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열려 있었다.
현관에는 후줄근한 숙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명품 가죽워커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여기서 이런 걸 신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은
하신성 뿐이었다,
"나 왔어."
"엉."
담배를 피웠는지 거실 가득 연기가 자욱했다.
류진은 하신성을 향해 말했다.
"나 수건 하나만."
"너 비 맞았냐?"
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발장 거울에 비치는 얼굴이 꼭 시체 같았다.
하신성이 혀를 차며 다가왔다.
"우산 살 돈 없었어? 그럼 나 부르지.
호출기는 뒀다가 뭐에 쓰냐?
하여튼, 이 나이 먹도록 자기 앞가림도 못해요."
따발총처럼 쏘아대던 하신성의 표정이 굳었다.
젖은 몸 그대로 류진이 안겨들었다.
"뭐야. 왜 그래?"
당혹스러웠다. 그는 류진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신성이 아는 정류진은
약한 모습을 드러낼 만큼 허술한 성격이 아니었다.
간부에게 불려가 쓴 소리 조금 들었다고
기죽을 만큼 약하지도 않았다.
귀족 도련님 처럼 우아한 얼굴을 하고서는,
너랑 떡치면 되겠느냐는 말을 태연하게
뱉어내던 악바리였다.
원하는게 있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종이었다.
그런 류진이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지금껏 하신성이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호출 누가 했어?"
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 팔로 하신성의 허리를 꽉 껴안고만 있었다.
"정류진. 대답해."
"............"
"말하기 싫어? 말하게 해줘?"
억지로 떼어냈다. 류진이 도리질을 치며 재차 달려들었다.
하신성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딴 어리광을 곽현우라면 받아줬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기 있는 건 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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