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는 꽃다발과 카드로부터 시작한다. ‘치히로. 건강하게 지내. 또 만나자. 리사.’ 치히로는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시골로 이사하는 중이다. 선물로 받은 꽃다발을 꼭 쥔 양손과 대조적으로 표정은 시큰둥하다. 차창 밖으로 새로 다니게 될 학교가 지나간다. 엄마아빠의 호들갑에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힐긋 보고 혀를 내민다. ‘전의 학교가 좋은걸.’ 하지만 이전 학교에 특별한 애착을 지녔다기보다 단지 전학이라는 불편한 상황이 싫은 듯하다. 꽃다발을 준 사람은 지워지고 한 송이가 아닌 다발이라는 사실에만 열중한다. 카드가 떨어져도 신경 쓰지 않는다. 엄마가 주워준 카드를 바라보면서도 애틋함이나 그리움은 없다. 친구를 떠올리는 대신 무심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장면이 나오지는 않지만 뒷내용으로 추측하건대) 거치적거리는 카드를 주머니에 쑤셔 넣을 뿐이다.
아빠는 잘못 든 길을 고집하여 앞으로 나아가 이상한 장소에 이른다. 치히로는 낯선 풍경이 으스스하다. 벗어나고 싶은데 엄마아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터널을 통과한다. 터널 밖에는 생소한 동네가 펼쳐진다. 열 살 소녀의 두려움이 현실과 뒤엉켜 꿈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오는 길에 즐비하였던 신이 산다는 작은 사당과 숲속의 기이한 석상, 차를 멈춘 건물의 ‘대중탕’이라는 간판이 꿈의 배경으로 깔린다. 바람이 빨려 들어가는 터널 입구는 손짓으로 사람을 불러들이는 유바바의 마법이 되고 석상을 뒤덮은 기분 나쁜 이끼는 청소해야 하는 더러운 대욕탕 위로 옮겨진다. 전학을 미리 겪듯 단 한 명의 이방인이 되어 배척받는다. 일을 구하고 계약했음에도 온천장 종업원들은 수군거리며 반기지 않는다. 아마 치히로가 상상하는 전학 간 학교의 모습이 그러했을 것이다. 치히로는 새 학기에 긴장하는 아이처럼 다리가 후들거리고 배가 아프다.
치히로의 걱정은 자각 전에 꿈으로 발현되고 쉽게 나쁜 가정이 앞선다. 강의 신을 대접하여 포상을 받고서도 혼자 침울하게 앉아있다. 린과의 대화를 통해 만나지 못한 하쿠를 걱정하는구나 싶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치히로는 돼지로 변한 엄마아빠에게 신이 준 경단을 먹이려고 우리로 달려간다. 수많은 돼지 중 엄마아빠를 구별해내지 못하는 섬뜩한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 잠들기 전 린은 비가 오면 바다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그만두고 언젠가 저 마을로 갈 거라고도. 치히로가 희망찬 얼굴로 맛본 경단은 엄마아빠를 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썼다. 그런 밤의 악몽. 경단이 오히려 치히로의 불안을 자극한 것이다. 엄마아빠를 구하려고 온천장에서 일하지만 사실은 이미 늦은 거면 어쩌지? 경단을 받아서 다행이지만 내가 엄마아빠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지? 온천장을 맞닥트린 꿈도 이렇게 전개되었어야 했다. 돼지가 되는 건 피했지만 발각되어 잡아먹히거나 석탄으로 변해 평생 노예처럼 일하거나. ‘기분 나쁜 꿈’으로 깨어났어야 하는데 초입부터 예상 못한 존재가 들이닥친다. ‘여긴 오면 안 돼! 어서 돌아가!’
2.
어린아이가 아이다운 순수함으로 황금을 멀리하여 고난을 이겨냈다고 간단히 말하면 안 된다. 아기 '보'는 마녀 유바바 못지않게 제멋대로이고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가오나시는 사금에 몰려드는 종업원들을 본 다음 황금을 만들어낸다. 온천장의 기괴한 설정은 치히로가 인식하는 세계를 엿보게 해준다. 탐욕스러운 어른 밑에 탐욕스러운 치히로가 있다. 한 송이 꽃과 꽃다발의 차이를 안다. 다만 그토록 바라던 꽃다발이 막상 마음에 들지 않고 금세 시드는 일을 겪었기 때문에,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나타났기 때문에 황금을 거절한다. 꽃다발이 시들듯이 황금이 부질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 정확히는 시든 꽃다발의 경험이 흙덩이로 변하는 황금을 상상해냈을 것이다.) 뭘 갖고 싶으냐고 묻는 가오나시에게 치히로가 답한다. ‘내가 원하는 걸 당신은 절대 내놓을 수 없어요.’
치히로는 기차에 오른다. 하쿠를 살리기 위해 무시무시한 마녀 제니바를 찾아간다. 도장을 돌려주지만 도장을 지키는 주문은 사라졌다고 한다. 유바바가 하쿠를 조종하고자 심은 벌레도 치히로가 밟아 터트렸다. 보와 까마귀의 마법은 이미 풀려있었다. 이 세계의 규칙에 따라 부모와 하쿠의 일 또한 제니바에게 도움받지 못하고 힌트조차 없다. 걱정되어 얼른 돌아가려 하지만 문밖에 멀쩡한 하쿠가 기다린다. 치히로는 여기 왜 온 걸까.
마녀는 ‘늪의 바닥(沼の底)’에 산다. 늪 같은 꿈속에서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간다. (일본어 한자 底에는 속마음이라는 뜻도 있다.) 중간에 멈춘 역의 풍경은 보는 이를 스산하게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추측처럼 천진난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치히로의 마음 한구석에는 죽음의 이미지가 자리한다. 부정적인 생각을 지나 기차는 더욱 깊숙이 향한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장소라는 듯이 '늪의 바닥' 역에는 바늘 없는 시계가 우뚝하다.
치히로는 첫 번째 터널을 통과할 때처럼 숲을 지나 공터를 거쳐 아치형의 짧은 통로가 대문에 딸린 제니바의 집에 이른다. 두 번째 터널을 통과하는 것만 같다. 처음은 엄마아빠에게 강제로 이끌린 불안을 형상화한 악몽이었지만 두 번째는 치히로의 의지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여행이다. 의자 위에 웅크려 고민하는 동안 친구들은 실을 잣는다. 마법은 이미 풀렸어도 하고 싶으니까 물레를 돌린다. 머리끈을 묶자마자 하쿠가 온다. 아니 머리끈을 받았기 때문에 하쿠가 비로소 도착한다.
치히로가 정말 원했던 건 꽃다발을 만회할 선물이었다. 그걸 알려고 제니바 집에 왔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장소에서 과거로 거스르듯 새로운 선물을 받는다. 시들어 사라질 물질적인 꽃다발이 아닌 모두의 마음이 담긴 선물. 강제적인 마법이 아닌 자발적인 의지로 만든 선물. (어쩌면 리사와 치히로가 친해서가 아니라 리사 엄마와 치히로 엄마가 친해서 꽃다발을 받았고 그 사실을 치히로 또한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혼자 해내야 하는 치히로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선물. 치히로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무엇을 원하는지 찾았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3.
약속대로 치히로와 치히로 부모님을 인간 세계로 보내 달라는 하쿠에게 유바바는 규칙을 들먹인다. 보까지 가세하여 유바바가 쩔쩔매지만 치히로는 시험에 응하고 오히려 보를 달랜다. ‘지금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규칙은 하쿠에게 들었습니다.’ ‘보, 곧 끝날 테니까. 괜찮아.’
마녀의 입을 통해 거듭 언급되는 마법 세상의 규칙. 하쿠에게서 들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치히로가 온천장에 오기 전부터, 꿈으로 도망치기 전부터 받아들여야만 했던 현실 질서의 변형이다. 가끔 세상에는 의지와 무관한 나쁜 일들이 벌어지고 어떻게 해도 피하지 못한다. 치히로는 전학을 가야만 하며 삶은 누군가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엄마아빠 꿈을 꾸었을 때 시험 내용이 이미 결정되었을 것이다. 치히로가 가장 꺼리는 상황이니까. 그리고 악몽과 달리 무사히 풀어낸다. 지금의 치히로는 삶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있다. 나에게 닥친 시련이 앞으로 나아갈 발판이 된다고 여긴다.
초반에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던 치히로가 어느 순간 무얼 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달아 움직인다. 필요할 때 하쿠를 부르고 하쿠의 이름을 기억해낸다. 엄마아빠에게 줄 경단을 하쿠와 가오나시에게 먹이고, 가오나시에게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밖으로 유인한다. 누군가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판단 내린다. 그 경험이 치히로를 변화시킨다. 여행에서 돌아온 보가 홀로 서 있듯이 온천장을 겪은 치히로도 성장한다.
4.
하쿠의 당부대로 치히로는 터널을 통과할 때까지 돌아보지 않는다. 빠져나와 뒤돌아보는데 머리끈이 보라색 빛을 발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몸을 바로 하여 달려 나간다. 부적은 모든 것을 잊게 한다. 어째서 기억이 아닌 망각이 부적의 효과가 될까.
영화는 치히로를 믿는다. 꿈속 기억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앞으로 마음 나눌 친구들을 사귀고 헤어질 때는 머리끈 같은 선물을 받게 되리라 확신한다. 엄마아빠를 구하고 원래 세계로 무사히 돌아가는 결말은 어쩌다 얻어걸린 한 번의 행운이 아니다. ‘언제나 몇 번이라도’ 이번의 꿈속에서 그러했듯이 현실에서도 멋지게 헤쳐나갈 거니까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 여행에서 돌아온 보는 말한다. ‘난 엄청나게 재미있었어.’ 열 살 치히로는 실수하고 후회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랄 것이다. 그건 ‘엄청나게 재미있’을 테고 현실의 치히로가 마땅히 누려야 할 몫이다. 꿈속 치히로에게 뺏겨서는 안 된다.
꿈은 꿈으로 남겨졌다. 치히로의 성장은 지워지고 다시 처음의 치히로로 돌아왔다. 영화가 끝났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이다. 치히로는 새로운 학교에 간다. 이전 학교와 비슷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과는 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이미 한 번 실패했던 치히로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다. 왜냐하면
'こなごなに碎かれた 鏡の上にも
산산조각으로 깨어진 거울 위에도
新しい景色が 映される
새로운 풍경이 비쳐
はじまりの朝の靜かな窓
시작하는 아침의 고요한 창
ゼロになるからだ 充たされてゆけ
Zero가 된 몸 채워갈 수 있어
海の彼方には もう探さない
바다 저편에서는 이제 찾지 않아
輝くものは いつも ここに
빛나는 것은 언제나 여기에
わたしのなかに 見つけられたから
내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덧붙이는 생각
치히로가 가오나시를 들여보낼 때 넷플 자막은 의역해서 ‘거기 있으면 비를 맞잖아요’인데 원문은 ‘저기.. 거기 젖지 않나요?(あの.. そこ ぬれませんか)’더라고. 치히로가 가오나시를 챙긴 이유가 젖는 걸 걱정해서인 게 좋았음ㅠㅠ 다른 신이나 종업원들은 인간이 아니라 젖는 걸 신경 안 쓸 것 같은데(영혼은 안 젖으니까) 치히로만 온천장에서 배척받는 ‘인간’이라 젖는 감각을 알아서 가오나시에게 신경 쓰고 가오나시가 그걸로 감긴 게. 근데 생각해보니까 온천을 즐기는 자체가 신들도 젖는 감각을 알아서인 것 같기도? 그래서 폐기함ㅋㅋ
온천장이 치히로의 꿈이라고 가정하면 나오는 인물들을 대충 치히로 관점에서 끼워 맞출 수가 있는데.. 예를 들어 린은 외동인 치히로가 갖고 싶어 했던 언니라거나.. 엘베 탈 때 희고 덩치 큰 신은 어린 치히로가 덩치 큰 어른에게 시야가 가려졌던 경험이라거나.. 가오나시는 학교에서의 치히로 모습이 반영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음. 온천장에서 인간 형태인 종업원들은 다들 애니답게 표정이 과장되어 있는데 영화 초반의 치히로랑 가오나시만 표정이 없어서.. 근데 근거 없이 너무 끼워 맞춘 것 같아서 이것도 폐기함ㅋㅋ
굴 고마워!!!스크랩 해가께!!추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