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정원



벨 마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 발췌해봤어 ㅠㅠ

ㅅㅍ 있을 수 있으니까 참고해 !!


























무정후가 완을 소파에 앉히고 자기도 옆에 앉았다.

옆에 앉는 무정후에게서 아스라한 분노가 느껴졌다.

만약, 이번에도 그의 손을 거절한다면 

끝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

무정후가 미음이 담긴 그릇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완은 떨리는 손을 들키지 않으려 무릎 뒤에 손을 집어넣었다.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고."

"..........."

"어때, 이제 정신이 좀 들어?"

".........."

"목구멍에 깔때기 처넣기 전에 조용히 먹어."


무정후가 숟가락으로 미음을 듬뿍 떴다.

다행이 저 뜨거운 죽을 그릇째 목에 부을 생각은 

아닌 모양이다.

완이 입술을 조그맣게 벌렸다.


"더 벌려."

"..........."

"더."


냉정한 말에 완이 갑작스레 울음을 터뜨렸다.

왜우는지 자기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저택에서 자기편은 아무도 없었다.

무정후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볼을 눌러 잡고 입술을 벌렸다.


"나, 으윽, 나 울고으, 있잖아.,,,"


완이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무정후는 미음을 조금 덜고 입 안에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뭐, 우는 거 한두 번이야?"

"읍, 우윽..."


미음이 혀와 잇몸을 녹일 듯이 덮쳐 왔다.

너무 뜨거웠다. 완이 고개를 뿌리치며 

무정후의 팔뚝을 잡았지만,

악력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다.

뜨거움에 몸부림을 친 완이 소파 밑으로 스르르 흘러내렸다.

소파 밑으로 내려온 완이 무정후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그의 종아리를 끌어안았다.


"네가 이렇, 흐윽, 이렇게 굴 때 마다 어떻게, 해야할지, 끅, 모르겠어."

"........"


완이 뜨거워진 입 안을 가늠하듯 혀를 굴렸다.

무정후가 완의 겨드랑이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완은 한순간에 무정후의 허벅지 위에 올라앉았다.

옆자리에는 사기그릇이 아무렇게나 기대어져 있었다.


"목에 팔 감아."


무정후가 조용히 말했다.

완은 팔을 뻗어 무정후의 목에 감고 어깨에 

기운 없는 고개를 떨구었다.

탄탄한 몸이 완을 지탱했다. 

무정후는 숟가락에 반쯤 뜬 미음을 다시 들어

완에게 내밀었다. 

분명 무정후는 자기 전에 입 안에 연고를 발라 줄 것이다.

완은 눈을 감고 숟가락에 있는 미음을 삼켰다. 

입속이 따가웠다.


"넌 꼭 이렇게 해야 이러더라."

"........."

"일부러 그래?"


완에게 무정후란 물음표 그 자체였다.

속을 알 수 없는 인간.


"한 번만 더 먹어. 그리고 먹고 싶은 걸 말해."


그리고 이런 일들의 시발점은 오로지 완의 행동으로 부터 

비롯된다.


/



참지 못하고 장갑으로 미간과 눈 앞머리를 세게 긁었다.

"눈이 너무 가려워."

"......"


무정후가 완의 팔을 내렸다. 장갑으로 세게 문지른 탓에

코 옆의 살이 붉었다.


"눈 감아 봐"


무정후의 말에 완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기다란 속눈썹이 눈 아래 그늘을 만들었다.

짧게 다듬어진 손톱이 연한 피부를 살살 긁었다.

완의 고개가 간지러운 부근을 향해

조금씩 기울었다.


"시원해...."


그눈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무정후가 눈을 긁는 사이 뻐근한 눈을 떴다.

눈 앞 머리에 자극이 가해져 주위가 빨갰다.

꼭 운 것 처럼. 벌건 눈 주위가 피곤함에 절어 있었다.


"그만 자."


무정후가 완의 눈가를 손바닥으로 가만히 쓸었다.

눈이 아래로 감겼다. 그는 완이 다시 눈을 뜨지 않는 걸 

확인하며 스탠드 조명을 낮추었다.

완은 이불 아래에 들어간 장갑 손이 답답했다.

간혹 발목이 간지러워 다른 쪽 발톱으로 발목을 긁적일 때면 

무정후의 손이 불쑥 들어와 허벅지를 잡았다.

그렇게 몇 번 씨름하다 불현듯 잠이 들었다.


-친애하는 나의 호러에게-






"오, 치치 꼬까옷 입었네. 이런 남방은 단추를 하나씩 푸는 즐거움이 있지."

"자, 이제 내려가자, 치치. 칙칙폭폭- 칙칙폭폭-."


그리고 여전히 내 어깨에 체중을 실은 채 기차놀이를 하듯이 앞으로 떠밀었다.

"힘내, 치치."


응원과 함께 그는 감흥 없는 음성으로 '칙칙폭폭- 칙칙폭폭-'

단조로운 리듬을 흥얼거리다가 돌연 '치치뽀뽀- 치치뽀뽀-'

변형을 하고는 정말 내 볼에 쪽쪽 입을 맞추어왔다.



/



결국엔 아무렇게나 돼버려라 하는 심정으로 

무작정 자리를 피해 쾅! 문을 여닫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곧장 침대 위로 털썩 엎어져 씩씩 성난 숨을 뱉으며 늘어져 있는데,

잠시 후 뒤쪽에서 문득 조심스레 방문이 열리는 기척이 

들리는 것이다.


'.....치치, 형 지금 좀 피곤해. 혼자 있게 해줘.'


돌아보지 않아도 빤했다. 

옆집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모임이 있어

오후부터 녀석이 맡겨져 있엇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조마조마해하는 기색으로 

눈치를 살피다가,

큰 소리가 오갈 때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울먹이는 것으로

그나마 부모님이 애써 화를 누르도록 만들었다.

그런 녀석이 있어 아버지에게 한껏 뻗대어 대들 수도 있었다.


'치치.... 지금은 못 놀아준다니까.'



역시나 살금살금 이어진 발소리에 이어, 

끙- 소리를 내며 힘겹게 침대를 오르는 기척이 느껴진다.

그리고,



'.....형아.'


슬금슬금 곁으로 붙어와 어설프게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나를 부르는 연약한 목소리.

그러나 도무지 상대해 줄 기분이 아니었다.

납작 엎드려 누운 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에, 

녀석은 그런 내 몸에서 손을 떼고

잠시 부스럭 거리더니 왠지 초조한 기색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나를 불러왔다.


'....형아....'


'형아, 이거 봐.'

'치치, 형 정말 피곤하다니까.'

'...형아.....치치 봐....응...?'


그리고 조금 울먹이기까지 하며 끈질기게 불러대는 것에.

짜증스럽기도 한 기분으로 나는 이윽고 고개를 돌려봐야 했다.


'하아....치치, 제발 좀....'


그런데 돌아본 뒤쪽에서 치치는 사뭇 비장하게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자신의 셔츠 옷깃을 한껏 끌어 올려 잡고 한껏 부푼 배를 훤히 내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응답하라 치치-






빨리 자리를 뜰 생각으로 잘 넘어가지도 않는 걸 대충 씹어가며

삼키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짧게 진동이 울렸다.

먹으면서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냈다.


[안 쳐다볼 테니까]


어?

생소한 글자를 마주한 느낌으로 나는 

가만히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그 사이 지잉, 울리며 메시지가 연이어 도착했다.


[천천히 먹어]


-비밀한 연애-






"휴가 잘 보냈어?"


"네! 코치님, 저 이번에 제주도 다녀왔어요.

사무실에 선물 갖다 놨습니다. 고구마 과자인데 맛있대요."


"코치님들도 건강에 유의하셔야 하는 분들인데 과자 선물은 좀 그렇네."


"설탕 많이 안 쓴 저칼로리래요."


닥쳐


네가 좋아하는 이 코치님이 어제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나한테 좋아한다고 했어. 그러니 앞으로는 치근덕거리지 마라.


-하프라인-




"나으리, 저가 솔직담백한 게 아니라 참을성 없는 말 참 많이 내뱉었는데...

그런데도 어쩜 이렇게나 저를 사랑할 수 있으세요...? 저요, 사랑받으며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일찌감치 접었었거든요...그런데 나으리가 저를 발견하시고, 저를 사랑해주시고....

또 저를 참말 호강시켜 주고 있는거 아세요...?"


/

자력으로 사내에게 업힌 단우는 그 사이 두 팔을 벌렸다.

조선의 까투리 중에 제일 힘센 팔이 저의 팔이라는 걸 알고 있는 단우는

놓지 않겠다는 듯 사내의 목을 안고 속삭였다.


"사랑해요..."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하지만 단우는 속삭임을 멈추지 않았다.


"나으리가 아니었으면 중전 같은 거, 안했을거예요...

나으리가 임금이 아니라 나루터의 일꾼이었으면 저는 일꾼의 짝지고요, 

소 잡는 백정이었으면 저는 백정의 짝지였을 거예요...."


"저는요, 나으리한테 제 마음 많이 보여 주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그것뿐인데.... 왜 뜻대로 안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가슴이 아프고 속이 상해 죽을 것만 같아요..."


/

"사람을 쉽게 용서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용서치 않으면 어떻게 살 수 있냐는 대답 말고, 진심을 말 해봐요.

왜 항상 그리 쉽게 용서합니까. 미워하는 사람이 존재하기는 합니까?"


"저한테 잘못 저지른 사람한테 벌주고 싶지 않아서요...."

"...벌?"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고 나으리께서 그러셨잖아요.

저의 생각에는요, 그런 건 평범한 삶이 아니라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삶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삶은 참말 쓸쓸하잖아요. 쓸쓸한 사람들이 쓸쓸한 삶을 사는 세상인데..

저까지 그 사람들에게 벌주고 싶지 않아요, 저를 좀 싫어하거나 미워해도요, 저는 괜찮은 것 같아요."



-너희, 포사들-






한지서가 눈을 뜬 건, 잠에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자의로 일어난 건 아니고, 윤혁의 손짓에 눈거풀을 들어 올렸다.

"한지서, 일어나 봐." "야, 일어나." 몸을 흔드는 손짓이 거칠었다.


왜애. 왜. 한지서는 졸음 가득한 눈을 간신히 문지르며, 윤혁을 바라보았다.


"한지서."

"응.....왜.....몇 시야?"


잠에 취해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졸려. 헤롱헤롱. 한지서는 눈을 다시 한 번 깊게 감았다가 떴다.

팔을 들어 올려 윤혁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힘을 주어 제 쪽으로 당겼다.



"안아 줘."


높낮이라고는 거의 없는 목소리로 보챘다.

윤혁은 순순히 몸을 내렸다.

한지서는 윤혁의 목덜미와 각진 턱 부근에 촉, 촉 짧게 입 맞췄다.

그러곤 다시 눈을 마주했다. 

새벽엔 제가 깨울 때까지 일어나는 법이 없는 윤혁이건만, 갑자기 깨운 저의가 궁금했다.


"눈 와."

".........."


단조로운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아, 마음이 설렜다. 잠이 싹 가시고, 온기만이 남았다. 한지서는 몸을 일으켰다.



"눈 볼래."

"애냐?"

"형이 깨웠잖아."


"같이 볼래, 형이랑."


한지서는 그렇게 말하며, 윤혁의 손을 잡아당겼다.

눈앞에서 방방 뛰는게 개도 아니고. 

어깨가 아려 뒤척이던 중, 비 냄새가 나길래 확인했는데 눈이었다.

마침 한지서가 했던 말도 떠오르고 해서 깨웠는데, 예상보다 더 좋아했다.

애인가, 진짜. 열두 살에 성장이 멈춘 건가.

덩치만 컸네. 윤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란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예쁘지도, 분위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비인지 눈인지 정확히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가로등 불빛은 채도도 낮은데, 

쓸데없이 눈만 부셨다. 그러나 윤혁은 한지서의 어깨에 두르고 있는 팔에 

단단히 힘을 주었다.



/

어머니는 윤혁을 앉혀놓고 말했다.

우리 혁이도, 빨리 어른이 되어서 좋은 대학교에 가 좋은 회사에 들어갔음 좋겠다고.

그렇다면 그 어떤 것도 바라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고, 두 달 쯤 지나서,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월세로 살던 집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친척 집을 전전하다가 가출했다.

그렇게 밖에서 만난 녀석들과 모텔에서 모여 살았다.

그렇게 허송 세월을 보내는데, 어디에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채용석이 찾아왔다.

그는 여타 이렇다 할 말 없이 무작정 본론부터 던졌다.


'한지서, 요즘 다리 절고 다니더라."


그리고 윤혁은 그 날 동네로 돌아왔다.


다시 마을로 돌아왔을 때, 한지서는 정말 채용석의 말처럼 살고 있었다.

윤혁은 열여섯 살, 한지서는 열두 살이었다.

가출은 짧았다. 기껏해야 삼 개월도 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한지서는 다리를 절게 됐다.

홀린 듯이 찾아간 그의 집 앞에서 걸어오는 것도 불편해

한 쪽 발만 든 채로 윤혁에게 달려와 안겼다.


형, 어디 갔었냐고. 왜 자기를 버렸냐고.

보고 싶었다고 엉엉우는 한지서 앞에서

윤혁은 그 때 처음으로 울었다.

서럽고, 불쌍했다.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살고, 이렇게 됐는지,

왜 엄나는 갑자기 죽어서 저를 야생 속에 내다버린 건지,

왜 저에게는 한지서를 지킬 힘 따위 없는 건지.

그리고 그날부터 윤혁은 돈을 벌었다. 닥치는 대로 일했다.

삶의 고단함과 노동의 괴로움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내일은 없다-






".........대표님은 나 안 불쌍해요? 나한테 연민 같은거 없어요? 

내 심장이...너무 싸구려라 나만 그런거 느끼나."


"네 말대로야. 시궁창 전전하는 거 알고 있었어. 그래도 방치했지. 그런 나한테 동정을 바래?"


권태하가 기어코 쐐기를 박았다. 

혼자 생각하고 마는 것과 확답을 듣는 것은 이렇게 다르다.

이번에는 내가 등을 돌려 누웠다. 

이불을 끌어올리는 행동을 막은 그가 

내 목덜미를 손으로 문질렀다.

부드럽게 쓰다듬는 위선적인 손마저 

아픈 몸에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최대한 비싸게 굴어. 안 그러면 네 싸구려 심장 갖자고 날뛴 내 꼴이 우스워져."


권태하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


"앞으로 너와 내 사이에 딜 같은 건 없을거야."
"더는 주하원과 계산하고 싶지 않아."



-반칙-





신해범은 차폐막을 넘어 사수석으로 올라왔다.
당연히 혼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류진을 안고 있었다.
기우희는 재빨리 사수석 등받이를 젖혔다.
신해범은 능숙하게 정류진의 다리를 벌려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혔다.
몇 번 뒤척인 끝에 편한 자세를 찾은 그가 말했다.

"뒤는 더워서."

차폐막 너머에는 권세혁이 있었다.
수면제와 THC 성분에 취해 완전히 곯아 떨어졌다.
하지만 체온조절은 여전히 안 되는 모양이었다.
자꾸만 오한을 호소하는 권세혁 때문에 
에어컨을 켤 수가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꾸벅꾸벅 조는 꼬꼬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찢어졌다.
신해범은 류진을 덥석 안아 들었다. 그리고 넘어 왔다.

"꼬꼬가 많이 피곤했나봐."
"어린애 뒤치다꺼리는 힘든 일이니까요."

신해범은 류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싫다는 듯 찌푸려지는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엄지로는 관자놀이 흉터를 연신 쓸어내렸다.

/

약상자를 정리해서 일어나는 신해범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는 불을 끄고, 책상 위의 조명등 하나만 켜둔 채 

군용담요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 담요를 류진의 무릎에 툭 던졌다.


"자라. 약 안닦이게 조심하고."


류진은 담요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누나가 보고싶어."

"해뜨기 전엔 데려다줄게."

'당신 동생 말고....우리 누나."


신해범의 시선이 휘황찬란한 불야성에서,

류진에게로 옮겨갔다.


"무슨 노래 좋아해?"

"갑자기 뭔 소리야?"

"네 누나 노래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곡이 하나쯤 있을 거 아니냐고."

"나는......"

"전부 다 좋다는 대답은 패스. 그건 너무 빤하잖아."


류진은 기억을 더듬었다. 사실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신해범이 믿어줄지가 문제였다.

류진이 가장 좋아하는 류연비의 노래는 

정식으로 발매된 적이 없는 곡이었다.


"말해도 당신은 몰라."

"그래?"


신해범은 미련없이 눈을 감았다. 긴 몸이 소파에 드러누웠다.

두 다리가 팔걸이 바깥으로 튀어나가 허공에 덜렁거렸다.

류진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누나가 내 시점에서....생각하고 쓴 가사가 있어."


신해범이 눈을 떴다.


"너 없는 얘기 막 지어내고 그러면 안 된다."

"지어내는 거 아니야! 내가 뭐하러 그런 거짓말을 해?"

"제목이 뭔데?"


그 정도는 말해줘도 괜찮을 성싶었다.


"아무도 없는 집."

"'들어본 적 없는데."

"그래서 모를 거라고 했잖아. 앨범 수록곡이 아니니까."

"그럼 뭐야? 연습용 자작곡?"

"뭐 그런 거."


나이차가 큰 남매지간이었다.

가족이지만 각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달랐다.

류연비가 기획사에 입사한 뒤로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들었다.

함께 살던 할머니는 새벽같이 시장에 나갔고, 

밤이 다 되어서야 귀가했다.

어린 류연우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이 노래를 소개할 때 누나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무슨 말을 했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오래된 통기타에서 흘러나오는 선율과, 

호소하듯 깊이 있는 목소리는 류진의 기억속에 선명했다.


/


베개 위에 놓인 손을 바라보았다.

피부가 얇아 실핏줄이 고스란히 비쳐보이는 여린 손바닥

군데군데 박힌 굳은살이 눈에 띄었다.

신해범은 홀린 듯, 마른 손가락 사이에 

제 손가락을 끼워넣었다.

신해범이 죽은 듯이 자는 류진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술을 벙긋거렸다. 


일어나

나랑 같이 가.


-들이닥치다-






"....윤강 님."

"그래, 이쁜아. 어찌 깨었어?"

"원래 이 방이 말이에요."

"응."


각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잠결인 주제에, 

열심히 입술을 움직였다.

대체 무슨 할 말이기에 자다 깨서 그럴까 

생각하여 빤히 바라보니,

해죽 웃으며 웅얼거렸다.


"여름에도 몹시 추워 발끝이 시렸는데....."

"지금은 춥지 않아요."

".........."

"따스하여요."

"........."

"도련님이 계셔 주셔서.....따뜻해요."


/


"연모해서 그랬다."


"은애해서, 너를 세상에서 나만 독차지하고 싶어서 그랬어."


"사람의 마음은 어렵고, 너는 귀하고.

너를 노리는 것들은 많아 초조해 그랬나봐."


"그 조바심이 잘못되어 너를 많이 괴롭게 했나 봐."


"내가 잘못했다."


"부디 나를 용서하고."


"다시 연모해 다오."


/


"......도련님이 왜, 약과를, 

하필이면 제게 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여쁘니 주었지."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였다.


".....어여쁜 이에게는 모두 약과를 주십니까?"

"어여쁜 네게만 주는 거다. 특별하고 각별하여서."

"............."

"네가 각별하지 않으면, 각아. 

이리 무릎에 앉혀놓고 눈물을 닦아줄 리 있을까."


보드랍게 풀린 각의 몸을 끌어안은 윤강이 당시에는

겨울철 찬 바람에 텅 비었던 담장을 보며 말했다.


"오늘 저 담벼락에 능소화 피었다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웬 능소화를 말씀하십니까?"

"네가 능소화를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꽃 앞에서 입 맞춘 기억이라면

언제든 좋게 남겠지."


다정하게 말하던 윤강.

열아홉 살의 기억이었다.


-까막새 우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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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3 2019.03.19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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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10 2019.03.20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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