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동료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던 선배님이라 왜 이제야 터지나 했습니다."
연이은 성희롱 고발로 온라인이 터질듯 들끓고 있다. 지난 22일,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자 배우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배우 A에 관한 얘기였다. 대한민국에서도 번지고 있는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 직접 나서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죄송하다고, 하지만 진실을 알아달라는 말과 함께.
연극계와 방송·영화계가 발칵 뒤집혔다. 유명 배우와 감독의 성추행과 만행들이 낱낱이 고발되고 있다. 배우들은 말한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성희롱적 언행들은 신인 때부터 일상적으로 당해왔지만, 혹여 '괘씸죄'로 불이익을 볼까봐 불만을 제기할 수도 없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반갑다고 했다. 지금 이렇게 용기를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슴 속 한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에게 "당신도 나서라"고 종용하지 않았다. 같은 피해자에서 방관자로 변모한 것을 탓하지도 않는다. 지나온 세월의 상처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억울하다면 숨지 말고 실명을 밝히라"며 강요에 가까운 재촉을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잊고 싶은 상처를 강제로 들추기보다는 스스로 변화에 동참하게 하는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도 얘기할까?' 고민하고 있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이 숱하게 많단다.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이나 잠시 업계를 거쳐간 아르바이트생들까지도 '안 좋은' 일을 많이 당했다고 한다. 기가 막힌 노릇이다.
이 모든 것들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간 업계 관계자들을 통해 수많은 피해사례들을 접했다. 악성루머일 수도 있다는, 정확한 사실 확인이 불가하다는 핑계로 기사화하지 않은 기자 역시 방관죄가 있는 것 같아 착잡해졌다. 이게 시작이라는 것 또한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쏟아져 나올지, 짐짓 예견하기가 어렵다.
새삼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고맙게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혼자 끙끙 앓아야 했을까. "나도 당했다"고 세상에 외치기까지 얼마나 깊은 갈등 속에서 자신과 싸워야 했을까. 엄연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역으로 손가락질을 당할까봐 움츠러들었다는 그들의 고백이 미안하고 안쓰럽게 느껴진다.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용기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당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추악한 진실을 침묵 속에 가둬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미투'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uu84_star@fnnews.com fn스타 유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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