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정원
비도 내리고 얼마 전에 올라온

[ 발길질이 일으킨 파문이 뭍으로 번져나가듯 너에게 가 닿고 싶었을 뿐.txt ]
http://www.dmitory.com/novel/27866115

재탕하다가 모아뒀던 글 생각이 나서 쪄 본다..
찐톨 기준이지만

​가끔 위로 받고 싶을 때, 힘들 때 읽으면 좋을 문장들,
그냥 보기 예쁜(표현 좋은?) 문장들,
자기 전에 읽으면 마음 편해지는 문장들 등.

톨들도 좋아해줬음 좋겠어..♡
​이렇게 많이 발췌해도 되는 건가 싶어서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한데..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알려줘ㅜ..​
​​




# 너와 가는 세상에(벨수국)

앞으로도 닿을 듯, 닿지 못한 꿈 때문에 숱하게 좌절할 네게 이 작은 행복이, 나라는 별거 아닌 사람이, 네 가느다란 삶을 끝내 놓지 못할 마지막 미련이길 바란다.



# 라스트 신(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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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이 터진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밀려 나오기보다는 끊임없이 쓸려오는 잔잔한 물결 같은 감정일 것이다. 어쩌면 다시는 누군가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스스로 걸어 놓았던 빗장이 열리는 건 순식간이다. 마음 한 귀퉁이에서 이미 오래전에 잘려 나가 없어진 줄 알았던 감정이 새롭게 생겨나는 건 금방이다. 아무리 긴 시간을 잿빛으로 물들인 마음으로 살더라도, 한순간에 색색의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물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살아 있으니까. 죽는 게 나을까 생각해도 결국에는 숨을 쉬고 있으니까.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맞이하게 되니까. 후회도 상처도 조금씩 빛바랜 기억으로 밀려나게 되니까. 그러다 보면… 희망이라는 것도 갖게 된다. 한결이도 그럴 거다. 지금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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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색한 몇 마디로 시작했다. 위에는 목줄이 매어져 있고, 아래에서는 조금씩 빠져나가는 의자를 발끝으로 아슬아슬하게 디디고 서 있는 시간. 거기에서부터였다. 누군가가 구원해 주기 전까지, 나는 그렇게 목을 매단 채로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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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청주파수(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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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한 밤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잠들 수 없는 새벽이면 지난 세월 동안 망가진 것들의 모서리가 뱃속을 찢는다. 햇빛 아래서 아무 걱정 없이 웃어본 적은 언제였지. 힐난의 시선, 비난의 언어로 가득한 일상은 하루하루 더 처참한 방향으로 어그러져가고 있을 뿐이다.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매일 정신이 깎여나간다. 이러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너, 이 개새끼…!"
언젠가는 정말로 미쳐버리는 게 아닐까….
"이 좆같은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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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화가 나거나, 너무 슬프거나, 너무 기쁠 때 눈물이 나는 건…. 그러니까…. 뜨거운 거에 데면 물집이 잡히잖아요. 그게 살이 타들어가는 걸 방지하려고…. 그 부분을 식히려고 생기는 게 물집이잖아요. 눈물도 똑같대요. 내가 감당 못 할 만큼 큰 감정이 일어났을 때, 그 감정 때문에 열이 나지 않게…. 몸 상하지 말라고 생기는 게 눈물이랬어요. 그러니까 참으려 한다고 참아지지 않는 것도, 멈추려 한다고 멈춰지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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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작열과도 같았다. 난데없이 태양 가장 가까운 곳으로 떠밀린 느낌이었다. 멍하니 헤벌린 입으로 쑤시고 들어온 직사광선이 뱃속을 태우고 모르는 일이라는 듯 유유히 사라진 것이다.
뱃속이 뜨겁고 욱신거렸다. 혼란 사이로 강렬한 열망이 파고들었다. 타인에게 이토록 큰 작열을 심고, 그럼에도 저토록 안전하고 화사한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란 도대체 뭘까. 어떤 위험부담도 없이, 누구의 방해도 없이, 무엇도 잃지 않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저 비열하고 불공장한 삶을 손에 넣으려면 어떤 인간으로 태어났어야 하는 걸까.
그것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렇게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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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길을 벗어나 오른쪽 차선을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발신 위치가 점점 가까워진다. 1차선은 오랫동안 쭉 비어 있었다. 개는 버려져도 버려진 줄을 모른대. 가엾지. 입 안에서 한 번 되새기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는 항상 성여준이 긍휼히 여기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나를 동정하고 돌봐 주기를 바랐다.
한순간도 빠짐없이 외치고 싶었다. 이토록 불행한 나를, 이토록 가진 게 없는 나를, 한 번이라도 돌아보고 바라보고 안타깝게 여기다가….
…아주 잠깐이라도 사랑해 달라고.
“…여준.”
이대로 죽으면 당신의 개로 태어날 수 있을까.
“성여준.”
그저 따뜻한 집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기만 해도 가엾다고 여겨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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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외치려 했지만 입이 열리지 않는다. 말린 혀가 목구멍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래서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알았다. 이토록 쉽게 끝낼 수 있는 것이 생이었다. 이토록 별것도 아닌 것이, 이토록, 이토록….
‘사현아.’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내 안락한 삶에 새삼스레 안도할 때가 있어.’
그러자 치밀던 설움이 거짓말처럼 그쳤다.
“…….”
눈이 뜨인다. 새카만 차 안, 지독한 탄내가 났다. 목 아래로는 아무 감각도 없었다. 눈을 깜빡여 맺혀 있던 눈물을 흘려보냈다. 가슴을 맴도는 목소리는 마지막 순간에 얻은 소망에 대한 답이라고 믿었다.
나는 태양계 밖으로 밀려난 행성, 평생 그림자 아래 떠돌 먼지 구덩이, 텔레비전 속의 불행, 성여준의 삶과 아무 관련 없이 끝날 머나먼 재난이다.
“선배.”
그러니 마지막 순간의, 평생 전해질 리 없는 혼잣말 한마디쯤은.
“…선배.”
토해 내고 죽어도 되지 않을까.
“…….”
사랑해요. 숨을 쉬는 모든 순간마다 사랑했어요.
“…….”
정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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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서 너를 지우려 하지 마."
그것만 약속해. 그러면 가진 건 무엇이든 줄게. 다짐을 받아내는 목소리는 물기 없이 단단하게 마모되어 있었다. 사현은 탄식하며 어깨를 무너뜨렸다. 어째서 희망이란 이토록 질고 축축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오랫동안 피해왔는데,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는데, 그 모든 시간을 무용하게 만들어 버리는 언어는 마치 바닷바람 같다. 덜컥 숨을 들이켜는 순간 우리는 소금인형이 되고 말겠지. 파도를 맞고 녹아버리더라도 마지막 순간에 손을 붙들고 있다면 기쁘게 죽을 수 있는.



# 강을 오르는 고래(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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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정오와 겹쳐 보였다. 불쑥 나를 찾아왔던 그날, 투명한 소주잔 너머 바라본 정오의 눈이 딱 이랬다. 메말랐지만 울 것 같다.
눈물은 껍질을 벗긴다. 켜켜이 쌓인 옷을 한 장씩 걷어 내다 마지막 장과 함께 속살이 같이 떨어져 나간다. 피를 철철 흘리고 맨살로 세상에 나오면 약해진 몸을 감싸는 칼바람.
정오는 내 상상에서 울었다. 정오는 핏덩이였다. 바람에 살을 에는 애였다. 정오의 눈에 갇혀 있는 나도 덩달아 추웠다.
나는 너를 안아 주고 싶어. 너를 잡아 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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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야. 지금에 와 나는 생각한다. 너와 나 사이의 일을 견딜 수 없어 상자에 가두고 말았던 절박함이 사랑이라면, 너를 보내고 죄악감에 속을 게워 낸 것이 사랑이라면, 널 놓기가 무진 힘들었던 게 사랑이라면, 나를 보던 네 눈이 잊히지 않는 미련 또한 사랑이라면, 나는 너를 사랑했어.
다만 내 사랑은 너무 미약했다. 파도에 금방 휩쓸려 버리는, 연약하고 나약한.
정오의 장례식에 나는 무진 울었었다. 다들 이상하게 볼 정도로 제일 많은 눈물을 흘렸다. 육개장 국물을 아무리 퍼도 양이 줄지 않은 것은 내 눈물로 다시 채운 탓인가.
육개장이 무척 짰다. 그건 곧 내가 정오를 버리고 바다에 남은 증거였다.



# 캐비닛 속 비누 거품(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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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를 택시에 태워 준 후, 집으로 돌아와 한 번 더 꿈을 꿨다. 내가 사랑하려고 노력했던 존재들이 파란 양철 사물함에서 쏟어졌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준 자전거나 어머니의 결혼반지, 전 애인의 편지들. 그래, 판도라의 상자 같았다. 나는 그녀와 달리 문을 닫지 않아 마지막에 무엇이 들었는지 마주했다. 폴라로이드 사진. 대걸레 자루를 쥔 선배가 노래를 멈추고 웃었다. 그건 튤립 줄기나 꼬마전구 같은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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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단순한 픽셀처럼 삐뚤어져 보였다. 내 눈에 온전한 선을 가진 건 소군 선배뿐이다. 완벽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해. 선배가 나를 보는 순간만큼은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선배의 눈 안쪽에 내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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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선배의 얼굴을 벽지에 손가락으로 따라 그렸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루 종일 스위치가 깜빡거리고 선배의 목소리를 곱씹으며 지냈다. 마음은 떨어지고 보면 결국 선배의 앞이었다. 남의 생김새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 왔어도 선배를 보면 옷차림은 따듯한지, 다친 곳은 없는지 걱정부터 했다. 멀쩡하게 웃는 선배를 보며 매일 안심한다. 그래, 감정을 알레르기처럼 겪었던 지난 스물세 해는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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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깨워 주는 꿈을 선배가 깨웠다. 마트료시카 같은 구조였다. 어느 쪽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부스스한 머리에 세수만 한 얼굴이어도 좋았다. 선배와 연애를 한다면 이를 닦자마자 뺨에 몇 번이고 입 맞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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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연인 관계는 사랑스러운 착각을 부른다. 산성비도 목화솜으로 변할 것 같다. 감정이 결국 소모품이라면 매일 새 연심을 자라게 기다릴 터였다. 프로메테우스의 간처럼.



# 아무것도 아닌 날들(니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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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을 한 몸에 받아들이고 있는 그의 몸이 빛에 의해 희게 부서졌다. 홀로 조명을 받은 것처럼 그의 검은 티셔츠가 빛을 한가득 빨아들이고 동시에 반사했다. 마지막 여름의 기운을 그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언제까지고 환한 동시에 폭력적인 젊음의 상태가 유지될 것 같은 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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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들어가 책장을 밀었다. 겹으로 되어 있는 책 뒤편에 좀 더 내밀한 서적이 있었다. 나는 무의미의 시를 찾았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손끝이 가리키는 대로 글을 휘갈기고, 그것이 단어의 홍수를 이룬다. 그러나 의도하고자 하는 바는 없다. 읽는 사람도 쓴 사람도 자기 세계에서만 허우적댔다. 궁극에 이르러 얻는 것이 자기 세계라는 점이 좋았다. 필사적으로 책을 찾아 서너 권을 쥐었다. 침대에 앉아 펴들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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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 무릎을 움켜쥐었다. 당혹스러웠다.
그의 손가락이 내 입술을 훑었다. 내 몸 어딘가에 아직도 사람을 향해 열려 있는 틈이 있는 모양이었다. 입술을 더듬는 손이 그 틈을 필사적으로 벌리려 하고 있었다. 정주한의 손이 목덜미를 지나 복부를 쓸었다. 그 손은 말하고 있었다. 어디로든 가자. 어디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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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는 점점 나를 하찮게 대했다. 행위와 뒤따르는 굴욕감만이 공기를 흐렸다. 어느새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검은 화면에 점점이 박힌 글자가 그가 내게 가르친 성경 구절들로 보였다. 많은 것을 가르쳤고 습득했다. 나는 S를 통해서 알지 않아도 좋을 수치와 회의를 깨달았다. 내 생명을 단축하는 습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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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발설하면 남은 결말은 파국뿐이라고 배웠다.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생각은 위험했다. 고통은 결국 개인의 몫이라 나 이외에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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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에게 휩쓸렸던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정주한은 항상 나를 좇고 있었다. 처음에는 분노 그 후에는 믿기 어려운 광폭한 애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나를 만나기 위해 차를 몰고 D시까지 내려오지 않았던가. 서로 기억이 접점을 찾았다고 느낄 무렵 그의 감정이 더 이상 내 쪽을 향하지 않도록 나 스스로 만들었다. 그를 두고 죽음 속으로 뛰어내렸다. 그걸 나는 극복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그가 나를 건져냈다. 고함을 치며 내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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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한이 침대에서 튕기듯 빠르게 일어서 총을 뺏어내려 했다.
"위험하잖아."
위험한 것은 멀리 있지 않았다. 이런 갑작스런 행위는 진짜 위험이 아니었다. 삶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진짜 위험이었다.​



# 봄이 오는 소리(에디파)

사람들은 쉽게 이해한다고 말을 내뱉지만, 사실 고통이란 겪어 본 사람만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냥 잊어. 말하는 사람은 쉽게 내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듣는 사람은 평생 잊히지 않는 상처를 되새김질하는 기분이다. 그게 말처럼 쉽게 가능하다면 왜 괴로워하면서 살아, 다 잊어버리면 그뿐인 것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 10년의 끝(미시오)

우리 사이에 분명한 서사는 없었다. 약해진 플롯에서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서사 없이 이루어진 사랑이야기에 공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어떤 맥락도 이유도 없이 너를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다만 그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이었다.
사랑은 어찌 보면 그랬다. 원인이 없으니 결과도 마땅치 않은 것. 너를 왜 사랑하는지도 모르면서 내 모든 감정을 내어주어야만 하는 것.



# 중력(쏘날개)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를 가득 덮고 있는 그의 크고 강한 몸이 서럽게 들썩이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목 안이 떨려왔다.
'터널에 들어가면 다 통과할 때까지 숨을 참는 겁니다.'
함평분기점을 넘어, 증도로 향하던 길이 맞이한 캄캄한 터널을 앞두고 그가 나를 놀림 삼아 했던 말이 돌연 떠올랐다. 느닷없이 왜 그때의 일이 떠오른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다만 그의 다정했던 목소리를 떠올리자, 참을 수 없는 환멸과 설움이 복받쳐왔다.
그에겐 내가 숨을 참고 통과해야 할 어두운 터널이었다.



# 유유상종(한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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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우를 정의하는 단어가- 그런 것들이 아니었으면. 업이나 천륜 같은 무겁고 섬뜩한 것들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이라면 좋았을 것 같다. 이를테면… 목소리, 향기, 단정한 교복….
책장을 넘기는 하얀 손가락이나, 웃을 때 그림처럼 접히는 눈매, 부드러운 말투, 혹은… 한여름의 어느 날, 이유를 묻지 않고 그저 끌어안아 주었던 다정함 같은 것들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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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하며 떨어트린 시선에 먹다 만 귤이 껍질과 함께 말라가는 게 보였다. 사실 그 순간, 게임을 빌미로라도 묻고 싶어 혀끝에서 아프게 맴도는 것은 따로 있었다. 별 의미 없는 한마디 문장에, 향기라는 간지러운 단어에,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머리카락을 흩뜨리는 끝이 노란 손가락에 가슴이 울컥 치미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 있느냐고. 혹시 너도… 유재우도, 그런 적이 있는지.



# 잘 알지도 못하면서(화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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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곳도 가야 할 곳도 없다. 머무를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데 나는 어째서 존재하는지 궁금했다. 이 거대한 세상에서 사람은 본래 아무 의미 없는 존재일까. 아니면 나만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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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고통을 진 사람들은 왜 흡사한 울림을 갖게 될까. 책을 읽다 문득 내 안에 있는 것과 같은 파동을 발견하듯이. 지어낸 글귀를 읽는 것뿐이건만 이 사람이 나와 같은 길을 지났다는 걸 알 수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데, 고통에서 배어 나온 혈흔이 서로 비슷한 언어를 갖게끔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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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에 매몰되기란 얼마나 쉬운가. 가만히 머무르기보다는 매 순간 흔들리기가 훨씬 쉽다. 보호받고 인정받고 사랑받길 원하는 삶. 소유는 본능이다. 사람들은 바라는 게 너무 많다.
나는 그래서 누굴 좋아하는 게 두렵다. 원하게 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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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어떻게 순위를 매길 수 있겠느냐고. 그렇지만 동시에 최서준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라도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내가 겪은 것쯤은 사실 별것 아니라고 자신에게 설명하고 타협하고 싶어지는 절박함. 고통을 축소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울면서 겪은 일을 피로 쓰고 다른 누구는 돌아서서 지워버린다. 잊는다고 덜 아픈 것도, 잊지 못한다고 과민한 것도 아니다. 각자의 방식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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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그게 가장 위로가 된다. 모든 건 지나간다는 것.
편안한 순간도 곧 지나갈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순간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가는 것들은 그대로 가게 두고 인사할 수 있다. 문득 홀로 남더라도 여전하구나, 생각할 뿐 슬프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어디가 나의 본래 자리인지 잘 정해두어야 한다. 환희와 절망의 격랑이 지나고 나면 가라앉은 물결 아래 난 어디에 서 있을지. 모든 게 지나간 자리에 나는 나 자신으로서 남을 뿐이다.
나는 학교로부터 도망쳐 나왔던, 더는 어디도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한 그 거리를 내 자리로 정해뒀다. 모든 좋은 일은 요행일 따름. 언젠가 나는 적막한 골목으로 돌아갈 거다.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더라도 난 괜찮다.
정말 아무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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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도 착각하는 게 나의 나약함이다. 다 알면서 현혹된다. 분명한 현실보다 달콤한 현재에 현혹되는 나를 다잡을 수가 없다. 이럴수록 다칠 걸 아는데, 나를 지킬 수가 없다.
조금만 더 삶에 냉소적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째서 나는 삶이 내게 조금만 잘해줘도 마음이 느슨해질까. 가진 게 없다면 굳건한 마음이라도 가질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걸. 하긴 그랬더라면 지금 여기 있지 않았을 거다. 이럴 때 조금 슬프다. 여기까지 나를 몰아온 건 나였음을 인정하게 될 때.
그렇지만, 내가 대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만 하나. 나는 고작 나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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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다. 절정은 끝났고 주인공은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전형적인 상징과 연출이 영사막 위에 정갈하게 놓인다. 모두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형태의 안온과 평화가 상영관을 메운다. 너무 안전한 나머지 더러는 흔해 빠졌다고 말하고 누구는 다 예상했던 결말이라고 이야기할. 그러나 그 흔하고 전형적인 마무리가 주는 안도감에 대해 서준은 알고 있다. 그 위안을 사기 위해 푯값을 낸다. 기대했던 것을 보려고. 그렇다면 뻔한 안도 이상이 되는 지점은 어디일까. 어디부터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니게 되고, 타인은 타인이 아니게 되나.
언제부터 사람의 마음은 움직이는 걸까. 어떤 시점부터 다른 사람을 마치 자신처럼, 잘 아는 사람처럼 느끼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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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세상에 등 떠밀려 도망쳐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안다. 어쩌면 그건 나의 의지가 아니었으며, 지금은 간신히 다시 가장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있더라도 언제 또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걸.
한 번 나쁜 선택을 해본 사람들은 줄곧 떨어지기만 한다. 버틸 수 없다는 걸 아는 것이다. 그래서 버티지 않는다. 힘껏 떠밀려도 아등바등 제자리에 붙어있으려던 기억은 수치심으로만 남아, 이제는 손끝으로 등을 건드리기만 해도 가장자리 밖으로 뛰어내린다. 떨어지면 부서지겠지. 알고 있다. 언젠가는 끝나겠지. 어차피 모든 것엔 끝이 있다. 거기 순응하지 못할 이유는 뭔가.
‘나도 이이삭 씨 좋아해요.’
최서준이 뻔한 거짓말을 입에 올린 순간 나는 이야기의 결말을 알았다. 일방적인 감정은 짐이 된다. 희주의 의존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생각해보면, 이제부터 최서준이 내게서 느낄 하중을 짐작할 수 있다. 발맞춰 보려는 시도는 허사다. 최서준은 점점 무거워지고 나는 점점 더 격렬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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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쩌면, 다른 사람을 소중한 것으로 삼고 살아간다는 건, 읽히는 게 아니라 쓰이는 일일 수도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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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해 아는 사람이 나를 똑바로 보면서 말하는 건 처음이다.
어쩌면 오랜 시간 내가 바란 건 이것이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누가 나를 읽어주기를. 내게 적힌 구절 중 가장 좋은 것만을, 좋은 목소리로 읽어 나를 다시 써주기를.



# 가장자리 필름​(숨나기)

시곗바늘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똑, 딱, 똑, 딱. 점점 커져 가는 듯한 그 소리가 신경을 할퀴었다.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모든 바람이 으레 그렇듯이 내 세 가지 바람이 단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조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렇다. 나만이 특별한 기원자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이야말로 어리석은 짓이었다. 나만이 간절한 기원자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이야말로 멍청한 짓이었다. 간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어디에도. 나의 간절함이 누군가의 간절함보다 우월하다고, 또는 열등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폄하이다.



# 소년을 구해줘(라울)

현실과 상실의 경계. 하성은 가끔 헷갈리곤 했다. 상실이라는 것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어째서 괴로워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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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서정적인 연애를 위하여(김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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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시간이 울부짖는다. 지나가면 다시는 돌이키지 못할 것일진대 왜 이리 허망하게 자신을 보내느냐며. 삶은 한시가 바쁘게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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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얼린 탓에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마음에 위로가 닿으면 따뜻함보다도 뜨거움이 먼저 느껴진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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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별것도 아닌 상처는 없다. 아무리 작은 생채기라도, 일단 생긴 이상 이전과는 분명하게 다른 상태가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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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알거야.' 미소는 그렇게 말했었다. '사랑이라면, 네가 알 거야.' 언제, 어떻게 알 수 있게 되는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이른 아침, 생선 냄새가 다 빠져나가지 않은 자그마한 방 안에서, 몇 달이나 봐 왔는데도 여전히 자신을 조금쯤 어색해하는 듯 보이는 덤덤한 남자의 얼굴을 앞에 두고, 이렇게 문득 알 수도 있게 되리라는 것은,
미처 몰랐었다.



# 찬란한 어둠​(텐시엘)

희망은 늘 절망과 종잇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서 마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늘 희망을 보기보다는 절망을 바라보았다. 결국 다가올 것을 맞닥뜨리려면 마음에 단단히 얼음벽을 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이 남자의 손끝이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눈이 부시다 못해 멀 것처럼 환한 그 종이 벽 너머를.



# 시작하다(꽃낙엽)

너를 보고 있으면 셀 수 없이 많은 예쁜 말들이 생각난다. 간지러운 말들이 표현할 수도 없을 만큼 떠오른다. 너를 붙들고 구구절절 풀어 놓으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만큼, 그렇게.
그래서 나는 함축된 단어 안에 하고 싶은 말을 끌어모아야 했고, 사실 그렇게 해도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졌다.
너는 나의 시였다. 존재 자체가.



# 고양이는 아홉 번을 산다(밤바담)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추운 삶을 살고 있다. 그 겨울의 크기가 모두 같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그만큼의 겨울이 주어졌다는 건 그 사람이 그 겨울을 견뎌 낼 만큼 봄을 바라고 있다는 뜻이다. 애초에 겨울의 크기를 재는 건 의미가 없었다. 모든 사람에겐 제 겨울이 가장 춥고 혹독할 터였다.



# 입장정리(황단팥)

계절의 냄새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때 함께했던 사람보다 그때 떠난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 도련님(도토리)

가끔은, 목격할 수 있다. 세상에 잠기는 나를. 빛 또는 어둠이 모조리 흡수되는 내 몸은 때로 그게 아니면 채워질 수 없었던 유리컵 같다. 이 순간엔 내가 얼마나 텅 비어있었는지 알게 된다. 내가, 나로부터 얼마나 가볍게, 그리고 멀리 내던져져 있는지도.



# 첫사랑(이한)

고금을 통틀어서 우리 인간의 시행착오로 빚어낸 빛나는 금언인데도 잔소리로 들리는 이유는, 그것들이 유행가가 쏟아내는 사랑의 고백처럼 남용되어 향기를 잃어서가 아닌지. 또는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치르는 우리의 마음의 샘물이 이미 닳아버려서는 아닐지.​
어쩌면 비법을 알아내 행복해지려는 욕망 자체가 그릇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비법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면 요즘 세상에 자기계발서가 넘쳐나지도 않겠지.​
그렇다면 결국 내가 부딪치고 깨지면서 체득하는 수밖에 없다는 뜻인데.
난 왜 행복해지고 싶을까?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뭐지?
사람들이 말하는, 아니 내가 바라는 행복은 정확히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
그걸 알려면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텐데, 나는 스스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아무리 좋아하는 거라지만 모아놓으니 ㄹㅇ 활자지옥......... ㅋ...ㅋ.......ㅋㅋ...

암튼 읽느라 고생했어 톨들.
(아마도) 뭐든 다 괜찮을 테니 굿밤!
  • tory_1 2018.06.28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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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2 2018.06.28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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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 2018.06.28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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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3 2018.06.2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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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4 2018.06.2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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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7 2018.06.2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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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8 2018.06.2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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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9 2018.06.2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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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10 2018.06.28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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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11 2018.06.29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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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12 2018.06.29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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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13 2018.10.26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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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ry_15 2023.03.2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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