 재미집니다. 독설 잘하는 남주 + 지기 싫어하는 꼬맹이 여주




"윈터는 내가 애로 보이지요."

윈터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 말 한마디 없이도 뭘 그리 당연한 말을 하냐는 뜻이 표정에 그대로 들어났다.

"윈터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 보이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자꾸 애 취급하는거 아니에요. 나도 이제 곧 열세살이란 말이에요."

"이거 실례를, 레이디 리즈벳 클렌디온. 이 우메한 칼잡이는 그것도 모르고 아가씨를 애 취급이나 했으니."

........애 취급하고 있다. 완벽히 무시하고 있다.

"지금은 그렇게 빈정거리지만 두고 봐요! 좀만 지나면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쓰러질 만큼 아름답고 섹시한 레이디가 되어 윈터한테는 눈길 하나 안 줄 테니까! 그때 돼서 예전에 좀 더 잘할 걸, 땅을 치며 후회해도 늦어요!"

"이 나이에 벌써 걸어 다니는 대량 살상무기가 되는 걸 장래 희망으로 삼다니 역시 네 기발함은 경이롭군, 나의 사랑스러운 레이디 리즈벳."





대충 이런 남여주가 나오는 내용이어요.




무작정 추천하기엔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아서 조심스러운데

위에 열거한 취향에 맞으시는 토리들은 만족하실거여요....아마도?ㅋㅋ





시간 남으시면 긴~발췌도 잡숫고 가셔요~↓↓↓







"여어, 안셀라.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나?"


통신구가 밝게 빛나며 목소리를 전달한다.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을 소란을 상상하며 천진하게까지 느껴지는 웃음을 띤 윈터는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요즘 들어 네가 좀 헤이해진 것 같아...일을 이리 허술하게 하니 제대로 수를 써보기도 전에 들켜서 200년 전통의 대학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버렸잖아? 무려 대장로께서 자폭까지 하셨는데 아깝게 말이야."


윈터는 통신구에 거의 키스할 정도로 가깝게 입술을 가져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래서, 네가 좀 더 노력할 마음이 들게 해주려 해."


이 지경이 되어도 통신구 저편에서 안셀라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끝까지 제 정체를 드러낼 만한 짓은 추호도 하지 않겠다는 거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아주 귀여운 누이가 있더군 안셀라."

-윈터.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 청년의 다급한 목소리를 조롱하듯 윈터는 단번에 통신구를 벽에 집어 던졌다. 조각난 통신구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경쾌하게 웃은 윈터는 유유히 몸을 일으켰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악몽에는 그것을 한층 더 상회하는 악몽으로.


"그럼, 어서 귀여운 리즈벳을 만나러 가볼까."


그러나 그날의 변덕이 제 운명을 바꾸리라는 것을 그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





배는 고프고 먹기는 해야겠기에 리즈벳은 훌쩍거리며 이곳저곳 쑤시는 몸을 일으켜 양껏 개울물을 마신 후 나무열매를 찾기 시작했다. 초여울에 접어드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열매들은 거의 없었다. 리즈벳은 떫고 신맛이 나는 열매를 억지로 꾸역꾸역 입안에 집어넣었다.

맛없다. 정말 맛없어. 아직까지도 생생한 크레이프의 맛을 기억해내니 안 그래도 맛없는 열매가 정말 끔짝하도록 형편없는 맛이라 설움이 몰려왔다. 제대로 씻지도 않은 열매를 입안에 꾸역꾸역 밀어넣으면서 리즈벳은 결국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렸다.


"오라버니, 나 돌아갈래! 나 집에 갈.......콜록......!"


언제부터였는지 남자의 시뻘건 눈알이 정확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싱긋, 눈을 가늘게 휘며 미소 지은 남자가 말했다.


"그 다음은?"


긴장 때문에 멈춰버린 울음이 목에 걸려 딸꾹질이 나올 지경이었다. 리즈벳은 머릿속에 새하얗게 변해버린 채,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나무줄기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계속해보라니깐? 집에 갈래 다음은 뭐지?"


리즈벳은 무서운 속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흐응, 다소 고민하는 듯 손가락 끝으로 턱을 쓰다듬던 남자가 말했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뭘 그리 열심히 하고 있나 했더니만, 혼자서만 배를 불리고 있었어?"


리즈벳은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으려다가 제 손에 엉망으로 묻어 있는 열매즙을 발견했다. 툭, 심장이 떨어졌다.

다 틀렸다. 이제 틀렸어.


"나쁜 아이로구나. 명실상부 동행인이 있건만 제 배만 채우다니, 어떻게 벌을 주면 좋을....."


"흐어어엉, 자모해서요.....!"


리즈벳은 결국 펑펑 눈물을 쏟아내며 무조건 빌기 시작했다.


"자모해서요, 흐윽, 요서해주세요.....! 이거 다 드리게요! 흐어어엉!"


눈물콧물이 쏟아지며 발음까지 뭉개졌다. 그걸 신경 쓸 여력도 없이 리즈벳은 양손 가득 쥐고 있던 나무열매를 남자 앞에 들이밀었다.


"주기지만 마세여! 자모했.....딸꾹!"


갑자기 터져 나온 딸꾹질에 리즈벳이 반사적으로 입을 막았다. 들고 있던 나무열매들이 와르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그대로 얼어붙에 딸꾹질을 하자 남자가 허리까지 꺾으며 웃기 시작했다.




**







"저기......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 진짜예요?"


잠시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남자는 허리에 매어두었던 단검을 뽑아 그대로 손등을 내리그었다.

흣, 하고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그녀와는 달리 남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리즈벳은 반쯤은 경악으로, 반쯤은 경외로 눈을 깜박이며, 뼈가 드러날 듯 깊게 파인 상처가 피 한 방울 흐르지 않고 순식간에 저 스스로 봉합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박수라도 치든가."


리즈벳은 그렇게 말하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가면 같은 비웃음을 띤 얼굴에서는 제대로 된 감정을 읽어내기가 지독히도 힘들었다.


"왜 그렇게 된 거예요?"
"신체(神體)가 되었으니 그런다."
"신체?"


리즈벳은 어느새 흉터도 남기지 않고 아물어버린 남자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아까 그렇게 깊이 상처가 났는데도 전혀 피가 나지 않았다. 기이한 색의 피부는 피가 아예 돌지 않기 때문일까.

먹지 않는 것도, 심장이 뛰지 않는 것도 전부 다 신체라는 것이 되었기 때문일까.


"그거.....좋은 거예요?..."


저도 모르게 경직된 그녀를 예의 조소 띤 시선으로 바라보며 남자가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적이 아무리 찔러대도 죽지 않는다는 건 축복이지. 아품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거기에 지치지도, 숨이 차지도 않아. 불로불사의 축복이란다. 귀여운 리즈벳. 색을 보지 못한다든가,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든가,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는 건 대가라고도 할 수 없지. 지극히도 이윤이 남은 거래야."


매끄럽게 내뱉는 목소리는 여전히 노래하는 것같이 감미로웠다. 그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면 정말이지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작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다른 것이었다.

그렇게 사는 건 재미있을까?

맛있는 것을 먹는 기쁨. 새로 피어난 꽃의 향을 맡는 반가움. 비 온 후의 하늘에 걸리는 무지개의 색을 보는 즐거움.

그걸 모두 포기한 이 사람은 대체 무슨 재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걸까......?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사람을 더욱 잘 죽일 수 있는 몸이라면 그게 정말 이윤이 남는 거래인 건가?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말이야, 사랑스러운 리즈벳."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그녀가 침묵하자 남자는 가만히 그녀의 뺨에 손바닥을 댔다.


"너는 대체 왜 멀쩡한 걸까? 이 체온 없는 몸에 닿는 게."


차가운, 방 안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온도의 손이 그녀의 피부 위를 기어가듯 미끄러지다가 다시 나른한 한숨과 함께 턱을 괴었다. 가늘어지며 비스듬히 올려다보는 시선은 여전히 비인간적으로 붉었다.


"끔찍하지 않아? 아니면 그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둔한 거냐."


리즈벳은 멍하니 눈을 깜박이며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게요."


툭, 중얼거리듯 흘러나온 말에 남자가 한쪽 눈썹을 쓱 치켜올렸다. 그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리즈벳은 손가락을 들어 남자의 가슴을 꾹꾹 눌렀다.


"......왜 그럴까"


남자가 기가 찬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했으니 리즈벳은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처음에는 무서웠다. 그저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려와 제대로 마주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리즈벳은 양손으로 남자의 얼굴을 감싸고 살짝 들러올려보았다.


처음으로 밝은 광원 아래에서 가까이 바라본 남자의 얼굴은 생각보다 어렸다. 조소하듯 가늘게 뜨고 있어서 매서워 보이는 눈매는 그냥 이렇게 살펴보니 그렇게 선이 날카롭지도 않았다. 핏기가 전혀 없어서 창백한 점이 기괴했으나 그걸 빼고 보면 오히려.


"예뻐요."







**






“저기요!”


아이가 얼굴 가득 활짝 웃음을 띠며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 열렬한 환영에 순간적으로 윈터는 멈칫했다. 아이의 손에는 후견인에게 주겠답시고 제멋대로 만든 화관이 들려 있었다.



“저기요, 이거 봐요! 예쁘죠? 선물이에요!”
“…….”
“색을 구별 못 한다고 했잖아요. 근데 색깔이 옅고 짙은 건 구별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모든 게 까만색이랑 하얀색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 아예 내 표정도 볼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나.

새삼스레 내려다본 화관은 아이가 말한 대로 짙은 색의 꽃들 사이에 옅은 색의 꽃들이 끈을 꼬듯 섞여 들어가 있었다. 솔직히 예쁜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려웠으나 색을 볼 수 있는 아이가 보지 못하는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애썼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아이가 쉴 새 없이 조잘거렸다.


“뭔가 제대로 된 걸 주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이것저것 준다고 했었는데 제대로 된 걸 준 적은 없었잖아요? 내가 씌워줄게요. 분명히 예쁠 거예요!”



그렇게 떠들어대며 소맷자락을 당기는 아이를 앞에 두고 윈터는 속에서 울컥 무언가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서요! 왜, 마음에 안 들…….”


갑자기 목덜미에 들이대어진 칼날과 거기에 말라붙은 피에 아이의 얼굴에서 한순간에 미소가 사라졌다.

수축한 동공. 경직한 어깨. 엇박을 치며 세차게 뛰는 심장. 익숙할 터인 공포의 반응.

아이의 손에 들려 있던 화관이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이것이 그의 ‘정상’. 이제야 받아 마땅할 반응을 끌어냈는데도 어째서인지 한없이 불쾌하다. 시소를 타듯 정신없이 출렁이는 기분에 이성이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당겨진다.



“사랑스러운 리즈벳.”



굳은 아이의 얼굴을 살짝 들어올려 뺨을 다정히 쓸었다. 지끈, 머리가 다시 조여온다.



“나는, 사람을 죽인단다.”



머리 한쪽에서는 잔인하게 상처 입히길 원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그러기를 거부한다. 양쪽으로 잡아당겨져 찢어져버릴 것 같다.



“사람을 죽이고, 아프게 하고, 소중한 것을 빼앗아. 기억해내라, 어리석은 꼬마야. 난 네 납치범이다. 난…….”



또다시 머리가 지끈거린다. 얼어붙은 눈동자를 보자 저도 모르게 말이 막혔다. 반쯤 오기로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이런 내가, 아직까지도 예뻐 보이니……?”



아이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입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드는 끔찍할 정도의 초조함에 윈터는 머리가 어지러워질 지경이었다. 지금 이렇게 묻는 것도, 대답을 기다리는 것도, 당장 이 칼을 휘둘러 이 작은 아이를 죽여버리지 않는 것도 모조리 예상 밖의 행동이었다. 겨우 정상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순식간에 비정상으로 추락한다.

한참 후에야 아이가 입술을 달싹이며 입을 열었다.



“날…… 죽일 거예요……?”



윈터는 웃어버렸다. 묻고 싶은 건 오히려 나다.


“……글쎄.”


나는 대체 너를 가지고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지?”


그러니까 네가 말해봐. 내게 가르쳐줘.


“……죽이지 않으면 좋겠어요……. 죽이지 마세요…….”


속삭이는 듯이 시작했던 말은 이어질수록 물기를 머금고 젖어들어 결국 아이는 말꼬리를 가늘게 떨며 흐느꼈다.


“그냥…… 착하게 살면 안 되는 거예요?”
“…….”
“예쁘다고 했던 거, 진짜예요. 착한 사람이었잖아요……? 내가 아플 때 간호도 해줬고, 덧셈도 가르쳐줬고, 철자도 가르쳐줬고, 요리도 먹어줬고, 또…… 또……!”



필사적으로 말한다. 아이의 눈에서 단순한 절박함 이외의 것을 보았다 생각한 것은 자기기만이었을 뿐일까. 아이는 그의 소맷자락을 꽉 쥐었다.


“착하게 살 수도 있잖아요…….”


어째서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쓰는 걸까. 살고 싶다면 그냥 살려달라고 빌면 될 터, 사실은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저리 부정하려 들다니. 그건 마치.

마치, 내가 착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그 믿음. 그 호의. 어쩌면 이렇게 어리석고 어쩌면 이렇게 한심하고 어쩌면 이렇게 괴로울 정도로 안쓰러운지.


“……귀여운 리즈벳, 그러면 네가 나를 그렇게 만들어봐.”


결국 윈터는 아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손에서 떨어트린 검이 화관 속에 파묻혔다.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맺힌 눈가를 손끝으로 다정하게 매만지며 생각했다.

어차피 모든 것이 유희일 뿐이라면 이런 변덕조차 괜찮지 않은가.


“죽고 싶지 않으면 내가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어봐. 나를 철저히 길들여서 네게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만들어봐. 그러면 나는.”


이런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뭘 할 수 있겠나. 냉소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윈터는 마치 무언가에 씌기라도 한 듯 그렇게 말하며 아이의 이마에 부드러이 입을 맞췄다.

 

“나는, 네 어리석은 소망에 답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게 될지도 몰라.”


그렇게 아이를 계속 가까이에 두고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그 작은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를 들었다. 한참을 굳어 있던 아이는 새처럼 떨며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뺨을 간질이는 머리칼의 감촉에, 목을 끌어안는 팔의 압력에, 지극히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생명체의 호흡 소리에 윈터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작은 몸에 팔을 둘러 더욱 가까이 끌어안았다.

느낄 수 있을 리 없는 따스함을 느낀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조소했다. 그럼에도 놓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발치에, 등 너머에, 사방에 어느 순간 피어나 있는 꽃들을 보고 처음으로 어느새 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거의 100년 만에. 처음으로.


봄. 이 작은 계집아이는 그야말로 봄 그 자체였다.

 

“윈터라고 불러라, 사랑스러운 리즈벳.”


아이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며 속삭였다. 제가 지은 것은 아니었으나 지극히도 어울리는 호칭이 아닌가. 아이에게 저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겨울일 터이니.

끔찍하겠지. 지금 이 순간도 절절히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째서 오라비의 전령을 쫓아 도망가지 않았던가 하고. 저를 끌어안고 있는 이 순간에도 속으로는 저를 저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좋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결과가 어찌 되었든 이 아이는 내 것이다. 내가 빼앗았다.


절대로 안셀라에게는 돌려줄 생각이 없다.





**





"북쪽 너머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진압하려면 적어도 몇 달은 걸릴 테니 그동안은 임시 후견인과 지내라."
"윈터, 나도 데려가요."
"......귀여운 리즈벳.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모양인데 내가 가는 곳은 전쟁터고, 전쟁터는 애들 놀이터가 아니야."
"윈터가 나를 가끔 지진아 보듯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나도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에요. 원터 곁에 붙어서 윈터한테 소아성애 취향 있다는 소문 돌게 할 생각도 없고, 내 취급 때문에 당신 부관들 힘들게 할 생각도 없어요. 실력도 없는데 싸우겠다 나서서 개죽음당할 생각도 없고요. 그러니까 윈터랑 아무 상관없는 보급병이나 의무병 정도로 지원해서 들어갈 거예요. 나는 그냥 윈터랑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이 있고 싶은 거예요."
"리즈벳 클렌디온."


머리가 아파와 윈터는 한손에 얼굴을 묻었다.


"......라더스의 성주라면 네 까다로운 조건을 모조리 맞춰줄 수 있을 거다."
"윈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거기 있어."


도망치듯 홱 몸을 돌리자 아이가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뒤를 따라 달려 나왔다.


"윈터, 왜 그렇게 내가 따라가는 걸 막아요? 최소한 납득할 만한 설명이라도 해줘요!"
"그러는 너는, 깜찍한 리즈벳."



홱 몸을 돌려 어깨를 잡아채자 아이의 커다란 눈동자가 순간적인 공포로 수축했다. 그 본능적인 반응에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윈터는 매끄럽게 미소 지었다.


"대체 뭘 안다고 라더스의 성에 박혀 있는게 전장에서 구르는 것보다 못하다고 단언하는 거지? 전장은 사람을 비틀어버리는 곳이다. 거기에 던져진 놈들은 언젠가는 누구든 빠짐없이 미친놈이 되어가. 주위에 다 그런 놈밖에 없는데 안 그렇게 되는 게 이상하지. 사랑스러운 리즈벳, 나 역시."


저도 모르게 말끝이 살짝 갈라져 그는 시선을 떨어트렸다. 숨 막히는 긴장에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하던 윈터는 힘겹게 속삭였다.


"......나는 지금도 정상은 아니지만 그곳에서는 더욱 정상이 아니야."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고개를 늘어트린 그의 머리로 아이의 시선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런 그의 볼을 조그마한 양손이 감쌌다.


"윈터는 내가 누군가를 가장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줬지요. 당신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 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

"....그건"


즈심스럽게, 조그맣고 여린 몸이 그의 목에 팔을 감아 안겨왔다.


"곁에 있고 싶어요."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어 마음이 아팠다. 제 고독에 잠겨 제가 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곁에 있게 해줘요."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감정에 눈을 꽉 감으며 아이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보들보들하고 따스한 몸에서는 어린아이 특유의 달콤한 살 내음이 났다.


"......사랑스러운 리즈벳."


심장에 조여드는 듯한 감각과 함께, 깨달았다.


아아, 이 아이가 사랑스러워.


"그건 싫어."


마지막으로 저를 바라보는 커다란 눈동자에 어린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는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스륵, 입맞춤을 통해 전해진 신성 때문에 가사상태에 빠져든 아이의 몸이 그의 팔 안에서 힘없이 늘어졌다.



윈터는 한동안 제 팔에 안긴 아이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참으로 잔인하기도 하지. 이 아이는 그가 아니라 그 누구에게 주워졌어도 사랑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제게 잡혀오게 되었을까. 하필이면. 왜 하필이면.


따라오겠다고. 얼마나 끔짝해도 상관없으니 곁에 있겠다고.

하지만 대체 언제부터 그가 벌이고 다니는 짓들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들이었던가.


'윈터는 예뻐요.'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러나 그리 말하지 못했다.

정말로 예뻤던 건. 눈이 부셨던 건. 눈을 땔 수 없었던 건.


그에 비하면......


윈터는 결국 양손을 들어 눈을 가려버렸다.


".......날 보지 마."







<윈터브라이드>


  • tory_1 2020.01.2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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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 2020.01.2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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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2 2020.01.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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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3 2020.01.2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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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5 2020.01.2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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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6 2020.01.2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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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10 2020.01.2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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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7 2020.01.2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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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8 2020.01.2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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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9 2020.01.2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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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13 2020.01.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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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12 2020.01.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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