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더블헤더
야구선수공X초등교사수
수는 어머니, 어머니의 남친과 함께 셋이서 야구 경기를 보러 감.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경기에서 어머니 남친이 응원하는 팀과 공네 팀이 붙게 되는데...!
# 형이 왜 여기서 나와...? ⚾️
1회 초가 끝나고 마운드에 오른 강희찬이 연습구 두 개를 던지고 난 후. 이선은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갑자기 모자를 벗은 그는 평소에도 큰 눈을 더욱 크게 하고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빤히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다, 시선을 내려 입은 유니폼을 본 순간 미간이 팍 구겨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친이 상대팀 유니폼을 입고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
스윽. 괜히 추운 것처럼 양팔로 몸을 감싸며 유니폼을 가려봐도 소용없었다.
‘이게 대체 뭐야?’
그리 묻는 것처럼 눈을 희번덕거리던 강희찬은 심판의 주의와 함께 다시 모자를 뒤집어썼다.
‘이따 두고 봐요.’
(중략) 그는 자꾸만 자신이 입고 있는 유니폼을 찢어버릴 기세로 봤다.
# 키스타임 💋
―아, 이번엔… 우리 아버님이랑 아드님이시네요!
―와아아!
경기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함성이 터진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은 마음에 이선의 눈은 본능적으로 전광판을 향했다. 화면엔 가운데 자리를 비워둔 채, 나란히 앉아 있는 자신과 아저씨의 모습이 기묘한 하트모양 안에 있었다.
“아…….”
그제야 이선은 이미 댄스 타임이 지나고, 키스타임이라는 낯부끄러운 게임으로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이선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아, 아니……!”
이선은 눈이 화등잔만치 커다래진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중략) 이분은 저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이분이 함께 키스타임을 하실 상대는 지금 화장실에 가 계십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말을 전할 수단도, 용기도 이선에게는 없었다. 어느새 그를 제외한 다수는 멋대로 아버지와 아들의 다정한 모습을 원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선의 오른뺨에 낯선 감촉이 슬쩍 붙었다 떨어졌다.
―와아아!
―야아, 우리 아버님이 굉장히 다정하시네요!
깜짝 놀라 옆을 봤을 때, 이미 남자는 잔뜩 미안한 얼굴을 한 채 몸을 멀찍이 물렸다. 결혼도 해본 적 없음에도 장성한 남자의 ‘아버님’이 되었다는 사실에는 별 불쾌감은 없어 보였다.
이선은 한 박자 늦게 웃음을 터트렸다. (훈훈....)
# 훈훈한 것과 별개로 멘붕 온 한 남자..🔥
경기는 결국 홈팀의 승리로 끝이 났다. 어머니가 쫄면과 군만두를 사서 자리로 돌아온 순간, 강희찬이 6회 첫 타석에 들어온 선수에게 홈런을 허용한 탓이었다. 그 이후 세 번 연속으로 안타를 허용하자 감독은 투수를 교체했다. 아저씨는 ‘어쩐 일로 강희찬이 이렇게 빨리 내려가냐’며 반색했지만, 이선은 못내 걱정되었다.
‘어디 아픈 걸까?’ (<- 컵스 팬분들 얘가 범인이에요!!!!!!!!!!!)
(중략) 동점을 허용하고 강희찬이 내보냈던 역전 주자가 홈에 들어왔다. 경기 후 강희찬의 이름 곁엔 ‘패전투수’라는 무서운 말이 붙고야 말았다.
패전투수라니. 그렇게까지 말할 것은 없지 않은가. (졸귀ㅠㅠㅠㅠㅠㅠㅠㅠ)
그게 꼭 강희찬이라는 사람 자체가 패배자로 불리는 것 같아서. 이선은 오히려 제 심장이 벌렁거려 혼나는 줄 알았다. 잔뜩 흥이 오른 아저씨의 차를 얻어타고 집에 돌아오면서도, 제대로 맞장구를 칠 수 없었다.
‘희찬 씨… 속상하겠지.’ (저기... 본인 때문이거든요ㅠ)
# 추궁 시~작!
“여, 여보…….”
―대문 무슨 색이라고 했었죠?
대뜸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이선은 당황했다.
전화 속 주인공은 발신자를 알면서도 꼭 ‘여보세요’로 시작하는 이선의 통화 습관을 놀리곤 했다. 말을 중간에 자르며, ‘여보입니다’라는 장난을 칠 때도 있었다. 처음 얼굴을 붉혔던 이래. 강희찬의 전화를 받을 땐 의식적으로 ‘희찬 씨’라는 말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장난은 없었다. 그는 딱 제 용건만을 먼저 물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급하다는 듯, 이선의 대답을 기다리진 않았다.
―아파트 단지 돌아서 골목으로 들어오는 쪽. 맞죠? 파란 대문.
“아… 네. 어떻게 알았어요?”
―나와요. 밖이니까. (허겁지겁 달려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략)
“왜 말도 없이 여기 있어요? 아까 그건 누구고. 정 선생, 나 몰래 뒤로 딴짓합니까? 바람피우고 있어요?” (중략)
“바람이라뇨…….”
허업. 숨을 들이삼킨 입이 다물어지지 못했다. 가당치도 않은 모함에 놀랐고, 그 말이 강희찬의 입에서 나왔기에 더욱 억울했다.
“애인한테 일정 숨기고 다른 놈이랑 쪽쪽 대는 걸 줄이면 ‘바람피운다’고 그래요.”
“쪽쪽……. 저 그런 적 없어요!”
이선은 양 주먹을 말아 쥐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결백을 주장했다. 마치 털을 바짝 세운 동물 같은 모양새였다. 평소라면 귀엽다고 얼러댔을 강희찬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럼 내가 전광판에서 봤던 건 다른 사람입니까?”
“아…….”
이선은 아차 했다. 그가 무슨 일로 자신을 추궁하는지.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주먹까지 말아 쥐고 결백을 주장하던 기세가 꺾였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민망함이었다.
“거기서도… 보여요?”
“그럼 화면이 그렇게 큰데, 안 보이겠어요? 내 눈은 무슨 옹이구멍이라도 되는 줄 알아요?” (공주다운 말본새;;;; -공포의 주둥아리라는 뜻-)
“아니. 그게, 아니고…….”
의미 없는 논쟁은 지은 죄가 있는 쪽의 패배로 끝난다.
용맹하게 말아 쥐었던 이선의 양손은 어느새 자신 없게 꼬물거렸다. 형사의 취조에 모든 것을 털어놓기 직전의 범인처럼. 그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결국 아슬하게 붙어 있던 강희찬의 안전핀이 떨어졌다. (중략)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딱 그 한마디만 하라고. 이선을 기다리는 내내 간절히 빌었다. 어떤 우스운 변명을 해도, 모른 척 넘어갈 자신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아직 이선에게 저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존재일 테니까.
하지만 말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망설이는 모습에 강희찬은 눈가를 짚었다.
“누구예요.”
낮은 목소리가 마치 짐승처럼 으르렁댔다. 의중을 알기 힘든 행동 변화에, 이선은 잔뜩 눈치를 살피면서도 착실히 대답했다.
“아저씨예요.”
흠잡을 데 없는 무난한 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눈가를 손으로 짚던 강희찬은 손을 내리고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딴 건, 씨발, 눈으로 보면 알아요!”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사이 강희찬은 이선의 앞에서만큼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언행을 유지했다. (중략) 씨발이라니……. 어떻게 그런 말을…….
“…….”
“아니, 왜 하필이면 그런 늙은……! 아, 진짜.”
하지만 강희찬은 이선을 살필 여력이 없었다. 이미 그는 억장이 무너지고 있었다.
“선아……. 바람을 피울 거면, 좀 젊고 괜찮은 놈으로 해야지, 왜 대체…….”
그는 이제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이선은 종잡을 수 없던 그의 감정을 뒤늦게 따라잡았다. 그리고 당황했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일단 지금의 강희찬에게 자신은 연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파렴치한이었다. 차라리 불같이 화를 낸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반응은 뭐란 말인가. 마치 바람을 피우라 등을 떠미는 꼴이 아닌가. 기분이 묘했다. 서운함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선은 불만이 잔뜩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바람 아니에요. 엄마 애인 아저씬데…….”
“내일 당장 관뚜껑 열고 드러누워도……. 네?”
“엄마… 남자친구 아저씨.”
“…….”
창작의 고통에서 몸부림치는 예민한 음악가처럼. 앞머리를 거칠게 헝클던 손이 딱 멈추었다. 그리고 강희찬의 눈이 이선을 향했다. (중략)
“아저씨, 엄마보다 어리세요.”
“그…….”
“…….”
“일단, …미안해요.”
아저씨가 올해 마흔다섯이 되었던가 되지 않았던가. 아직 살날이 한참 남은 이를 내일 당장 관짝에 들어갈 노인네로 만든 탓일까? 강희찬은 답지 않게 당황했다.
# 해피엔...딩?
“제가 왜 바람을 피워요.”
“아…….”
불퉁한 이선의 표정에 강희찬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졸지에 연인을 믿지 못한 옹졸한 남자가 되었다는 자각이 일었다. 당장이라도 이선이 뒤를 돌아 집 안으로 들어가도 할 말이 없었다. (중략) 손을 뻗었다. 오해라고. 마음을 다친 이선을 달래주고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한다. 조수석에서 내릴 생각조차 없는 이선이 그에게는 지금 당장 바람처럼 홱 돌아설 사람으로 느껴졌다. 잡아야 한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 생각만을 남긴 채, 강희찬이 이선의 손을 잡으려던 순간이었다. 가느다란 양손의 온기가 먼저 강희찬의 오른손을 어설프게 감싼 것은.
“저는… 하나도 충분한데.”
이선은 차마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저런 말을 하면서도 잔뜩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강희찬은 순간적인 충동으로 이선의 손을 끌어당겼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쉬이 끌려오는 몸을 품에 넣었다. (중략)
“근데, 왜 나한텐 얘기 안 했어요? 야구장 오는 거.”
품에 기댄 이선을 떼어놓은 그는 이선의 양어깨를 잡고 진지하게 물었다. 따뜻한 품을 만끽하고 있던 이선은 새로이 시작된 2차전을 직감했다.
“그게…희찬 씨, 시합 나가는 줄 몰라서요. 안 물어보기도 했고.”
“내가 안 물어봤어도! 그래도 수원에 오면 알려줘야지. 내 기분이 어땠겠어요? 서울에 잘 있을 애인이 원정경기장에, 그것도 상대 팀 유니폼을 입고 앉아 있어. 근데 웬 산도적……!”
“…….”
“아니, 웬 남자한테 얼굴부터 먹히고 있으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해피엔딩!
“어디에요?”
“네?” (중략)
“어느 쪽 얼굴이냐고. 근데 그 아저씨란 사람도 이상하네. 엄마 남자친구면 남자친구지, 애도 아니고 다 큰 남의 아들한테 막, 어? 그런짓을 해요?” (중략)
“키스타임이니까……. 그런 거 해야 카메라 치워주잖아요.”
눈을 몇 번 깜빡인 이선은 뒤늦게 변명했다. 퉁퉁거리다 못해 불어터질 기세로 입술을 댓 발 내미는 강희찬을 가만히 달래며. 하지만 강희찬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처럼 예민하게 반응했다.
“키……! 그딴 말 하지 마요. 기분 나쁘니까. 키스는 무슨 키스야.” (개예민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제가 했다는 게 아니잖아요. 이름이…….”
“생각해 보니까 웃기네. 애새끼들 다 들어오는 데서 왜 그딴 문란한 짓이야? 내일 가면 뭐라고 해야지.”
얼굴만 파랗게 칠하면 투덜이 스머프 그 자체였다. 너른 품에 저를 기대게 해주던 다정한 남자는 어느새 정면으로 몸을 튼 채 삐죽빼죽했다. 전국 야구장에서 명절 윷놀이처럼 이어지는 막간 게임에 대한 반감이 가득 드러났다. 그로 인해 입술도 뺨도 퉁퉁거렸다.
‘아기 같아…….’ (으응....?!)
(중략) 이선은 운전석을 향해 팔을 뻗었다. 단단한 어깨를 잡고, 운전석을 향해 몸을 쭉 뻗었다. 쪽. 보드라운 뺨과 입술이 닿는 마찰음이 조용한 차 안을 울렸다.
“…….”
강희찬의 두 눈이 이쪽을 향했다. 하지만 이미 이선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척 시침을 떼며 앉아 있었다.
“이, 이러면 됐죠?”
(중략) 생전 처음 입맞춤을 해본 것처럼 굴던 강희찬은 뒤늦게 정신 차렸다.
“되긴 뭐가 돼요. 내가 해야지. 봐요. 어느 쪽이었어.”
“아……!”
커다란 손이 이선의 얼굴을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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